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핸드 발리 (김병호 시집)

백핸드 발리 (김병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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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백핸드 발리』 는 한층 깊어진 시선으로 세상과 삶을 향한 따뜻함을 전한다. 그의 시선은 세상의 그늘, 굵고 화려한 꽃송이를 매단 가느다란 가지가 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휘어져버린 ‘꽃나무의 피곤’과 같은 곳에서 시작한다. 이것이 그가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풍경이기도 하다.
저자

김병호

저자김병호는1971년에광주에서태어나중앙대학교문예창작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2003년[문화일보]신춘문예에시「징검돌이별자리처럼빛날때」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달안을걷다』,『밤새이상을읽다』가있으며,한국시인협회젊은시인상등을수상했다.현재협성대학교문예창작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첫눈
눈녹는밤에
구름과휘파람의정오그리고당신
슬래브지붕위의구름
커브(Curve)
숨을곳도없이
너무어리거나너무늙은
꽃인지눈인지
참다른일
플랫폼
당신의11월

2부
아무의모과
아무의식당
아무의노래
아무의잠깐
아무의시간
아무의폭설
아무의동백
아무의집
아무의나무
아무의노래방

3부
지금쯤
여름의끝
소문
입술닿듯꽃피듯
장미없는꽃집
모과
백야
저기요
자전거보관대
파도의사업
애플피킹(Applepicking)
그늘의일

4부
잘모르는사람
오지않는술래처럼
봄의미로
어제부터첫눈
여진(餘震)
다가오는것들
봄도없이삼월
동백
투명해지는밤
팔월

5부
봄의먼곳
생일아침
이월
누가부르는것처럼
몬순(monsoon)
어쩌면그런일이
가만,
자정의알리바이
꽃의자리
구름의약점
배웅

해설|최현식(문학평론가·인하대교수)
커브(Curve)식고독혹은사랑

출판사 서평

‘직유의시인’이며‘사랑의시인’,
시를통해현실을경험하게하는직유의힘을펼쳐보이다

그동안새로운시대의감수성을반영하고정신적가치를담을수있는시전문지가되고자노력해온계간『시인수첩』에서2017년6월[시인수첩시인선]을새롭게선보인다.‘한국시문학의정체성을새롭게조명하고,고유한개성과다양성을펼칠수있는장(場)으로서의역할을다하고,기존의문예지카르텔에서배제당한시인들을함께보듬고그들이비평가가아닌독자들에의해정당한평가를받을수있도록모든힘과열정을보태고’자했던계간《시인수첩》의창간정신을되돌아보고시인선을함께할시인들을모시게되었다.고운기,유종인,김병호,임동확,고재종,황수아,이지호등세대와계열을초월한시인들을통해우리시단이더욱풍요로워질것이다.

『시인수첩』에서세번째로선보일시집은김병호시인의세번째시집『백핸드발리』이다.이런표현이어울리지모르겠지만,그는묻혀있는시인이다.또래의시인들이‘미래파’의세례속에서주목을받고,모더니즘의확장된경계에서시작업을하고있을때,그는세류에휩쓸리지않고묵묵하게자신만의시세계를개척하고있었다.그렇다고고답적전통주의서정에얽매여있는것도아니다.행간에서는1980년대‘시운동’동인들이보여주었던밀도와긴장의정신이보이기도한다.화려하진않지만자아에대한성찰과상상력으로내면의풍경을베껴내는품이예사롭지않다.

김병호시인은2013년두번째시집『밤새이상을읽다』로“한결같은인간존재형식의보편성을수습해낼뿐만아니라일정하게서사적계기에대한관심을통해우리시대의서정원리를심화하고있다”는평을받으며제8회윤동주문학대상에서‘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밤새이상을읽다』에서시인은흔히‘은유’보다한단계낮은수준의수사법으로평가받던‘직유’와서정이어디서어떻게만나야신선한시적효과를자아낼수있는지정확히구사함으로써‘직유의시인’으로거듭났다.시인이밝힌대로,시인의시편에서직유는가장친절하면서도새로운의미를창조할수있는고급스러운수사법으로쓰였다.그의시가정치하게서정적이며,내적구조는농밀하고외적모양새는아름답고또매력적인이유는바로김병호시인만의‘직유’때문이다.

사람사는일은,굵은꽃송이를매단가지의피곤

세번째시집인『백핸드발리』는한층깊어진시선으로세상과삶을향한따뜻함을전한다.그의시선은세상의그늘,굵고화려한꽃송이를매단가느다란가지가제무게를버티지못하고휘어져버린‘꽃나무의피곤’과같은곳에서시작한다.이것이그가바라보는세상사람들의풍경이기도하다.

표제시「백핸드발리」에서화자는‘커브’를통해“당신없이도고독을매수하는방법”을배웠으며,‘백핸드발리’를통해“명랑한이별을기억”하는자세를익힌다.하지만“제말을수놓는여자”앞에서‘하늘만바라보는남자’를보고있자니“세상의이별”은“그만/시시해지고말았다”(「플랫폼」).아찔한사랑의방식과막다른이별의자세를“당신이라면알수있을까”싶게이별은“참다른일”(「참다른일」)이다.이별은“나의일이아닌듯싶기도”(「눈녹는밤에」)하고,“내것도아니고당신것도아닌”(「첫눈」)것같기도하다.

소식이라도한번주지그랬나요
하늘에도커브(curve)가있어별자리나구름이급히기우는자리가있습니다
당신이봄을앓고망명을오래생각하는동안오후는다만,다정한거짓말에몰두하는자세입니다
섭섭하지않은궁리와아무렇지도않은수작으로마음속에마음을잠급니다
이제,당신없이도고독을매수하는방법을알고있습니다
짧은치마의백핸드발리처럼훌쩍,넘어오는명랑한이별을기억하고있습니다
덜거덕거리는울음을들여다보면그제야꽃이지는기적이있습니다
구름과허공사이에놓인당신을넘어질주하는허기는까맣고딱딱하게오후를태웁니다
당신은우주에떠있는커브안으로사라집니다 -「커브(Curve)」전문

시인의시는낯선감각의새로움을쫓기보다는일상을둘러본다.일상에갇혀전전긍긍하며하루를살아내지만형상이나기미없이,얼룩처럼흔적으로만남은것들에자꾸마음이기운다.마흔넘은남자가딸아이와함께봉숭아물을들이다아이엄마에게핀잔을받는다.“나비처럼밤새가벼워지는”마흔이라고“꽃이되고픈마음”이없을까(「꽃의자리」).마흔넘은남자는“자면서도울음을그치지못하는”딸애의침대끝에걸터앉아“서로의봄이달라도삶은다정해”지기를바란다(「봄의미로」).
삶은복잡하고다양한문제를안고있지만삶속의건강하고보편적인진실을포착하려는시인은노력은시집전체에서엿볼수있다.‘커브’와‘백핸드발리’가더욱휘어지고강직해져‘직구’와‘포핸드발리’를넘어서는것이다.어쩌면‘정상’이아니라‘미달’이나‘과잉’이고더러‘불우’해보일지도모르는낯선사람들에대한이야기다.봄꽃길을걷던장님둘,여자위로동백한송이가떨어지자“콩닥대는심장소리를/얼른남자가안는다(「아무의동백」).“아침부터죽음을제친다는것이내키지않아”골목길을막은영구차를앞질러가지못하고슬금슬금“참,순하게따라간다”(「누가부르는것처럼」).아들을돌보는일흔노인(「팔월」)과엄마를묻고오는어린아이(「오지않는술래처럼」)도지나치지않는다.“아무도모르게,모르게”아버지집엘들러붉은기운의식기를닦고온다(「구름의약점」).“지금엄마일하고있으니까전화하지마”라고말하는요구르트아줌마의전화통화를엿들으며차마엘리베이터의닫힘버튼을누르지못한다(「가만,」).무릎보다낮은반지하쪽창에놓인보행기신발과앞코해진운동화를보았다면뽀드득햇살미끄러지듯지나친다(「봄도없이삼월」).

‘백핸드’는‘포핸드’에비해,‘커브’는‘직구’에비해기술적훈련이더욱필요하고,상대방의심리나상태에훨씬자세해야만충분한효과를거둘수있다.사랑과이별,고독과견딤의정서나감각못지않게그것들을대하고그것들과이야기하는자세와태도,방법이『백핸드발리』에서유난히자주언급되는까닭도,그효과를감안한선택일것이다.
-최현식작품해설,「커브(curve)식고독혹은사랑」에서

‘아무’라는현대인의새로운정체성

시집의2부에는‘아무의-’라는관형사를변주한제목의연작시10편이자리해있다.자신의정체성을추적하면서어느순간자신의존재를무마하고부정하는욕망을여과없이보여주는‘아무’라는단어는현대인의새로운정체성으로다가오기도한다.시인의‘커브’와‘백핸드’는누군가로인한고독과그리움이마침내온유한사랑으로형상화되어스스로길을찾아가기시작했다.인간으로치면완미하고성숙한중년의모습이아닐까.“아무도모르게,모르게”시인은‘아무’를새기고자한다.

나무로,새로,왕으로태어날수있다면/바람이나강물로도살아갈수있을까
성에낀창문과말갛게씻긴지붕과우듬지의빈새집과서쪽지평선위의성좌가/반짝인다,아주잠깐
너는내옆에서몸을구부린채잠들어있다/네게이별의이름을주지않았을때/네가나의운명에속하지않았을때/너는무엇이었을까
궁리를하는사이,/새벽이다시어두워진다
네가뒤척일때마다바람과얼음과울음은/나의몫이었으면/소금돌을핥는꿈에시달리다맞은새벽도/다만내것이었으면
창밖으론서리가붐비고/긴유랑에서돌아와앓는/몸밖으로잠깐씩달이자란다
아직내게로오지못한것들이남았을까
순한짐승의뼈로만든피리/같은울음이밤을흔든다/눈만흰새의울음이다
-「아무의잠깐」전문

대학에서문예창작을전공했고,지금은운좋게대학에서학생들에게시를가르치고있는무난한이력의시인이지만,불혹을넘긴나이이지만,그의작품속에는여전히걷잡을수없는질풍노도의뜨거움이감추어져있다.그러면서도시인은,시를쓰거나읽는까닭은공감이라고생각한다.“어떤낯선풍경에대해자신의경험과기억과상상을정돈하고갱신하는과정이곧공감이다.”진정한마음에서우러난시인의이야기가『백핸드발리』에실린54편의시에온전히담겨있다.“다가서되방해말고가만히함께들어보며같이울음우는것이우리들의마땅한자세일것”이라는작품해설자의말처럼그의시를“내것도아니고당신것도아닌”,하지만우리의것으로진정한마음으로공감하며살다가종종끄집어내보기만하면된다.

새학기가되면어머니는때지난달력으로책가위를해주셨다.하얗고빳빳한책가위위에도덕,국어,산수를적으시고마지막에김병호라는이름을정성들여반듯하게써주셨다.
시를쓰는일이,어머니의그런마음을다만흉내내어보는일이아닐까하는생각이불현듯이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