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신종국의 『그 섬의 별들에게』는 1960년대 중반 부산 영도를 배경으로 한 궁핍한 시대의 성장소설이다. 너무나도 가난한 주인공 호기네 집은 행복한 보금자리일 수 없다. 오히려 불안의 둥지에 가깝다. ‘이것도 식구인가’라는 한탄의 마음이 절로 이는 그런 안타까운 집안이다. 가령 이런 분위기이다.
형을 볼 때마다 조여진 그 긴장은 늘 전류처럼 내 전신을 날이 서게 만들었다. 그런 긴장과 더하여 아버지와 우리 두 형제만 집에 남게 되면 나는 호흡조차 어려웠다. 이게 무슨 식구인가. 나는 메말라가는 이런 감정이 너무 싫었다.(191~192쪽)
‘이게 무슨 식구인가’라니! 이 집안에는 온기도 없고 다정한 소통도 없다. 정도 감정도 메말라간다. 같이 밥을 먹긴 하지만 숨쉬기도 불편한 지경이다. 그나마 어머니가 집에 있으면 조금 완화되는 기미가 있지만, 아버지와 형 그리고 주인공, 이렇게 남자 셋만 있을 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집 밖에서 놀다가 집 안으로 귀가하는 시간은 곧 절망의 시간에 가깝다. 그 시절 집안 사정이 어렵기는 다른 친구네도 마찬가지였던지 호기와 그 친구들은 한결같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터인 대평창고에 물건이 입출하되지 않고 공치는 날이면 노동의 기회를 잃은 아버지는 돈을 한 푼도 쥐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날이 며칠만 연속되어도 아버지는 영도 선창가로부터 남항동 전차 종점을 지나 우리 집까지 올라오는 동안 오만가지 분노에 얼굴이 노랗게 굳어 귀가하게 된다. 나는 그런 날이 가장 무서웠다. 우리는 좁은 부엌 마루에 도열해 있다가 아버지가 그 빡빡한 미닫이 현관문을 옆으로 열고 들어올 때의 숨소리, 안색, 우리에게 건네는 그 첫마디에 그날 밤 우리 가족의 안위가 달려 있음을 알고 있다. 그만큼 나는 시달렸고 그 상황이 끔찍했다.(164~165쪽)
영도 선창가 하역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정규 급여 소득자가 아닌 일용직이었기에 일이 없는 날이면 신체적 심리적 결핍이 가중된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의가 끓어오르고 그 분풀이가 종종 가정폭력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그런 사정으로 말미암아 주인공에게 집은 “질식할 정도로 엄폐된 지하”였고 그 지하의 어둠 속에서 “막막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끔찍하게 불안한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식구인가’라는 상실감이나 좌절감은 집 안에서만 발동되는 것이 아니다. 집 밖에서도 그렇다. 특히 학교에서도 주인공은 음지의 마음으로 덜덜 떨며 보내는 경우가 많다. 시험지 대금을 비롯해 학교에 내야 할 여러 잡부금을 제대로 내기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다. 담임교사가 때때로 모욕에 가까운 벌을 주기도 한다. 요즘 같은 학생 인권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교실에서 담임은 종종 폭군에 가까웠다. 어떤 면에서 집 안의 아버지와 교실의 교사는 폭력적이라는 면에서 정치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형성한다. 그런 음지의 마음을 지닌 아이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양지를 찾아 나서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교실 외부 벽에 붙어 서 햇빛 바라기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대한 기억이다. “모두 폭삭 늙었다. 더구나 입술 양 끝으로 주름이 시옷자 형태로 주름진 몇몇은 노인 그 자체였다. 하나같이 야위었고 핏기가 없었다.” 아이들이 성장하기도 전에 폭삭 늙은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이마에 굵은 주름들이 선명하다는 것…… 오래되어 빛바랜 흑백 사진첩 속에서 되살릴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물론 신체적으로 늙었다는 말이 아니다. 감정과 표정이 그랬다는 말이다. 삶이 질병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던 그 시절에는 그랬다. 어처구니없이 서둘러 늙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버텨야 했고 살아남아야 한다. 아니 더 간절하게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6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호기는 너무나 가고 싶지만 돈이 없어 가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가지 못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공장 견학을 실시한다. 이때 호기는 유리공장도 보고 도서관도 가게 되는데, 그 풍경의 대조가 호기의 간절함을 더욱 절실하게 하는 것으로 기능한다. 유리공장, 솥공장에서 호기는 공장 인부들이 제대로 된 얼굴을 지니고 살기 어려운 사정을 직감한다. 그 불편한 진실을 목도하고 자기 미래를 예감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영도도서관은 달랐다. 자기가 읽고 싶은 수많은 책 냄새와 함께 열람실이 행복한 장소로 다가왔던 것이다. 공장이 아니라 도서관 계열에서 자기 미래를 열겠다는 속다짐이 이루어진 순간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 섬의 별들에게』는 단순한 회고담이거나 자전적 기록이 아니다. 성장하기 어려운 시절의 역설적 성장의 풍경, 성장의 불가능성을 넘어 가까스로 성장의 경로를 발견하려는 안타까운 시도의 춤사위다. 깊은 어둠을 통해 영롱한 별빛을 견인하려는 작가의 상상력이 절실하고 애도를 위한 몰입이 웅숭깊다.
기억을 서사화하고 고통을 형상화하는 수사학 또한 인상적이다. 고통을 언어화하는 순간, 그 고통은 단순한 상처를 넘어 새로운 의미를 향해 떠오른다. 이 서사가 개인의 회고를 넘어 문학으로 도약하는 순간은 바로 거기에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밝히기 어려운 진실을 밝히며, 속죄의 서사를 열어, 존재와 이야기의 새로운 생명을 응시한다.
형을 볼 때마다 조여진 그 긴장은 늘 전류처럼 내 전신을 날이 서게 만들었다. 그런 긴장과 더하여 아버지와 우리 두 형제만 집에 남게 되면 나는 호흡조차 어려웠다. 이게 무슨 식구인가. 나는 메말라가는 이런 감정이 너무 싫었다.(191~192쪽)
‘이게 무슨 식구인가’라니! 이 집안에는 온기도 없고 다정한 소통도 없다. 정도 감정도 메말라간다. 같이 밥을 먹긴 하지만 숨쉬기도 불편한 지경이다. 그나마 어머니가 집에 있으면 조금 완화되는 기미가 있지만, 아버지와 형 그리고 주인공, 이렇게 남자 셋만 있을 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집 밖에서 놀다가 집 안으로 귀가하는 시간은 곧 절망의 시간에 가깝다. 그 시절 집안 사정이 어렵기는 다른 친구네도 마찬가지였던지 호기와 그 친구들은 한결같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터인 대평창고에 물건이 입출하되지 않고 공치는 날이면 노동의 기회를 잃은 아버지는 돈을 한 푼도 쥐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날이 며칠만 연속되어도 아버지는 영도 선창가로부터 남항동 전차 종점을 지나 우리 집까지 올라오는 동안 오만가지 분노에 얼굴이 노랗게 굳어 귀가하게 된다. 나는 그런 날이 가장 무서웠다. 우리는 좁은 부엌 마루에 도열해 있다가 아버지가 그 빡빡한 미닫이 현관문을 옆으로 열고 들어올 때의 숨소리, 안색, 우리에게 건네는 그 첫마디에 그날 밤 우리 가족의 안위가 달려 있음을 알고 있다. 그만큼 나는 시달렸고 그 상황이 끔찍했다.(164~165쪽)
영도 선창가 하역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정규 급여 소득자가 아닌 일용직이었기에 일이 없는 날이면 신체적 심리적 결핍이 가중된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의가 끓어오르고 그 분풀이가 종종 가정폭력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그런 사정으로 말미암아 주인공에게 집은 “질식할 정도로 엄폐된 지하”였고 그 지하의 어둠 속에서 “막막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끔찍하게 불안한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식구인가’라는 상실감이나 좌절감은 집 안에서만 발동되는 것이 아니다. 집 밖에서도 그렇다. 특히 학교에서도 주인공은 음지의 마음으로 덜덜 떨며 보내는 경우가 많다. 시험지 대금을 비롯해 학교에 내야 할 여러 잡부금을 제대로 내기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다. 담임교사가 때때로 모욕에 가까운 벌을 주기도 한다. 요즘 같은 학생 인권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교실에서 담임은 종종 폭군에 가까웠다. 어떤 면에서 집 안의 아버지와 교실의 교사는 폭력적이라는 면에서 정치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형성한다. 그런 음지의 마음을 지닌 아이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양지를 찾아 나서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교실 외부 벽에 붙어 서 햇빛 바라기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대한 기억이다. “모두 폭삭 늙었다. 더구나 입술 양 끝으로 주름이 시옷자 형태로 주름진 몇몇은 노인 그 자체였다. 하나같이 야위었고 핏기가 없었다.” 아이들이 성장하기도 전에 폭삭 늙은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이마에 굵은 주름들이 선명하다는 것…… 오래되어 빛바랜 흑백 사진첩 속에서 되살릴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물론 신체적으로 늙었다는 말이 아니다. 감정과 표정이 그랬다는 말이다. 삶이 질병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던 그 시절에는 그랬다. 어처구니없이 서둘러 늙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버텨야 했고 살아남아야 한다. 아니 더 간절하게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6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호기는 너무나 가고 싶지만 돈이 없어 가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가지 못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공장 견학을 실시한다. 이때 호기는 유리공장도 보고 도서관도 가게 되는데, 그 풍경의 대조가 호기의 간절함을 더욱 절실하게 하는 것으로 기능한다. 유리공장, 솥공장에서 호기는 공장 인부들이 제대로 된 얼굴을 지니고 살기 어려운 사정을 직감한다. 그 불편한 진실을 목도하고 자기 미래를 예감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영도도서관은 달랐다. 자기가 읽고 싶은 수많은 책 냄새와 함께 열람실이 행복한 장소로 다가왔던 것이다. 공장이 아니라 도서관 계열에서 자기 미래를 열겠다는 속다짐이 이루어진 순간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 섬의 별들에게』는 단순한 회고담이거나 자전적 기록이 아니다. 성장하기 어려운 시절의 역설적 성장의 풍경, 성장의 불가능성을 넘어 가까스로 성장의 경로를 발견하려는 안타까운 시도의 춤사위다. 깊은 어둠을 통해 영롱한 별빛을 견인하려는 작가의 상상력이 절실하고 애도를 위한 몰입이 웅숭깊다.
기억을 서사화하고 고통을 형상화하는 수사학 또한 인상적이다. 고통을 언어화하는 순간, 그 고통은 단순한 상처를 넘어 새로운 의미를 향해 떠오른다. 이 서사가 개인의 회고를 넘어 문학으로 도약하는 순간은 바로 거기에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밝히기 어려운 진실을 밝히며, 속죄의 서사를 열어, 존재와 이야기의 새로운 생명을 응시한다.
그 섬의 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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