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우편을 배달하던 시인 엄환섭이 여덟 번째로 내놓는 시집
30여 년간 산간벽지에 우편을 배달하면서 사람과 자연을 질박한 언어로 담아낸 50여 편의 시 모음
30여 년간 산간벽지에 우편을 배달하면서 사람과 자연을 질박한 언어로 담아낸 50여 편의 시 모음
여덟 번째 시집을 내면서
이 세대의 시는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쓸모가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도달하게 된다. 왜란 단서를 붙여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속에 내 마음이 있고 없고의 어리석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있는 한, 내가 있는 한 쓸모가 있다는 점이 시의
정체성이고 나의 정체성이다. 시는 내 마음속에 노래고 내
마음속에 들풀 같은 존재라고 조심스럽게 고백해본다.
여기 이 글들은 내 여덟 번째 시집이다.
시도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어 장문인데 제목조차 항상
긴 시 집을 냈다. 이번에는 제목만이라도 짧은 시집을 내고
싶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나는 혼자 수많은 숲길을 걸으면서 느낀 것을 시로 쓰고
싶었다. 내 속에 느낌만 가지고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을 야산의 희디흰 구절초꽃, 그리고 겨울 숲의 수많은
낙엽들. 온 천지에 하얗게 내리는 눈송이들 대자연 속에
나만 혼탁한 영혼으로 살고 있다는 마음의 위기의식에서
자연을 더 깊이 관찰하고 자연의 향기를 더 깊이 느끼기 위해
조용한 밤에도 낮에도 흙길을 맨발로 걸어보았다.
삶의 비린 냄새가 폴폴 풍기는 야생의 무한한 생명력과
땅에 떨어져 뒹구는 스산한 낙엽과 마른 풀잎들의 구수한
향기는 자연의 작고 하찮은 일부라 여길 수 있지만, 이
지구의 미래의 생명력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자연
사랑이 시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고백해본다.
시의 존재는 곧 자연 속에 나의 존재라는 것이리라.
나는 풀이고 바람. 내 눈도 코도 입도 혀도 마음도 흙냄새
나고 풀향기 나면 좋겠다. 땅에는 끝없이 풀이 자라나고 내
마음에는 끝없이 시가 자라난다. 풀이 소생하거나 죽거나
시가 소생하거나 죽거나 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흰 구름 붉은 햇빛 속의 날이나 검은 구름 비 오는 날이나
하늘 밑에 땅 위의 날이기는 똑같다.
인간은 자연의 무한한 힘 속의 나약한 존재.
나는 나를 버릴 때 자연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버리지 못해 시를 또 쓰고 있지나 않은지.
이 세대의 시는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쓸모가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도달하게 된다. 왜란 단서를 붙여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속에 내 마음이 있고 없고의 어리석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있는 한, 내가 있는 한 쓸모가 있다는 점이 시의
정체성이고 나의 정체성이다. 시는 내 마음속에 노래고 내
마음속에 들풀 같은 존재라고 조심스럽게 고백해본다.
여기 이 글들은 내 여덟 번째 시집이다.
시도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어 장문인데 제목조차 항상
긴 시 집을 냈다. 이번에는 제목만이라도 짧은 시집을 내고
싶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나는 혼자 수많은 숲길을 걸으면서 느낀 것을 시로 쓰고
싶었다. 내 속에 느낌만 가지고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을 야산의 희디흰 구절초꽃, 그리고 겨울 숲의 수많은
낙엽들. 온 천지에 하얗게 내리는 눈송이들 대자연 속에
나만 혼탁한 영혼으로 살고 있다는 마음의 위기의식에서
자연을 더 깊이 관찰하고 자연의 향기를 더 깊이 느끼기 위해
조용한 밤에도 낮에도 흙길을 맨발로 걸어보았다.
삶의 비린 냄새가 폴폴 풍기는 야생의 무한한 생명력과
땅에 떨어져 뒹구는 스산한 낙엽과 마른 풀잎들의 구수한
향기는 자연의 작고 하찮은 일부라 여길 수 있지만, 이
지구의 미래의 생명력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자연
사랑이 시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고백해본다.
시의 존재는 곧 자연 속에 나의 존재라는 것이리라.
나는 풀이고 바람. 내 눈도 코도 입도 혀도 마음도 흙냄새
나고 풀향기 나면 좋겠다. 땅에는 끝없이 풀이 자라나고 내
마음에는 끝없이 시가 자라난다. 풀이 소생하거나 죽거나
시가 소생하거나 죽거나 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흰 구름 붉은 햇빛 속의 날이나 검은 구름 비 오는 날이나
하늘 밑에 땅 위의 날이기는 똑같다.
인간은 자연의 무한한 힘 속의 나약한 존재.
나는 나를 버릴 때 자연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버리지 못해 시를 또 쓰고 있지나 않은지.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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