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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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24년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한 서정아의 세번째 소설집이다. 서정아는 이번 소설집에서 가족 제도, 사랑의 환상을 집요하고 정밀하게 탐문한다.
「거미줄」은 가족이 배타적인 동일성의 악력을 행사하는 어떤 이념의 결사체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거미줄은 거미의 ‘집’이면서 동시에 먹잇감을 낚아채는 ‘덫’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자는 그것이 안전한 집이라고만 여겼을 뿐 먹잇감을 노리는 덫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집(삶)이면서 덫(죽임)이기도 한 ‘거미줄’은 온전하고 안락한 가족이라는 환상을 통해서 그 내부의 구성원들을 규율하고 약탈하는, 요컨대 가족이라는 체계의 역설적인 이중성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상징이다.
체계는 정태적인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복잡한 배치와 생성하는 관계들의 연결로써 작동하는 어떤 망이며 흐름이다. 마찬가지로 여성 역시 본질적인 실체가 아니라 상호적인 관계와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과정이기 때문에, 고정된 하나의 정체성으로 매끄럽게 규정될 수 없다. 요컨대 여성을 여성으로서 규정하는 것은, 가부장적인 체계가 조장하는 정체성의 정치일 뿐이다. 여성은 하나의 실체로 환원될 수 없는 차이들로서, 저 배타적인 동일성의 체계가 압박하는 가운데서도 끈질기게 살아온 유연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그렇게 이름을 빼앗긴 익명의 존재로 환원하는 것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한 생명을 상징적으로 말살하는 폭력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들 간의 서로 다른 ‘차이’를 부각시키고 있는 「서로에게 좋은 일」과 「개미」는, 그 차이의 선명한 부각 자체로 바로 그 가부장적인 동일화의 폭력을 문제화한다. 이 두 소설에서 그 차이는, 특히 계급(계층)적인 것으로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제휴가 여성들 간의 우정과 연대를 어떻게 균열내고 또 분열시키는지를 인상 깊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여성들 간의 고유한 차이들을 그들이 보유한 자산 역량의 격차로 환원하여 분류함으로써,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대립 속에서 적대와 적의의 정동을 발생시키고, 결국은 모종의 불신과 함께 서로를 등 돌리게 만든다.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는 사랑의 불가능성, 다시 말해 ‘성적인 관계는 없다’는 라캉의 언명처럼, (우리가 기다리는) ‘오로라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화자인 서인은 불어로 인연이라는 뜻의 ‘Lien’이라는 이름의 음악감상실에서 인경을 처음 만났다. 인경은 그동안 만나왔던 남자들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으며 차이들을 무시하거나 단순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복잡함을 섬세하게 읽어낼 줄 아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랬던 그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고, 몇 달 후 그의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에서 인경이 죽었다는 것과, 그동안 그가 말해왔던 것들의 대부분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종의 애도를 위한 것이었을까. 서인은 인경, 아니 그 사랑의 실존에 대한 의문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혼자서 노르웨이로 여행을 떠나왔다. 오로라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 여행은 실존했는지조차 헷갈릴 정도의 충격을 주었던 사람(사랑)의 실체에 대한 번민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서인은 노르웨이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꿈과 몽상과 잡념”에 시달리고, 버스를 타고 달리는 동안에도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현실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느낀다. “잘 안다고 자신했었는데,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아는 것은 나라고 확신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에 대해 안다고 여겼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나 싶었다.” 작은 차이를 무시하는 무신경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믿었던 그 사랑은, 알고 보니 현전하지 않는 흔적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믿음을 배반당한 서인은, 현상 너머의 실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의문에 휩싸인 채, 기어이 오로라를 찾아서 떠나와야만 했던 것이다. 인경이 했던 이 말을 기억하면서. “아름다운 건 언제나 위험을 내포하고 있잖아. 그걸 알면서도 들끓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자꾸 욕망하게 되는걸.”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형이상학의 치명적 매혹, 그 환상의 유혹에 빠져든 것은 서인 본인이었다.
「황벽나무 노란 속껍질」, 「최초의 부고」, 「유실물」은, 세속의 어떤 상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가능한 희망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황벽나무 노란 속껍질」의 여자 역시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는 누구에게도 전혀 이해받지 못했고, 그래서 치유되지 못한 채 오래 방치되어 있다. 그런 여자 앞에 불현듯 나타나 살고 싶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킨 사람이 무경이다. 그는 이야기를 채록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어둑시니를 만나거든 올려다보지 말고 내려다보라고, 그리고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그러면 결국 그것이 사라져버리게 된다는 무경의 이야기에 여자는 눈물을 흘린다. 무경의 언어는 엄마의 술주정이나 상도의 욕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자기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지만, 지금 여자의 현실에서는 무경의 존재와 그 언어에 닿기 어려웠다. “그의 언어에 닿고 싶고, 그것은 너무나 먼 곳에 있고,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자는 고대의 불경이 황벽나무 노란 속껍질 속에서 변질되지 않고 천년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처럼, 그 무해한 숙성의 시간이 갖는 힘을 깨닫는다. 여자는 무경이 떠나며 선물로 준 그의 책을 통해서, 어둑시니를 이겨내고 스스로 행복하게 될 수 있는 힘을 기르리라 다짐한다.
「유실물」은 파국을 암시하는 종말론적인 묵시록의 분위기 속에서 간절한 구원의 열망을 그려낸 소설이다. 지아와 조는 상실의 아픔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책에서 진통(鎭痛)을 찾으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둘은 같은 독서 모임에서 책을 읽다가 만나서 사귀게 되었다. 지아는 고통스런 기억의 원체험을 중층적으로 겪었고, 몸에 담뱃불을 지지는 자학을 통해서야만 겨우 안정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병리적인 주체이다. 조는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겪고 전역한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생을 책임져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속에서 살고 있다. 지아와 조, 상실과 결핍이라는 공통의 상처를 갖고 있는 두 사람은, 교감과 공감이라는 소통의 힘으로써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죽음의 충동을 삶의 의욕으로 반전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과의 소통에서 소외되어 상처받았던 사람들이었음에도, 가난하고 늙은 여자(할머니)의 말을 신뢰하지 못했고, 절실한 그 예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들은 충분히 세심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역시 그들마저도 그렇게 무신경하고 말았던 것이다. 작은 차이를 알아채는 그 세심한 인식의 역량이란 구원의 힘이기도 하다. 결국 예언처럼 폭우의 재난이 닥치지만, 구조를 요청하는 지아의 연락은 조에게 가닿지 못한다. 뒤늦게 연락을 확인한 조는 상실의 수난 속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아본 사람이기에, 다시는 소중한 것을 잃지 않겠다는 의욕을 갖고 지아를 구조하러 달려간다.
자기에게 몰두하다가 유일한 안식의 자리가 되어주었던 진경을 잃어버린 여자(「거미줄」), 계급적인 차이의 안락함 속에서 보연을 거부해버린 수진(「서로에게 좋은 일」), 표면으로 이면을 속이고 은폐하려 했던 유선의 그 계급적 욕망이 결렬시켜버린 경주와의 만남(「개미」), 그리고 마침내 그런 형이상학의 환상에서 깨어나 지금의 현실을 응시하게 되는 서인의 여정(「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무경과의 만남을 통해서 희망의 도주로를 발견해낸 여자(「황벽나무 노란 속껍질」), 사랑이란 아니 모든 만남이란 어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소통의 결실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선아와 재이의 관계(「최초의 부고」). 그리고 재난의 위기 속에서 자기들의 부주의한 실수를 깨닫고, 상처 받은 자들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서 드디어 또 다른 희망의 새날을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지아와 조(「유실물」). 상처의 원체험을 애도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가엾은 자기의 상(像)에 고여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그 상처의 병리적 증상이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취약한 주체는 그 상처의 형이상학적 기원을 해체하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이해받지 못했다는 끈질긴 자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마침내 스스로를 이해하고 또 다른 누군가들마저 이해해줄 수 있는 주체로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니까 서정아의 소설은 저 공고한 상처의 기원을 파고들어가, 그 병리적인 환상을 떠받치고 있는 정신의 틀(형이상학)을 해체하려고 하는 필사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

서정아

저자:서정아
2004년부산일보신춘문예에소설「풍뎅이가지나간자리」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이상한과일』『오후네시의동물원』이있다.2024년부산소설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우리는오로라를기다리고
거미줄
서로에게좋은일
개미
최초의부고
유실물
황벽나무노란속껍질

해설상처라는희망|전성욱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2024년부산소설문학상을수상한서정아의세번째소설집이다.서정아는이번소설집에서가족제도,사랑의환상을집요하고정밀하게탐문한다.

「거미줄」은가족이배타적인동일성의악력을행사하는어떤이념의결사체라는것을선명하게보여주는소설이다.거미줄은거미의‘집’이면서동시에먹잇감을낚아채는‘덫’이기도하다.그러나여자는그것이안전한집이라고만여겼을뿐먹잇감을노리는덫이라고는전혀생각하지못했다.집(삶)이면서덫(죽임)이기도한‘거미줄’은온전하고안락한가족이라는환상을통해서그내부의구성원들을규율하고약탈하는,요컨대가족이라는체계의역설적인이중성을적확하게표현하는상징이다.

체계는정태적인하나의실체가아니라복잡한배치와생성하는관계들의연결로써작동하는어떤망이며흐름이다.마찬가지로여성역시본질적인실체가아니라상호적인관계와맥락속에서만들어지는어떤과정이기때문에,고정된하나의정체성으로매끄럽게규정될수없다.요컨대여성을여성으로서규정하는것은,가부장적인체계가조장하는정체성의정치일뿐이다.여성은하나의실체로환원될수없는차이들로서,저배타적인동일성의체계가압박하는가운데서도끈질기게살아온유연한생명이다.그러므로여성을누군가의딸이자아내이자어머니로서,그렇게이름을빼앗긴익명의존재로환원하는것은,그야말로살아있는한생명을상징적으로말살하는폭력인것이다.그런의미에서여성들간의서로다른‘차이’를부각시키고있는「서로에게좋은일」과「개미」는,그차이의선명한부각자체로바로그가부장적인동일화의폭력을문제화한다.이두소설에서그차이는,특히계급(계층)적인것으로서,자본주의와가부장제의제휴가여성들간의우정과연대를어떻게균열내고또분열시키는지를인상깊게보여준다.그러니까자본주의적가부장제는,여성들간의고유한차이들을그들이보유한자산역량의격차로환원하여분류함으로써,가진자와없는자의대립속에서적대와적의의정동을발생시키고,결국은모종의불신과함께서로를등돌리게만든다.

「우리는오로라를기다리고」는사랑의불가능성,다시말해‘성적인관계는없다’는라캉의언명처럼,(우리가기다리는)‘오로라는없다’는것을이야기한다.화자인서인은불어로인연이라는뜻의‘Lien’이라는이름의음악감상실에서인경을처음만났다.인경은그동안만나왔던남자들과는결이다른사람이었으며차이들을무시하거나단순화하지않고,있는그대로의복잡함을섬세하게읽어낼줄아는감수성을지니고있는것처럼보였다.그랬던그로부터갑자기연락이끊어졌고,몇달후그의아내로부터걸려온전화에서인경이죽었다는것과,그동안그가말해왔던것들의대부분이거짓이었음을알게된다.그리고일종의애도를위한것이었을까.서인은인경,아니그사랑의실존에대한의문에서헤어나지못한채혼자서노르웨이로여행을떠나왔다.오로라의실체를확인하기위해서.이여행은실존했는지조차헷갈릴정도의충격을주었던사람(사랑)의실체에대한번민속에서이루어진것이었다.그래서였는지서인은노르웨이로향하는비행기에서“꿈과몽상과잡념”에시달리고,버스를타고달리는동안에도온통하얀눈으로뒤덮인차창밖의풍경을바라보며“다시현실감각이무뎌지는것”을느낀다.“잘안다고자신했었는데,누구보다도그를잘아는것은나라고확신했었는데,지금생각해보면그에대해안다고여겼던것이과연무엇이었나싶었다.”작은차이를무시하는무신경한사람이아니었다고믿었던그사랑은,알고보니현전하지않는흔적일뿐이었다.그러므로자신의믿음을배반당한서인은,현상너머의실체에대한형이상학적의문에휩싸인채,기어이오로라를찾아서떠나와야만했던것이다.인경이했던이말을기억하면서.“아름다운건언제나위험을내포하고있잖아.그걸알면서도들끓는마음을어쩌지못해서자꾸욕망하게되는걸.”누구를탓할것도없이,형이상학의치명적매혹,그환상의유혹에빠져든것은서인본인이었다.

「황벽나무노란속껍질」,「최초의부고」,「유실물」은,세속의어떤상처에도불구하고오히려그것때문에가능한희망의역설을이야기한다.「황벽나무노란속껍질」의여자역시깊은상처를갖고있다.그리고그상처는누구에게도전혀이해받지못했고,그래서치유되지못한채오래방치되어있다.그런여자앞에불현듯나타나살고싶다는의지를불러일으킨사람이무경이다.그는이야기를채록하고연구하는사람이었다.어둑시니를만나거든올려다보지말고내려다보라고,그리고그눈을똑바로바라보라고,그러면결국그것이사라져버리게된다는무경의이야기에여자는눈물을흘린다.무경의언어는엄마의술주정이나상도의욕설과는전혀다른것이었다.그렇게자기를이해해줄수있는사람을만났지만,지금여자의현실에서는무경의존재와그언어에닿기어려웠다.“그의언어에닿고싶고,그것은너무나먼곳에있고,나에게는시간이필요하다.”여자는고대의불경이황벽나무노란속껍질속에서변질되지않고천년의시간을견딜수있었다는이야기에서처럼,그무해한숙성의시간이갖는힘을깨닫는다.여자는무경이떠나며선물로준그의책을통해서,어둑시니를이겨내고스스로행복하게될수있는힘을기르리라다짐한다.

「유실물」은파국을암시하는종말론적인묵시록의분위기속에서간절한구원의열망을그려낸소설이다.지아와조는상실의아픔을앓고있는사람들이다.책에서진통(鎭痛)을찾으려고했는지는몰라도,둘은같은독서모임에서책을읽다가만나서사귀게되었다.지아는고통스런기억의원체험을중층적으로겪었고,몸에담뱃불을지지는자학을통해서야만겨우안정을얻을수있을정도로병리적인주체이다.조는군대에서가혹행위를겪고전역한뒤에스스로목숨을끊은동생을책임져주지못했다는자책감속에서살고있다.지아와조,상실과결핍이라는공통의상처를갖고있는두사람은,교감과공감이라는소통의힘으로써그들을사로잡고있었던죽음의충동을삶의의욕으로반전시키려고한다.그러나그들은세상과의소통에서소외되어상처받았던사람들이었음에도,가난하고늙은여자(할머니)의말을신뢰하지못했고,절실한그예언의목소리를듣지못했다.그들은충분히세심하지못했다.그러니까역시그들마저도그렇게무신경하고말았던것이다.작은차이를알아채는그세심한인식의역량이란구원의힘이기도하다.결국예언처럼폭우의재난이닥치지만,구조를요청하는지아의연락은조에게가닿지못한다.뒤늦게연락을확인한조는상실의수난속에서지옥같은삶을살아본사람이기에,다시는소중한것을잃지않겠다는의욕을갖고지아를구조하러달려간다.

자기에게몰두하다가유일한안식의자리가되어주었던진경을잃어버린여자(「거미줄」),계급적인차이의안락함속에서보연을거부해버린수진(「서로에게좋은일」),표면으로이면을속이고은폐하려했던유선의그계급적욕망이결렬시켜버린경주와의만남(「개미」),그리고마침내그런형이상학의환상에서깨어나지금의현실을응시하게되는서인의여정(「우리는오로라를기다리고」).무경과의만남을통해서희망의도주로를발견해낸여자(「황벽나무노란속껍질」),사랑이란아니모든만남이란어떤고립무원의상황에서도포기하지않는소통의결실이어야한다는것을알려주는선아와재이의관계(「최초의부고」).그리고재난의위기속에서자기들의부주의한실수를깨닫고,상처받은자들의소통과연대를통해서드디어또다른희망의새날을기대할수있게해주는지아와조(「유실물」).상처의원체험을애도하지못하고,누구에게도이해받지못한가엾은자기의상(像)에고여있다는것은,그자체가이미그상처의병리적증상이다.피해의식에사로잡힌취약한주체는그상처의형이상학적기원을해체하는과정을통과해야만,비로소이해받지못했다는끈질긴자의식에서벗어날수있고,마침내스스로를이해하고또다른누군가들마저이해해줄수있는주체로서거듭날수있다.그러니까서정아의소설은저공고한상처의기원을파고들어가,그병리적인환상을떠받치고있는정신의틀(형이상학)을해체하려고하는필사적인노력이라고할수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