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 (최영철 시집)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 (최영철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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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용할 날 없는 세상을 궁굴리며 놀다
최영철 시집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

‘시인수첩 시인선’ 열네 번째 시집, 최영철 시인의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가 출간되었다. 1986년에 등단하여, 이미 오래전 자기만의 시적 언어와 세계를 구축한 한 중견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이기도 하다. 때로는 은근하게, 또 때로는 날카롭게 자연과 일상을 노래했던 시인 특유의 언어는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하다. “조용할 날 없는 세상을 불러들여 조용히 그것들을 궁굴리며 놀았”다는 [시인의 말]처럼, 이번 시집에서도 최영철 시인은 그 자신이 궁굴리며 논 말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저자

최영철

1986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어등단.시집『돌돌』『금정산을보냈다』『찔러본다』『호루라기』『그림자호수』『일광욕하는가구』외다수,육필시선집『엉겅퀴』,성장소설『어중씨이야기』,산문집『동백꽃붉고시린눈물』등이있다.백석문학상,이형기문학상,최계락문학상등수상.

목차

시인의말

1부
동감
저녁이다
아름다운세상
말라간다날아간다흩어진다
다음열차를기다리며
최후의만찬
교도소특강
봄눈
언젠가가능한일
종말룰랄라
하느님하느님
우산의탄생
끝없는전진
이것
?
화장의기술

2부
파도의파도
그리고…
봄의복종
바다에밤이오고
슬픔에게
아침인줄아는아침
종이의독백
어느새,눈물
아버지였던아버지
고독사를꿈꾸며
하하하느님
꽃잎혀에바치다
멸종을막는사소한방편
부식(腐蝕)
봄봄봄노래-삼랑진에서


3부
이른아침구름본다
아침
내몸의방공호
오랜당신
씨앗들
너에게로가는길
달린다약
하고
망일(亡日)
그리고기적은왔다
산책의새로운방식-도요에서
희미한옛사랑의그림자
퇴로
비비비
자갈치사용설명서
돈의이유

4부
밤의탱고
잎들
소낙비손님
어떤윤회
암각화의말
몸살,봄
바람과새와잎
두그루
극장의추억
눈물
사방천지멸치
밤의도서관
저별은너의별
울창빽빽옹졸
호주머니의계보
그날의난파선
정답?오답?

해설|고봉준(문학평론가)
인간의처소를향하여

출판사 서평

일상의언어로가시화한내면의지리학

작품속에서시인은일상속세계를걸을수도있고,일상을초월한이상의세계를걸을수도있다.그러나최영철시인의시는변함없이일상에발을딛고있다.최영철시인에게일상과자연은내면의지도를가시화하는매개이기때문이다.시집의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고봉준은일상속시인의시선이두방향으로분할되어있다고말한다.하나는바깥을향한시선이고,다른하나는시인자신의내면을향한시선이다.전자의시선이‘윤리’라면,후자의시선은‘성찰’이라고할수있다.최영철시인은세상을바라보는두개의시선인‘윤리’와‘성찰’을궁굴려서특유의언어로써그것을우리에게들려준다.
맨앞에실린시[동감]은외부로향한시선,즉시인의‘윤리’를궁굴린작품이다.

조그만종이박스하나를놓고껄렁하게앉은사내를보았다그무성의가마음에들어얼른지폐한장을그의아가리속으로내동댕이쳤다무척화가난듯새로생긴폐기물처리가걱정이라는듯굴러들어온돈을그가미심쩍게내려다보았다

코푼휴지처럼버려진지폐를사이에두고
오래전의약속인듯
그와나는
서로를보며씩웃었다
-[동감]전문

한편[울창빽빽옹졸]이라는시에서시인의시선은‘옹졸’한자신의내면을향한다.

옹졸이싫지만옹졸을알아차리는내가더욱싫네
명백한과오를편드는내가싫지만그소심을
예민한촉수라변호하는내가더욱싫네나는나
하나만으로족한데또다른나또다른나의나를
알아차리는또다른나가있으니싫네(……)
-[울창빽빽옹졸]부분

이시에서화자는내면을향한‘성찰’의시선을“옹졸한내가어디/멀리여행가고없는나라여행가서비명횡사하면/더바랄게없는나라더이상옹졸이/핵분열하지않아도되는나라로이민가고싶네”처럼유머가섞인명랑한언어로표현하고있다.
그러나시인에게일상은친근하고긍정해야할대상이기도하지만,한편으로는세상에팽배한속물성과거기에편승하는스스로를성찰하기위해천착해야할비판의대상이기도하다.시집『말라간다날아간다흩어진다』는이러한비판과성찰을시인특유의유머와희극성이돋보이는언어로들려준다.

내게돈이없는건돈이내게오지않아서다
어쩌라고
오기싫은돈을난들어쩌라고

(……)

그바람에돈돈돈돈이돌아버렸다
저렇게미쳐날뛰기만하지
도통내게올생각을않는다

어쩌라고
-[돈의이유]부분


삶가까이죽음이존재하는유쾌한인간의처소로

“죽을때가가까우면순하게돌돌말린다”([돌돌],『돌돌』),“서산해넘어가자문턱하나넘어/이승에서저승으로자리를옮기신다”([통도사땡감하나],『호루라기』)처럼,최영철시인은여러시집에서인간을포함한자연속생명의죽음을그려왔다.이번시집『말라간다날아간다흩어진다』에도죽음의장면들이제법등장한다.그죽음의장면은시[이것]에서처럼은근한분노를담고있기도하고(“이것이젖으면아이들이떼죽음당하는일이또일어날지모르니방수처리된이것을만들어야한다는주장이제기되고있는것이었다”),[퇴로]에서처럼담담하게말해지기도하고(“그날119구급차에모시면서버려진할머니의흰고무신한짝이흙을불러들이며오래조용히축담밑에엎드려있다”),[망일(亡日)]에서처럼담담하다못해넉살좋게그려지기도한다(“이젠전화하지마/술도건네지마/넌지척이치만난몇겁의하늘을건너왔잖아”).
이번시집에등장하는‘죽음’을긍정과부정가운데하나로환원할수는없지만,최영철시인은대체로‘죽음’에대해밝은목소리로진술하고있다.시집전체를관통하는유머와명랑한어조가삶과죽음에관한사유에까지영향을끼치고있는것이다.고봉준평론가는시인이타인의죽음에대해서는슬픔의정서로반응하지만,정작스스로의죽음에는부정적으로반응하지않는다는점에특히주목한다.
이처럼죽음을모티프로삼은작품이다수포함되어있고,시집의전반적분위기도‘상승’보다는‘하강’의이미지가더강하지만,이러한‘하강’의무게감은특유의유머와담담함,유쾌함으로상당부분상쇄된다.다시말해언제나삶가까이죽음이존재하고있음에도최영철의시는결코삶에대한부정이나절망의느낌을주지않는다.고봉준은그이유를,최영철시인의시가궁극적으로는‘생명’에대한관심을배경으로삼고있기때문이라고설명한다.

나는이번생에서는별이되지않기로작정하고야말았네
떨며선달에게겉옷을벗어주고
혼자둑방을건너낮고누추한
인간의처소로돌아오고야말았네
-[산책의새로운방식-도요에서]부분

시[산책의새로운방식-도요에서]에서화자는“보장”된“평화”를마다하고“눈물겨운인간의처소로돌아”온다.시[퇴로]속축담에는돌아가신“할머니가앉았다가는지올봄에또새싹이돋”는다.별의초월세계가아닌“누추한/인간의처소”에,할머니의죽음이후태어나는생명에주목하는시선이야말로세상을향한시인의윤리를선명하게보여준다.

시인은‘길’을나선다.그의발걸음의성격은아직결정되지않았다.그는자신의발걸음이‘외출’인지‘산책’인지,또는‘방황’인지고민하면서걸음을옮긴다.길에는가로등이없고,이정표가없고,신호등도없다.고속철도가지나가고,강이등장하는가싶더니,이윽고풀과별이주변을둘러싼다.하지만시인의발걸음은결국‘인간의처소’로이어진다.그의발걸음은결국‘산책’이되고,그는“이번생에서는별이되지않기로작정”했다고고백한다.최영철의시는‘별’이가리키는‘초월’의세계보다는‘인간의처소’에더가깝다.(해설,[인간의처소를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