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기억, 은혜 (어거스틴, 인간을 해부하다)

시간, 기억, 은혜 (어거스틴, 인간을 해부하다)

$26.75
Description
수많은 철학서와 인문서를 읽고도, 우리는 왜 다시 길을 잃는가?
생각의 끝에서 길을 잃었다면, 이제 방향을 바꿔볼 차례다.
“어거스틴을 읽는 순간, 우리는 인간을 이해하고 결국 자기 자신을 읽게 된다.”

왜 우리는 더 많이 알고, 더 빠르게 살아가는데도 여전히 불안한가?
왜 지나간 기억에 붙잡히고, 옳음을 알면서도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 못하는가?
1,600년 전 어거스틴이 『고백록』에서 씨름했던 질문은 놀랍도록 오늘 우리의 질문과 닮아 있다. 그는 자신의 욕망과 실패, 상처와 방황을 숨기지 않고 들여다보며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묻는다. 인간은 왜 흔들리는가? 무엇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이 실제로 인간을 변화시키는가?

『시간·기억·은혜』는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시간(Tempus), 기억(Memoria), 은혜(Gratia)라는 세 개의 렌즈로 다시 읽는다. 시간은 흩어진 인간을 진단하고, 기억은 그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며, 은혜는 뒤틀린 의지와 욕망이 어떻게 새롭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히 어거스틴의 사상을 설명하는 해설서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현재를 잃어버리는 인간, 상처 입은 기억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인간, 옳음을 알면서도 반복되는 습관과 욕망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을 『고백록』을 통해 정밀하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모든 질문의 끝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자리와, 그곳에서 인간을 다시 일으키는 은혜의 의미를 발견한다.

각 장에는 신학사적 의의와 토론 질문, 목회 적용 질문을 수록해 어거스틴의 통찰이 과거의 사상으로 머물지 않고 오늘의 삶과 신앙, 목회 현장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신학생과 목회자에게는 어거스틴 신학을 입체적으로 읽는 길잡이가 되고, 일반 독자에게는 자신의 시간과 기억, 욕망과 상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깊이 있는 기독교 인문·신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철학과 인문학, 심리학의 설명만으로는 다 담기 어려운 인간 존재의 깊은 질문 앞에서, 어거스틴은 우리에게 시선을 바꾸라고 말한다.

시간 속에서 흩어진 나,
기억 속에서 길을 잃은 나,
그리고 은혜 안에서 다시 빚어지는 나.

『시간·기억·은혜』는 어거스틴을 읽는 책이면서 동시에, 어거스틴을 통해 오늘의 나를 읽는 책이다.
저자

이상욱

이상욱 목사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목민교회 25년 목회와 20여 년간의 신학 강단 사역을 통해 치열하게 진리를 선포해 왔다. 성서신학(Ph.D)으로 말씀의 뼈대를 세우고 상담심리학으로 인간 영혼의 내면을 만져 온 그는, 현재 ‘신앙유산 운동’과 ‘성품회복 운동’,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인문학 읽기 운동’을 활발히 펼치며 삶과 신앙을 잇는 사역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학문적·실천적 여정은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깊이 있게 해석하는 단단한 거름이 되었다. 그가 말하는 ‘미메시스(Mimesis)’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과거의 상처와 방황을 말씀과 심리학의 렌즈로 재해석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재창조하는 거룩한 작업이다.

기억은 바래고 세대는 흔들린다. 포스트모던의 거센 파도 속에서 자녀에게 물려줄 유일한 유산은 삶에 새겨진 하나님의 흔적이다. 부모가 먼저 은혜의 펜을 쥘 때, 자녀들은 무너지지 않는 신앙의 이정표를 발견한다.

목차

추천사
서문

1부 하나님 중심 존재론

1장. 하나님을 향해 창조된 존재
1. 존재의 기원: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인간
2. 불안의 원인: 유한함과 무한함 사이의 괴리
3. 안식의 종착지: 하나님 품 안에서의 평화

2장.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구조
1. 사랑의 질서(Ordo Amoris): 올바른 사랑의 우선순위
2. 톨레 레게: 사랑이 실제로 방향을 바꾸는 자리
3. 존재의 사슬: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존재론적 위계

3장. 창조와 선함
1. 선한 창조: 모든 존재의 근원적 선함
2. 악의 본질: 실체가 아닌 선의 결핍(Privatio Boni)
3. 존재의 풍성함: 만물 속에 깃든 하나님의 흔적

2부 인간과 죄의 신학

4장. 내면성의 발견
1. 외부 세계의 허망함: 밖에서 길을 잃은 영혼
2. 내면으로의 회귀: 영혼의 안뜰에서 만나는 진리
3. 내재하시는 하나님: 나보다 더 내 안에 계신 분

5장. 욕망의 신학
1. 배나무 서리 사건: 이유 없는 악의 수수께끼
2. 전도된 사랑: 수단이 목적이 된 비극
3. 죄의 본질: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흉내 내는 교만

6장. 죄의 구조
1. 지성과 의지의 괴리: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비참
2. 자아의 감옥: 자신에게로 굽어버린 의지(Incurvatus in Se)
3. 원죄의 그림자: 자유를 상실한 자유 의지

3부 하나님을 향한 존재 : 시간 속 인간

7장. 안식을 찾는 마음
1. 순례자로서의 인간: 이 땅에 고향이 없는 존재(Homo Viator)
2. 갈망의 역동성: 하나님을 향한 존재론적 엔진
3. 종말론적 소망: 시간 속에서 영원을 꿈꾸다

8장. 시간 속에 던져진 인간
1. 영원과 시간: 변치 않는 이와 변하는 이의 대조
2. 창조와 시간의 동시성: 시간과 함께 시작된 세계
3. 가변성의 고통: 낡아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슬픔

9장. 시간의 신학
1. 삼중적 현재라는 이미 놓인 토대
2. 심적 확장(Distentio Animi): 시편 낭송의 비유
3. 다시 모이는 자아: 하나님의 기억과 고백의 서사

10장. 욕망과 시간
1. 기다림과 지연: 갈망을 키우시는 하나님의 교육학
2. 왜곡된 시간 경험: 죄로 인해 파편화된 순간들
3. 영원으로의 수렴: 흩어짐에서 모임으로

4부 기억 : 영혼의 공간

11장. 기억의 신비
1. 기억의 드넓은 궁전: 인간 내면의 무한한 광활함
2. 망각의 역설: 잃어버린 것을 기억해내는 신비
3. 정체성의 보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지키는 힘

12장. 기억 속의 하나님
1. 기억이라는 이미 놓인 토대
2. 불변하는 진리 안에 계신 하나님
3. 고백을 통해 재구성되는 구원의 역사

13장. 내면의 지성소
1. 형식적 경건의 한계: 기억의 궁전 밖에서 드리는 예배
2. 자아 인식과 하나님 인식의 일치: 기억이 기록되기 전부터 아셨던 분
3. 언어를 초월한 신비: 기억의 궁전 그 너머

14장. 기억과 사랑의 질서
1. 기억의 정화: 상처 입은 과거를 사랑으로 치유하기
2. 욕망의 재정의: 기억 속에 각인된 참된 행복
3. 사랑의 질서와 정체성

5부 은혜 : 회심과 변형

15장. 의지의 분열
1. 두 의지의 싸움: 나를 끌어당기는 두 개의 사랑
2. 습관의 사슬: “조금만 더”의 비극
3. 영적 마비: 원함은 있으나 행함이 없는 상태

16장. 은혜 없는 인간의 한계
1. 자력 구원의 불가능성: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한 응답
2. 신인협력설을 넘어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은총
3. 단독사역(Monergism): 굳은 마음을 녹이는 승리하는 기쁨

17장. 전환의 순간
1. 정원의 통곡: 지성적 동의를 넘어선 의지의 굴복
2. “집어서 읽으라(Tolle Lege)”: 말씀의 사건이 된 외침
3. 회심의 신학: 옛 자아의 죽음과 새로운 피조물의 탄생

18장. 말씀과 존재 변화
1. 성경의 성육신적 성격: 인간의 언어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
2. 수행적 언어: 읽는 자를 변화시키는 성령의 검
3. 말씀과 연합: 로고스 안에서 재창조되는 인간 존재
6부 영혼의 드라마 : 『고백록』의 구조

19장. 『고백록』의 플롯 (Mythos)
1. 미토스: 유기적 통일성을 지닌 하나의 행위
2. 시초에서 중간으로: 탕자의 이탈
3. 중간의 절정: 반전과 인식이 함께 오는 자리
4. 종말: 하강을 통한 상승

20장. 성품의 변화 (Ethos)
1. 두 성품 이론의 만남과 갈라짐: 헥시스와 은총
2. 두 인물의 초상: 무엇이 그 인물을 그 인물이게 하는가
3. 모범적 인물(Exemplum)로서의 어거스틴: 독자를 향해 열린 성품

21장. 사유의 신학 (Dianoia)
1. 통합적 사유: 지성과 감성, 신학의 결합
2. 변증법적 구조: 하나님께 묻고 답을 듣는 지적 여정
3. 계시와 이성: 믿음으로 이해를 추구하는 신학

22장. 기도의 언어 (Lexis)
1. 대화로서의 신학: 삼인칭의 하나님에서 이인칭의 하나님으로
2. 찬양의 수사학: 『고백록』 전체를 관통하는 송축의 언어
3. 탄원과 감사: 인간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언어
4. 네 범주의 만남: 미토스에서 렉시스까지

7부 영성과 신학의 만남

23장. 기도로서의 신학 (Theologia Orans)
1. 무릎으로 하는 사유: 신학과 영성의 필연적 일치
2. 하나님 앞에서의 실존(Coram Deo)
3. 관상과 실천: 하나님을 바라봄이 가져오는 삶의 변화

24장. 영적 정화 (Catharsis)
1. 정직한 고백: 숨김없는 폭로를 통한 영혼의 해방
2. 눈물의 신학: 회개의 눈물로 씻겨진 영적 시력
3. 거룩한 비움: 하나님의 은혜를 담기 위한 자기 비움

25장. 『고백록』 이후의 신학: 은총의 발견과 자아의 탄생
1. 은총론의 초석: 종교개혁자들에게 미친 결정적 영향
2. 서구 자아관의 형성: 내면성이라는 신대륙
3. 현대 영성을 향한 제언: 파편화된 시대의 안식

에필로그
시간 속 인간, 기억 속 하나님, 은혜 속 변화
김영한 박사의 서평
참고문헌
부록: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출판사 서평

회심록을 넘어, 『고백록』에서 한 인간의 전체를 읽다.

『고백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방황하던 젊은 어거스틴, 밀라노의 정원, “집어서 읽으라(Tolle Lege)”는 음성, 그리고 극적인 회심이다. 그래서 『고백록』은 오랫동안 한 위대한 신학자가 방탕한 젊은 시절을 지나 하나님께 돌아온 이야기로 읽혀 왔다.

그러나 『시간·기억·은혜』는 바로 그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어거스틴은 왜 회심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책을 계속 썼을까? 왜 자신의 기억을 그토록 집요하게 탐색하고, 갑자기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마지막에는 창조의 신비까지 나아갔을까?

저자는 『고백록』의 앞부분을 ‘회심 이야기’, 뒷부분을 ‘철학적 부록’으로 나누어 읽는 익숙한 독법을 거부한다. 죄를 고백하는 언어와 믿음을 고백하는 언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언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으며, 1-9권의 생애 서사와 10-13권의 기억·시간·창조에 대한 성찰 역시 서로 떨어진 두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 전체를 다시 읽어 가는 하나의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이 책은 어거스틴의 사상을 항목별로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출발해 죄와 욕망, 시간과 기억, 의지와 은혜를 지나 『고백록』 자체의 플롯과 언어, 기도와 영성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존재가 어떻게 흩어지고, 어떻게 자신을 발견하며, 어떻게 다시 하나님을 향해 재정렬되는지를 추적한다.

특히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어거스틴을 단순히 ‘현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개신교, 특히 종교개혁적 은총론의 관점에서 『고백록』을 읽고 있음을 명시하는 동시에, ‘단독사역(Monergism)’과 ‘신인협력설(Synergism)’처럼 후대에 형성된 신학 용어와 어거스틴 자신의 언어를 구별하려 한다. 고전을 오늘의 언어로 읽되, 오늘의 개념을 과거의 저자에게 무심코 덧씌우지 않으려는 태도다.

독서가 지식 습득에서 끝나지 않도록 한 구성도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해당 주제가 신학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는 ‘신학사적 의의’, 독자가 스스로 씨름하게 하는 ‘토론 질문’, 그리고 설교·상담·심방과 실제 목회 현장으로 연결하는 ‘목회 적용 질문’이 이어진다. 어거스틴을 과거의 사상가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신앙과 삶 속으로 데려오기 위한 구성이다.

그렇기에 『시간·기억·은혜』는 『고백록』을 대신 읽어 주는 책이라기보다 다시 읽게 만드는 책에 가깝다. 어거스틴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배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의 질문을 따라가다 결국 독자 자신에게 묻게 한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기억으로 나를 설명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시간 속에서 흩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정말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1,600년 전 한 사람의 고백이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는, 그의 삶이 특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던졌던 질문이 여전히 우리의 질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