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사5,000년의역사를
발굴하고지켜온원로학자의60년학문인생
지난60년동안우리는온세상을뒤흔든격동의소용돌이속에서살았다.용케도살아남았다.숨막히는공기,벌거벗은산하,쏟아지며흘러가는흙탕물,그속에서우리는우리의전통과유산을온몸으로지켜냈다.이제야우리는물려받은유산의참모습을알아보면서그것들을곱게다듬어다음세대에물려주려고애쓰기시작했다.
내가쓴이글들은그한조각이고흩어진고리들중의하나다.지난60년세월,나는발로뛰고눈으로보고확인하고조사측정하고머리로생각하고격렬하게토론하고자료를찾아고증하는작업을이어왔다.이글은거기서얻은이삭들이다.우리는서유럽의과학기술문명에빠져있었다.그래서지난세기동안우리는우리의과학기술유산을애정을가지고대접하지않았다.물론그전통은어찌보면근대서유럽의과학기술유산처럼화려하고정밀하지못한것들이많다.
그러나우리가물려받은유산은결코격이낮거나세련되지못한것이라할수없다.반성하고새롭게조명하고재인식하는노력이필요하다.「책을시작하며」에서
“벌써7,8년전의일인것같다.한국과학사에대한얘기를서로나누면서자연과학을전공한분이한국과학사를다루어주어야겠다는원래의내소회를토로한일이있었다.그때얘기를서로나누었던전상운교수는서울대학교문리과대학에서화학을전공하고,곧이어한국과학사에서도천문관측분야의개척에힘써이수년간의공든노력을모아한국과학기술사를엮어전공학도와비전공의일반교양인에게한국문화의자랑할특이성을과학적으로밝히어평이한서술을빌어세간에묻게되었다.”
1944년일본도쿄에서『조선과학사(朝鮮科學史)』라는제목의책을출간해한국과학기술사연구의초석을놓은고홍이섭연세대학교교수가1966년에출간된전상운전성신여자대학교총장의『한국과학기술사(韓國科學技術史)』(정음사)의머리말에추천사로서쓴글이다.전상운의『한국과학기술사』는현대자연과학적방법론을토대로한실증적연구로한국과학기술사연구의새로운지평을열었다.
1960년대초중반까지만해도한국사회는전쟁과혁명,그리고군사정변으로인한사회혼란을완전히수습하지못하고있던때였다.일제강점기때어렵사리보존되던궁중유물들중많은것들이전쟁등의혼란통에소실(燒失)되거나도난당했고,그나마남아있던것들도지키는이없이잊혀져갔다.조선태조이성계가새나라개창의자부심을담아만들었던천문도「천상열차분야지도」창경원이라는이름으로격하됐던창경궁의한구석에엎어진채아이들의놀이터또는소풍온가족의식탁으로전락했고,장영실의놀라운발명품이었던자격루는자동으로종과북을쳐시각을알리는자격장치는사라진채물통만남아덕수궁한쪽에처박혀있었다.일제시대출간된한국천문학사관련도서에기재되어있던혼천시계,해시계같은천문의기가없어진것은말할것도없다.
전상운의『한국과학기술사』는이러한시대적상황에서한국과학기술사5,000년의역사를복원하고더나아가부활시키는출발점이된책이다.서장「역사로서의한국과학의이해」를시작으로모두6개장32개절로구성된이책은천문학,기상학,물리학과물리기술,화학과응용화학,지리학과지도등한국과학기술사의전시대,전분야를아우르면서,그전까지국내외학계에서산발적으로진행되던한국과학기술사연구를종합하고,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등조선왕조의궁궐에서부터전국방방곡곡에숨어있던과학유물들의과학기술적작동원리와구조를치밀하게,구체적으로,과학적으로분석해내고,그과학기술사적가치를되찾아유물이나흔적이아니라과학기술이한국에서어떤식으로발전해왔는지를보여주는과학문화재로서당당하게되살려냈다.그때까지이뤄진20세기중반한국과학기술사연구의최대성과이자이정표가된책이다.
한국과학기술사연구의역사에서뿐만이아니라한국출판의역사에서도기념비적인책이된전상운의『한국과학기술사』가출간된지50년만에한국과학기술사연구의역사를되돌아보는전상운의『우리과학문화재의한길에서서』가(주)사이언스북스에서출간되었다.한국과학사연구60년의역사속에서자신이해온연구와새로운아이디어들,후학들이맡아연구해주었으면하는제안들을담고,한국과학기술의역사를청동기시대로부터조선시대까지통사적으로살피기까지하는이책은21세기한국과학기술사연구의새로운문을열것이다.
『한국과학기술사』출간50주년
한국과학기술사속에숨은“창조적변형”의고갱이를찾아온역사
저자전상운전성신여대총장은1966년『한국과학기술사』출간이후50년간과학기술사연구,과학문화재보전및복원에지대한역할을해왔다.1974년에는세계적인중국과학사권위자네이선시빈의편집으로MIT출판부에서ScienceandTechnologyinKorea:TraditionalInstrumentsandTechniques라는제목으로『한국과학기술사』를영역해출간해,한국과학기술사의존재를세계에알렸고,『중국의과학과문명』이라는대작으로유명한영국의과학사학자조지프니덤,일본교토대학교의과학사학자야부우치기요시등과함께국제동아시아과학사회의를조직했다.1980년대중반에는문화재위원을맡아「천상열차분야지도」,혼천시계등15개의과학문화재가국보와보물로지정되는일의기획과실무,그리고연구책임을맡아과학문화재의위상을높이는데기여했다.또한『한국과학기술사』출간이후수십종의한국과학기술사,동아시아과학사관련도서들을저술,번역출간해과학기술사연구의대중화와학문화에도크게영향을끼쳤다.저자전상운성신여대전총장과대담을한한국의학사,과학문명사연구자인신동원전북대학교과학학과교수는한국과학사연구의역사에서“커다란사건”세가지를꼽은적이있는데,전상운의『한국과학기술사』영어판이MIT출판부에서출간된것,세종시대천문,역법서인『칠정산내편』이번역된것,그리고과학문화재가국보,보물로지정된것이그것이다.결국한국과학기술사의커다란사건들중어느것하나전상운전총장과관여되지않은것이없다.
한국과학기술사는중국과학기술사의지류일수밖에없다.그러나동시에그창조적변형이기도했다.그창조적변형의발전과정을추적하는것이바로한국과학사이다.이것이바로전상운전총장의오랜테제였다.전상운전총장은1966년판『한국과학기술사』에서“지나친과소평가나부질없는자랑을듣기엔그만멀미가난지오래다.우리마음속에도사리고앉은비굴한사대주의와오만한과대망상증을떨어버리고,스스로를정당히평가”해야한다고역설했다.
경주첨성대가동양최고(最古)의천문대이고,측우기가세계최초의우량계라고주장만하는데에서그치는게아니라실제로첨성대에서어떤식으로관측을했는지,그관측이천문학적으로유의미한지,또측우기의강우량계측이어떤식으로정부정책에반영됐는지실증적으로,문헌증거를바탕으로연구하고,그속에숨어있는“창조적변형”의구체적증거를찾아내고자전국방방곡곡을자와카메라를들고누비고다닌한학자의노력이있었기에우리가지금국립중앙박물관과고궁박물관등에서「천상열차분야지도」같은인류문명사적과학문화재들을생생하게볼수있는것이다.
“나는아직도과학사의길목에서있다.”
노석학의꺼지지않는열정을한국과학기술사와함께읽다!
전상운전총장은1966년판『한국과학기술사』를내면서10년마다개정판을내겠다고했다.1974년영판출간이후1975년12월말개정판을내면서그약속을지켰지만,1980년대,1990년대보직교수를맡고,과학사학계의여러가지일을맡게되면서그약속을지키지못했고,보직과교직등에서은퇴한2000년에와서야『한국과학사』(사이언스북스)를출간했다.그러나전상운전총장은책을낼때마다그때까지의연구성과와자신의통찰을책에녹여넣기위해애썼다.책마다새로운정보,새로운데이터,새로운참고문헌이추가되었고,체재(體裁)마저연구수준에맞춰바뀌었다.그것은한국과학기술사전체를통사로서아우르고자하는저자의야심이작용한탓이다.『한국과학사』출간이후16년만에출간된이책에는그런저자의오랜야심이잔뜩담겨있다.
한국과학기술사연구의역사자체를다룬1부「우리에게과학문화재가있었다」에이어지는2부「청동기시대의과학문화재」를시작으로삼국시대와통일신라시대,그리고고려시대와조선시대의과학까지통사적으로다루는9개부35개장의체재에서그야심을읽을수있다.특히전상운전총장의학문적야심은2부에서확인할수있다.우리나라의청동기시대기원을과감하게기원전15세기이전으로올려볼수있지않겠냐는제안에서부터한반도의청동기기술이중국이나중앙아시아에서건너온기술만이아니라한민족이활동무대로삼던한반도북부와요동과만주지역의문명권에서자생적으로발생한기술에서기원한것이아니겠냐는추정까지내놓으며한국고대과학기술사및고대사에대한연구지평을과감하게넓힐것을제안한다.거기에덧붙여고대인이봤을별자리가새겨진고인돌들을하나의과학문화재로서재인식하자고주장한다.한국고대사에대한좀더큰그림을주문하는것이다.
그동안학문적으로제대로규정조차되지못했던고구려,백제,가야의과학기술사를다룬3부「장대한고구려의과학문화재」,4부「고대의철의과학」,5부「백제,잊혀진과학왕국」에서는고대한국의과학기술사를동아시아과학기술사로확대하는장대한전망을엿볼수있다.고구려의고분벽화곳곳에숨어있는흔적들에서고구려의과학기술을읽어내고,일본까지흘러간가야와백제의철기유물에서고대의철기술을찾아내고,일본교토와나라의청동대불과거대한불탑들에서고대백제의요업기술과수학,그리고건축술을읽어내며,한발더나아가일본의불탑들과문헌들을한국과학기술사의편린을간접적으로라도보여주는우리의과학문화재로봐야한다고주장한다.
많은유물이분단된강토의북쪽에서있어청동활자와고려대장경경판과관련된연구말고는활발치않은고려시대과학기술사를평양의과학기술사연구자들과함께연구하는원대한꿈을소개하는7부「고려장인들의기술유산」에서는민족사적인감동까지느끼게한다.전상운전총장이해온연구의출발점이기도한조선시대과학기술에대해소개하는8부「조선의과학과기술」에서는한층정치(精緻)해진원로연구자의내공을만끽할수있다.
책의시작부분에서“인생의지평선이보이지만,커다란짐을내려놓고쉴생각을하지못한채엉거주춤안간힘을쓰고있다.”라고하고있기는하지만“아직도과학사의길목에서있다.”라며연구에대한열정을접지않은노석학(老碩學)의평생공부가이책한권에압축되어있는셈이다.
신동원전북대학교교수와의특별대담수록
게다가이책에는전북대학교과학학과의교수이자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소장으로한국과학사,의학사연구의젊은권위자로이름높은신동원교수가대담자로나서전상운전총장의인생과학문을총체적으로재조명한9부가「한국과학사를향한사랑」이실려있어가치를더해준다.10시간넘게이뤄진인터뷰를약150쪽에압축해놓은이대담에는전상운전총장의인생역정뿐만아니라연구과정이상세하게실려있어관련전공자들뿐만아니라고급교양지식에목마른독자들의이목을끈다.
과학사를정식으로배운적인없는화학전공의고등학교과학교사가20세기전반기에이뤄진한국과학기술사연구를종합하고,학회하나조직되어있지않은상황에서조지프니덤,네이선시빈,야부우치기요시등세계적인과학사학계의석학들과어깨를나란히하며자신의책을영어와일본어로번역출간하게되었고,60년연구인생을한국과학기술사연구에매진해올수있었는지생생하게소개되어있다.
일제강점기와전쟁,그리고혁명과군사정변.20세기전반우리민족은선진과후진,자학과자만의길목에있었다.그길목에서선학들은어떻게든길을찾아현재를만들어왔다.전상운전성신여대총장의『우리과학문화재의한길에서서』는이치열한연구와삶의역사를생동감있게확인할수있는기록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