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울까봐 (황은주 시집)

그 애가 울까봐 (황은주 시집)

$8.00
Description
세계를 여는 몽상가의 정원으로의 초대
우주적 몽상을 체현하는 황은주의 첫 시집
여기 하나의 사과가 있다. 껍질로 감싸인 그 아삭한 과육이 무얼 빨아들이며 숙성했는지, 무슨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사각. 한 입 베어 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또한 알 수 없다. 다만 사과를 베어 문 이의 감각이 얼마만큼 열려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사과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 순간, 사과 너머의 시간과 공간으로, 아니 그 너머의 우주로 감각을 쏘아 올리는 사람이라면 분명 사과의 성분은 물론이요 근원까지도 감지할 수 있으리라.
한 알의 사과 같은 시가 가득 열린 한 권의 시집을 소개한다. “사유의 풋풋함과 상상력의 발랄함”으로 시적 내공을 주목받으며 등단한 황은주 시인의 첫 시집이다. 30대 후반, 뇌수막염을 앓던 시절에 처음 펜을 들었던 시인은 10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13년 「삼만 광년을 풋사과의 속도로」로 시적 수련의 내공을 드러내어 보이며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무릎 꿇고 엎드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며 “사람들에게 치유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일념으로 펜촉을 벼려온 시인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대화하고 싶은 열망으로 시를 써왔다.
당선 이후 “황은주만의 색깔을 갖고 자신만의 시를 쓰고 싶”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과연 시인은 독보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여 시인만의 ‘정원’을 꾸렸다. 전영규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을 이른바 ‘몽상가의 정원’이라 이름한다. 이 정원에 열린 시들은 하나같이 감각의 역동성을 요구한다. 베어 문 사과를 단번에 삼키지 않도록 의식을 붙잡아 두어 그 너머의 시공을 더듬게 할 뿐만 아니라 아득한 우주까지 감각을 뻗치게 한다.
저자

황은주

강원도홍천에서태어났다.상명대학교불어교육과를졸업했다.2012년『중앙일보』제13회중앙신인문학상에시「삼만광년을풋사과의속도로」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시인의말

ME
중얼거리는장면
아직도까뮈
모빌
두부
제4원소
빗소리
우산
아프리카침대
탕헤르
공중
자오선
너를강렬하게버리려는의지
첫발작
9개월의불안
더러워,즐거워
엄마의유산
경극
사진관
살아남은자의슬픔

YOU
사과를줄위에
바닐라바닐라
외국인의말
정물
날카로운방
크로키
귀걸이-송곳을취하여너의귀를문에대고뚫으면너는영원히
아지트
개기월식
백야
새집
로브그리예,포도밭은요?
詩길
창없는호텔
상냥한추종자
나비이야기
녹색
조각칼처럼

HER
금기
좀머씨에게
상자는그런식
눈사람
양면거울
여름에대해말한다
케이크없는케이트
칠리를먹는밤
불안한몽타주
발칙한껍질
평화유지군
꽃보다오래오래죽었다
유령놀이
유성우가출몰하는길
불온
해변위에체스
공원
헝겊인형성애자

해설|전영규(문학평론가)
몽상가의정원

출판사 서평

놀라고,매혹되며깨어나는의식의각성

유한한언어가고여있는의식을가르며단단한관념을뚫고무한으로나아간다.생의이미지들이예고없이엄습하는순간,놀라고,매혹되면서의식의각성이일어나는것이다.그리하여멈춰있던사물과고정된물질들이호흡하고생동하며깨어난다.정물(靜物)이정물(情物)화되는그신비로운작용은황은주의시에서끊임없이이루어지는마법이다.“몽상하는대로존재하는세계를향해”(해설,「몽상가의정원」)시의언어는끊임없이변주된다.

너는탕헤르라말하고탁자를만진다그것은수요일의일이다그것은화요일의일이었다너는경계를녹여버린다그것을혹은그곳을,탕헤르에서만나자말하는순간탕헤르의탁자로네가왔다너의숨결에선불이일었고나의저녁은일그러졌다너는경계를무너뜨린다그것은수요일의일이었다그것은화요일의일이다모로코에서만나자말하는순간모로코의돌로네가온다너의숨결에선불이일고나의잠은재가된다
―「탕헤르」부분

시인의눈길이닿은대상들은더이상그이전의무엇이아니다.지금여기에있는익숙한사물들이저기멀리에놓인낯선것들이되어있다.황은주의시에서는어떠한제약도한계도없다.자유로운몽상들이현실의경계를흩어무한으로나아가기때문이다.이른바“보이지않는생의그물을늘리며지구를벗어”나는것(해설,「몽상가의정원」)이다.시인은왜끊임없이경계를허물며우주로나아가는것일까.고이지않으려는생의의지때문이아닐까.밑도끝도없는시인의생의의지는예고없이의외의이미지를불러일으켜“첫발작”과도같은의식의각성을일으킨다.시인의시선을관통한그어떤대상이고여있는존재로썩어가지않도록,생의밀도로충만한정물(情物)이되도록.시인은자신을둘러싼온세계를뒤흔든다.

우리들의접시사이는달걀프라이로미끌거리고

이번생은프라이로시작하는군요끓어오르는레드,레드,레드홀을지나는중입니다욕조가뱀처럼뒤틀려있습니다당신이다녀간흔적입니다조문의향기입니다귓불에장미향을새긴다는건불안해서붉어지려는것더붉어지려고뉴욕레드벨벳케익을삽니다붉어지려는데불자동차가지나가는군요솟구칩니다불면과사과처럼가볍게탁자는뒤집힙니다발의발작처럼왜곡과술이있습니다날아갑니다최신망원경을가졌다면백년전에발이뒤엉킨블랙홀을기억했을텐데요망원경과망각사이징검다리가있고징검다리를밟으며뜨거운달걀프라이를건너갑니다자정엔커튼을태울것입니다정오엔해바라기를짓밟을것입니다해바라기안에는만개의방이있어서여름은방의발작입니다

만번의발작인데요

이번생의발작은아직반짝이지않았습니다
―「첫발작」전문


규정하는모든것들을향한뜨거운저항

시인의몽상은뜬구름을잡으려는허망한꿈이아니다.오히려현실에맞닿은뜨겁고도치열한사투이며“특별한열정의불꽃”(해설,「몽상가의정원」)이다.시인은몽상을통해세계를그려내고빚어낸다.몽상이라는불꽃은규격화되고규정된고정적존재들을뜨거운불길로녹여해체한다.따라서시인의몽상은‘규정하는모든것들’을향한‘뜨거운저항’인셈이다.기존관념의해체는소멸이아닌재생을의미한다.강렬한발작을통해일어난의식의각성으로시인은몽상의불길을일으켜세계를새로이빚어내기때문이다.시인은‘시’라는거대한화로에생의열기가담긴“뜨거운언어”를집어넣어세계를용해하고전혀새로운무엇으로재생해낸다.

인간의정신이세계를향해침투하고용해되는충분한시간을허용하는지점.시적몽상을이미지화하는지점.내안에감춰진특별한생의열정을찾는지점.부동의시간처럼보이는중간지대에서존재는내안에감춰진실존이라는안락함을경험한다.내안에숨겨진작은불씨가내밀한생의열기로충만해지는순간,나는세계의몽상가가된다.세계는나를이루는모든것이자내가바라보는모든것이다.나는세계를향해,세계는나를향해모든것을개방하는지점에서,나는자신과세계가긴밀하게연결되어있음을실감한다.
―「해설,「몽상가의정원」부분

“부동의시간처럼보이는중간지대”에서“실존”을인식한시인은비로소몽상을시작한다.
“관성이나타성,관념에구애받지않는세계의과일들이가득한몽상가의정원”을일구는것이다.생의열기를담뿍머금은시인의언어들은몽상가의정원에서뜨거운열매로무르익어간다.언어라는껍질에둘러싸인시의과육속에는과연무엇이들어차있을까.이제그열매를베어물어확인해볼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