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이하나의풍경화를완성하는직소퍼즐이라면,성민선의소설집에흩어진각각의퍼즐조각들은‘소진’과‘허기’의이미지를품고있다.그러나직소퍼즐의흥미로운점은조각들이전부맞춰졌을때각각의조각들이가지고있던이미지들과는전혀다른풍경이완성될수도있다는것이다.그렇기에소진되고허기진인물들이등장하는이소설들을모두읽은뒤,이소설집의끝에서독자들이마주하는풍경은각각의조각들이담지하던이미지의파편그너머에서비로소모습을드러내는새로운풍경이다.
성민선의글에등장하는인물들은모두‘소진’된이들이다.「약속장소」의화자는수없이면접을보았지만거절당했으며,「펄」의화자는혼자딸을돌보기위해여러일자리를거치다가매춘을하는삶을살아왔다.그리고이러한삶을뒤로한채,모종의이유로이들은거리를돌아다닌다.“무엇인가에매달려놓치지않으려고꽉붙잡고있”는것에서피로가온다면,“무엇인가에매달려놓치지않으려고꽉붙잡고있다가놓치고말았다는허망함”,그것은곧소진이다.이들은각각애인과딸을잃었고,또한일자리를잃었다.「약속장소」의화자가“어쩌면내가그를사랑했던것역시살아가기위해좀더삶을버티기위해필요해서였는지도모른다는것을깨달았다”고말하듯,삶을버티기위해꼭붙들고있던것들을놓쳐버린이들은모두소진상태에놓여있다.그리고소진된두화자는“존재하지않는존재”이자“그림자조차허락되지않는삭제된인간”이되어,그저걸어다닐뿐이다.그것은목적을향한이동이아닌더이상선택가능한경로가남아있지않은상태에서지속되는움직임이다.
「화과자」와「굴다리」,「마지막식사」에는모두허기진인물들이등장한다.허기는배고픔을넘어어떠한의미로도채워지지않은채남아있는자리이다.우리는이러한허기앞에서불안을느끼고,그것을서둘러메워버림으로써스스로안정되고자한다.「화과자」의지수에게‘허기’는곧‘공포’로귀결된다.지수는허기를느낄때마다자신의몸이줄어들어결국에는사라질지도모른다는공포에빠진다.이러한공포는지수로하여금지훈과결혼하도록만드는데,지수는키가큰지훈과함께라면자신또한더이상흔적도없이사라지지는않을거라고믿는다.그러나이러한믿음을비웃기라도하듯지수는아이를낳은뒤결핵에걸려세상을떠난다.그럼에도지수는‘흔적없이’사라지지는않는데,그는죽은이후에도재혼한남편과아들의곁에머물며그들의일상을지켜본다.이들을지켜보던지수는이내다시한세계를선택해야하는기로에놓인다.“빛의세계”로가면항상그에게공포를불러일으키던허기를더이상느끼지않아도된다.그러나지수는다시허기를느낄수밖에없는세계를선택한다.이내그는지훈과그의재혼한아내사이의딸로다시태어난다.지수의이러한선택은아들의허기에응답하기위해서이다.
「굴다리」에서임신을한화자가찾는것은사골국이다.그런데이때사골국은단순히화자의허기를‘채우는’음식이아니다.사골국을마시며화자는어린시절의기억을떠올린다.소를잡는날이면화자의아버지는의식을치르듯기도를하고,어머니는마치“상처”를보듬듯소뼈를하나하나씻어내리며사골국을끓인다.이처럼화자는사골국을먹는동시에,그안에응축되어있는“희생물”을향한기도와제의,어루만짐의시간을느낀다.그에게사골국은“뼛속깊이응축된한이비명처럼서려있는국물”로감각된다.화자의허기진몸안으로들어오는것은타인의죽음과고통,그리고애도의시간이다.이처럼허기는화자의몸을타인의흔적을받아들일수있는공간으로만든다.그리고타자가들어올수있는빈자리를품은몸,“굴다리처럼어두운”화자의“자궁속에서”또다른생명의“심장이뛰는소리”가들린다.
허기를품은우리는언제나누군가혹은그무엇―심지어는우리가상상할수조차없는시공간의개체―들과얽혀있다.「지반침하우려구역」에서광수와민석은서로의몸을로프로묶은채폐광안을수색한다.광수가로프를움켜쥐면민석의몸은당겨지고,민석에게떨어진돌은다시광수에게로가서부딪힌다.탄광촌지역의지반이끝없이침하되고있다는설정역시이러한얽힘의필연성을드러낸다.광수가민석을죽이고자하는이유역시,단순히민석이광수로하여금카지노의당첨금을받지못하게한것에서만비롯된것이아니다.이는과거그들의아버지들사이에서발생한사건과도얽혀있다.2대에걸친광수의원망은“석탄처럼까맣고단단한응어리”가되어“광수의가슴속에서버석거”린다.이내광수는당첨금을줄테니살려달라는민석의제안에도,자신과민석을연결하던로프를끊음으로써로프에매달려있던민석을죽인다.그가끊어내고자한것은단순한로프가아닌,로프가표상하는“운명”이다.
「알터에고」의배경은오월의봄이다.모든걸뒤덮은황사는무서운속도로내달리는경주마들의말발굽이일으킨것인지,혹은그저이계절에으레따라붙는풍경일뿐인지불분명하다.‘알터에고’는소설에등장하는경주마의이름으로,‘사내’는알터에고를소개하며‘그’에게다음과같이말한다.“알터에고는또다른나(alterego)라는뜻이오.그만큼절친한친구란뜻이지.당신과도좋은친구가될수있을거요.”그런데우리는정말모두를‘또다른나’로여기며절친한친구로받아들일수있을까?심지어나의가족과친구들을학살한자조차도?반대로,내가과거누군가의가족과친구들을학살했다면,나는과연그의친구가되겠다고나설수있을까?어쩌면서로가서로의알터에고가될수있는유일한방법은과거―내가너의가족을죽였고,너에의해나의친구들이죽었다는―에대한‘망각’뿐인건아닐까?
소진과허기는공통적으로‘비어있음’의상태를내포한다.이러한‘비어있음’은역설적으로새로운‘채움’을가능케하는데,이는새로운‘채움’을위해서는기존의것들을소진시킴으로써‘비어있음’의공간을발생시켜야함을의미한다.소진된주체는기존에그를이루던것들을소진함으로써텅비어버린주체가되고,이러한‘비어있음’은허기를발생시킨다.그렇기에성민선의소설속소진된인물들은필연적으로허기를느낄수밖에없다.이때허기진존재를새로이채우는것은기존에그를채우던―그리고소진된―것과는전혀다른무엇이다.그러나소진을곧새로운건설의시작이라고볼수는없다.그것은오히려공사가중단된상태에가까울것이다.미래를향해나아가던설계도는더이상작동하지않고,주체는미완의구조물처럼방치된다.그러나이상하게도이러한공간에는항상잡초나먼지,비둘기,노숙인,낙서등이모여들기시작한다.「집」에서사내가방치된공사현장에들어가살듯,공사가중단된“텅빈건물”에는원래대로라면예정되지않았을존재들―가령“하루종일바깥을떠돌던개들”과같은―이들어올수있게된다.소진은그렇게텅빔으로써기존의설계도가상상하지못했던존재들을위한공간을마련한다.
「블루마운틴」에서역시결국‘블루마운틴’에오르는것은화자가아닌,“이미너무많은에너지를소진한상태”인‘그녀’이다.그런데이러한‘블루마운틴’을향한산행은결코개인의의지만으로이루어지지않는다.‘그녀’를보며화자는바람없이는움직일수없는모래알갱이를떠올린다.그러나“바람이불지않으면결코자기의자리를떠날수없는모래알갱이”는“바람에실려멀리까지날아온모래알갱이”가될수있음을시사한다.모래알의이동이결코혼자이루어지지않듯,‘그녀’의등반또한타인과의얽힘속에서가능해진다.그렇기에‘바람’에실려블루마운틴에오르게된‘그녀’는“타인의허기를,고독을나누어짊어지겠다는만용을뿌리치”지않은허기지고소진된주체,“지친표정”의주체이다.
“지친표정”의‘그녀’가서있는곳은,푸른안개가밀려드는눈덮인블루마운틴이다.그곳은화자가말하는완전한고독의종착지가아니다.타인을받아들임으로써비로소열리게된블루마운틴.그곳은다름아닌‘소진과허기너머의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