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구름이었다 (방수진 시집)

한때 구름이었다 (방수진 시집)

$8.00
Description
구름에 실린 내밀하고 풍부한 감정들의 서사
빈 오선지에 ‘울음’을 그려 넣는 시인 방수진의 첫 번째 시집
우리는 모두 한때 ‘무엇’이었다. “구름이었다가 비였다가 문이었다가 벽이었다가 선이었다가 점이었다가 너였다가 나였다가”(「시인의 말」 중에서), 결국 또 다른 무엇이 된다. 시간과 바람에 풍화되는 존재인 우리는 영영히 고정된 무엇으로 남을 수 없어 자꾸만 다른 무엇이 되어 간다. 그 변모 과정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으나, 분명 우리는 그렇게 변해 간다. 몸을 뒤채며 무엇에서 무엇으로 바뀌어 가는 존재의 변이를 포착한 시인이 있다. 2007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문단에 나온 방수진 시인이다. “시적 대상을 장악하는 힘이 뛰어나”(이문재)다는 평을 받으며 시 「창고大개방」으로 등단한 그녀는 당선 소감에서 “세상 모든 곪아 터져 가는 것들을 가슴에 품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드러낸 바 있다.

방수진 시인을 부르는 말은 여럿이 있다. 누구는 그녀를 ‘중국 읽어 주는 시인’으로 부른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중국 상하이 화둥사범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중국어를 가르치고 중국 문학을 번역하는 일을 해 온 ‘중국통’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EBS [세계테마기행] 중국 음식 기행 큐레이터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이들은 그녀를 뮤지컬 공연까지 한 연극배우로, 어떤 이들은 문학과 음악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시인&뮤지션 통섭 융합 프로젝트 밴드 ‘시인의 정원’의 리더로 기억하기도 한다.

‘시인의 정원’ 밴드 활동을 통해 그녀는 ‘시’가 ‘노래’가 되고 ‘이야기’가 되어 흘러가게 하는 일의 새로운 시발점을 마련하기도 하였고, 중국 유학 시절과 여행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이국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사연들을 기사, 칼럼, 에세이 등으로 오롯이 담아내는 영역 확장도 시도하였다. 이렇게 등단 후의 10여 년을 결코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기에 그녀의 시집은 풍부한 ‘서사’를 담은 책으로 어엿이 태어날 수 있었다. 기자로, 카피라이터로, 뮤지션으로, 그리고 1인 크리에이터로 종횡무진 활동해 온 방수진 시인. 더욱이 그녀는 자신의 취미가 ‘달리기’, 특기가 ‘중국어와 일본어로 지하철 안내 방송 멘트하기’라고 말한다. 숨길 수 없는 끼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녀의 시집 역시 마찬가지다.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여문 시어들이 알알이 들어찬 이 책은 시인의 첫 시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성긴 구석을 도무지 찾기 어렵다. 등단 이후 10년이 넘도록 시의 집을 설계하고 내실을 채우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녀는 개개의 시에 저마다의 목소리를 입히기 위해 온 감각을 열고 시 너머의 영역으로 성큼 나아갔다. “한때 구름이었던” 그녀는 시집을 통해 이제 또 무엇이 되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선정내역
- 2019 올해의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저자

방수진

경희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한국문학을,중국상하이화둥사범대학교대학원에서는중국문학을전공했다.2007년[중앙신인문학상]을받으며시인으로문단에데뷔했고,이후기자와카피라이터로활동하며다양한장르를넘나드는필력을쌓았다.중국문학작품을번역함과동시에중국관련콘텐츠를만들어내는1인크리에이터의삶을살고있으며,EBS[세계테마기행]큐레이터로참여해중국문화를소개한바있다.현재카카오브런치에서‘시인의정원’이라는필명으로다양한칼럼과에세이를연재중이며,옮긴책으로에세이『자주흔들리는당신에게』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雨연히
폭우
ㄱ의감정
무인반납기
도넛이론
개기일식
너를믿어본다는것
당신이멀다
불면
미발화(發話)시점
수취인불명
인정-L에게
물고기자리
알래스카의밤

2부
자라나는소년들
자라나는소년들2-모르는사람
자라나는소년들3-이방의목소리
네이멍구,기록수첩
흩어지는몸,실크로드
아마존일기
낮아지는골목-베이징,후퉁이라불리는작은거리에서
금(禁)성
어떤불시착
화성으로부터,여자
패스포트

3부
낙엽을버티는힘
창고大개방
부드러운통로
이등분을위하여
포도알기록서
오징어살인사건-메트로PC방
보도블록,미완성3악장
허바허바사진관의이력
그날들

4부
A병동326호
허공사용설명서
몽유
꽃피는중환자실
가로등
아이의방식
심야버스
귓불
오래된탄생
무너지는진화
영영
대기만星

해설|허희(문학평론가)
실버라이닝포에트리(Silverliningpoetry)

출판사 서평

농밀한상처를‘울음’으로치환하는시인

그녀는때로는위아래로,때로는좌우로,때로는비스듬하게끊임없이움직이며변해가는뭇존재의움직임을따라시적구름을띄운다.그래서일까.그녀의시는고여있지않다.유유히흘러가는구름처럼삶의기저에흐르는정서를가르며부드럽게유영한다.시인이띄운구름속에는온갖감정이응집되어있다.기쁨과슬픔따위의상투적인단어만으로는형용할수없을만큼밀도깊은감정이다.아마도그감정은“세상모든곪아터져가는것”에서비롯된것일테다.시인은그감정들을그러모아‘울음’으로치환한다.그녀에게시를쓰는일은곧‘상처입은것들’이내는울음을오선지에빼곡히그려넣는일이기때문이다.
“우리는매순간좌절하고,언제나불안하잖아요.다칠걸알면서도뛰어들고,힘들걸알면서도부딪히고,마음을다해서실패하고상처를또끌어안고…….하지만저는그상처를외면하거나아름답게꾸미거나하지않고,그것들이내는‘울음’에진솔하게귀기울이고싶었어요.저에게시를쓰는일은,그‘울음’을빼곡하게오선지에그려넣는일과같아요.저자신을둘러싼수많은상처의방정식을풀기위해노력하는일,그리고우리모두의삶이그렇게서로의상처를들여다보며한발짝씩앞으로나아가고있다는것을말해주는일.”
―『시인수첩』,2019년여름호,‘시인대시인’인터뷰부분

이시집의해설을맡은허희평론가는방수진시인을일컬어‘육체의현상학자’라고정의했다.그만큼“허황된말을남용하지않는다는의미”(해설「실버라이닝포에트리(Silverliningpoetry)」)다.과연시인은언어를낭비하지않는다.덕분에그녀가다루는어떤상처도왜곡되지않는다.그녀는모른척뭉개버리거나아닌척포장해버리는등의속임수를쓰지않으며,상처가꽃이되는마법은더욱이흉내조차내지않는다.상처가내지르는‘울음’을있는그대로“진솔하게”오선지에받아적는(그리는)시인의정직함덕분에그녀의시들은더도덜도아닌정량의감정을머금고있다.그래서그녀가그려낸오선지의곡들은지나치게구슬프거나유난히들떠있지않다.다만나직이다독일뿐이다.당신처럼나도그러하다고,그러니괜찮다고.

우리는고목나무처럼나란히누워
서로의마른살갗을가만히
매만져주곤했었다마치,
이것말고는기억나는일이없다는듯이
마땅히해야할일이떠오르지않는다는듯이
서로의손끝에서툭툭떨어지는살갗을바라보며
낄낄대며웃었다

들러붙은웃음들로벽지가눅눅해졌다
마주한어깨가쉼없이녹아내렸다
자주너는등을한껏웅크린채
아무리불을끄고눈을감아도
쉽사리어두워지지않는밤에대해중얼거렸다
그럴때면가본적없는알래스카의자정을떠올린다했었지

그곳에선,한번감았다뜨는별들의눈동자만으로도
이생의기억이제온도를찾아퍼덕이고
눈이쌓이는소리를조용히배웅하는마음만으로도
일생을살아갈수있다고말했었지
매일알래스카를떠났다돌아오는네발걸음이
내심장위를도장찍듯새기던날들,

하루는네가떠나버리고
저물지않는너의밤에
커튼을치러들렀을때보았다

네상처의낱장이
둥둥떠다니는큰물방울이되어
침대를적시고
바닥을채우고
지구정반대편의,
어쩌면애초부터나에겐
단한번도주어지지않았을지모르는
너의세계를한없이적시고있는모습을
젖을대로젖어축늘어진감정의테이프가
일생을거쳐말라가는모습을
―「알래스카의밤」전문

시선과함께몸을움직이는시인

“비의잠재성이자가능성”(해설「실버라이닝포에트리(Silverliningpoetry)」)인구름은언제든지상으로쏟아져내릴준비를하고있다.방수진의시적구름역시그러하다.무수한감정이응집된그녀의구름은상하좌우로또는대각선으로옮겨다니며읽는이의내면으로불시에쏟아져내릴잠재성과가능성을품고있다.시인은하늘을유영하는구름처럼시선과더불어몸을움직여깊이를창안하고,넓이를고안하며,입체를형성함으로써시의경계를확장시킨다.상승과하강을거듭하며위아래를오가도(「창고大개방」등)어지럼증이일지않고,대륙을떠돌며멀리더멀리나아가도(「흩어지는몸,실크로드」등)고단하지않고,당신과나사이도무지메워지지않는공백을가로질러가도(「도넛이론」등)멀미가나지않는것은시인이그저대상에시선을드리우는데에그치지않고‘몸소’움직이기때문이다.

강제로살을파고든적없었다
벌레는살갗이무르고터질때까지
시간의뒤만쫓을뿐

벌레의통로는부드러웠다
몸뚱이가스쳐간곳은모두상처였으나
아프지않았다
그누구의방이든제몸집어넣는것이
나오기보다어렵다는걸,
뱃가죽몇번찢기고서야알았다

사과는시간이지나면몸여기저기에멍이든다서서히열리는부드러운통로들,힘줄을사뿐히넘고통로의밑바닥을삭삭긁으며전진하는벌레들,부드러운흔적들이달콤하다
―「부드러운통로」부분

그러나어떤경우에도시인은대상속에“강제로”침투하지않는다.다만그녀는‘흔적’을쫓아갈뿐이다.상하좌우그리고대각선으로이동하며상처의흔적을더듬는여정임에도“아프지않”은까닭은그통로가부드러울뿐더러심지어는“달콤”해서다.어쩌면시인은그통로에서빛을감지하지않았을까.상처입은과육에도“힘줄”이있다는걸발견했으니말이다.그러니시인이이시집에띄운구름역시빛을품지않을수없는것이다.
이제,구름을감싸는따스한빛을발견할준비가되어있는가?

그런당신에게라면마지막으로권하고싶은것이있다.방수진의구름에서반짝거리는걸살펴보라는조언이다.그녀의구름에는실버라이닝―구름의가장자리에서퍼져나오는한줄기빛이있다.“구름뒤에는항상빛이있어요.인생에서빛을찾으세요.”([Lookforthesilverlining])쳇베이커(Chetbaker)가부르기도한이노래를들으면서나는방수진의시집을손에들었고,주로대각선적인것에서그녀구름의실버라이닝을찾아냈다.이시집에없는밝음을진짜본것인양거짓말한게아니다.이것없이는여정을시작조차못했을테니까.실버라이닝을품은구름이오늘도우리머리위를지난다.
―해설,「실버라이닝포에트리(Silverliningpoetry)」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