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기

그만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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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최준렬의 이번 시집 『그만두기』는 생(生)의 이치를 찾아 관찰하는 항심(恒心)의 시편들이 눈길을 끈다. ‘항심’이라 하면 맹자의 항산항심(恒山恒心)에서 유래한 것인데, 항산이 항심을 지킨다는 의미로 처음 사용되었다. 물론 이 말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생업이 있을 때 도덕적 안정과 올바른 마음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항심을 달리 보면, 탈선이 없이 안정된 마음가짐으로 지속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준렬 시인은 평생을 의사로 살면서도 마음의 자리에서 변함이 없는 시심(詩心)을 중요히 여기고 있기에, 그의 시편들을 항산항심(恒山恒心)의 시학으로 읽어도 그릇되지 않다.
-전해수(문학평론가)
저자

최준렬

저자:최준렬
전북부안출생.전주고,전북의대,가천의대대학원졸업.산부인과전문의,의학박사.
1999년『순수문학』수필등단.
2009년『문학세계』시등단.
시흥YMCA초대이사장,시흥시민뉴스초대발행인,시흥시중앙산부인과원장.
산문집『세상을임신한남자』,시집『너의우주를받아든손』『당신이자꾸뒤돌아보네』『기척없는것들』『손끝』『영혼의카렌시아』『마음두기』가있음.

목차


제1부
10가시박
12밤의귀
14선자령
16겨울산
19비오는집
22마음들여다보기
24면도
26동지의아침
28민달팽이
30Falliscoming
33노인의집
36눈물점
38깨어있는강
40성애性愛

제2부
42그만두기1
44그만두기2
46그만두기3
48그만두기4
50그만두기5
52그만두기6
54그만두기7
57그만두기8
60아버지
62지구촌학교
64그리고아무말도하지않았다
66소리저장
69나루터
70초등의대반
72웨이브파크

제3부
76노숙자
78자전거
82가을기도
84안양천
86우동집
88소금방
90비원秘苑의아침
92잔광殘光
95역逆방향
98남한강의봄
100봄의나무
102봄비
104딸기
106악惡의손

제4부
110봄소풍
112애완식물
114세반고리관
116독거노인1
118독거노인2
119귀향장歸鄕葬
122눈꽃먹기
125눈오는날
126출렁
128비밀
132MZ직원
134맛집
136비오는밤
138이별

해설
142항산항심恒山恒心의시학│전해수

출판사 서평

저자의말

산부인과의사로
36년간분만실을지키며
새생명을받아내던일을그만두었다
응축의시간을보내다
그마저그만두면
소멸의길에들어설것이다
그만두기가서툴러
어정쩡했던때가많았다
다음은무엇을그만둘까

2025년가을

책속에서

목을감아숨통을끊으려
먹잇감올라타는뱀의비늘처럼

까끌한덩굴손뻗어
나무친친감아오르는가시박넝쿨을
잡아당긴다

잡힌먹이를놓치지않으려는
완강한저항과
떼어내려는힘이부딪혀생긴
손바닥상처에피가맺힌다

잠시무시했다가갑자기세를키워버린
별빛꽃왕관을쓴귀화식물의영토
나를조여온다

긴줄기의급소를찾는다

뿌리더듬어푸르게날선가위로
싹둑몸통을자른다
목졸린짐승서서히숨
이멎어가듯
가시박시나브로고사(枯死)된다
---「가시박」중에서

낮은자세로풀을뽑는다

몸을낮춰야보이는것들은
마음안에도있다

잔디밭에풀썩주저앉아
잡초찾기에열중하면
마음의밭도훤히보이고

잠시들여다보지않으면
칠월의풀처럼무성해지는
마음속잡념

실은작은화하나발아되어
분노로자라고
마침내으르릉거리는괴물이된다

모든게무상(無常)하다무상하다
염불외우며
퇴마사처럼주술을걸어도
좀처럼물러서지않는울화

사제서품식에서새신부(神父)는몸을낮춘다
엎드려순명을서약하는신품성사
낮은자세에서만선명하게걸어오는
그이를만날수있다

뜨거운한낮의풀뽑기
성찰과보속의오체투지다
---「마음들여다보기」중에서

그만해야할때그만하고
그만두어야할때그만두어야했다

그만해야할때그만하지않고
그만두어야할때그만두지않아서
생기는일이라는게
얼마나큰낭패인지

그러나
그만해야할때가그만두어야할때가
언제인지안다는것은
또얼마나어려운가

내가누군가를사랑한적이있고
누군가는나를멀리하고싶어할때
그때내사랑을그만두어야했다

사랑이라는이유로
종일생각하고집착하고다가가는
허업(虛業)이란

그만해야그만두어야
그게사랑이라는것을
늦가을이되어서야알았다
---「그만두기1」중에서

애기단풍하나
스산한바람건듯지나가면
꼭쥐었던손놓아버리고
느리게하강한다

달려가두손으로받아보지만
이미추락한잎새

나를잊지못해
병상에서끝내놓지못하시던
어머니의마른손

슬그머니손을빼
집에돌아온나는

그날밤
다급하게걸려온전화에
서둘러달려갔지만
힘없이떨어뜨렸을어머니손
잡아주지못했다
---「그만두기2」중에서

분만실을닫고
수술실을닫고
야간당직을그만두고
주말당직을그만둘때마다
비어가는공간과시간앞에서
작고부분적인은퇴식을홀로했다

속울음으로고별하고돌아서는문앞에
전역식의홀가분함이놓여있었다

자발적은퇴
그때를알고그만둔다는것은
큰떨림이자슬픔이기도했다

그건실로30년넘는습관을일시에단절하는
금연같은매정이기도했다

개업식의화려한화환은
은퇴식어디에도없다

언젠가는그만두어야할일
그만두지못하고추레해지는
하루하루의남루란

그만둔다(Quitting)는것은
그만두는게아니라새로운시작이라고
그만두어야보이는것들많다고

오늘은
또무엇을그만둘까찾아야하는
숙제가득한하루
---「그만두기4」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