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도 허전하지 않습니다

비워도 허전하지 않습니다

$13.00
Description
“환경을 생각하지만 종이 빨대는 너무 눅눅해!”
그래도, ‘그래도’를 중얼거리는 뚝딱이지만 기특한 제로 웨이스트 생활
조각 난 빙하를 붙잡은 채 바다 위를 유영하는 북극곰이 등장하는 영상을 볼 때나, 우리나라 면적만 한 산림이 불길에 휩싸였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나라도 지구에 무해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다진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의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려다가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은 자책이 들기도 하고 과연 ‘무해함’의 기준을 어떻게, 어디까지 잡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굳은 다짐이 유야무야 사그라지는 경험도 해보았을 것이다.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과 편의에 기대고픈 마음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그 자리에 털썩 누워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 올리는 모습은 ‘인류세’에 대항하는 우리의 흔하고 다정한 발버둥과도 같다.

이러한 발버둥을 함께하고자 하는 또 다른 초보 제로 웨이스터들이 공감할 만한 이소의 그림 에세이 《비워도 허전하지 않습니다》가 문학수첩에서 출간되었다. 제로 웨이스트ㆍ비건 라이프를 다섯 가지 생활로 나눈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은 이야기에 졸졸 따라붙는 4컷 만화와 일러스트를 함께 보는 재미이다. 덜렁이면서도 기특한 제로 웨이스트 생활과 친숙하면서도 귀여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다른 이가 소중히 쓴 그림일기를 몰래 보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의 저자인 이소도 열심히 이불 속에서 발을 구르던 사람 중 한 명인데, 짐 같은 물건이 꽉 들어찬 방을 보며 방을 ‘포맷’해 버리고 싶다는 충동과 책상 위를 굴러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내려다보며 불어난 뱃살 같은 갑갑함을 느껴 이불을 걷어찬, 영락없는 ‘초보’ 제로 웨이스터이다. 《비워도 허전하지 않습니다》에는 플라스틱을 거절하지 못해 낭패감을 느끼거나 텀블러의 뚜껑 소리로 시위를 벌이는 ‘하찮고 소중한’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의 순간들이 꾹꾹 눌러 담겨있다. 뚝딱이는 생활과 발랄한 그림으로 채워진 그림일기를 읽다가 베이컨 없는 ‘베이컨 토마토 말이’를 먹는 장면을 만난다면 배실배실 웃음이 난다. 또 친환경 물품을 잔뜩 구매해서 수북해진 장바구니를 바라보며 ‘나는 제로 웨이스트를 하려던 건데.’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을 만난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다가도 엉겁결에 받게 됐던 플라스틱을 가게에 돌려주려고 온 동네를 순회하거나 스테이크의 뒷면에 묻어있는 아픔을 발견하는 시선에선 손을 번쩍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유치원생의 뒷모습처럼, 꽤나 듬직하고 기특한 자세도 마주하게 된다.

덮은 이불의 포근함이 너무 좋아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찰나, ‘아!’ 하고 이불을 젖히고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그래도 양치는 하고 자야지.’라는, ‘나’와 내일을 등 돌리지 않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쥐었던 플라스틱 생수병을 다시 내려놓고, 포장 안 된 빵을 찾아 나서는 마음 역시 이와 같다. 다정하고 연약한 발버둥이 편의라는 포근함에 잠잠해지려거나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기울 땐, 삐걱거려도 이어가려는 이소의 생활처럼 말 뒤에 ‘그래도’를 붙여보자. 물론 제로 웨이스트는 번거롭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와 내일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면, 헤진 스웨터처럼 기우뚱하고 포근하고 어설픈 이소의 기록들을 한번 만져보는 건 어떨까.
저자

이소

일상에서보고느낀것을그림과글로기록하는사람.그날의감정을댄스로표현한《밤의댄스》,작은이미지들로이어진《손바닥드로잉진》,천변을산책하며관찰기록한《천변일기》등을펴냈으며,최근에는계절의감각을드로잉하는《Recorder》시리즈를제작하고있다.
기후위기의심각성을느껴비건이되었다.제로웨이스트와비거니즘을실천하기위해텃밭을가꾸며도시에서의자립생활을꿈꾼다.

목차

시작하며7

1부알아차리는생활
생활의무게13
글로배운정리17
어제와다른오늘21
비뚤배뚤업사이클링25
파우치와나30
네모둘,원통하나34
만들어볼까요?39

2부비우는생활
돌려주기와거절하기45
중고장터48
나누는재미52
성덕57
비움과채움62
나의발자국은66
영향력없는뉴히어로71
오늘은샴푸를했다77
향이없는화장실84
여행의이유89
다시94

3부도전하는생활
새로운칸101
냉장고없는방106
옥상텃밭112
자전거타고출퇴근119
우리의한숨123
먼지유령127
비닐없는책131
에어컨없이살기136
마이크로시위140

4부바라는생활
원하는삶147
백일만154
앞선사람159
고맙고도미안한164
간편하지않은171
마음과식탁177
카페의조건181
용기있는생활187
다른날193
어떻게감히198

5부함께하는생활
쓰레기진단204
이런게필요하죠208
잘모르겠어212
혼자가아니야220
껍데기는가라225
최선의차선231
이야기가계속되길237

출판사 서평

“지구에무해하길원하는마음위로포개지는손길”
‘혼자’가아니라‘함께하는’제로웨이스트
오지않는답장을기다리거나,다이어트중치킨을마주치는등등왠지실패할것같은느낌이들때가있다.그리고노력했던모든게물거품이되는듯한아뜩한실패는초보제로웨이스터에게더자주,더맵게찾아오곤한다.서툴지만소소한노력을모으던저자는텀블러를들고다니고,비건을결심하며환경파괴와고기로부터멀어지려는자신의행동이너무나작고연약하게느껴질때,어차피지구는망하리라는자포자기의심정을느낀다고말한다.그런데도끝까지샴푸없이머리를감고‘두유라테’를고집할수있었던이유는,지구를위해서로를다독이는마음들이있었던덕분이다.저자는“초식동물같은선한외모”를가지고“탄소배출을싹다없애버”(195쪽)릴것같은기세로행진하는사람들과사용한플라스틱을인증하고환경문제에관한경각심을상기하는‘플라스틱챌린지’에참여하는사람들의모습에서‘번거로움을자처하는’손들을찾아낸다.또한선거당시사용됐던비닐장갑의아득한높이와정부차원에서시행한규제의위력을보고는‘함께했으면하는’손들역시발견한다.그리고각기다른곳에서각자다른모양으로펼쳐진손들을모아그위에자신의손을포개,함께해서더따스해진체온을느낀다.나아가앞으로도실수하고또실패하더라도서로에게전달되는체온의힘으로다시무해하길원하는마음을지피면서,지핀불꽃으로식어가는의지와노력을덥히고자한다.그러니까《비워도허전하지않습니다》는“무력하게스러질건가,뭐라도할것인가.갈림길에서있”(201쪽)는우리에게지구를사랑하는방향은이쪽이라고속삭이며,당신의손도함께포개어질수있기를바라는다정한눈짓이담긴책이다.


“진찰보다이마를덮은손이때론더도움이된다는것”
고작고기하나의아픔에손을대는마음
‘비건’이라는단어뒤에는‘대단하다,신기하다,불편하겠다’등의말들이따라붙는다.아마고기가주는기쁨이,아는맛의힘이머리보다먼저입속에고이기때문이다.맛있는고기로부터고개를돌리는모습이대단하고,왜그렇게까지하는지가신기하고,어딜가나성분표시를확인하는모습이불편하게보여,사람들은비건을대단하고신기하고또불편하다고생각한다.지구에무해하고싶다는마음과“나의한계를허물고싶”(150쪽)다는생각으로비건을결심한저자역시처음채식을시작하기전에는비건을이러한시선으로쳐다보았다고말한다.그러나저자의비건은수행처럼엄숙하지도,시위처럼요란하지도않은“먹고싶은걸참는게아니라맘편히내가원하는걸먹는”(152쪽)생활에가깝다.처음하는비건인만큼자주뚝딱이고허둥지둥하거나,다른사람에게공장식사육의문제점같은무거운문제를논리정연하게설명하진못한다.대신고기가주는기쁨보다고기를만들기위한슬픔에공감하며,정확한진찰대신조심스럽고때론빈틈많은자세로아픈지구의이마위로손을얹으려한다.비건을강요하거나애써설득하려는대신,무해하려는마음과실천을그저보여주는저자의비건그림일기는그리대단하지도,신기하지도,딱히불편해보이지않는모습으로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