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로 흘러간 눈 (한석호 시집)

먼 바다로 흘러간 눈 (한석호 시집)

$8.00
Description
타나토스로 가득한 인간의 내면
한석호의 시집 『먼 바다로 흘러간 눈』

‘시인수첩 시인선’ 열세 번째 시집, 한석호 시인의 『먼 바다로 흘러간 눈』이 출간되었다. 첫 시집 『이슬의 지문』(2013)에서 사물에 대한 사유와 꿈꾸기를 통해 우주의 근원을 향한 원초적 열망을 보여 주었다면, 두 번째 시집 『먼 바다로 흘러간 눈』에서 시인은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어 거기에 깃든 고통과 타나토스를 똑바로 응시한다. 대상의 원초적 이미지를 탐구하고, 탁월한 “기교적 역량”(김춘식)으로 그 이미지를 새롭게 변신시키는 성취가 이번 시집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껏 드러난다.
한석호 시인은 마흔의 늦은 나이에 등단한 시인으로 1982년부터 경찰 생활을 하고 있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 웅숭깊은 통찰과 사유로 인간의 본원적 질문에 접근하는 모습이 남다르게 여겨지기도 한다.
저자

한석호

저자한석호는1958년경상남도산청에서태어났다.2007년『문학사상』으로등단했으며,시집『이슬의지문』,앤솔로지『2008젊은시』『2010젊은시』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꽃들이졸기시작하면모닥불을피우고
내소사
저문다는것은
몰이
고래와봄날
빗방울의인칭
먼바다로흘러간눈
푸른밤의앵글
자화상-살바도르달리풍으로
카페,바그다드
현기증
달빛에금붕어키우기
첼로가있는밤의시제
꽃의환기
묵화

2부죽은꽃들이터뜨리는폭죽소리
감정의타향
미늘과의포옹
수레국화가필무렵
묵티나트
지워진다는것에대하여-함양농월정에서
녹슨꿈쪽으로,한뼘더
밍크고래가돌아오는계절
불의전차
포커,혹은당신이라는
주산지
찬란의방식

3부먼지를덮어쓰고도체온을놓지않는거미
박명
낙조에들다
푸가-매몰되는가축들을위하여
밤의흉곽에깃든입술자국
산벚나무그늘에서읽는타로카드
복제된꿈
21세기를애도하다
가혹한봄날
바람에젖는기타의감정-고트프리트벤에게
기억은사육되지않는다
바람의관할
거울
문장들
위험한동화

4부나는오늘도내린천을지휘하고있다
오리
설국의무렵
마름질
굴뚝이라는높이
내린천오케스트라
메꽃
튤립나무가보이는병동
구름법원장으로부터온편지
지리산노을
푸른교실
테크노댄스
돌그릇
천전리암각화
강릉남대천
장맛비
정적(靜寂)
소나티네

해설|오민석(문학평론가)
고통의내면을응시하기-한석호의『먼바다로흘러간눈』읽기

출판사 서평

상처를드러내려는주체와그것을감추려는주체의사이

두차례의세계대전을겪고20세기모더니즘의시대가되면서전세계예술가들의관심은외부의시대상황에서인간의내면으로크게선회한다.그러나예술가들이마주친인간의내면은외부세계와마찬가지로어둡고,병들고,폭력과광기로가득한공간이었다.즉그들은인간내면에자리한파괴본능과죽음본능,즉타나토스의존재와마주하게되었다.
한석호의『먼바다로흘러간눈』은타나토스로점철된인간의고통스러운내면에대한집요한탐구를보여준다.시집의해설을맡은오민석평론가는“지금까지한국시들이기껏해야내면의에로스를불러내거나사회적폭력을호출해왔다면,이시집은무의식의이면을계속뚫고들어가그안에서울부짖고있는파괴적‘짐승’의목소리를호명해낸다는점에서예외적”이라고말한다.

아무색깔도가져본적없지만
나는가끔목마른짐승의눈빛으로내안의
사나운이빨을돌려세우곤한다
겉장도다읽지못한천문을열고
새한마리먼먼광야로쏘아보내기도하고
내안에갇힌서러움을간지럽혀웃기도한다

(……)

읽히지않는진실앞에서바람은자주수묵의기세로불고
배고픈짐승의눈빛을잉태한나는
모든윤리를해체하여묻어버리고있다

너무일찍철이들어버린것일까
저환한꽃들의배후에서누군가나를읽고있다
수분이되지않는계절이꽃을꺾어들고
캄캄한나를비춰보고있다
어둠에갇힌내영혼톡톡두드려깨우고있다
―「거울」부분

한석호시인은내면의고통을파고들어,그것을피하기보다는마주하려한다.시인은“‘망각’보다는고통의‘기억’쪽을선택한다”(오민석).인간/시인자신의고통스러운내면을탐구하면서그것을응시/직시하는것이다.그러나인간내면의타나토스를직시하는일은그리만만하지않다.무엇보다도‘안정’을뒤흔드는일이며,혼란을자초하는일이고,인간의치부와대면하는일이기때문이다.
이시집『먼바다로흘러간눈』은사실상고통,상처를드러내마주하려는주체와그것을감추려는주체사이의길항의기록이다.그러나결국시인은드러냄과감춤사이에서의그고통스러운싸움을한순간도포기하지않는다.따라서,한석호의시는고통을마주하고있지만그언어는그리절망적이지만은않다.

이한끼만머물러주시면어떨까요,
한시절의몰락을정리해야겠습니다.
펼친시간을다접지못했다면
캄캄하게갇히는날이많아질것입니다.

(……)

무수한무용담이걸어다니는이전선도
철군의나팔소리하나면다정리되고말겠지요.
오늘한끼만머물러주시면어떨까요,
당신의체온을찾고싶은데도무지만져지지가않습니다.
―「메꽃」부분


타나토스를무너뜨리는힘의근원

미봉된상처를드러내고그것을치유하는것은굉장히어려운일이다.이는스스로의내면을파헤쳐고통스러운진실을드러내는“‘가혹한’수행”(오민석)과같다.시인이자신의내면에서고통을마주하려는것은그자체로는타나토스지만,그고통을껴안으려한다는점에서에로스이기도하다.

정형외과병동을열고들어서는
저것은국경밖에서온시베리아칼바람
기다리던봄햇살이아니라
내옆구리들이받아공중낙화시켜버린
브레이크없는트럭
견고하면두려움에게걷어차이고
사소하면달의눈썹만봐도글썽해진다
한번도외로워보지않은자
오래도록그리움에가닿아보지못한것
시간의발자국앞에엎드린
바람이제꼬리를물고목청껏짖고있다
불멸의사랑이란
눈속에갇힌고양이의울음을꺼내핥아주는것일까
병동앞튤립나무가
온몸에초록빛종소리를매달고있다
굳어버린깁스속의사랑아
네심장에도피돌고칼바람무디어지고있는가
미치도록안고싶은삶을데리고
나저레일위를미끄러지고싶다
봄날이연둣빛으로물드는병동밖저국경의밤을향해
―「튤립나무가보이는병동」전문

“눈속에갇힌고양이의울음을꺼내핥아주는것”,즉상처를드러내껴안는것이바로“불멸의사랑”이라고시인은말한다.고통스러운내면을감추는것은눈속에갇힌고양이를계속거기에가둬두는일이다.그러나눈속에갇힌고양이,즉내면의타나토스를직시하자“병동앞튤립나무가온몸에초록빛종소리를매달”게된다.
한석호시인은인간의보편적인타나토스를집요하게탐구하면서도그모든타나토스를일거에무너뜨리는힘의근원을알고있다.그것은“눈속에갇힌고양이의울음을꺼내핥아주는것”,“날지못하는것들을품어주”는것(「먼바다로흘러간눈」),“사라진것들의비명을찾는따뜻하고안쓰러운궁구”(「밤의흉곽에깃든입술자국」)와같이,타나토스에맞서는에로스의힘이다.
더불어“먼바다로흘러간눈을기다리는”등대의모습이시인의또다른자아일것이다.시인이그린시인의자화상,한석호시인에게시쓰기는그런일일지도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