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길과인간의길,
종교의길과과학의길은만날수있는가?
신은존재할까?가장오래된이질문에대답한사상가는아직없다.하지만인류는수만년동안그존재를믿어왔으며,지금도수억명의사람이공개적으로신앙고백을하고있다.그렇다면우주와생명의기원과진화를밝히고차원의신비를파헤치는현대과학은이문제를어떻게보는가?현대과학자들에게신이라는가설은과연어떤의미를가지는가?
가장오래된질문중하나이지만,아직도신선함을잃지않고있는이근본적인질문에현대과학자들은나름의대답을해왔고,그중한사람이바로20세기를대표하는천문학자중한사람인칼세이건(CarlSagan)이다.
이번에(주)사이언스북스에서출간된『과학적경험의다양성(TheVarietiesofScientificExperience)』이바로칼세이건이가지고있었던,종교와신에대한견해를종합적으로보여주는책이다.
이책은칼세이건이1985년에글래스고대학교에서행한‘자연신학에관한기퍼드강연(GiffordLecturesonNaturalTheology)’을정리한것이다.종교,과학,철학분야의강연들중에서가장유서깊고,가장높은평가를받고있는자연신학에관한기퍼드강연은스코틀랜드출신법률가애덤기퍼드(AdamGifford)경의유언과기부금으로시작되었다.
이강연은1885년처음펀드가조성되고1888년에첫강연이시작된이래,120년가까이지난지금까지도스코틀랜드에위치한4개대학교(애버딘,글래스고,에든버러,세인트앤드루스)에서번갈아가며개최되고있다.신학자칼바르트,알베르트슈바이처,라인홀트니버,루돌프불트만,위르겐몰트만,역사학자아널드토인비,정치학자한나아렌트,과학자J.B.S.홀데인,닐스보어,베르너하이젠베르크,프리먼다이슨,리처드도킨스,철학자앙리베르그송,존듀이,앨프리드노스화이트헤드,인류학자제임스프레이저,소설가아이리스머독,문학평론가테리이글턴,종교학자막스뮐러등한시대를풍미한지식인들이연사로참여했다.
그리고이강연을토대로윌리엄제임스의『종교적경험의다양성』,화이트헤드의『과정과실재』,하이젠베르크의『물리학과철학』,한나아렌트의『정신의삶』,프리먼다이슨의『무한한다양성을위하여』같은걸출한저술들이쏟아져나와세계지식사회를풍요롭게만들었다.
과학의뒷받침을받을수있는신학을모색하는자연신학을주제로한강연이지만,한쪽입장만을편드는편협한강연이아니라다양한가능성에눈을돌리기를원했던기퍼드경의유지에따라,유신론자에서무신론자까지,종교인에서과학자까지,노학자에서소장학자까지당대의최고지식인들로이루어진기퍼드강연의화려한연사목록은현대지성의만신전이라고까지할수있을정도이다.
칼세이건은1985년10월14일‘자연과경이’라는제목을첫강연을시작으로10월30일‘우리가누구인지에대한탐색’이라는제목의마지막강연까지글래스고대학교의강연장에섰고,강연장에모인왕립학회소속의엘리트학자들과영국국교회의고위사제들에서대학생과일반시민까지과학과종교의관계,아니우주의비밀과신의존재를탐색하고자하는모든사람들앞에서뜨거운강연을펼쳤다.
칼세이건의이강연은곧바로책으로출간되지못했다.이강연원고는완벽주의자칼세이건의다른미완성메모들과함께파일속에묻혔고,강연후10년정도뒤칼세이건이골수성백혈병으로세상을떠나자빛을보지못하고잊혀졌다.그러나칼세이건은신이나종교가아니라“과학의계시로부터도출한영적통찰을종합”하려는저술기획을가지고있었고,이강연원고를그기획속에통합하려는계획을가지고있었다.세이건은이기획에'에토스(Ethos)'라는타이틀을붙여두었다.
과학을건조한정보와지식의집합체에서영감과성찰,그리고경이와낭만이가득한지적깨달음의영역을승화시킨것으로평가되는위대한과학저술가였던칼세이건의미완성저술기획이실제로어떤결과물로나왔을지세이건이세상을떠난지금알수는없다.그러나우리는칼세이건의미망인인앤드루얀이세이건의수많은원고와메모파일속에서그의사후10년만에발견해낸강연원고를엮어펴낸이과학적경험의다양성?에서그기획이어떤모습이되었을지를짐작할수있을것이다.
두길사이에서비틀거리는모든사람들을위한웅혼한메시지
진정으로경건한사람이라면무신론의낭떠러지와
미신의늪사이에서아주힘든길을나아가게마련이다.-플루타르코스
생물학자이자종교비판자로이름을날리고있는리처드도킨스는“세이건의책들은모두지난세월종교?독점했던초월적인경이라는신경말단을건드린다.내저서들도같은열망을담고있다.”라고이야기한적이있다.세이건은이다른모든책에서과학을차가운숫자놀음에서자연과우주가감추고있는경이와경외에이르는길로격상시킨다.그렇다고해서우주밖의초월자나신비주의에기대지도않는다.온전히과학적인방법과언어만으로도,우리가모르는것과어찌할수없는것들에대해두려워하거나무시하지않고,숭배하고존중하고이해할수있음을보여준다.그렇다고해서신의존재나종교의사회적역할을경박하게내치지않는다.인간삶의일부로서,세계와우주의본질을이해하기위한인류의유산으로서존중하고품어안는다.
칼세이건은과학과종교가화해하기위해서는,우리가누구인지,우리가어디에있는지부터확인하는데에서출발해야한다고주장한다.현대천문학이이해하게된우리인류의우주속위치에서부터시작된칼세이건의강연은지구가우주의중심이아니며,우리의태양도,우리의태양계도,우리의은하수은하도우주의중심이지않으며,이우주에는지구같은암석형행성이,태양같은항성이,은하수은하같은은하가수없이존재함을보여주고,이방대한세계속어딘가에있을지적생명체를탐색하는현대과학자들의노력을소개하는것으로이어진다.
이과정에서칼세이건의기존의종교가,특히서구사회를지배해온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인격신적일신교의신학담론이지구라고하는극도로좁은공간과시간에묶여있는신을중심으로이루어지고있음을설득력있게보여준다.인간의앎의영역이하나하나넓혀질때마다인간사에세심하게개입하는신의영역이하나하나좁혀지고과학적경험과종교적경험이서로일치해감을과학의역사와종교의역사같은거대지성사의흐름을가로지르며보여줄뿐만아니라,UFO목격담이나외계인소동,현대의신흥종교가얽힌온갖사건들의핵심을짚으며종교적경험,종교적담론,신의존재에대한탐색의이면을다시한번검토해보도록강연의청중들과이책의독자들을이끌어간다.
세이건강연의백미는힌두교에서기독교까지수많은신학자들이제출해온신에대한가설들과논증들을검토하고논박하는6강하느님에대한가설들이다.고대힌두교철학자들과서구중세철학자들의우주론적논증에서근대철학의정초자인칸트의도덕적논증은물론이고현대물리학자들이내놓고는하는인간원리에근거한기묘한물리학적논증까지온갖가설들을논파하며신의존재증거는‘아직까지’자연과우주속에서발견되지않았다고단언한다.“왜하느님은성서에서는그렇게뚜렷하면서도,이세계에서는그처럼모호한것일까요?”그렇다고해서과학이신의존재를부정했다고단언하지도않는다.“증거의부재가곧부재의증거는”아니고,아직결론은열려있다며,그리고그신또는하느님의정의역시기존의종교와과학에의해서닫혀있지도않다고하면서중요한것은과학과종교의공감,이공감을나누어지적수렴점에도달하려고노력하는태도가필요하다고주장한다.“닫힌마음”이야말로“대량살상무기”라고지적하면서,세이건은이렇게말한다.
복잡한우주속에서,전례가없었던변화를겪고있는사회에서,만약우리가모든것에대해의문을제기하고자하는의향이없으며,모든것에대해공평하게귀를기울이려는의향이없다면,우리는과연어떻게해야만진실을찾을수있을까요?오늘날수많은생물종들을위협하고있는것은다름아닌전세계에퍼져있는닫힌마음입니다.
그리고이공감의기술을익히는데필수적인것은“우주를있는그대로맞이하려는용기”라고말한다.
즉우주에다가우리의감정적경향을억지로집어넣으려는것이아니라,우리의탐험이우리에게말해주는바를용감하게받아들이는것으로서말입니다.
우주를닮은과학자가파헤친신과종교의본질
공감의기술과우주를있는그대로맞이하려는용기의결합을통한과학과종교의화해와협력을칼세이건이역설한1985년이래사반세기가흘렀다.그사이에종교근본주의자들이야기한전쟁과테러는아직그치지않고있고,과학계와종교계는여전히다른길을가고있다.그러나그러한상황속에서도과학자들은우주에쏘아올린망원경들과지상에건설한거대한입자가속기를통해우주창조의순간에1초씩,1마이크로초씩다가가고있으며,갈릴레오를사면한교황청을비롯해종교지도자들은과학계에화해의제스처를보내고있고,세계각지의환경파괴현장에서과학지식으로무장한생물학자들과생태학자들은그지역의종교인들과함께활동하고있다.아직까지는과학과종교가앞으로어떤수렴점에도달할수있을지짐작할수없지만,인류의앎,그리고인류의미래에대해과학적으로낙관주의자였던칼세이건의전망에따라우리가가고있는것은분명해보인다.
칼세이건사후15년만에국내에처음번역출간되는이책속에서독자들은과학자가가슴에품은우주에대한경외와열정이그어떤종교인에게도지지않음을,과학이품은경이가종교가우러르는경외에못지않음을입증해낸칼세이건과의특별한만남을경험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