아무것도 아닌 빛

아무것도 아닌 빛

$13.53
저자

정영선

1963년경상남도남해에서태어났으며부산대학교역사교육과와동대학원국문과를거쳐경성대학교국문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1997년중편『평행의아름다움』으로[문예중앙]을통해등단하였으며소설집으로『평행의아름다움』(문화예술위원회우수문학도서선정),장편소설로『실로만든달』이있다.부산소설문학상,부산작가상을받았고,2010년문화예술위원회창작지원금을수혜하였다.현재경남여고에재직중이며경성대학교에출강하고있다.『생각하는사람들』로2018년제35회요산김정한문학상수상하였다.

목차

1부누가말했는가
2부여든살의독서모임
3부지금,여기
4부죽기전에해야할일
5부기억의주름

해설사랑과믿음의엘레지|구모룡(문학평론가)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빨치산과히로시마원폭피해,
60여년의세월을건너는사랑과믿음의비가(悲歌)

『아무것도아닌빛』의무대는도시주변부이고주된등장인물도노년이다.보다구체적으로말하면부산의외곽끝자락인낙동강유역‘은곡’의서민아파트단지에사는사람들의이야기를담고있으며90세를전후한연치의남녀노인을중심에두고이들과연관한여러인물을주위에배치하고있다.시간도팬데믹에처한최근몇년동안이다.노년의삶이그렇듯이단조로운일상의사건들이펼쳐진다.하지만이는빙산의일각일뿐이며그아래각기복잡다단한개인사가내장되어있다.그러니까이소설은우연하지않게같은아파트단지에모여살게된오랜인연을지닌사람들의관계를추적한다.이들은예외적일만큼사회적약자혹은소수자에해당하는사람들로서주변부서민아파트로모여들었기에그만남이자연스럽다.

작가는텍스트의입구에서“신불산유격대활동과사상범의수감생활은『신불산?빨치산구연철생애사』”를참조했음을밝히고있다.이는창작의계기가실존인물과연관된다는것을의미하며줄곧‘구연철’에서비롯한‘안재석’을일인칭주인공으로극화하여서술하는데서잘드러난다.물론실재와허구,현실과상상을넘나드는일은소설의특권이므로텍스트해석에서‘구연철의생애사’는하나의참조사항에지나지않는다.무엇보다먼저텍스트를진행하는동력인플롯을찾으면이소설을구성하는큰뼈대가남녀두노인의‘특이한사랑’이야기임을알게된다.빨치산으로신불산에서활동하다휴전이후에체포되어삼십년감옥살이를하고나온안재석과일본인아버지와한국인어머니사이에서태어난‘조향자’는서로친밀한관계가아니다.전쟁이나기전의도피과정에서수정동에서안재석이조향자를두번만나지만안재석이기억하는만큼조향자는그를인지하지못한다.

소설의결말에서보듯이다수의도피자가수정동의조향자집을은신처로삼았으니숨겨주는이보다숨는이의절박한마음이더오래남았고,안재석이감옥에서고문에못이겨조향자를아내라고둘러댄부채감과죄의식도기억을고착한다.따라서‘사랑이야기’는플롯의유형을규정하는측면에불과할수도있다.오히려둘의다른기억과마음에기반한성격의차이를먼저주목하지않을수없다.이는은곡에서의만남에서잘드러난다.안재석이육십년도더된과거를생각하며조향자가사는이곳으로이주한행위와달리조향자는그를제대로분별하지못한다.그러니까소설은두사람이만드는사건의치열함이아니라두사람을나란히병치하는방법을선택하면서성격화하고이들과연관한인물들을드나들게만든다.

어떤의미에서이소설에서굳이인물의경중을따진다면조향자에더무게가실리고있는게아닌가한다.안재석이한시대의행위자였다면조향자는어두운고난의시대를고스란히품고산인물이다.2부‘여든살의독서모임’은조향자를주인물로내세워서술하는데이지점에서전체서술에서시점의교차를확인할필요를느낀다.이미말한대로1부‘누가말했는가’1~4장은일인칭전지의안재석시점이고2부‘여든살의독서모임’1~4장은삼인칭전지의조향자시점이다.1부와2부를보면확실히안재석과조향자를병립하려는서술의도가분명하다.그런데3부‘지금,여기’는1장을일인칭전지의류정일시점으로,2장을일인칭전지의안재석시점으로서술하여류정일과안재석이각기자기를말하게한다.다시4부‘죽기전에해야할일’1~3장은삼인칭전지의조향자시점으로돌아오고,마지막5부‘기억의주름’은1~3장을일인칭전지의안재석시점으로,4장을삼인칭전지의조향자시점으로마감한다.

우선외적형식으로보더라도이소설에서안재석과조향자가주요하고이들의사이에류정일이존재함을알수있다.또한남성인물을일인칭주인공서술자로극화한반면여성인물은서술대상으로삼았다.이는안재석의정동을따라서서술하려는작가의의도와연관한다.그마음의중력이조향자를향하고있기때문이다.두사람의길고긴생애의우여곡절이품고있는많은수수께끼에대한답은5부‘기억의주름’에서제시되며특히마지막3장을통하여조향자의시점으로설명된다.이러한점에서도이텍스트가지닌기억과욕망의역학은능동적인물인안재석을수동적인물인조향자가감싸안는형국이다.

2부‘여든살의독서모임’의1,2,3장이조향자의고단한생활세계의구체적세목을서술하고있다면4장은독서모임에서받아온『정음』이라는책을매개로그녀의생애에얽힌내력을소급한다.사실이한장으로도서사의충동이차고넘친다.자신의태생부터일본에서한국으로이끌어준류정일,그리고부모와같이원폭피해자로원자병으로고생하고치매를앓다죽은남편동준과파혼과실패를거듭하며자살한아들의이야기를숨가쁘게회상하기때문이다.

3부의1장은일인칭주인공서술자가류정일이다.다른빨치산동지인박동배,이영섭이안재석의서사속에포함되고원폭피해자인이동준이조향자의서사안에서서술되는양상과다르게독립되어있다.그만큼류정일이여러내러티브를연결하는결절점의위치에있음을의미한다.패전과더불어류정일은오사카츠루하시를떠나시모노세키에서도항이여의치않자야마구치조선학교주변에서머물다해가바뀌면서향자와함께부산으로귀환한다.『정음』은조선학교의한국어교재이며향자와동준도이책을통하여정일의지도하에한국어교습을받는다.야마구치는정일과향자와동준을연결하는처음의장소이다.그리고향자가정일의죽은누이동생의이름을받은탓도있지만,그들은남매역을하거나부부역을하며귀환에성공하여수정동에정착하게된다.

4부‘죽기전에해야할일’1~3장은2부에이어서다시삼인칭전지의조향자시점으로돌아온다.1장에서‘장수원’으로가야한다는어지러운심경에서들른국밥집에서안재석을만나고그가조향자의집에서잠을청하는사건이생긴다.하지만아직도그녀는그의정체를제대로알지못한다.어쩌면그녀는남편과아들의죽음이라는엄청난트라우마를지녔고열일곱평아파트를나와서장수원으로가기를권유당하는말년의처지에서다른누구를진지하게알려고하는의지를갖지않은듯하다.또한세상의풍파를겪으면서터득한‘수동적능력’이그녀로하여분간하고구분하는일을거부하게하는것처럼보인다.여하튼이렇게안재석은조향자의죽은남편이기거하던방에서잠을자고모자를둔채나오게되며,이러한사건은조향자가다시원자폭탄투하로폐허가된히로시마에서겨우벗어나시모노세키를거쳐야마구치에이르러그녀를만난남편의신산한삶을떠올리는계기가된다.

이소설의마지막은“아무것도아니지만오래전에간직한희미한빛이었다.영감의코고는소리가들린다.그때도,꼭심장뛰는소리처럼들렸다”라는구절로끝난다.“아무것도아니지만오래전에간직한희미한빛”은어떠한의미를지니는것일까?조향자에게아들은“크고밝은별”인“금성”과같은존재이다.그러나남편과아들의부재는그들의유골을흘려보낸그림자의강과같은세월을남긴다.이러한가운데그녀의내면에“오래전에간직한희미한빛”은결코아무것도아닌빛이아니다.

해방과한국전쟁시기를훌쩍뛰어넘어팬데믹으로어두운지구적자본주의시대에빛은어디에서오는것일까?안재석과조향자가여러인물과어울려만든사랑과믿음은비가(elegy)로그치는가,아니면새로운희망의가능성인가?이소설은이와같은마음의문제를탐구한다.그래서시적인아름다움을품는다.

■작가의말

부산작가회의에서오사카와교토로디아스포라기행을간적이있다.오사카조선인마을을보고와서재일조선인의소설몇편을읽었다.그다음해부산소설가협회에서부관연락선을타고시모노세키를갔다왔고,몇년뒤어느단체를따라조선학교를방문한적이있었다(이글을쓸때쯤‘동포-넷’이란걸알았다).3박4일인지4박5일인지짧은일정이었는데,조선학교를지켜온분들을여럿만났다.어린시절해방을맞았던분들이셨다.분단상황이이런모습으로,이렇게오래갈줄정말몰랐다,일본사람들이통일도못하는나라라고무시하는것같다며나이많은분이눈물을보였다.그눈물을잊을수없었다.하나더있다.지하철역에붙은원폭피해자구술관련포스터를보고한단체에전화를했다.떨어질까봐가슴졸이며면접을봤고한여름에구청근처사무실로원폭피해를입은분들의구술을받으러다녔다.소설의시작은이네가지사건이었다.

스무살에빨치산이된재석과원폭피해로남편을잃은향자는내가만난그누구도아니지만누군가의모습을조금씩은닮아있을것이다.소설은결국누군가,누군가의마음이문장속으로들어오는일이라는걸말해도될까.이제나는소설을시작하는문장몇개와끝문장몇개를외울수있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