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탄 소묘집 (장석 시집 | 양장본 Hardcover)

목탄 소묘집 (장석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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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어쩌면 모든 시는 ‘전주곡’이나 ‘소묘’인 채로 태어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적어도 시를 쓰는 마음의 첫 자리는 웅장한 교향곡이나 거대한 풍경화의 완성된 세계를 모르기 쉬울 듯하다. 시인은 마주하고 있는 세상에서 그를 울리는 하나의 동기 음(音), 폐부를 찔러오는 희미하고 가냘픈 한 줄의 선을 얻기 위해 골몰하며 거기서 세상과 그 자신을 되비추는 소리와 이미지의 작디작은 어울림의 움직임, 모순과 파열의 이야기가 일어나기를 갈망하는 것이리라. 또한 시 한 편의 완결은 시인이 꿈꾸는 시의 전체적 영토 안에서라면 언제나 잠정적이고 예비적인 자리로 물러나며 지속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시는 본편을 유예하며 기다리는 서시일 수밖에 없다. 장석은 시집을 여는 「서곡-모든 서시 앞에」에서 시의 이러한 운명을 노래한다.
저자

장석

1957년부산생.평북영변출신으로함흥과부산에서성장하고수학한아버지와전남순천이고향인어머니사이의2남1녀중둘째다.서울대학교국문과졸업.1980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사랑은이제막태어난것이니』『우리별의봄』『해변에엎드려있는아이에게』『그을린고백』을펴냈다.2024년일역시선집『ぬしはひとの道をゆくな(너는사람의길을가지말아라)』(도다이쿠코옮김,쿠온)가출간되었다.

목차

서곡모든서시앞에

1부|열여덟개의전주곡
열여덟개의전주곡1파도
열여덟개의전주곡2비린내와노린내
열여덟개의전주곡3밤공연
열여덟개의전주곡4작은섬우도
열여덟개의전주곡5주운노래
열여덟개의전주곡6빈병에넣은노래
열여덟개의전주곡7봄바다
열여덟개의전주곡8바다의되풀이
열여덟개의전주곡9책갈피안의숲
열여덟개의전주곡10비밀편지
열여덟개의전주곡11날씨
열여덟개의전주곡12양서류의노래
열여덟개의전주곡13조간대의시간
열여덟개의전주곡14봄날은간다
열여덟개의전주곡15신발한짝
열여덟개의전주곡16다른한짝
열여덟개의전주곡17아주낡은배
열여덟개의전주곡18밤바다에서

2부|목탄소묘집ㆍ1
목탄소묘집1-1새벽,슈투트가르트
목탄소묘집1-2별이달려가는소리
목탄소묘집1-3우리근원의하나,도나우에싱겐
목탄소묘집1-4둔주곡,레겐스부르크
목탄소묘집1-5물의혼례,파사우
목탄소묘집1-6새벽골목,빈
목탄소묘집1-7텅빈사원,린츠
목탄소묘집1-8시간의채집상자,빈
목탄소묘집1-9바하우포도밭
목탄소묘집1-10멜크수도원의고서
목탄소묘집1-11빙하의죽음,다흐슈타인
목탄소묘집1-12볼프강호수에서
목탄소묘집1-13처벌과세탁,체스키크롬로프
목탄소묘집1-14잘츠부르크의과자가게
목탄소묘집1-15카프카가떠난방,키얼링
목탄소묘집1-16무지개다리,빈
목탄소묘집1-17다뉴브강변,오스트리아
목탄소묘집1-18여행자의꿈,잘츠부르크
목탄소묘집1-19루카치는자리를비웠네,카페란트만
목탄소묘집1-20출필고반필면

3부|목탄소묘집ㆍ2
목탄소묘집2-1빈사의강변
목탄소묘집2-2모든것의뒤
목탄소묘집2-3꽃의입냄새,베를린
목탄소묘집2-4공동묘지앞의지하철역,베를린
목탄소묘집2-5‘A’트레인,베를린
목탄소묘집2-6내시경
목탄소묘집2-7골목안풀꽃,부다페스트
목탄소묘집2-8부다페스트에서길을잃는방법
목탄소묘집2-9브라티슬라바의다리
목탄소묘집2-10홍수후,크렘스
목탄소묘집2-11린츠의골목길
목탄소묘집2-12창과아기의눈,뉘른베르크
목탄소묘집2-13어린포도알을채우는피,뒤른스타인
목탄소묘집2-14강과길에대하여
목탄소묘집2-15닫으며

해설|정홍수은총의순간이지나가면시도지나간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어쩌면모든시는‘전주곡’이나‘소묘’인채로태어나는것일수도있겠다.적어도시를쓰는마음의첫자리는웅장한교향곡이나거대한풍경화의완성된세계를모르기쉬울듯하다.시인은마주하고있는세상에서그를울리는하나의동기음(音),폐부를찔러오는희미하고가냘픈한줄의선을얻기위해골몰하며거기서세상과그자신을되비추는소리와이미지의작디작은어울림의움직임,모순과파열의이야기가일어나기를갈망하는것이리라.또한시한편의완결은시인이꿈꾸는시의전체적영토안에서라면언제나잠정적이고예비적인자리로물러나며지속적으로열려있어야하는지도모른다.모든시는본편을유예하며기다리는서시일수밖에없다.장석은시집을여는「서곡-모든서시앞에」에서시의이러한운명을노래한다.

내모든시는서시로태어나길

기쁨의전주곡이고
슬픔의만가이길

도망쳐달아나는시간을쫓다가
당신의마지막노래로불리길
-전문

그런데시인이확인하는‘서시’의운명은이어지는두연에서‘기쁨의전주곡’과‘슬픔의만가’를거쳐‘마지막노래’의자리를소망한다.‘마지막노래’는‘전주곡’과‘만가’가기쁨과슬픔의변경과언저리를자처하는것만큼,후위의묵묵한노동과고적(孤寂)을느끼게한다.그러나여기에과묵한대로‘마지막’이갖는영예의후광이없는것은아니다.그것이서시의숨겨진욕망이라하더라도존중받아마땅하다.관대함은시가세계와맺고있는관계,‘시간을쫓다가’끝날수밖에없는유한성의수긍으로부터,결핍과부재를감내하는시의본원적아이러니로부터생겨나는것일테다.
물론‘전주곡’이나‘소묘’를제목으로특정한연작의시적좌표를그자체로살펴보는일도필요하다.‘열여덟개의전주곡’연작은장석시의원천이기도한‘바다’의한순간한순간을그리고있고,‘목탄소묘집’연작은중부유럽의다뉴브강을따라간여로의순간들을담고있다.‘전주곡-소묘’가말그대로인상의스케치라면,시인이연작에서시도하고있는것은순수한현재에머무르려는시의저항이라고도할수있을듯하다.바다로부터,강의풍경으로부터은총처럼시가다가오는순간은없을까.그때시인의손은무심코목탄을쥔손을움직이며그은총의선을그려갈수도있을것이다.아마도은총의순간이지나가면시도지나갈것이다.은총이라는표현을썼지만,그것은어쩌면세계와사물이좀더직접적으로말하는순간을가리키는것인지도모른다.끊임없이주장하며솟구쳐올라오는‘나’라는주어의기세를누르고바다의포말,강변의날갯짓,정오의장미꽃옆에침묵하는세상의미미한한자락으로있을때만열리는빛.세상의거대한무관심에고개숙일때만가능한순간.모든시가전주곡과소묘의자리로물러설때조용히다가오는세상의음악과선(線).경계나개념,도덕과윤리의길들임을모르는채로일어나고소멸하는것들.무의언저리에서꾸는꿈이거기있을것이다.그러나복수(複數)의‘나’를수용하는경험과인식의두터운켜들,엄정한기하학적정신의마중물이없다면직관의은총은아무런흔적도남기지않고지나가고말것이다.그러므로전주곡-소묘가예비와미완의자리이면서개별적이고독립적인시의영토를지향하는것은전혀모순이아니다.오히려전광석화처럼스쳐지나가는것과끈덕지게반복되고쌓이는것을함께견디며노래하고자하는‘전주곡-소묘’는시가처음부터지향해야할운명이자형식처럼보인다.
‘목탄소묘집’연작은나그네로중부유럽다뉴브강을따라간짧은여정의노래다.흐르고흐르며사라지는강의흐름은기슭마을삶의풍경들과함께끝내바다에닿을테지만,‘전주곡’의땅끝,바닷가가장자리에서떠나온시인의시선은이곳에서무엇을보고있는것일까.강은바다로흘러가지만,그것은혹자신의원천을향해거슬러올라가는일은아닐까.장석시에서바다가끊임없이자신이서있는곳을일깨우고있는것처럼,낯선이방의강을따라가며장석시는또다른자신의얼굴을찾아헤매고있는지도모른다.그강에기이한풍경의배한척이정박해있다.“북해로가지못하고/내륙의지천에얹힌배”(「목탄소묘집2-6-내시경」).시인은배를향해묻는다.“어떤착각으로/침로를도시의내장안으로잡았던것인가”.시의마지막세연은이렇게이어진다.

모른다
아무것도더이상태우고싶지않아서
부러하수의종말쪽으로숨어들었는지

어디엔가둔배표를찾아내어
뱃전의현문을열고나는승선할수있는지

강에서죽은자만이탈수있소
열리지않는문은말할까

북해로가지못하고지천에얹혀있는이배의사연은무엇일까.강의환영(幻影)처럼보이기도하는배는죽은자들에대한기억을가지고있는것일까.어떻든배의현문(舷門)은시인에게닫혀있는듯하다.당연하지만강물도‘바닷물’처럼누군가에게는‘세속의수의이자마지막통로’이기도할것이다.‘강에서죽은자’만이탈수있는배는이곳에잠긴슬픔의역사를담고있는지도모른다.“열리지않는문”은순탄한슬픔의공명을가로막으면서죽음의낯섦과강의낯섦모두를시의진실로되돌려주는것같다(지금은찾지못하지만배표는어디엔가있다).시인이“이도시도내고향과같은시간의그물에있나”(「목탄소묘집2-3-꽃의입냄새,베를린」)라고묻고확인하면서도“눈먼이처럼나는강을따라가네”(「목탄소묘집2-10-홍수후,크렘스」)라고쓸수밖에없는것도비슷한이유일것이다.‘나그네’의이러한정직한물러섬이있었기에(생각해보면‘나그네’의자리는시인이늘서있고자하는바닷가기스락의지향을품고있기도하다),중부유럽의한작가가쓸쓸한죽음을맞았던요양원의방을‘소묘’하는짧지만담대한진실의시적울림이가능했으리라.
장석시에서‘바다’는무한과미지,절대와숭고의추상적공간이아니다.바다는장석시에끊임없이경계의의식을불러일으키는곳이며,거기서장석시는‘조간대(潮間帶)’의삶이다가오고멀어지는것을지켜보고살아낸다.장석시의바다는흐르고섞이는강의이야기,삶의이야기를잊은적이없다.마찬가지로강은장석시에서아직오지않은시간속으로흘러가면서동시에원천을향해거슬러올라가고있는듯하다.
꿈길을따라,시인이“꿈으로몸을피해”돌아간곳에서“이쪽저쪽꿈에서멀리온우리”가만난다.바닷가기스락의경계가품고있는이야기,흐르고흐르며거슬러오르는강의이야기,삶과꿈의경계는이렇게아주잠깐낯선도시의광장에서뒤섞이고‘흐물흐물’해진다.그렇다면「목탄소묘집1-18」에서꿈길의세사람이만나는식탁은이미저강물너머로흘러가버린시간의풍경일까,미지의수원언저리에서새로태어나길기다리는아직존재하지않는시간의풍경일까.장석시인의『목탄소묘집』은다시는되풀이되지않을어느새벽의빛과끊임없이회귀하는꿈길사이,그긴이별의시간을살면서언제나미완이며,중단될수밖에없는전주곡의운명을겸허하게껴안고있는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