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 (이소정 소설집)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 (이소정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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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소정의 세계에서 지킴은 힘 있는 자가 내세우는 구원이나 정의, 권력의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소정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취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존재들이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바랐으나 이루지 못한 일”투성이인(「날씨에 대해 우리가 했던 말」),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늘 당하고 마는 사람. 그렇게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안 보이게 되는 사람”(「오영과 해영」), 그래서 “이곳에 이런 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사람(「훠궈」)이다. “참지 못하고 더러운 것들을 다 쏟아내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참는 쪽의 사람들이다. 그래도 이들은 “더 작은 것. 더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약하고 작은 존재를 쉽게 버리고 자주 잊어버리는 세상을 향해 “한번 버려진 걸 또 어떻게 버려”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누군가를 지키는 일은, 고통과 연약함을 드러내는 타자의 얼굴 앞에서의 ‘무한한 책임’을 역설한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대로 ‘해치지 말라’는 존재의 무언의 요구에 응답하는 일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효율과 보상, 힘의 역학 같은 게 끼어들 틈은 없다.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은 이런 인물들의 사소한 순간, 대화의 파장, 마음의 잔상을 따라 어쩌면 무심하게 때로는 농밀하게 그러나 결코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단정하고 다부진 화법으로 이야기의 압력을 생성해간다. 그렇게 서사적 단절과 정서적 응축 가운데 직조된 공백 사이를 더듬거리며 이야기를 수집하다 이 소설집의 온도를 감지할 수 있는 지점쯤에서 독자는 결코 간단치 않은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가령, 타자의 얼굴이 부여하는 명령은 왜 상처 난 자들에게 더 쉽게 스며드는 것일까, 이런 무익하고 무해한 지킴의 자리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남을 수 있는가, 그 무용한 시도와 무력한 패배 속에서 문학은 무엇을 볼 수 있는가와 같은. 말하자면,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은 이런 질문을 서사의 형태로 번역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

이소정

2020년『부산일보』신춘문예에「앨리스증후군」이,2021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밸런스게임」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23년대산창작기금을받았으며,2025년제3회연세-박은관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날씨에대해우리가했던말7
테라스45
밸런스게임75
오영과해영103
우리의차와미래의문장들137
지구의밤169
수영장203
앨리스증후군237
훠궈265
배드민턴315

해설무익한지킴이라는,불가능한윤리|임정연(문학평론가·안양대교수)347
작가의말368

출판사 서평

이소설집의표제작「우리의차와미래의문장들」을비롯해「날씨에대해우리가했던말」,「훠궈」,「앨리스증후군」,「배드민턴」의인물들은모두“복원불가능한균열”의상태를일상으로살고있다.이들은“보이지도않는실금같은것들이모든것을집어삼”킬까봐미세한균열“딱그만큼”을지키려고안간힘을쓰는사람들이며,그럼에도불구하고끝내관계를,가족을,자기자신을,그리고살아있음을놓쳐버리고만사람들이다.
「우리의차와미래의문장들」의은영과보숭은“어떤것을하지않아서가능한미래”와“하지않아서생긴일”사이에서좌초된관계라할수있다.보숭누나의부고소식을듣고장례식에간은영은아파트옥상에서뛰어내려한쪽신발만신겨진채발견되었다는누나의모습에서캐나다유학시절자신의‘버려진신발’을떠올린다.학교선생님과친구들이보여주던과한웃음과그웃음끝에한짝씩사라지던동양인아이들의운동화.그운동화들이버려진외지고어두운응달의이미지는‘보편의행복’도‘보편의죽음’도누릴수없었던보숭누나의레즈비언정체성과환치되며그녀들이감당해야했던‘보편’이라는세계의배타성과폭력성을선명하게적시한다.그런데은영이그‘버려진신발’의기억을잊을수없는또다른이유는자신의신발이무사하기위해나중에전학온보숭의신발이대신사라지는것을외면했고,이를보숭에게말하지않았다는점때문이다.그러니까보숭누나의죽음을막지못한어린이집차량기사처럼그시절보숭이당했던일들은은영이“손을내밀지않고가만히있”어생긴일이다.
생활고로동반자살을한「훠궈」의가족—화자인딸최지은을비롯해엄마고미영,아빠최태훈,동생최동운—은‘귀신’이된처지인데도여전히열두번의이사끝에마지막집이된과수원냉동창고컨테이너안에함께머물며밤마다모여마늘을까는일상의노동을계속해나간다.그러나실상은이들가족이생을마감한뒤에도농약병이뒹구는집안에부패중인채로방치되어있다는것인데,이로인해가장안전해야할집은우리사회의구조적인배제로보호와지킴이실패했음을드러내는사건현장으로전환된다.여기서조차이들의존재감은“이곳에이런식으로존재한다는것”을아무도알아챌수없고,발견되더라도“일가족생활고를비관해……”라는기사한줄로정리되고말정도로미약하다.이가족의마지막음식이었던‘훠궈’가남긴뒷맛과과로사한유정이옛애인인지은의집에들고온빈화분속씨앗은“부재를통해존재를증명”함으로써“일어나거나일어나지않았을일에대한모든단서이자가능성”을시사한다.지은은화분에핀꽃을보고누군가는“스스로를구할수있었으면좋겠다”고생각한다.자기스스로를구하라는것,죽은이들이살아서미처하지못한말,너무늦어버려할수없는말은이런게아니었을까.

그렇다면,「수영장」「테라스」「밸런스게임」은끝내누군가를구하지못해마음에‘자국’이남은채붕괴된세계에갇힌사람들의이야기라할수있을까.「수영장」의‘나’는원전화학단지누출사고로폐허가된도시를부유하는유령이다.‘나’는피난상황에서의무모한선택으로가족과헤어져운전중‘판’을차로치고자신도도로가드레일을들이받고사망했다.‘나’는매일같이재앙이휩쓸고간텅빈도시한구석버려진수영장에서‘판’을만나가족과의마지막“그날을이야기”하고가족이없는빈집으로귀가하는,“다시그시간을사는”행위를반복한다.그리고살아서보호받지못했던아동학대피해자‘판’은화자의죄책감이고여있는장소인수영장에서매일‘생존수영’을연습한다.이때이수영장이본래소방서건물을개조한시설이었다는아이러니한사실은이곳이실패한보호와구조를상징하는공간임을알게한다.다시태어나면소방관이되고싶다는화자의말역시물이빠진수영장처럼이미실패한지킴에대한가망없는희구일뿐이다.그러나가족과의마지막순간을복기하며구하지못한아내와쌍둥이아이들대신판을돌보는‘나’의모습은행위로서의지킴이‘책임’의형태로도지속될수있음을보여준다.반려견을두고혼자도망갔다는죄책감에죽어서도방독면을쓴채개를찾아헤매는미진엄마도그런경우다.그녀에게지키지못한가족인반려견‘미진’은“버린다고버릴수있는게아”닐뿐더러“아무일없다는듯”살아가기란더더군다나불가능한일이다.상실의경중에상관없이지키지못한자들의애도에는유효기간도골든타임도존재하지않는법이다.

이소정소설에서누군가를지킨다는말은거창한약속이나의지,당위에의해서가아니라누군가와함께헤아리던날씨,반복하던놀이,미묘하게조율해온거리,작은선택들의연쇄와같이균열을내장한일상의자리에서생성된다.그래서지킨다는말은약속의언어가아니라인간의본질적취약함을드러내는결핍의언어다.
『우리의차와미래의문장들』은그렇게발생하는일상의마찰을세밀하게포착함으로써‘지킨다’는행위가사실상얼마나불완전한감정과조건속에서발현되고소진되는지를보여준다.힘있는지킴의숭고함이아닌무력한지킴의무익함을통해드러나는것은지켜낸결과가아니라지키려했던마음의자국일터,『우리의차와미래의문장들』에서우리는그자국이세계의온도를미세하게바꾸는진동으로작동할수있음을목격할수있다.
이처럼이소정소설이역설하는대가없는무익한지킴이란권력의회로를거부하는조용한반항,무너진세계속더약한존재의얼굴을향하는마음,그생을잊지않겠다는조용한다짐,소멸이후에도남는잔존의힘같은것으로구성된다.이불가능한윤리를언어로새기며,이소정의문학은보잘것없는온기로도지켜지는존재와사람의체온으로만할수있는일을기록하고자한다.그리하여그언어를기억하는한아직은우리가이세계의셈법에길들지않고‘지키는자’로남을수있음을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