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나리자

검은 모나리자

$15.18
Description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시대와 세대, 모든 경계를 뛰어넘을 어떤 새로운 꿈틀거림이.”
_‘작가의 말’에서
팬데믹을 겪는 지난 3년간,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재난은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갔지만 역설적이게도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게 해주었음을 소설 속 주인공들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문학 기행문을 쓰러 파리에 갔다가 곤경에 빠진 대필 작가는 거리에서 만난 소년 배달부와의 우정으로 예상 밖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검은 모나리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부상을 입고 친구마저 잃은 여대생은 아버지와 심한 세대 갈등을 겪으면서 아픔을 딛고 나아가며(「네가 떠난 그 자리에서」), 각자 슬픔의 연원이 달랐기에 실패하고 마는 코로나 중증환자와 간호사 사이의 소통은 서로 어긋나기에 더욱 애틋하다(「신 테트리스 게임」).
싱어송라이터가 꿈인 대학생 동표는 생계를 위해 지하철 판촉활동에 나섰다가 상권을 주무르는 주먹들의 횡포에 환멸을 느끼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서고(「끝없이 나선형으로 나 있는」), 희생자 K의 넋을 기리기 위해 구의역 사고현장을 다녀온 대학생인 ‘나’는 꿈속에서 스스로 정비공이 되어 그 삶을 직접 살아보며(「팽이 돌리는 소년」), 네트워크 사업을 하던 형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음을 맞자 수타면 기술자인 동생은 그물 짜기의 달인인 신화 속 아라크네 여신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아라크네의 후예들」).
애당초 삭막할 수밖에 없는 코로나 시대의 장례는 뜻밖의 반전을 맞게 되고(「죽은 자의 향기」), 마스크를 사러 약국 앞에 줄을 섰다가 첫사랑 애인의 초라한 모습을 목격한 여인은 그와 함께했던 추억의 골목을 찾아 나서면서 과거와 화해하고(「황금소로」), 기억과 육체의 쇠락에 맞서 싸우는 언니를 돌보는 동생은 어둠 속의 방황이 어린아이의 성장 못지않게 신비롭고 존귀한 분투임을 증언한다(「바람의 노래」).
답답한 도쿄를 벗어나 눈의 나라 유자와에 간 대학원생은 그곳에서 만난 이웃 나라 청년과 함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로의 탈출을 꿈꾸고(「탈출」), 코로나로 실직한 방송작가는 생계 거리를 찾아 들어간 서해 최북단의 섬에서 발견한 덩이뿌리 하수오의 모양에서 자신의 기이한 욕망의 실체와 마주한다(「하수오」).

늦은 나이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음에도 박찬순은 활동 초기부터 젊은 작가들 못지않은 활달한 필력을 보여주며 국경과 계층, 직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일관되게 견지해온 것은 동시대의 현실 속에서 개인들이 겪는 삶의 리얼리티를 충실하게 재현해내려는 태도다. 특히 이국의 세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공간 이동은 박찬순이 들려주는 개인들의 서사를 보다 다채롭게 만드는 인상적인 요소다. 이러한 공간 이동은 작가의 꾸준한 공부와 부지런한 취재를 짐작게 하는 섬세한 디테일들과 어우러지며 박찬순 소설의 육체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이 소설집 바로 이전에 발간된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강, 2018)에서 작가는 이러한 공간의 확장과 더불어, 이국의 공간을 배경으로 음악이나 문학 등의 예술 행위를 하거나 예술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개인들의 삶에 집중하는 새로운 소설적 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예외적 개인들의 이야기는 일견 우리가 당면한 동시대의 삶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을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이 예술적 삶에 대한 낭만적 지향과 함께 예술을 둘러싼 현실 세계에 대해 특유의 사실주의적 관찰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박찬순 소설을 특징짓는 리얼리즘적 현실 인식의 확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술 또한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이번 소설집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이전 소설들에서 이국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던 작가의 소설적 관심이 현재, 한국의 현실로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작가의 소설들이 한국 현실의 내부를 보다 찬찬히 들여다보는 쪽으로 소설의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공교롭게도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의 발간 이후 코로나로 인해 국경이 봉쇄되었던 최근 몇 년간의 현실과 겹쳐 있기도 하다.
소설집 속에는, 멀게는 2016년 구의역에서 있었던 스크린도어 정비공의 죽음에서부터 가깝게는 코로나로 인한 실직과 사망, 혹은 159명의 젊은 목숨들을 앗아간 최근의 10ㆍ29참사에 이르기까지, 실제의 비극적 사건들을 소재로 한 다수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작가의 적극적 취재와 상상력이 결합된 이러한 기민한 현실 인식은 뉴스가 전해주는 건조한 사실들과 통계수치들에 가려진 인간의 모습들을 문학의 이름으로 호명한다. 객관적 보도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개개인의 삶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 뉴스를 통해 익명화된 정보나 숫자로 처리되곤 하는 인간의 죽음에 삶의 육체를 부여함으로써 그 죽음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한 고유한 개인의 죽음이자 우리 모두의 참혹한 비극임을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집에서 작가가 수행하고 있는 문학의 역할이다. 이것은 또한 이 세계가 객관적 정보나 수치들로 기록되는 세계를 넘어 각각의 개인들이 저마다의 아픔과 고통 어린 사연들을 지니고 살아가는 생생한 삶의 현장임을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

박찬순

2006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가리봉양꼬치」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으로『발해풍의정원』『무당벌레는꼭대기에서난다』『암스테르담행완행열차』가있다.2011년아이오와국제창작프로그램,2015년테헤란레지던스작가로선정되었다.2012년서울문화재단,2017년경기문화재단문예창작지원금을수혜했다.2014년한국소설가협회작가상,2018년문학비단길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검은모나리자
네가떠난그자리에서
신테트리스게임
끝없이나선형으로나있는
팽이돌리는소년
아라크네의후예들
죽은자의향기
하수오(何首烏)
바람의노래
탈출
황금소로(黃金小路)

해설거미줄과꽃향기|박혜경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늦은나이에작품활동을시작했음에도박찬순은활동초기부터젊은작가들못지않은활달한필력을보여주며국경과계층,직업의경계를넘나드는개인들의다양한이야기들을들려주었다.이과정에서작가가일관되게견지해온것은동시대의현실속에서개인들이겪는삶의리얼리티를충실하게재현해내려는태도다.특히이국의세계를넘나드는자유로운공간이동은박찬순이들려주는개인들의서사를보다다채롭게만드는인상적인요소다.이러한공간이동은작가의꾸준한공부와부지런한취재를짐작게하는섬세한디테일들과어우러지며박찬순소설의육체를보다풍성하게만들어준다.이소설집바로이전에발간된『암스테르담행완행열차』(강,2018)에서작가는이러한공간의확장과더불어,이국의공간을배경으로음악이나문학등의예술행위를하거나예술과관련된일에종사하는개인들의삶에집중하는새로운소설적시도를보여준다.이러한예외적개인들의이야기는일견우리가당면한동시대의삶과거리가있어보인다.그러나이들을그려내는작가의시선이예술적삶에대한낭만적지향과함께예술을둘러싼현실세계에대해특유의사실주의적관찰의태도를견지하고있다는점에서이또한박찬순소설을특징짓는리얼리즘적현실인식의확장으로보아야할것이다.예술또한우리의현실을구성하는중요한요소가아닌가?

이번소설집에나타나는두드러진특징은이전소설들에서이국의시공간을넘나들며펼쳐지던작가의소설적관심이현재,한국의현실로집중되는양상을보인다는점이다.최근에일어난일들을중심으로작가의소설들이한국현실의내부를보다찬찬히들여다보는쪽으로소설의방향을선회하고있는것이다.이러한변화는공교롭게도『암스테르담행완행열차』의발간이후코로나로인해국경이봉쇄되었던최근몇년간의현실과겹쳐있기도하다.

소설집속에는,멀게는2016년구의역에서있었던스크린도어정비공의죽음에서부터가깝게는코로나로인한실직과사망,혹은159명의젊은목숨들을앗아간최근의10·29참사에이르기까지,실제의비극적사건들을소재로한다수의작품들이실려있다.작가의적극적취재와상상력이결합된이러한기민한현실인식은뉴스가전해주는건조한사실들과통계수치들에가려진인간의모습들을문학의이름으로호명한다.객관적보도라는이름뒤에가려진개개인의삶의이야기들을들려주는것,뉴스를통해익명화된정보나숫자로처리되곤하는인간의죽음에삶의육체를부여함으로써그죽음이누구도대체할수없는한고유한개인의죽음이자우리모두의참혹한비극임을기억하게하는것,그것이이소설집에서작가가수행하고있는문학의역할이다.이것은또한이세계가객관적정보나수치들로기록되는세계를넘어각각의개인들이저마다의아픔과고통어린사연들을지니고살아가는생생한삶의현장임을기억하는방식이기도할것이다.

추천사

이번소설집에실린작품들은정확히끝없이추락하는이들에대한너무도쓰라린기록이자정직한보고이다.그러나그자신어둠의일부로서어둠속을배회하면서작가의시선은슬픔의내부에서이미스스로를들어올리고있던빛의순간들을정밀하고곡진한이야기와언어로채집해보여준다.아프리카소년아둠이고향강의꽃향기를그리워하며파리한복판에서그려낸‘검은모나리자’는탈북소년철웅,이태원참사현장에서스러져간이란여대생라일라와한국인친구희진,대형물류센터상하차작업중쓰러진대학생K,목숨을담보로일하는스크린도어계약직정비공성호등이함께찾고있던빛의표상일것이다.『검은모나리자』는소설의섬세한언어와이야기의힘이동시에희귀한희망의능력이기도하다는사실을새삼일깨운다.
_정홍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