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김가경의 『백한번째 여름』에 실려 있는 아홉 편의 소설들은 초-현실적이다. 이 말은 그의 소설이 기괴한 상상의 세계를 그려 보인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소설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세계의 그 비현실성 너머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신문과 텔레비전, 유튜브와 SNS에서 이야기되는 것들, 아니면 이른바 리얼리즘 영화나 소설이 그리고 있는 현실을 진짜 리얼하다고 할 수 있는가. 흔히 사람들이 계량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현실, 그렇게 실증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함이 상상해낸 현실, 그것은 차라리 비현실이거나 반현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초-현실이란 바로 그 진부하고 위험한 가짜 현실의 초월, 다시 말해 또 다른 현실을 향한 치명적인 도약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그 현실성은 어떻게 인식되고 또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가. 이런 근본적인 물음을 통과하지 않고도 예술이 가능할 수 있는가. 김가경은 그 물음을 붙들고 묵묵히 나아가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서, 언제나 한결같이 그 물음과 더불어 어떤 또 다른 세계를 탐색하고 있다.
「은아의 세계」는 이미 제목에서부터 은밀하고 신비한 세계, 즉 ‘다른 곳’에 대한 경이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의 중심 내용은, 출판사 직원인 ‘나’가 책 출간 작업 중에 오지로 떠나버린 인터넷 서평가 보고밀을 설득하기 위해 은아와 함께 그를 찾아가서 보낸 며칠간의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은아의 자리는 미묘하다. 보고밀과 ‘나’ 사이에서 은아는 마치 어릿광대처럼 유쾌하고 가볍게 부유하는 듯하다. 사건의 능동적 주인공이기보다, 이야기 전체의 공기를 이루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은아는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은아야, 박은아. 숨길 은(隱)에 싹틀 아(芽), 싹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래. 외할머니가 지은 이름인데,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볼 수가 없대.” 진부하게 일상을 사는 평범한 이들에게서 은아의 존재는 너무 희미하다. 그러나 은아는 세속을 부정하는 고고한 존재가 아니라, 그 범속함의 세계를 거룩하게 성화(聖化)시키는 여신이거나 무당과 같은 존재이다. 뱀딸기를 먹은 은아에게 ‘나’는 장난으로 뱀이 될 거라고 말한다. 은아의 뱀-되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과 비인간, 성과 속의 경계를 넘어 존재와 존재 간의 이음과 섞임이 이루어지는 원융(圓融)한 생명의 세계를 가리킨다. 그것이 바로 ‘은아의 세계’이다.
「백한번째 사람」의 리찬은 시끄러운 기계가 돌아가는 곳에서 일을 하며 조경사 시험을 위해 고시학원을 다니고 있다. 행정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나’와는 학원의 한국사 강의에서 만나 알게 된 사이였다. 리찬이 일하는 곳은 자칫 잘못하면 기계에 몸이 말려 들어갈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리찬의 동료들은 계속해서 그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그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리찬의 동료 중에 아프리카에서 온 은쿠시가 있는데, 그도 기계에 손이 끼인다. 여섯 살 때부터 광산에서 코발트 캐는 일을 했다는 은쿠시는 푸념처럼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모부투 리살라.’ 리찬은 직접 세계사 연표를 만들어서 공부를 한다. 은쿠시나 자기의 역사를 슬쩍 끼워 넣은 세상 단 하나의 세계사 연표는, 온 세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리찬의 어떤 특이한 면모를 함의한다. 옷가지를 태우며 죽은 자들을 천도하는 모습이나, 소설의 결미에서 ‘나’에게 자기가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라며 가로수 하나를 소개하는 대목은, 리찬이 곧 은아와 같은 은미하고 신령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은아의 세계나 백한번째 사람은 메시아적인 것이 도래하듯 그렇게 극적으로 출현하지 않는다. 완성을 향한 백 번의 감내와 노고, 그 오랜 무릅씀의 끝에서 그것은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언제나 김가경의 소설은 그 무릅씀의 시간을 견디며 자기의 할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다알리아와 오미자, 다알리아꽃」의 박건호가 바로 그런 사람일 것이다. 박건호는 먼 타국에서 갑작스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는 도시의 오래된 동네에서 솜씨 좋은 배관공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곳에 들어선 금융단지, 즉 글로벌 자본의 네트워크에 이어져서 이란의 플랜트 현장으로까지 파견되었다가, 지금은 국경을 사이에 둔 나라들과의 분쟁이 잦은 알제리로 가서 파이프 라인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가 배관공이자 파이프 라인 관리자라는 것은, 곧 그의 일이 연결해서 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실종된 박건호를 찾기 위해 현지로 파견된 ‘나’는, 그의 일을 도왔던 타밀과 동행한다. 타밀은 박건호가 시추 중인 플랜트(인공물)를 지표로 삼는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모래의 물결(자연)을 읽을 수 있다면 살아남을 것이라고 하면서 박건호의 생존을 믿는다. “가스 터미널에서 시작하는 파이프라인은 모세혈관처럼 해양과 대륙을 향해 뻗어 나아가 지구를 사방으로 휘감고 있었다.” 자연을 약탈하기 위한 자원의 연결망이 아니라 물리적이고 영성적인 생명의 연결이 우리를 살린다. “저 아래, 아래, 더 아래에 누구도 주인이고 누구도 주인이 아닌, 거대한 푸른빛이 잠들어 있다네요. 사막의 혈관이라고요.”
「하루의 성자」에서 가엾게 죽은 창기는 저 억울한 죽음들의 역사를 넘어 수국으로 피어난다. “골목 입구에는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는데 도시의 중심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봉쇄한 우물 주변은 동네 사람들이 유기한 식물들이 저절로 자라 작은 동산처럼 보였다. 그중에 수국은 어머니가 내다 버렸다.” 오래전,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창기는 그 우물에 빠져 죽었다. 죽음이 있었던 자리는 식물들의 유기처가 되었고, 버림받은 것들은 소멸의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마침내 생명의 동산을 이루었다. 온갖 구정물을 갖다 부은 그곳에서 꽃들을 피워내는, 그 우물 자리의 분위기가 신비롭고 미묘하다. 더 기묘한 것은, 비가 오는 날 “고양이 가죽을 뒤집어쓴 것 같은 줄무늬 남자”가 마치 의식을 치르듯 천천히 우물을 돌아 수국나무 아래에서 수국 잎을 입으로 뜯어먹고 있더라는 것이다.
우물은 버려진 것들이 숭고하게 부활하고, 죽음이 생명으로 이어져서 다시 피어나는 성스러운 장소였다. 「이안과 밀령의 여름」에서 그와 같은 성소(聖所)는 사멸한 것들의 애도와 천도가 이루어져 왔던 ‘얼음 무덤’이다. 얼음 소각장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은 얼음공장에서 나온 얼음을 처리하는 곳이지만, 옛날에는 제사를 지내던 자리였으며 또 가뭄이 심하게 들고 홍역이 돌았던 어느 때에 죽어나간 아이들의 시신을 태우던 곳이기도 했다. ‘나’의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화장한 뒤에 뼈를 수습했는데 특히 사람의 뼈 중에서도 가장 작은 등자뼈를 힘들게 찾아냈다고 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역시 무당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무당이란 깊은 세계의 미묘한 것들을 듣고 보는 존재이고, 끊어지고 부서진 것을 다시 잇고 붙여내는 존재이다. 이들은 김가경의 소설에서 거듭해서 만나게 되는 징후적 존재이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과 외국인의 존재는, 김가경의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경계 너머의 상상력과 관련해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특징을 이룬다. 「양의 시간」에서 무용을 하는 정윤은 루마니아로 떠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거쳐 지금은 봉제공장의 시다로 일하고 있다. 세계가 인터넷의 망으로 연결된 시대에 맞게, 정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외국에 있는 두 친구를 사귀어 우정을 나누고 있다. 띠엔은 타이족의 후손으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고, 안드레이는 헝가리 국경 지역 살론타에 사는 일러스트 작가이다. 띠엔은 지금 베트남 소수민족의 춤을 배우고 있고, 안드레이는 그림을 그리며 부모님의 목장 일을 돕고 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 정윤과 안드레이는 다낭에서 멀지 않은 띠엔의 집에 초대받은 일이 있었다. 그때 그들은 망고 동산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슴 덕분에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월면장」의 인물들 역시 경계의 문턱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다. ‘나’는 한국 지사로 발령받아 귀국한 지 며칠 만에 심장 이상으로 죽음의 문턱 앞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이고, 왕령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온 자이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며 월면장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처남은, 몇 달 전 나에게 우주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라는 뜻의 변신 로봇 ‘소라큐’를 보내왔다. 소라큐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사진을 찍어서 가족 네트워크에 전송하는 역할을 한다. 심장 수술 이후에 입맛을 잃은 나를 위해 친구가 소개해준 한식 뷔페에서 ‘나’는 왕령을 만나 친해진다. 왕령은 오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그곳’에서 그의 가족이 돼지 도둑으로 몰려 그믐달 무렵에 강을 건너게 되었다고 한다. 왕령의 아버지는 경계를 넘으면 흰쌀밥이 지천일 거라고 했다. 왕령이 나라나 지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탈북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집요한 농담」은 다음에 이어서 읽을 「누구의 사랑이라도」와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두 소설은 인간의 생명 자체가 통치의 대상이 된 묵시록적 세계를 그리고 있다. 도시는 도보나 자전거로 주요 생활 시설에 15분 안에 닿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사람들은 본국에서 들여온 인문 마일리지의 부여와 삭감을 통해 관리된다. 인문위원회는 도시와 주민을 관리하는 통치기구이다. 이 도시의 전체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 성격은, 인문위원회의 조합원이거나 사상 검증을 마친 1군의 작가 아니면 누구도 어떤 형태의 창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15분 도시는 자동차 사용을 억압하고 자전거나 걷기를 강제하는 시스템이다. 처음에 15분 도시를 기획했을 때 저항이 거셌고, 마일리지가 적은 사람들은 타래 마을로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겨울이 소멸되기 직전의 그날 자정에 휴거하듯 모두가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적 인물인 박병철이 돌아온 것이다. 박은 통치의 네트워크, 그 관리의 시스템인 망에 걸려들지 않는 이상한 인물이다. 그는 옛날 타래마을의 이장이 살던 집으로 귀향해 살면서, 개 한 마리와 함께 농사를 짓고 겨울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박은 금지된 창작을 하면서, 그것도 금지된 계절인 겨울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사랑이라도」는 말 그대로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모란이 일하고 있는 호텔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호텔의 편집숍에서 일하는 모란은 해저 동굴의 습지식물과 홍해파리를 돌보는 업무도 맡고 있다. 특정한 색깔과 언어가 통용되는 이 도시는 철저하게 관리되는 통제사회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모란은 긍휼 이행 의지가 불분명한 감정비등급자로 구분되어 무색자로 판정받았다. 무색자는 체계의 색깔에 물들지 않은 불온한 사람이다. 기호에게는 바다에서 죽은 어떤 아이와 연루된 기억이 있다. 아이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고 한다. 그는 스펀지밥을 좋아했다. “모란은 가방 안에 넣어둔 스펀지밥 인형을 떠올렸다. 전해준다면 스펀지밥 인형을 뱃머리 어디쯤에 걸어놓을지도 몰랐다. 원래 스펀지밥이 말썽을 부리고 익살을 피우며 살던 곳으로 데려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 아이가 그렇게 되고 모란은 그곳에 발을 담그지 못했다.” 긍휼의 감정마저도 획일적으로 관리되는 세계에서, 그 아이의 죽음은 체계가 강요하는 색깔에 물들지 않는 모란의 고집 속에서 애도의 염을 불러일으킨다.
「은아의 세계」는 이미 제목에서부터 은밀하고 신비한 세계, 즉 ‘다른 곳’에 대한 경이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의 중심 내용은, 출판사 직원인 ‘나’가 책 출간 작업 중에 오지로 떠나버린 인터넷 서평가 보고밀을 설득하기 위해 은아와 함께 그를 찾아가서 보낸 며칠간의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은아의 자리는 미묘하다. 보고밀과 ‘나’ 사이에서 은아는 마치 어릿광대처럼 유쾌하고 가볍게 부유하는 듯하다. 사건의 능동적 주인공이기보다, 이야기 전체의 공기를 이루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은아는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은아야, 박은아. 숨길 은(隱)에 싹틀 아(芽), 싹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래. 외할머니가 지은 이름인데,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볼 수가 없대.” 진부하게 일상을 사는 평범한 이들에게서 은아의 존재는 너무 희미하다. 그러나 은아는 세속을 부정하는 고고한 존재가 아니라, 그 범속함의 세계를 거룩하게 성화(聖化)시키는 여신이거나 무당과 같은 존재이다. 뱀딸기를 먹은 은아에게 ‘나’는 장난으로 뱀이 될 거라고 말한다. 은아의 뱀-되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과 비인간, 성과 속의 경계를 넘어 존재와 존재 간의 이음과 섞임이 이루어지는 원융(圓融)한 생명의 세계를 가리킨다. 그것이 바로 ‘은아의 세계’이다.
「백한번째 사람」의 리찬은 시끄러운 기계가 돌아가는 곳에서 일을 하며 조경사 시험을 위해 고시학원을 다니고 있다. 행정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나’와는 학원의 한국사 강의에서 만나 알게 된 사이였다. 리찬이 일하는 곳은 자칫 잘못하면 기계에 몸이 말려 들어갈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리찬의 동료들은 계속해서 그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그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리찬의 동료 중에 아프리카에서 온 은쿠시가 있는데, 그도 기계에 손이 끼인다. 여섯 살 때부터 광산에서 코발트 캐는 일을 했다는 은쿠시는 푸념처럼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모부투 리살라.’ 리찬은 직접 세계사 연표를 만들어서 공부를 한다. 은쿠시나 자기의 역사를 슬쩍 끼워 넣은 세상 단 하나의 세계사 연표는, 온 세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리찬의 어떤 특이한 면모를 함의한다. 옷가지를 태우며 죽은 자들을 천도하는 모습이나, 소설의 결미에서 ‘나’에게 자기가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라며 가로수 하나를 소개하는 대목은, 리찬이 곧 은아와 같은 은미하고 신령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은아의 세계나 백한번째 사람은 메시아적인 것이 도래하듯 그렇게 극적으로 출현하지 않는다. 완성을 향한 백 번의 감내와 노고, 그 오랜 무릅씀의 끝에서 그것은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언제나 김가경의 소설은 그 무릅씀의 시간을 견디며 자기의 할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다알리아와 오미자, 다알리아꽃」의 박건호가 바로 그런 사람일 것이다. 박건호는 먼 타국에서 갑작스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는 도시의 오래된 동네에서 솜씨 좋은 배관공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곳에 들어선 금융단지, 즉 글로벌 자본의 네트워크에 이어져서 이란의 플랜트 현장으로까지 파견되었다가, 지금은 국경을 사이에 둔 나라들과의 분쟁이 잦은 알제리로 가서 파이프 라인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가 배관공이자 파이프 라인 관리자라는 것은, 곧 그의 일이 연결해서 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실종된 박건호를 찾기 위해 현지로 파견된 ‘나’는, 그의 일을 도왔던 타밀과 동행한다. 타밀은 박건호가 시추 중인 플랜트(인공물)를 지표로 삼는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모래의 물결(자연)을 읽을 수 있다면 살아남을 것이라고 하면서 박건호의 생존을 믿는다. “가스 터미널에서 시작하는 파이프라인은 모세혈관처럼 해양과 대륙을 향해 뻗어 나아가 지구를 사방으로 휘감고 있었다.” 자연을 약탈하기 위한 자원의 연결망이 아니라 물리적이고 영성적인 생명의 연결이 우리를 살린다. “저 아래, 아래, 더 아래에 누구도 주인이고 누구도 주인이 아닌, 거대한 푸른빛이 잠들어 있다네요. 사막의 혈관이라고요.”
「하루의 성자」에서 가엾게 죽은 창기는 저 억울한 죽음들의 역사를 넘어 수국으로 피어난다. “골목 입구에는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는데 도시의 중심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봉쇄한 우물 주변은 동네 사람들이 유기한 식물들이 저절로 자라 작은 동산처럼 보였다. 그중에 수국은 어머니가 내다 버렸다.” 오래전,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창기는 그 우물에 빠져 죽었다. 죽음이 있었던 자리는 식물들의 유기처가 되었고, 버림받은 것들은 소멸의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마침내 생명의 동산을 이루었다. 온갖 구정물을 갖다 부은 그곳에서 꽃들을 피워내는, 그 우물 자리의 분위기가 신비롭고 미묘하다. 더 기묘한 것은, 비가 오는 날 “고양이 가죽을 뒤집어쓴 것 같은 줄무늬 남자”가 마치 의식을 치르듯 천천히 우물을 돌아 수국나무 아래에서 수국 잎을 입으로 뜯어먹고 있더라는 것이다.
우물은 버려진 것들이 숭고하게 부활하고, 죽음이 생명으로 이어져서 다시 피어나는 성스러운 장소였다. 「이안과 밀령의 여름」에서 그와 같은 성소(聖所)는 사멸한 것들의 애도와 천도가 이루어져 왔던 ‘얼음 무덤’이다. 얼음 소각장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은 얼음공장에서 나온 얼음을 처리하는 곳이지만, 옛날에는 제사를 지내던 자리였으며 또 가뭄이 심하게 들고 홍역이 돌았던 어느 때에 죽어나간 아이들의 시신을 태우던 곳이기도 했다. ‘나’의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화장한 뒤에 뼈를 수습했는데 특히 사람의 뼈 중에서도 가장 작은 등자뼈를 힘들게 찾아냈다고 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역시 무당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무당이란 깊은 세계의 미묘한 것들을 듣고 보는 존재이고, 끊어지고 부서진 것을 다시 잇고 붙여내는 존재이다. 이들은 김가경의 소설에서 거듭해서 만나게 되는 징후적 존재이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과 외국인의 존재는, 김가경의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경계 너머의 상상력과 관련해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특징을 이룬다. 「양의 시간」에서 무용을 하는 정윤은 루마니아로 떠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거쳐 지금은 봉제공장의 시다로 일하고 있다. 세계가 인터넷의 망으로 연결된 시대에 맞게, 정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외국에 있는 두 친구를 사귀어 우정을 나누고 있다. 띠엔은 타이족의 후손으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고, 안드레이는 헝가리 국경 지역 살론타에 사는 일러스트 작가이다. 띠엔은 지금 베트남 소수민족의 춤을 배우고 있고, 안드레이는 그림을 그리며 부모님의 목장 일을 돕고 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 정윤과 안드레이는 다낭에서 멀지 않은 띠엔의 집에 초대받은 일이 있었다. 그때 그들은 망고 동산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슴 덕분에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월면장」의 인물들 역시 경계의 문턱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다. ‘나’는 한국 지사로 발령받아 귀국한 지 며칠 만에 심장 이상으로 죽음의 문턱 앞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이고, 왕령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온 자이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며 월면장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처남은, 몇 달 전 나에게 우주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라는 뜻의 변신 로봇 ‘소라큐’를 보내왔다. 소라큐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사진을 찍어서 가족 네트워크에 전송하는 역할을 한다. 심장 수술 이후에 입맛을 잃은 나를 위해 친구가 소개해준 한식 뷔페에서 ‘나’는 왕령을 만나 친해진다. 왕령은 오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그곳’에서 그의 가족이 돼지 도둑으로 몰려 그믐달 무렵에 강을 건너게 되었다고 한다. 왕령의 아버지는 경계를 넘으면 흰쌀밥이 지천일 거라고 했다. 왕령이 나라나 지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탈북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집요한 농담」은 다음에 이어서 읽을 「누구의 사랑이라도」와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두 소설은 인간의 생명 자체가 통치의 대상이 된 묵시록적 세계를 그리고 있다. 도시는 도보나 자전거로 주요 생활 시설에 15분 안에 닿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사람들은 본국에서 들여온 인문 마일리지의 부여와 삭감을 통해 관리된다. 인문위원회는 도시와 주민을 관리하는 통치기구이다. 이 도시의 전체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 성격은, 인문위원회의 조합원이거나 사상 검증을 마친 1군의 작가 아니면 누구도 어떤 형태의 창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15분 도시는 자동차 사용을 억압하고 자전거나 걷기를 강제하는 시스템이다. 처음에 15분 도시를 기획했을 때 저항이 거셌고, 마일리지가 적은 사람들은 타래 마을로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겨울이 소멸되기 직전의 그날 자정에 휴거하듯 모두가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적 인물인 박병철이 돌아온 것이다. 박은 통치의 네트워크, 그 관리의 시스템인 망에 걸려들지 않는 이상한 인물이다. 그는 옛날 타래마을의 이장이 살던 집으로 귀향해 살면서, 개 한 마리와 함께 농사를 짓고 겨울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박은 금지된 창작을 하면서, 그것도 금지된 계절인 겨울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사랑이라도」는 말 그대로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모란이 일하고 있는 호텔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호텔의 편집숍에서 일하는 모란은 해저 동굴의 습지식물과 홍해파리를 돌보는 업무도 맡고 있다. 특정한 색깔과 언어가 통용되는 이 도시는 철저하게 관리되는 통제사회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모란은 긍휼 이행 의지가 불분명한 감정비등급자로 구분되어 무색자로 판정받았다. 무색자는 체계의 색깔에 물들지 않은 불온한 사람이다. 기호에게는 바다에서 죽은 어떤 아이와 연루된 기억이 있다. 아이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고 한다. 그는 스펀지밥을 좋아했다. “모란은 가방 안에 넣어둔 스펀지밥 인형을 떠올렸다. 전해준다면 스펀지밥 인형을 뱃머리 어디쯤에 걸어놓을지도 몰랐다. 원래 스펀지밥이 말썽을 부리고 익살을 피우며 살던 곳으로 데려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 아이가 그렇게 되고 모란은 그곳에 발을 담그지 못했다.” 긍휼의 감정마저도 획일적으로 관리되는 세계에서, 그 아이의 죽음은 체계가 강요하는 색깔에 물들지 않는 모란의 고집 속에서 애도의 염을 불러일으킨다.
백한번째 여름 (김가경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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