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시대와 세대, 모든 경계를 뛰어넘을 어떤 새로운 꿈틀거림이.”
_‘작가의 말’에서
_‘작가의 말’에서
팬데믹을 겪는 지난 3년간,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재난은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갔지만 역설적이게도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게 해주었음을 소설 속 주인공들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문학 기행문을 쓰러 파리에 갔다가 곤경에 빠진 대필 작가는 거리에서 만난 소년 배달부와의 우정으로 예상 밖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검은 모나리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부상을 입고 친구마저 잃은 여대생은 아버지와 심한 세대 갈등을 겪으면서 아픔을 딛고 나아가며(「네가 떠난 그 자리에서」), 각자 슬픔의 연원이 달랐기에 실패하고 마는 코로나 중증환자와 간호사 사이의 소통은 서로 어긋나기에 더욱 애틋하다(「신 테트리스 게임」).
싱어송라이터가 꿈인 대학생 동표는 생계를 위해 지하철 판촉활동에 나섰다가 상권을 주무르는 주먹들의 횡포에 환멸을 느끼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서고(「끝없이 나선형으로 나 있는」), 희생자 K의 넋을 기리기 위해 구의역 사고현장을 다녀온 대학생인 ‘나’는 꿈속에서 스스로 정비공이 되어 그 삶을 직접 살아보며(「팽이 돌리는 소년」), 네트워크 사업을 하던 형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음을 맞자 수타면 기술자인 동생은 그물 짜기의 달인인 신화 속 아라크네 여신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아라크네의 후예들」).
애당초 삭막할 수밖에 없는 코로나 시대의 장례는 뜻밖의 반전을 맞게 되고(「죽은 자의 향기」), 마스크를 사러 약국 앞에 줄을 섰다가 첫사랑 애인의 초라한 모습을 목격한 여인은 그와 함께했던 추억의 골목을 찾아 나서면서 과거와 화해하고(「황금소로」), 기억과 육체의 쇠락에 맞서 싸우는 언니를 돌보는 동생은 어둠 속의 방황이 어린아이의 성장 못지않게 신비롭고 존귀한 분투임을 증언한다(「바람의 노래」).
답답한 도쿄를 벗어나 눈의 나라 유자와에 간 대학원생은 그곳에서 만난 이웃 나라 청년과 함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로의 탈출을 꿈꾸고(「탈출」), 코로나로 실직한 방송작가는 생계 거리를 찾아 들어간 서해 최북단의 섬에서 발견한 덩이뿌리 하수오의 모양에서 자신의 기이한 욕망의 실체와 마주한다(「하수오」).
늦은 나이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음에도 박찬순은 활동 초기부터 젊은 작가들 못지않은 활달한 필력을 보여주며 국경과 계층, 직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일관되게 견지해온 것은 동시대의 현실 속에서 개인들이 겪는 삶의 리얼리티를 충실하게 재현해내려는 태도다. 특히 이국의 세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공간 이동은 박찬순이 들려주는 개인들의 서사를 보다 다채롭게 만드는 인상적인 요소다. 이러한 공간 이동은 작가의 꾸준한 공부와 부지런한 취재를 짐작게 하는 섬세한 디테일들과 어우러지며 박찬순 소설의 육체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이 소설집 바로 이전에 발간된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강, 2018)에서 작가는 이러한 공간의 확장과 더불어, 이국의 공간을 배경으로 음악이나 문학 등의 예술 행위를 하거나 예술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개인들의 삶에 집중하는 새로운 소설적 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예외적 개인들의 이야기는 일견 우리가 당면한 동시대의 삶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을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이 예술적 삶에 대한 낭만적 지향과 함께 예술을 둘러싼 현실 세계에 대해 특유의 사실주의적 관찰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박찬순 소설을 특징짓는 리얼리즘적 현실 인식의 확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술 또한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이번 소설집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이전 소설들에서 이국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던 작가의 소설적 관심이 현재, 한국의 현실로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작가의 소설들이 한국 현실의 내부를 보다 찬찬히 들여다보는 쪽으로 소설의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공교롭게도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의 발간 이후 코로나로 인해 국경이 봉쇄되었던 최근 몇 년간의 현실과 겹쳐 있기도 하다.
소설집 속에는, 멀게는 2016년 구의역에서 있었던 스크린도어 정비공의 죽음에서부터 가깝게는 코로나로 인한 실직과 사망, 혹은 159명의 젊은 목숨들을 앗아간 최근의 10ㆍ29참사에 이르기까지, 실제의 비극적 사건들을 소재로 한 다수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작가의 적극적 취재와 상상력이 결합된 이러한 기민한 현실 인식은 뉴스가 전해주는 건조한 사실들과 통계수치들에 가려진 인간의 모습들을 문학의 이름으로 호명한다. 객관적 보도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개개인의 삶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 뉴스를 통해 익명화된 정보나 숫자로 처리되곤 하는 인간의 죽음에 삶의 육체를 부여함으로써 그 죽음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한 고유한 개인의 죽음이자 우리 모두의 참혹한 비극임을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집에서 작가가 수행하고 있는 문학의 역할이다. 이것은 또한 이 세계가 객관적 정보나 수치들로 기록되는 세계를 넘어 각각의 개인들이 저마다의 아픔과 고통 어린 사연들을 지니고 살아가는 생생한 삶의 현장임을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문학 기행문을 쓰러 파리에 갔다가 곤경에 빠진 대필 작가는 거리에서 만난 소년 배달부와의 우정으로 예상 밖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검은 모나리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부상을 입고 친구마저 잃은 여대생은 아버지와 심한 세대 갈등을 겪으면서 아픔을 딛고 나아가며(「네가 떠난 그 자리에서」), 각자 슬픔의 연원이 달랐기에 실패하고 마는 코로나 중증환자와 간호사 사이의 소통은 서로 어긋나기에 더욱 애틋하다(「신 테트리스 게임」).
싱어송라이터가 꿈인 대학생 동표는 생계를 위해 지하철 판촉활동에 나섰다가 상권을 주무르는 주먹들의 횡포에 환멸을 느끼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서고(「끝없이 나선형으로 나 있는」), 희생자 K의 넋을 기리기 위해 구의역 사고현장을 다녀온 대학생인 ‘나’는 꿈속에서 스스로 정비공이 되어 그 삶을 직접 살아보며(「팽이 돌리는 소년」), 네트워크 사업을 하던 형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음을 맞자 수타면 기술자인 동생은 그물 짜기의 달인인 신화 속 아라크네 여신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아라크네의 후예들」).
애당초 삭막할 수밖에 없는 코로나 시대의 장례는 뜻밖의 반전을 맞게 되고(「죽은 자의 향기」), 마스크를 사러 약국 앞에 줄을 섰다가 첫사랑 애인의 초라한 모습을 목격한 여인은 그와 함께했던 추억의 골목을 찾아 나서면서 과거와 화해하고(「황금소로」), 기억과 육체의 쇠락에 맞서 싸우는 언니를 돌보는 동생은 어둠 속의 방황이 어린아이의 성장 못지않게 신비롭고 존귀한 분투임을 증언한다(「바람의 노래」).
답답한 도쿄를 벗어나 눈의 나라 유자와에 간 대학원생은 그곳에서 만난 이웃 나라 청년과 함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로의 탈출을 꿈꾸고(「탈출」), 코로나로 실직한 방송작가는 생계 거리를 찾아 들어간 서해 최북단의 섬에서 발견한 덩이뿌리 하수오의 모양에서 자신의 기이한 욕망의 실체와 마주한다(「하수오」).
늦은 나이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음에도 박찬순은 활동 초기부터 젊은 작가들 못지않은 활달한 필력을 보여주며 국경과 계층, 직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일관되게 견지해온 것은 동시대의 현실 속에서 개인들이 겪는 삶의 리얼리티를 충실하게 재현해내려는 태도다. 특히 이국의 세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공간 이동은 박찬순이 들려주는 개인들의 서사를 보다 다채롭게 만드는 인상적인 요소다. 이러한 공간 이동은 작가의 꾸준한 공부와 부지런한 취재를 짐작게 하는 섬세한 디테일들과 어우러지며 박찬순 소설의 육체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이 소설집 바로 이전에 발간된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강, 2018)에서 작가는 이러한 공간의 확장과 더불어, 이국의 공간을 배경으로 음악이나 문학 등의 예술 행위를 하거나 예술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개인들의 삶에 집중하는 새로운 소설적 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예외적 개인들의 이야기는 일견 우리가 당면한 동시대의 삶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을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이 예술적 삶에 대한 낭만적 지향과 함께 예술을 둘러싼 현실 세계에 대해 특유의 사실주의적 관찰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박찬순 소설을 특징짓는 리얼리즘적 현실 인식의 확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술 또한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이번 소설집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이전 소설들에서 이국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던 작가의 소설적 관심이 현재, 한국의 현실로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작가의 소설들이 한국 현실의 내부를 보다 찬찬히 들여다보는 쪽으로 소설의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공교롭게도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의 발간 이후 코로나로 인해 국경이 봉쇄되었던 최근 몇 년간의 현실과 겹쳐 있기도 하다.
소설집 속에는, 멀게는 2016년 구의역에서 있었던 스크린도어 정비공의 죽음에서부터 가깝게는 코로나로 인한 실직과 사망, 혹은 159명의 젊은 목숨들을 앗아간 최근의 10ㆍ29참사에 이르기까지, 실제의 비극적 사건들을 소재로 한 다수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작가의 적극적 취재와 상상력이 결합된 이러한 기민한 현실 인식은 뉴스가 전해주는 건조한 사실들과 통계수치들에 가려진 인간의 모습들을 문학의 이름으로 호명한다. 객관적 보도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개개인의 삶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 뉴스를 통해 익명화된 정보나 숫자로 처리되곤 하는 인간의 죽음에 삶의 육체를 부여함으로써 그 죽음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한 고유한 개인의 죽음이자 우리 모두의 참혹한 비극임을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집에서 작가가 수행하고 있는 문학의 역할이다. 이것은 또한 이 세계가 객관적 정보나 수치들로 기록되는 세계를 넘어 각각의 개인들이 저마다의 아픔과 고통 어린 사연들을 지니고 살아가는 생생한 삶의 현장임을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검은 모나리자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