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않은참사의시간,
끝내써야만했던고통과상실의이야기
1994년굴지의재벌기업중의하나인SK에서는‘SK바이오1125’라는가정용초음파가습기살균제원료를개발했고옥시래킷,애경,LG생활건강등가정용화학제품제조사들은이를재빨리상품화하기시작했다.그리하여1994년부터2011년까지49종의총수백만개에이르는가습기살균제가일반가정에팔려나가게된다.하지만이제품들은최초개발시개발부서내부에서의이의제기와최초의독성시험에서의부적격의견도무시한채출시되었고그이후단한번의흡입독성시험도없었음에도불구하고인체에무해하다는완전한거짓광고를내세우며히트상품이되어해당업체들에게엄청난이윤을남겨주게된다.그결과1995년최초의영아사망자가발생했고그이후2011년이살균제의치명적독성이공인되기까지수백만명이이살균제의독성에노출되었고수천명의사망자가발생했다.하지만그들모두원인모를바이러스에의한급성페질환,혹은괴질의희생자로간주되며억울하게죽어갔다.그중대표적인상품이라고할수있는‘옥시싹싹가습기당번’한제품의경우만해도이기간동안총415만개가판매되었고이로인해77만여명이크고작은피해를입었으며5,218명이사망했다는통계가있다.‘가습기살균제참사사건’은아직도제대로된피해보상과책임자처벌이이루어지지않은채피해자들의고통이지속되고있다.
천지영의연작소설『하얀손님』은2011년에일어났던‘가습기살균제참사사건’의시작과끝을관통하고있다.커리어우먼으로승승장구하던중사랑하는사람을만나결혼하고아이도가진젊은여성이가습기살균제로인해건강과커리어와사랑모두를잃게되는이야기(「하얀손님」),아내에게닥쳐온예기치못한비극을감당못해알코올중독에빠져인생을포기하기에이른어떤남자의이야기(「갈망」),한양심적인의사에의해원인모를바이러스성괴질이가습기살균제피해임이밝혀지는이야기(「검은행진」),진실을과학적으로규명할책임이있는한권위있는독성학자가자본에매수당해자신의양심을팔아넘기는이야기(「청부과학자」),2006년에는인턴으로,2011년에는전문의로연속하여어린환자들의죽음을속수무책으로목격하며사건의실체에접근하게되는한의사의이야기(「목격자」),가습기살균제참사로아내를잃고아내가남긴어린아들과살아가야하는한남자의기억속의사랑에관한이야기(「너와함께」),아직이도나지않은어린아들을가습기살균제때문에떠나보낼수밖에없었던젊은부부의이야기(「냉동두부」),가습기살균제참사특조위활동에참여한환경단체활동가의고뇌와무력감을통해진상규명과피해자구제활동의난관과한계를여실히보여주는이야기(「활동가」),마지막으로피해자가족의자리에서진상규명과책임자처벌을위한지난한싸움을벌이는투쟁가의자리로옮겨간한남자와그남자의이야기를소설의형태로,문학적서사로재현하고자하는한작가의이야기(「항의행동」).
이아홉편의작품들은가습기살균제참사라는중심사건을공유하면서인물들과스토리라인에서내적으로연결되어있다.첫작품「하얀손님」과여섯번째작품「너와함께」,아홉번째작품「항의행동」은가습기살균체피해로폐이식까지받았으나끝내죽음을피하지못한아내성채린과,아내의죽음으로절망에빠지는대신자본과국가에대항하는투쟁가로거듭나는남편김동하의이야기가하나의중심줄기를이룬다.그리고그기본줄기곁으로진상규명을위해책임을다하는또다른프로타고니스트들인의사들과활동가들이등장하는「검은행진」과「목격자」,그리고「활동가」가부차적인줄기를이루고,그곁으로「갈망」,「청부과학자」,「냉동두부」같은크고작은에피소드들이가지를쳐나가고있다.이정도면각기다른에피소드들이하나의주제로수렴해나간다는연작소설의소구를충분히충족시켜주고있다고할수있다.특히성채린-김동하부부에의해엮여나가는중심서사는비극적재난이어떻게평범한인간에게숨어있던숭고함이라는비범한자질을일깨우는가를보여줌으로써깊은감동으로다가온다.또한마지막작품인「항의행동」에서보이는,비록좀처럼답신을얻지못하고허공에흩어지지만이비극적사태를기록으로남기고자하는한인물의간절한발신의기록은이연작소설의기원서사로서또하나의감동을준다.써야한다는,쓰지않고서는견딜수없다는갈망,그것이이무명의작가에게펜을쥐여준것이다.
지난30여년동안제대로규명되지도,충분히보상되지도못한채,피해자들의입장에서는여전히현재진행형의악몽임에틀림없는이가습기살균제참사라는미증유의재난이,그간어떤기성작가들에의해서도포착되지못했다는것은일종의집단적직무유기에가까운일이다.오직천지영이라는이한사람의무명작가만이이언어도단의재난에주목했고,어떻게든써내야한다는간절함하나로『하얀손님』의문학적기록을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