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K

세상의 모든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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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표명희가 『세상의 모든 K』에서 실험하는 것은 성에 대한 사선(斜線)의 서사다. 사선은 도달을 전제하는 경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속 비껴가도록 설계된 기울기다. 소설의 인물들은 성을 향해 수직적으로 상승하지도, 수평적으로 정착하지도 못하고, 사선으로 접근하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한다. 사선이란 욕망하고 지향하되 거부되고 추방되는 세계에서 행해지는 유일한 이동 방식이다.
저자

표명희

2001년창비신인소설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내이웃의안녕』『3번출구』『하우스메이트』『아무일도없었던것처럼』,장편소설『버샤』『황금광시대』『어느날난민』등을출간했다.오영수문학상,제1회신격호샤롯데문학상대상을수상했다.

목차

잠재적이웃7
하비39
갭73
세상의모든K105
파라다이스시티역149
고수들183

해설성(城)에대한사선의서사|신수진(문학평론가)219
작가의말243

출판사 서평

소설집의첫번째성은‘고시원과오피스텔’이다.고시원은이름그대로고시를준비하는청년들이공부하며잠만자는정도의임시주거지였으나이제는그유래가무색할정도로가장저렴한방을구하는불특정다수의거처로바뀌었다.「파라다이스시티역」은코로나로인해인천공항을둘러싼상권과주거지가유령도시처럼멈춰버린팬데믹시기를배경으로한다.고모의오피스텔은파라다이스시티역에있다.이외래어역명과더불어운행중지상태인,공항과해변을잇는공중의자기부상열차는낡은고시원이난립해있는서울의달동네와견줄때“달나라에건설된신도시”다.고모는세입자가만기가되어나가면관리비만부담하는조건으로지훈에게오피스텔을몇달간써도좋다고제안한다.‘미래도시’,‘타임머신’,‘낯선행성’,‘샤갈의그림’,‘필립글래스풍선율’과같은지훈의표현은그가파라다이스시티역의오피스텔을얼마나비현실적이고초현실적으로체감하는지를알게한다.그러나황제와소주잔을주고받던고시원으로돌아가고싶을만큼오피스텔에서지훈은허공에홀로있는듯한적막을느낀다.공항과호텔과골프장그리고바닷가관광지가내려다보이는오피스텔은고고한성이다.그리고도시의밤은가로등,네온사인,자동차,아파트등“온갖불빛이다함께모여어둠을밝히기때문에휘황”한것이라는낭만적인문장은고유한아이덴티티들의공존이라는작가의주제의식을집약한다.

두번째성은‘아파트’다.아파트공화국대한민국에서는자산에따라입성할수있는아파트계급도가존재하고소득,직업,교육등전방위에걸친사회적위상도서열화되어있다.따라서부동산불패신화에대한믿음은온갖규제를뚫고더융성한다.거주지의위치와가격이거주자의지위와자본을표현하는한성벽은더높아지고사다리는자주끊어질것이다.「갭」의주인공수민은항공사승무원으로집에돌아오면아무도없는집에서유니폼을벗어던지고나체로춤을추면서해방감을누린다.남편의지방발령으로각자집을구했기때문이다.수민은건설사부도로소유권이신탁회사로넘어간이아파트를시세의절반가격에임대한다.그러던어느날부터위층에서기계음이들린다.어른키만한종이박스들이복도에서사람의진입을막고있는섬찟한미분양아파트였기에드디어누군가이사를온것같아반가울따름이다.아이가뛰는소리며세탁기돌아가는소리등위층사람들의시끄러운소리는수민으로하여금단란한가정을연상하게했다가이내경비실에민원전화를걸게되는계기로바뀐다.그러나603호는빈집이라는답변이온다.위층을직접보기위해비상계단으로올라간수민은복도에가득한음험한종이박스바리케이드를목도하고황급히뒤돌아서다계단에서중심을잃는다.위층의상습적인소음과그실체를추적하는과정에서위층은처음부터없었다는것이확인되는공포영화같은모멘트다.소설에서아파트는물리적으로건설된공간이아니라인물의심리추이가그로테스크하게현상되는피사체로등장한다.

세번째성은새롭게개시되는‘인공지능시대의도시’다.「잠재적이웃」의주인공은최근저작권중개회사를그만두고오랜꿈이었던프리랜서번역가가된안나다.그는새로운일에최적화된환경을만들기위해“논밭과야산을뭉개고올라선거대한콘크리트축적물”처럼보이는‘미니신도시’로이사를한다.서울로연결되는광역버스노선을갖춘대단지로전형적인‘베드타운’인이곳은신축아파트와주변시설까지갖춰유동인구가거의없는‘항아리생할권’이기도하다.서울그리고그안에서도상급지에서살기위해투쟁하고있을전동료들의우려와의구심에도불구하고안나는어떤선택에도리스크는따른다는것을상기한다.막상프리랜서번역가가되어보니직장인근무시간보다업무시간이더소요되어퇴근도월급도없는일이었고무엇보다집이곧직장이기도하니실내분위기를위해당근마켓에서식물고르는것도습관이된다.나이가비슷한여자라면작은화분을인연으로이웃이되고도싶었으나식물덕후‘식덕’이라는해박한청소년판매자에게안나는몬스테라를사온다.그리고열대식물이아니라동양화를보는듯한느낌에백발의노인‘장수하늘소’에게파키라를사온다.

네번째성은도처의평범한얼굴들,바로타자들의형상으로나타난다.「하비」의주인공민수는학원원장으로살아가지만친구의보증을섰다가파산과이혼을겪고부다페스트아지트로도피한다.개혁을꿈꿨던운동권에서이해타산에밝은소시민이되기에결국실패한것이다.무방비상태로숨어지내는민수는열쇠가고장난작은사건하나에도패닉에빠지지만건물관리인의도움으로문제는해결된다.으레남자라생각했던관리인알렉스는귀부인같은여성이었고,말론브란도같은백인이라생각했던아래층남자하비는시리아출신난민이었다.민수가가졌던편견은전혀예기치못한실체의출현과함께부서진다.「세상의모든K」속유복한환경에서자란네명의여고동창들은유럽유학과박사학위를거쳐결혼한다.“캐슬,그러니까성에초대받아간것같았잖아.쇼팽의녹턴을들으며와인을마시고테라스에서눈덮인알프스산을바라보고”라고회상하는고학력전업주부친구들은독일인과결혼한수진의시댁을시월드가아닌시토피아로명명한다.‘나’만아버지의부도와뇌졸중으로슈트라스부르크에가기로했던K와헤어지고골프장견습도우미로시작해가족을부양하며이삼십대를보낸다.긴세월친구들의수다속에등장하던수진의시동생카라얀은뛰어난인물과재능을갖춘비운의천재피아니스트다.‘K며느리’가아닌수진과‘나’는부모님을간병하는맏딸이라는공통점이있었고오십대가되어서야독일로휴가를떠나게된다.사실‘나’의목적은친구들과‘나’를구별하고그들의성을견고하게해주었던카라얀을만나보는것이다.독일에머무는동안‘나’와카라얀만동선이엇갈리는우연이발생하더니결국여행이끝날때까지‘나’는그를만나지못한다.카라얀이란이름도그의실제이름이아니었고한집에서조차그를만날수없었으니오랫동안‘나’의꿈속에서성처럼건재하던우상은실재도아니었고내것은더더욱아니었던것이다.끝내성안으로들어가지못한카프카의K가바로자신이라는걸깨닫고난뒤‘나’는조금덜외로웠을것이다.우리모두역시K이기때문이다.
성이라는이상적관념과계급의식을설정하고경도되는대신마을을찾은이들을환대하고사람이사람을추앙하며살아가길제시하는성모티프는소설집전체를관통하는전언이다.다가갈수록멀어지는신기루를오래좇다보면모래바람속죽음만이남을것이다.소통과지지그리고연대와협력을향한염원은여러작품에서‘이웃’이라는다정한단어로압축된다.표명희소설은지금까지그래왔던것처럼이번소설집에서도광장에서는들리지않는낮은신음과보이지않는높은고통을기입한다.염세적이지않게그렇다고성스럽지도않게우리들은결국다성밖에머무르는처지아니겠냐고,그러니조금더충만하게존립해보는것은어떠냐고묻는다.성으로부터의해방,그의소설은새로운질서를써내려가고있다.성에들어가기위한사선은끝내성문을열지못한다.그러나사선의의의를‘들어감’이아니라‘곁에있음’으로전환할때,성의허상은최초로약해진다.이소설집이제안하는것은성의점령이아니라사선의방향을바꾸는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