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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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상에 없는 색’을 생성해 내는 시인
‘논’에서 ‘학’의 차원으로 도약한 이종섶의 세 번째 시집
Done을 None으로, None을 New로 변주해 내는 시인이 있다. 그는 이미 정의 내려지거나 규정된 존재들조차 공(空)의 상태로 돌려놓는다. 이미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모조리 허물고 새로운 인식의 통로를 열어 가는 것이다. 그 통로는 낯설고 황량하다. 그는 그토록 낯설고 황량한 통로에서 전혀 생소한 색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가 ‘시인의 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상에 없는 색을 향한 목마름”으로 이전에 없던 색을 끈질기게 생성해 낸다. 그 색은 곧 그의 언어이며 시 그 자체다.
이종섶 시인은 이미 알려진 대로 “사물을 본래의 자리에서 끌어내어 새로운 자리에 위치시키는 언어의 연금술사”(고인환 문학평론가)이며, “제재들에 시인의 독특한 의식을 투영하여 낯설고 강렬한 충격을 불러일으”(『바람의 구문론』 책 소개문)키는 시인이다. 그간 지각의 범위를 확장하며 언어를 조합해 온 이종섶 시인은 4년 만에 출간하는 세 번째 시집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에 이르러 “논(論)에서 학(學)의 차원으로의 도약을 시도한다”(기혁 문학평론가). 대상을 부수고 깨뜨려 ‘논’하던 그는 이제 대상 너머의 세계로 지평을 확장해 ‘학’을 구축해 낸다.
‘학’을 구축해 가는 도정에서도 그는 좀처럼 무엇을 정의 내리지 않으며, 그 무엇도 섣불리 규정하지 않는다. 대상을 ‘정의’하고 ‘규정’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인 까닭이다. 그는 다만 ‘지상에 없는 색’을 끊임없이 발견해 내어, 그 색으로 지금 여기, 그 너머를 그려 낼 뿐이다. 보는(읽는) 이는 그저 온 감각을 열고 이 낯설고도 생경한 그림(학문)을 음미하며 이전의 인식을 허물고 새로운 대상을 마주하면 되는 것이다.
저자

이종섶

경남하동에서태어났다.2008년『대전일보』신춘문예에시「책장애벌레」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물결무늬손뼈화석』『바람의구문론』이있으며,<수주문학상>과<시흥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카멜레온
구두수선공K씨의구두수선학
북두칠성
노블레스오블리주콜라주
프로파일러P씨의고양이프로파일
피카츄의미발표유작피카소에대한미술사적논평
노이즈마케팅
드라마앤드러머
홈쇼핑
필드윤리학―모럴과오럴의해저드표류기
피아노해부학―차이콥스키피아노협주곡1번
터미널곤충기
지렁이의스웩
시조새생존기
아틀란티스

2부
이란성쌍둥이에관한보고서
달의레시피
비누
부채를든여인
우화
구름세탁소
안구건조증
복제인간병리일지―풍선해부학
개안수술사건일지
중환자실에서
모차르트의레퀴엠을듣는밤―빛바랜일기의마지막부분을서둘러야한다
장례식―가족사진
은하철도999
너와나는있고나와너는없다
天요일

3부
사람을소비하는방식
에스프레소
애들을놀이터에보내기싫은이유
성형외과
주홍글씨는바래지않는다
풍금
오동도항해일지
배수로철창아래
주름
악어보호구역
폴라로이드
맨홀
명절제국흥망사
버저비터

4부
억울하지않은계절
바위
버섯
나비화석
빗살무늬토기의재해석
붉은장갑
굼벵이
뿌리의힘
화장하는남자
우체통
병든나무에둥지를틀다
매화를치다
흑련
눈물

해설|기혁(시인?문학평론가)
수선공K씨가절대자를구술하는방식

출판사 서평

낯선‘학문’에서발견되는가없는‘공동’

수선공K씨의구두수선학은단순히지식을나열한현학적인연구가아니다.“현장경험에바탕을”(「구두수선공K씨의구두수선학」)두었기때문이다.오랜세월축적된그의노하우는어엿한‘학’의차원으로체계를갖춘다.이학문안에는무수한세부영역이존재한다.“앞굽선호이론”을비롯해“창갈이학”,“모방기하학”,“미적분수선학”등이그러하다.이세부학문은저마다역사와근거를지니고있다.그저주먹구구식으로가져다붙인것이아니라연구를통해논리를확보한이론인것이다.이는수선공K씨가‘구두’를통해정립해낸인생공식인셈이다.

3
유클리드구두기하학총론초등수선학이완성되는날,데카르트가좌표개념을도입해바닥수선학을주창한다밑창이꺾이거나갈라졌을때필요한창갈이학의토대가이루어진다발을본떠서수선하는모방기하학도확립된다걸을때마다꺾이는어제와쩍쩍갈라지는오늘이미적분수선학의발견으로감쪽같이해결,내일을광낸다

4
19세기위상도입개념,수학과자연과학뿐아니라디자인계까지일대혁신을가져온다뒷꿈치를꺾어신어기형이되어버린구두각을계산해유행을창조한다재료는끊어져나간실밥과발자국무게로달아놓은배고픔……
―「구두수선공K씨의구두수선학」부분

여기서주목해야할것이있다.이시에존재하는공백말이다.유클리드,데카르트등유수한학자들그리고“모방기하학”,“미적분수선학”등의번듯한학명과“구두각”,“실밥”,“발자국무게”등지극히도현실적인단어사이에는“구두수선학”이라는학문이성립되는과정에서발생한공동(空洞)이존재한다.그공동은“역사적사실의유무,명제의참,거짓”(해설,「수선공K씨가절대자를구술하는방식」)사이에존재하는빈공간(구멍)이다.이종섶시인은이처럼시를통해낯선학문을제시함으로써지금여기에존재하지만눈에보이지는않는‘구멍’(동굴이나웅덩이등)을곳곳에배치해둔다.이는비단「구두수선공K씨의구두수선학」에해당하는것만은아니다.
“쥐구멍을탐사해서완성한”「프로파일러P씨의고양이프로파일」,드라마와드러머의연관관계를서술한「드라마앤드러머」,“아마추어이기주의와프로의무책임”에관한「필드윤리학―모럴과오럴의해저드표류기」,“희고검은감옥”인피아노에관한「피아노해부학―차이콥스키피아노협주곡1번」과같은시에서미루어알수있듯시인은다양한분야에‘학’을구축해나가고있다.그의‘―학’은어딘가낯설고,그래서팽팽한긴장이감돈다.이시집곳곳에포진된구멍또는빈공간이마치‘크레바스’처럼잠복해있기때문이다.그균열에발을헛딛는순간,가없는공동으로빨려들고말것이다.그러나이는곧새로운세계로의전환을의미한다.모든감각이열리고환기가일어나는것이다.그것이이시집을조금도허투루흘려읽을수없는이유다.

표면,아무것도아닌것같으나실은전부인것

표면이라는것
감싸고있는속을숨겼다들켰다하면서방어의최전선에서중심노릇까지해야하는그표면이라는것
아무것도아닌것같으나실은전부인것이어서
그곳에둥지를튼발톱이뽑히지않는
―「뿌리의힘」부분

시인은‘너머’를이야기하기위해‘표면’에주목한다.“방어의최전선에서중심노릇까지”해내는“그표면이라는것”은결국“전부”일수밖에없음을역설한다.대상의본질을감싸는외피에불과한무수한시어들이한편의시로완결되었을때그대상의‘전부’로서작용하듯이“감싸고있는속을숨겼다들켰다하”는표면은“아무것도아닌것같으나실은전부”를표상한다.이종섶시인은보일듯이보이지않는표면의속살을드러내기위해끊임없이표면을두드린다.계속해서두드리면표면이부서지고깨어져마침내본색을드러낼테니말이다.아마도시인은그작업을“마음껏”계속할것이다.사물과존재(「바위」,「버섯」,「나비화석」,「붉은장갑」,「굼벵이」,「우체통」등)를끊임없이두드려보고치열하게재해석하면서“파괴가아닌건설”이자“교란이아닌확장”으로“변형이완전하게정착되면서입에붙을때까지”(「성형외과」)말이다.

시인은언어와지식에가장민감하게반응해온존재일것이다.그럼에도이종섶의“구술”작업은현실너머진리자체가아니라“표면”을말하는쪽에가깝다.굳이현상학적사유를떠올리지않더라도,불가해한우리의삶은“속을숨겼다들켰다하면서방어의최전선에서중심노릇까지해야하는그표면이라는것”에속해있다.그리고그것은불완전한언어와지식을통하지않고서는전달이불가능한것이다.“아무것도아닌것같으나실은전부인것”이란우리의지각너머에있는것이고,정상적으로작동하는지각의범위에서는결코도달할수없는영역이다.실현불가능한그“전부”를이야기하기위해불가능한이상을말하는쪽을택한다는것은,결국객관적이고절대적인대상의부재를인정하고,그것을극복하기위한실천적요청을역설하는것이다
―해설,「수선공K씨가절대자를구술하는방식」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