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보다 더 많은

아홉보다 더 많은

$15.00
저자

정영선

저자:정영선
1963년경상남도남해에서태어났으며부산대학교역사교육과와동대학원국문과를거쳐경성대학교국문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1997년중편『평행의아름다움』으로[문예중앙]을통해등단하였으며소설집으로『평행의아름다움』(문화예술위원회우수문학도서선정),장편소설로『실로만든달』이있다.부산소설문학상,부산작가상을받았고,2010년문화예술위원회창작지원금을수혜하였다.현재경남여고에재직중이며경성대학교에출강하고있다.『생각하는사람들』로2018년제35회요산김정한문학상수상하였다.

목차

아홉보다더많은7
아버지가누구든35
묵은유자차63
습기차는방91
고관입구119
무연고시간149

해설그들의이야기,우리의얼굴|정홍수(문학평론가)177
작가의말204

출판사 서평

정영선의신작소설집『아홉보다더많은』에는역사의시간을현재화하는작가의정밀한원근법이생생하다.소설집전체적으로작은연결고리가보인다.‘북한이탈주민’줄여서‘탈북민’으로불리는사람들이다.탈북민의아픔과사연은격렬한드라마가아니라작은시간의틈새에서응축된다.표제작「아홉보다더많은」과「무연고시간」은탈북민화자의시점으로이야기되며,「아버지가누구든」「습기차는방」「고관입구」에는탈북민의이야기가화자의이야기와얽혀있다.「묵은유자차」에는탈북민이직접등장하지않지만분단과이산의이야기가배경에깔려있다.

「아홉보다더많은」은함경북도회령에서온순애라는여성의일인칭시점으로쓰여져있다.우리는탈북민여성이지나가고있는힘겨운시간의이야기를그녀의시선,목소리로전달받는다.순애는탈북이후하나원에서방과후교사로일하고있는데,동료들과함께하는저녁식사자리의이야기가그녀의내면깊은곳에서일어나는아픈상념들과교차하며펼쳐진다.탈북민에대한세상의시선은상대적으로우호적인이해자라할수있는동료교사J,경미를통해전해지고그에대한순애의반응과내심이미묘한지점까지드러난다.특히순애가J에게두는경계심은J가소설가라는사실을알게되면서커지는데,특별히영문이니셜로표기된이인물이얼마간작가의분신일수있다는점에서탈북민이야기를써나가는소설가정영선의자기점검,자기성찰을독자도자연스레겹쳐보게된다.나이도한살적은J가순애를‘언니’라고부르며가까이다가왔을때,순애는“마음의울타리를촘촘히세우는걸잊지않았다.”“쓸만한이야깃거리를얻으려는수작이란게훤히보였”(19쪽)기때문이다.‘쓸만한이야깃거리’라는말은신랄하다.소설집의또다른탈북여성이야기「무연고시간」에서연변에서낳은여섯살동명을동생으로숨기며키우고있는‘서원’은탈북의기억이고스란히남아있는라오스땅에서절규하듯바닥의마음을토해낸다.“다른곳으로가고싶다.내몸에새겨진이야기로나를구별하지않는곳,더이상적응이라는말을듣지않아도되는곳으로.”(175쪽)세상의살아있는아픔을한쪽에두고소설의‘이야기’가얼마나세심하게발굴되고구축되어야하는지새삼생각해보게되는대목이다.그러나동시에이점을깊이의식하면서정영선의소설은탈북민의마음만이아니라,그들과함께살아가는‘우리’에대한이야기로확장되고있다.순애의시선도자기중심적이다.순애는음식을가리는J를못마땅해하며“일주일만굶기면밥그릇밑바닥까지훑어먹을인간들이……”(18쪽)라는생각을숨기지못한다.허물어야할편견은남쪽사람들이더많겠지만,마음의울타리를허물기위해순애가해야할일도있을것이다.식당에서한국말이서툰종업원에게J가‘어디서오셨어요?’라고있을수있는관심을내보일때,그런질문이상대를곤혹스럽게만들수있다는생각은비슷한아픔을겪고있는순애만이곧장할수있는것일텐데,J를포함해대부분의사람들은그런지점을의식하지못하고살게마련이다.순애의휴가턱으로마련된세사람의저녁자리가순애와J,둘만의이차자리로이어지는가운데소설은대수롭지않은일상의시간에서조차마음의경계를늦추지못하는순애의날선속내를하나씩꺼내보여준다.어디에도속하지못하는경계인,사회적낙인을갖고살아가야하는탈북민순애의불안과고립감은하나원교사라는상대적으로안정된조건만으로는해소되기어려워보인다.

「아버지가누구든」「묵은유자차」「습기차는방」「고관입구」등소설집속다른네편은탈북민의존재를세상의일반적인좌표위에,그러니까잘보이지않는자리에멀찍이떨어뜨려둔채‘우리’의이야기를들려준다.그러면서그들의이야기가‘우리’의이야기속으로교차하고틈입하는순간을찾는다.가령「아버지가누구든」은아버지없이자란‘현정’이란여성의이야기인데,어머니의침묵과주변의소문사이에서아버지의존재를상상하는아이의시선이흥미롭게그려진다.딸을키우며혼자억척스럽게살아가는어머니는한국문학사에잘알려진여성계보를환기한다.종종‘무성(無性)’의존재처럼그려지는그‘억척어멈들’과는달리이소설에서현정의시선은부재하는아버지의자리를대신해잠깐씩출몰했던어머니의남자들에대한기억을놓치지않는다.노년의어머니가세탁후챙기지못한고급스런속옷의디테일을전하는가운데정영선의소설은부재한아버지의이야기가아직끝나지않았음을알려준다.그러고보면어머니의방에는북한소식을전하는‘남북의창’이자주켜져있었고,‘새터민생활안내서’가발견되기도했다.어머니가조금은이르게실버타운으로들어간데는다른이유가있었음이드러난다.같은실버타운에여생을함께할‘남자’가있고,북한에서온사람이라는게밝혀진다.

「습기차는방」은7평반지하원룸에서사는대학생명준의이야기다.휴학과아르바이트로대학생활을기약없이연장해가는모습은익숙하다.아버지없는집안형편이나엄마의요란한연애는그다지심각하게다루어지지않는다.명준의관심은편의점알바동료인대학생‘지은’이다.학교강의를몰아서듣고교대시간에아슬아슬하게편의점에도착하는지은과는어렵사리시간을내어잠깐의데이트를즐기기도한다.소설은명준의반지하원룸과편의점에대한미시적관찰을통해우리시대젊은이들이통과하고있는삶의속내를실감나게전한다.‘지은’이종우의전연인이었다는사실을알게되면서명준은혼란을겪는다.그러나“지은이북한에서왔다.라오스에서메콩강을건넜다는데난좀부담스럽더라”(115쪽)라는종우의뒤늦은문자는명준을흔들지못한다.지은이가고싶은여행지가메콩강이라는,그전에지나가듯던진종우의말이맥락을얻는순간이기도하다.

한국근현대사의굴곡진시간안에서이야기를찾아내는것은정영선소설의중요한관심사다.「고관입구」는그시간들이착잡하게얽혀있는부산의왜관,유엔묘지,비석마을등의장소를배경으로사람들의마음속을횡단하는역사의기억으로다가간다.소설화자‘나’의아버지는전쟁중에‘적기’(아카사키赤崎.지금의감만동)에서유엔군시신수습일을하게된것을계기로미군부대군무원으로근무하다퇴직한이다.아버지에게유엔군은대한민국의절대적은인이며,노년의유엔숭모회활동은자연스럽다.작은아버지는자그마한회사를운영하고있는데,여기에탈북민여성‘강주임’이근무하고있다.강주임의부친은북송선을탄재일교포였다.“비석마을이란데가보고싶어요.저의아버지고향도부산인데,해방뒤오사카에서사시다북송선을타셨어요.북에서돌아가시고……”(143쪽)강주임의가족사는한국현대사와이어진이중삼중의디아스포라라할만하다.그리고죽어서도고향으로돌아가지못한사람들.유엔묘지,비석마을,왜관은역사와교차하는개인의기억을통해각자의자리에서서로다른마음의길을내지만,지금당장강주임처럼그길조차끊어져버린사람도있다.분단은어떤이들에게기억의영토까지앗아가는현재의장벽이다.

「묵은유자차」는오십대중년의나이에고향에돌아와살게된선심이라는여성을통해옛사랑의씁쓸한기억을반추하는이야기로볼수도있다.여고시절짝사랑의대상이었던영우는지금군수가되어고향에내려와있는데,친자매처럼지내온육촌여동생명혜의사랑이기도했다.명혜는결혼이후까지영우와의관계를놓지못했던것으로보이는데,딱히그때문만은아니었지만지금은이혼하고혼자살아가고있다.꽤안정적인사회적지위에오른남편이나의대생이된아들을떠나지금은‘노래부르는남자’와혼인신고도하지않고같이산다는명혜는좀더많은이야기를캐어묻고싶은여성인물이다.선심에따르면그녀는노래로잘하고글도잘쓴다.그러나소설은소소한곡절너머좀더긴시간의흐름속에서인물들의이야기를보여주는방식을택한다.선심의개업빵집으로영우가찾아온뒤,착잡한기억의습격속에서그녀가찾는곳은인근내곡리바닷가마을에혼자사는숙모,명혜어머니의집이다.‘묵은유자차’의향이감도는어둑신한방에서선심은원산이고향인숙모의이산(離散)이야기를듣는다.두살때엄마등에업혀잠시서울에들렀는데,38선이생기면서다시는고향으로돌아가지못한이야기.그리고군수가된영우가숙모의이산이야기속에다시등장한다.‘통일마을’을조성하려고하는영우는숙모를그사업에참여시키려하고,직접내곡리를찾아오기도했다.그러나이미너무긴세월이흘러버렸다.그리고통일마을은아마도정치나관광의영역이되기쉬울것이다.정영선의소설은다시한번아주미세한지점에서인간의이야기를발굴한다.숙모의장례식장모습을전하며소설은끝난다.“누구도숙모가두살때헤어진언니의생사를알지못하고죽었다는사실을이야기하지않았다.군수는오지않았다.”(90쪽)분단과이산,혹은탈북민의아픔에는어떻게다가가야할까.세상의아픔과함께살아간다는것은무엇인가.정영선의소설은잠시달아오르는몸의‘열’을통해그질문을이어가고있는것으로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