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답변 (정이향 시집)

성실한 답변 (정이향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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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정이향의 시는 일상성에 발을 깊이 담그고 있다. 시인은 현실 경험을 벗어나지 않는 시에 가치를 둠으로써 삶과 다르지 않은 시, 세계 내의 삶인 시를 추구한다. 일상적 삶의 애환을 진솔하게 노래하려는 작가 의식은 구체적 시공간과 인명, 주름을 가진 풍부한 서사를 통해 이뤄진다. 현재ㆍ현실ㆍ인식에 충실한 문학은 과거ㆍ꿈ㆍ무의식과 거리를 둠으로써 전체적으로 순화되고 편안한 느낌의 서정으로 스며든다. 무엇보다 정이향의 시는 우리의 “심장 끝에 닿”는 “웃음”이거나 마주 비추는 “거울처럼 서 있”으면서 ‘너’의 “고운 이야기”(「딸아」)에 민감한 귀를 가졌다. 브레이크도 없이 과속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허기를 위해, 위로의 밥을 짓는 그의 안부는 오늘도 계속되는 것이다.
저자

정이향

저자:정이향
마산출생.2009년『시에』등단.
시집『좌회전화살표』『수직의힘』등.
경남문인협회회원,고성문인협회회원,한국디카시연구소사무국장,고성디카시인협회회장,문덕수문학관총괄간사.

목차

제1부복숭아네개,수박하나
편지
서머러브
플라스틱플라워
여름장마
진달래
산수유
4월은유예중
8월5일
이사하는날
매미
복숭아네개,수박하나
기일
가을약속
보드
보드콜리
연애다리문화동
감자
오후10시
사춘기
사과나무
설악초
에스키스


제2부할인마트
성실한답변
선물
춘복이
덜커덕
딸아
한아름아파트사람들
물고기반지
통영정량리275번지
하르키우정류장
법원장터
은행나무가보이는교실에서
삼산면병산리003번지
무척산모은암
고성터널1
지하철3호선
함안동신아파트402호
시민극장
흥국사
리더스원룸
한백마리나아파트202
할인마트
번개시장

제3부등이굽은여자
대평1길10제일건재공구상사
창원임진각
송학리고분군
신안동현대아파트
상복공원에서
마산공원묘지
새벽시장에서
석장동에서
거룩한무덤
양덕동에서
발톱
서울달팽이
호미의등
큰오빠
세번째고민
12번버스
아버지의부재
바운스바운스
등이굽은여자
도계동할머니

제4부동박새
키다리아저씨
요시코
열쇠

줄서기

정숙이
훈방조치
기월리할아버지
망하는일
타투
함안기동댁
아버지제사2
손톱
동박새
로드킬
수선집
보이스피싱2

해설
일상의날들,시로쓰는편지│신상조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시,시는나에게,나는시에게서로를묶어놓고바라본다.나는올라갈수록높은산을만나첩첩나를에워싸고내려갈수도없는길에서갈증도느끼고,코끝으로바람을넣기도하고긴숨으로속을데우기도한다.터널에갇혀버릴때가종종있다.그래서답답하고,화가나기도한다.그화가나를키우는방이다.그방을사랑한다.빠져나올수없는방안에서허우적대는나의모습이상처가되기도하고부딪히기도하는그모든것들이시로다시태어날수만있다면그방에갇혀있기를소망한다.시와나는서로를갈망한다.끝없는길에서끝을바라보고있는시와시인.
2025년가을

책속에서

<은행나무가보이는교실에서>

시를놓고밥먹었다
시는밥짓는일
폼나게쓰는시는죽은시
시를놓고돈가스를먹었다
경험시를죽을각오로쓰라고
사물에눈을달라고
내이름에도눈을달지못하는
언어를붙잡고
눈을주고코를주고귀를달아주는시간
은행나무는제자리에서단풍을입혔다
마라톤만큼오래달려야하는길에시가달렸다
온생,향기로몰아간다

<천국의계단>

통유리바깥에서나는그녀를본다

반쯤눈을감고반쯤고개숙인
가만히오른쪽뺨에갖다대는엄지와검지는
업의무게를모두덜어낸듯날렵하다
몇세기동안그렇게
오른쪽다리를왼쪽다리위에걸치고앉아있어도
척추는유연하고사유思惟는자유롭다,아니
그녀의혼은자유롭다

출구가없는통유리안에서
시간에갇힌나를그녀가본다

<할인마트>

아뿔싸
한숨풀고보니
할인마트에서싸게산유통기간짧은물건들
간장,김,마요네즈그리고덤으로딸려온그릇들이보인다
헐레벌떡
할인된사람들속나도세로줄로서고
가벼운바코드옷으로
어느누군가에게는
유통기간이지난사람으로
하수구에쏟아진간장처럼버려진다
버려진자리에검게앉은기억들
수돗물을틀자금방따라쓸려나가는
참가벼운사람들틈사이
나도웅크리고앉았다

<에스키스>

누군가의뒤에서밑그림으로산다
무대밑에서움직인다
화려한커튼을여는사람
커튼을닫는사람그림자놀이다
웅크리고앉아서세상을비추는그림
모두를무대위로끌어올린다
책장너머대본을읽고있는나를
나를닮은그림자가끌고간다

<기도>

고마콱죽어뿌라

시월칡덩쿨같이거친말이도로
남편에게감긴다

정신줄놓치고
잔걸음으로걷는
머리하얗게센아내뒤를따라가며
넘어질까봐그걸음살피며
내뱉듯하는,
억장무너지는말

제발내먼저죽어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