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지키는 일 (조미해 소설집)

선을 지키는 일 (조미해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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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24년 고양행주문학상을 수상한 조미해의 첫 소설집. 밀도 높은 심리 묘사와 낯선 상상력으로 우리 시대의 환부를 정치하게 그려낸 7편의 소설이 실렸다.
「비 내리는 밤에 우리는」은 무더운 9월의 끝자락 영숙 부부의 집으로 시공간적 정황을 집중한다. 딸 소연과 사위가 모처럼 방문해 저녁식사를 함께하게 되는바, 소연 부부는 영숙 부부에게 둘의 결별을 짐작하게 하는 소식을 알린다. 그 결별은 소연 부부가 아들 지민을 잃은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소연 가족이 물놀이 휴가를 갔을 때 마침 영숙이 건 전화를 받느라 지민이 급류에 힙쓸려 간 것이다. 지민의 죽음은 할머니 영숙에게도 원죄다. 따라서 소연 부부의 불안한 결별 소식에 영숙은 죄의식을 면치 못한다. 영숙 부부는 지민이 좋아하던 오리 인형을 발견하고 비 오는 밤에 그것을 인공 연못에 띄워 보냄으로써 애도한다. 「비 내리는 밤에 우리는」은 이처럼 영숙의 손주 지민의 운명적인 죽음이라는 사건을 내세워 그로부터 일어난 몇몇 에피소드를 아우르면서 그 해결의 장으로 나아간다. 이때 이 소설은 사건의 발생과 결과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의 상황에 응축함으로써 극적 긴장과 심리적 몰입을 가능하게 했다. 조미해의 소설은 이처럼 단편소설 특유의 응축성을 유지함으로써 독자를 흡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응축성은 다른 소설에서도 거의 고르게 유지된다. 「마스카라」는 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나’)의 샵에서 ‘나’의 어머니 장례 때 사자(死者) 메이크업을 담당한 장례 메이크업 아티스트(문주연)에게 행하는 신부 화장에 상황을 응축한다. 「남태평양에는 쿠로마구로가 산다」는 어느 날 한밤중의 ‘나’ 앞에 바다로 나가 실종된 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오십대 남자가 나타나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 집중한다. 「선을 지키는 일」은 새로 이사 온 이웃과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가 겪은 이전의 불쾌한 ‘선 넘기 당한 경험’을 상기한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는 아들 한들의 고교 졸업식에 참석한 엄마 정연의 불안한 한나절을 다루고 있다. 「더미」는 쌍둥이 언니가 죽자 자신이 죽은 걸로 처리하고 언니를 대신해 주체적으로 행동에 나선 쌍둥이 동생 영화(나)의 당당한 하루에 집중한다. 다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시간적 응축은 덜한 대신 한 아이(서준)가 담임선생(나리)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부리는 통제되지 않은 행동들에 초점을 맞춘다.
조미해 소설의 이러한 응축적인 플롯은 물론 서사의 밀도를 높이고 독자에게 긴장감을 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통해 얻는 주제적 효과는 소설마다 남다른 결을 유지한다. 이를테면 「비 내리는 밤에 우리는」은 실수로 딸 부부의 행복을 파괴했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내적 고통을 드러낸 소설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한 아이의 집착적 행동을 통해 부끄러운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가에 대한 질문을 드러낸 스토리다. 「남태평양에는 쿠로마구로가 산다」는 실종된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마스카라」는 삶과 죽음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지위에 해당하지만 삶은 결국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며,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여정이라는 의식을 드러낸다.
이에 비해 「선을 지키는 일」,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더미」 등은 무엇보다 인간이 자본주의적 구조 내에 생존하면서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주제에 가닿는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이 소설들은 대체로 삶의 목표에 관한 진정성에 대해 질문한다. 그 질문은 단순히 인간은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와 같은 형이상학적 지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등장인물이 처한 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사는 문제와 깊이 관련을 맺는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에서 ‘한들의 의대 진학’이라는 지상 명제에 매달리는 정연 남편의 욕망은 사실 개인의 욕망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날 졸업식을 참관한 모든 부모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나아가 그것은 21세기 한국 사회 전체의 욕망의 구도를 그대로 닮아 있기도 하다. 작가 조미해는 이런 욕망의 구도를 한들 가족으로 응축해 드러내면서 그 문제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나아가 아버지의 요구에 한들이 맞서고 마침내 정연마저도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로 맞서는 과정을 통해 욕망의 노예가 된 사회를 정면에서 비판해 보인다.
「더미」에서 ‘나’는 쌍둥이 언니 영주가 출세를 위해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다. 영주는 분장감독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대리인이었지만 그 수모를 견디며 특수분장사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다 좌절하고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이를 알아낸 ‘나’의 행동은 자못 특별하다. 도덕적인 기대대로라면 ‘나’는 영주의 죽음의 원인이 분장감독의 과도한 폭력에 있었음을 밝히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분장감독의 그러한 약점을 빌미로 그의 욕망에 더욱 충실해지는 길을 택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출세를 위한 욕망의 지배 구도가 얼마나 완벽한지 증명하는 사례가 될 만하다.
이에 비해 「선을 지키는 일」은 좀 특별한 스토리로, 이러한 욕망의 지배 구도에 대해 증명해주는 소설로 읽힌다. ‘나’는 집에 놀러 온 동년배의 이웃집 여성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그 이전 그 집에 살다가 이사 간 여성 유라 씨가 보인 행동에 대해 설명한다. 크리스마스이브, 친구 부부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유라 씨는 ‘나’와 같은 옷, 같은 스카프를 하고 나타난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모욕감과 분노를 느끼고, 결국 와인을 유라 씨의 옷과 스카프에 일부러 쏟는다. 화를 감추지 못한 유라 씨도 감정이 폭발하고 만다. ‘나’의 남편 진규는 그런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오히려 ‘나’를 나무란다. 유라 씨는 또 그 이전에 ‘나’의 시부모 생신날 예고 없이 집으로 방문해 청하지도 않은 케이크 선물까지 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한 적도 있다. 유라 씨는 그에 그치지 않고 ‘나’와 친한 척하면서 ‘나’의 옷차림, 취향, 말투, SNS 활동까지 따라 하며 점점 ‘나’의 삶을 침범해 들어온 인물로 그려져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며칠 뒤 예정된 유라 씨 부부와의 해맞이 여행도 유라 씨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무산된다. 뒤이어 도착한 유라 씨의 카톡 메시지 “그날, 제게 왜 그러셨어요?”(와인을 쏟은 일)는 화자의 감정을 더욱 뒤틀리게 만든다. 이후 유라 씨는 아무런 말도 없이 이사를 간다. 화자는 상실감과 당혹스러움을 안은 채 유라 씨에게 여러 차례 메시지를 남기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한다. 유라 씨에게 상처 입은 ‘나’는 그 사실을 모두 그녀에게 설명했다. 그 내용은 주로 ‘서로의 관계에서 선을 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특히 유라 씨가 그 선을 넘은 행동을 보여 몹시 불쾌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도 유라 씨와 유사한 경험을 저지른 존재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얘기에 여전히 관계의 경계가 무너진 크리스마스의 기억을 떨치지 못한 채 “결혼 후 맞는 두번째 크리스마스도 망쳐버린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런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유라 씨의 선 넘는 침범을 받고 상처를 입었으며, 이웃집 그녀의 고백을 통해 다시금 ‘선을 넘는 일’의 불쾌한 기억 속에 젖지만 ‘나’ 역시 실은 자기만의 ‘아비투스’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나’가 좋아하는 와인을 정해놓고 마시고 남편에게나 이웃에게나 자기만의 선물을 고집하는 등의 일련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내면화된 습관과 성향의 체계 속에서 세상을 인식하고 행동한 예가 된다.
조미해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단편소설로서 강한 응축력을 자랑한다. 편편이 자잘한 에피소드를 거느리고 있지만 대개는 단일한 사건을 중심으로 상황을 밀고 나간다. 특히 단편소설이 발생학적으로 자본주의적 욕망이 가져다준 여러 병폐에 대한 비판을 내재화한다는 점에 대한 각별한 이해를 바탕에 두고 있다. 집중된 상황에 놓인 인물의 심리적 묘사를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낳고 그로부터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저자

조미해

저자:조미해
2015년평사리문학대상,2016년경북일보문학대전대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22년과2024년에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받았다.공동소설집으로『카페인랩소디』『쓰는사람』이있다.2024년고양행주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더미7
선을지키는일39
부끄러움을아는마음71
남태평양에는쿠로마구로가산다103
마스카라131
그런게다무슨소용이에요159
비내리는밤에우리는189

해설욕망의지배구도|박덕규218
작가의말233

출판사 서평

이와같은응축성은다른소설에서도거의고르게유지된다.「마스카라」는한메이크업아티스트(‘나’)의샵에서‘나’의어머니장례때사자(死者)메이크업을담당한장례메이크업아티스트(문주연)에게행하는신부화장에상황을응축한다.「남태평양에는쿠로마구로가산다」는어느날한밤중의‘나’앞에바다로나가실종된아버지를연상케하는오십대남자가나타나대화를나누는상황에집중한다.「선을지키는일」은새로이사온이웃과식사를하면서대화를나누는동안‘나’가겪은이전의불쾌한‘선넘기당한경험’을상기한다.「그런게다무슨소용이에요」는아들한들의고교졸업식에참석한엄마정연의불안한한나절을다루고있다.「더미」는쌍둥이언니가죽자자신이죽은걸로처리하고언니를대신해주체적으로행동에나선쌍둥이동생영화(나)의당당한하루에집중한다.다만「부끄러움을아는마음」은시간적응축은덜한대신한아이(서준)가담임선생(나리)에게관심을끌기위해부리는통제되지않은행동들에초점을맞춘다.

조미해소설의이러한응축적인플롯은물론서사의밀도를높이고독자에게긴장감을주려는의도에서비롯된것이라할수있다.그런데이를통해얻는주제적효과는소설마다남다른결을유지한다.이를테면「비내리는밤에우리는」은실수로딸부부의행복을파괴했다고생각하는부모의내적고통을드러낸소설이다.「부끄러움을아는마음」은한아이의집착적행동을통해부끄러운마음은어떻게생기는가에대한질문을드러낸스토리다.「남태평양에는쿠로마구로가산다」는실종된아버지에대한간절한그리움을드러낸소설이라할수있다.「마스카라」는삶과죽음은극단적으로대비되는지위에해당하지만삶은결국죽음으로가는과정이며,죽음은삶의또다른여정이라는의식을드러낸다.

이에비해「선을지키는일」,「그런게다무슨소용이에요」,「더미」등은무엇보다인간이자본주의적구조내에생존하면서어떻게사는가에대한주제에가닿는다는공통점이보인다.이소설들은대체로삶의목표에관한진정성에대해질문한다.그질문은단순히인간은태어나어떻게살아가야할것인가와같은형이상학적지표에그치지않는다.그것은등장인물이처한세계,즉우리가살고있는21세기한국사회에서사는문제와깊이관련을맺는다.「그런게다무슨소용이에요」에서‘한들의의대진학’이라는지상명제에매달리는정연남편의욕망은사실개인의욕망에그치지않는다.그것은그날졸업식을참관한모든부모들의그것과다르지않다.나아가그것은21세기한국사회전체의욕망의구도를그대로닮아있기도하다.작가조미해는이런욕망의구도를한들가족으로응축해드러내면서그문제점을강력히시사한다.나아가아버지의요구에한들이맞서고마침내정연마저도‘그런게다무슨소용이에요’로맞서는과정을통해욕망의노예가된사회를정면에서비판해보인다.

「더미」에서‘나’는쌍둥이언니영주가출세를위해어떤수모를겪었는지충분히짐작하고있다.영주는분장감독의욕망대로움직이는대리인이었지만그수모를견디며특수분장사의지위를공고히하려다좌절하고죽음을맞았다.그런데이를알아낸‘나’의행동은자못특별하다.도덕적인기대대로라면‘나’는영주의죽음의원인이분장감독의과도한폭력에있었음을밝히는길을택했을것이다.그러나‘나’는도리어분장감독의그러한약점을빌미로그의욕망에더욱충실해지는길을택한다.이는우리사회에서출세를위한욕망의지배구도가얼마나완벽한지증명하는사례가될만하다.

이에비해「선을지키는일」은좀특별한스토리로,이러한욕망의지배구도에대해증명해주는소설로읽힌다.‘나’는집에놀러온동년배의이웃집여성과저녁식사를함께하면서그이전그집에살다가이사간여성유라씨가보인행동에대해설명한다.크리스마스이브,친구부부의집에서열린파티에유라씨는‘나’와같은옷,같은스카프를하고나타난다.사람들의시선속에서‘나’는모욕감과분노를느끼고,결국와인을유라씨의옷과스카프에일부러쏟는다.화를감추지못한유라씨도감정이폭발하고만다.‘나’의남편진규는그런상황을제대로이해하지못한채오히려‘나’를나무란다.유라씨는또그이전에‘나’의시부모생신날예고없이집으로방문해청하지도않은케이크선물까지하면서존재감을과시한적도있다.유라씨는그에그치지않고‘나’와친한척하면서‘나’의옷차림,취향,말투,SNS활동까지따라하며점점‘나’의삶을침범해들어온인물로그려져있다.크리스마스가지난며칠뒤예정된유라씨부부와의해맞이여행도유라씨의일방적인불참으로무산된다.뒤이어도착한유라씨의카톡메시지“그날,제게왜그러셨어요?”(와인을쏟은일)는화자의감정을더욱뒤틀리게만든다.이후유라씨는아무런말도없이이사를간다.화자는상실감과당혹스러움을안은채유라씨에게여러차례메시지를남기지만아무런답변도받지못한다.유라씨에게상처입은‘나’는그사실을모두그녀에게설명했다.그내용은주로‘서로의관계에서선을넘지않고적당한거리를유지하는게중요한데특히유라씨가그선을넘은행동을보여몹시불쾌했다’는것이었다.그런데알고보니그녀도유라씨와유사한경험을저지른존재였다는것이다.‘나’는그녀의얘기에여전히관계의경계가무너진크리스마스의기억을떨치지못한채“결혼후맞는두번째크리스마스도망쳐버린것같다”고느낀다.

그런데‘나’는어떤사람인가.유라씨의선넘는침범을받고상처를입었으며,이웃집그녀의고백을통해다시금‘선을넘는일’의불쾌한기억속에젖지만‘나’역시실은자기만의‘아비투스’에서헤어나지못한상태라할수있다.‘나’가좋아하는와인을정해놓고마시고남편에게나이웃에게나자기만의선물을고집하는등의일련의행동은사회적으로내면화된습관과성향의체계속에서세상을인식하고행동한예가된다.

조미해의소설은전반적으로단편소설로서강한응축력을자랑한다.편편이자잘한에피소드를거느리고있지만대개는단일한사건을중심으로상황을밀고나간다.특히단편소설이발생학적으로자본주의적욕망이가져다준여러병폐에대한비판을내재화한다는점에대한각별한이해를바탕에두고있다.집중된상황에놓인인물의심리적묘사를통해극적인긴장감을낳고그로부터독자의상상력을이끌어내는데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