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산책 (윤진화 시집)

모두의 산책 (윤진화 시집)

$8.00
Description
야생의 사냥꾼 대신 산책자로 나타난
윤진화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집을 기다렸다. 2005년 『세계일보』 당선작 「모녀의 저녁식사」도 인상적이었지만, 2011년 첫 선을 보인 시집 『우리의 야생 소녀』에서 그려냈던 강렬하고 원초적인 세계는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고, 뜨문뜨문 그의 시를 접하게 된 독자들은 갈증의 한계에 이르렀다. 독자만이 아니라 시인 스스로도 갈증처럼 원했던 시집, 윤진화 시인은 이제야 첫 시집의 황야에서 성큼 걸어 나와 또다시 이상한 나라의 골목 어귀에 서 있다.
첫 시집을 출간하면서 사람들은 그를 ‘야생 소녀’라 불렀다. “허리춤에 사냥한 매를 단단히 꿰”(「초경(初經)」)고 황야를 누비며 뭇 목숨들의 피 냄새를 맡던 존재. 윤진화 시인의 모습이다. 언제 어디에서 침투할지 모를 외부의 공격에 맞서 기민한 촉수를 세운 채 살아야만 했던 그 야생 소녀는 “어떤 공격성과 예기치 않은 고통에 민감”했으며, 그렇기에 어떤 “장식도 증식도 없는, 화장하지 않”(『우리의 야생 소녀』 소개문)은 얼굴로 길을 나서곤 했다. 그런 그가 여전히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둥둥둥 북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울리던 황야의 한복판을 떠나 기이한 기운이 감도는 이상한 나라의 골목 앞에 선 그의 모습은 여전히 민낯인데도 어딘가 낯설다. 활과 창으로 무장하지 않은 까닭일까. 그는 더 이상 사냥꾼의 행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그의 낯빛, 표정, 손짓, 걸음의 속도와 리듬이 달라져 있다. 그리 바쁠 것 없이 뚜벅뚜벅 발을 내딛는 산책자의 모습처럼. 무엇이 이 맹렬한 야생 소녀를 이토록 침착하게 바꾸어 놓았을까? 그가 거니는 또 다른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민낯으로 이상한 나라의 골목을 거니는 그와 함께 『모두의 산책』을 떠나 보자.
저자

윤진화

2005년『세계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우리의야생소녀』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나의가장처음지닌것
비내리는연못
도마뱀
검객
마우스를긁으며
그때죽은고양이,설마
어머니빵집―제주도에서
고양이하지
여우애사
나쁜꿈에서벌떡일어나듯
또당신
각개전투미신사전
천형(天刑)에게
계단의진화
생일―산후조리원에서2
오빠·41
비와무덤과창살아래
간절기를지나는지하철
나의알흠답고신비한
지금은슈퍼울트라맨과―빨강머리앤에게
명랑한구구단
다시또다시
출산예정일―산부인과에서1
바라건대
벌거벗은여자가
요강
기차를탔다
손금을풀다
유서(宥恕)
모란
사과와아이와

2부
안단테에스프레시보
안녕하세요,하나님
파두(Fado)
젊은치매
뜬금없이소나기
신입사원
매장
부국해양연구소장님께
신이다니는길
안개꽃
두손의수
어디만큼왔니―산후조리원에서1
서부의총잡이
결혼
부자사용법
보도블록밑으로바다가흐른다
송내
다시,시다
인생무한다면체그리고소외효과
플라워#해방
불면증
죽음의형식

이상한나라의골목
초대
뱀―산부인과에서2
야구가최고야
빵굽는섬

해설|최광임(시인)
공수와독백,앤과앨리스의주술성

출판사 서평

지구라는둥근빵에서

아이스커피들고
지구를산책하고있어요
-감정을갖고천천히
안단테에스프레시보

어제없던풀이돋아나고
그제없던이가내일온대요
모레꽃이피고
다음날잊히는것

지금마시는커피가사라지고
작은행성이부서지려고지구로온대요
-감정을갖고천천히
안단테에스프레시보

죽은친구가보낸편지를읽고
태어날아이를떠올리는것처럼
팔다리를흔들어보다
눈을떴다천천히감는것

-수많은어제울어요
하나뿐인오늘은울지않으려고
―「안단테에스프레시보」전문

시인이“감정을갖고천천히”거니는이곳은바로“지구”다.어느동네의공원이나대도시의빌딩숲과같이특정장소를거니는것이아니라,우주의무수한행성중하나인“지구”를산책하는것이다.인간과동식물이,인간과인간이공존하는이지구에서는어제와오늘과내일이다르다.“어제없던풀이돋아나고/그제없던이가내일”오며,“모레꽃이피고/다음날에는잊히”기도하는그런지구다.산책중에마시는“커피가사라지고”나면“작은행성이부서지려고지구로온”단다.돌고도는지구위에서돋았던풀은시들고,피었던꽃도다음날지고만다.컵안가득했던커피가조금씩줄어가는동안먼먼곳에존재하는어느행성은죽음을맞으러지구로온다.그와중에그는“죽은친구가보낸편지를읽”으며“태어날아이를떠올”린다.시인은지구를산책하며그모든일을‘목격’하고‘감내’한다.어제태어난무엇이오늘을살다내일죽음을맞는지구의풍경.야생소녀로살아본그이기에이서늘한풍경을담담히바라볼수있다.

다른행성의맛을기다리는동안
지구를천천히돌며
산책한다,습도는적당한가
빛의양은적절한가,당신의사랑은가득한가
―「빵굽는섬」부분

“습도와염분을알맞게갖춘바다”덕분에맛좋아보이는‘지구라는빵’은“태양빛에”“부풀어올”라“적당히둥근모양을유지”하고있다.“신의묘책”으로“서서히”“자전”하며“골고루”구워진이지구를시인은“천천히돌며/산책한”다.“신의흰거짓말”을꿋꿋이믿는‘빨강머리앤’(「지금은슈퍼울트라맨과―빨강머리앤에게」)의긍정성으로계속해서걸어나가는것이다.그가사냥을멈추고황야를벗어나‘지구산책자’로길을나선까닭은무엇일까?“멀쩡해보여도”,“튼튼해보여도/전쟁은계속되었”기에“쉬고싶어”(「두손의수」)서인지도모른다.그런데과연그뿐일까?아니,그보다더명확한이유가있다.“희로애락생로병사길흉화복흥망성쇠/모두단조로”흐르는숱한사연들속에서“징조와증후를읽”는것이“시인의몫”(「손금을풀다」)임을깨달았기때문이다.
그래서일까?시집면면에는시인으로서의자의식이묻어난다.때로는“시인이란꼬리를치마속에감추고/무덤으로들어”(「매장」)가기도하지만,자신의본질은‘시인’이란걸알아버린그는‘사냥꾼’이아닌‘산책자’로서지구의모든“징조와증후를읽”어나간다.지상모든존재들의“길흉화복을점치고카타르시스를주듯시인또한언어를통해타인의슬픔과고통을대신노래하며정화”(해설,「공수와독백,앤과앨리스의주술성」)하기위해말이다.“부국해양연구소”라는간판을내건‘남영동대공분실’의소장님께편지를보내“아가미호흡실험”(「부국해양연구소장님께」)의진상을밝히려한것이나,“타워크레인에올라있던/해고노동자”(「인생무한다면체그리고소외효과」)의추락사를진술한것도모두그러한까닭에서비롯된것일테다.이어쩔수없는천성을거부하지못해시인은오늘도“시가되어짖는다”(「천형(天刑)」).

「이상한나라의골목」에자리한‘그림자극장’으로의「초대」

걷고걸으며지구를산책하던시인은어느“이상한나라의골목”에닿는다.한때용맹한‘야생소녀’였던그도이낯설고기이한장소앞에서는머뭇하게되기마련.시인은그자리에머물러“앞서걷던아이”를본다.“저앞에길이있다며/모퉁이를잡고사라”진그아이는시인과“꼭닮”아있다.“산책길에그만아이를잃”었지만그“골목”을통과한뒤다시자신을“향해이리오라고/어서이리오라고”손짓하는그아이를발견한다.그런데“저기저만치/또다른아이가손을흔”든다.이기묘한광경,『이상한나라의앨리스』속의한장면같다.“나이많은내가나이어린나를”보는“이상한나라의봄”을경험하며“낡은계단”앞에서몸이“늘었다줄었다”(「이상한나라의골목」)하는동안시인은과거와현재를무수히오간다.그러나계절은“아직도//봄”(‘시인의말’).시인은‘봄’이계속되는“이상한나라의골목”에서“낡은계단”을끊임없이오르내린다.

1.
잃어버린계단이돌아왔다
어디다녀왔니
분명마흔다섯개였는데…
어디있었어
계단하나가옆구리에박혀있다

(…)

5.
진화는
참꽃이아니라늙으면서변한다는뜻,
계단이잘자랐다
무릎에박혀자라고
손등에내려자라고
―「계단의진화」부분

“마흔다섯개”의‘나이’로상정되기도하는“계단”은그동안무던히도오르내린까닭에닳아지고낡아있다.시인에게“계단”은세월을지나며한장한장구워낸벽돌같은것.“무릎에박”히거나“손등에내려”“잘자”(「계단의진화」)란계단을딛고시인은“이상한나라의골목”저너머로나아간다.누추하고후미진골목구석구석을들여다보고,그풍경에비낀“희로애락생로병사길흉화복흥망성쇠”를노래하기위해.사랑(「여우애사」),결혼(「결혼」),출산(「출산예정일―산부인과에서1」),죽음(「다시또다시」)으로이어지는모든존재들의생애를“공수”와“독백”(해설,「공수와독백,앤과앨리스의주술성」)으로대변하기위해.“해와달이하루딱한번만나는시간//그림자극장의서막이열”리는가운데시인은“불콰한두그리움”의접점속에서담담한독백으로“주인공아닌주인공”들을“초대”(「초대」)한다.연극은,그렇게시작된다.

윤진화의독백극식시들은만신의풍모를갖춰간다해도부족하지않을듯하다.개인을넘어사회의소외된곳의말들을대신하는경지에이른것이라보기때문이다.윤진화의독백극은시적대상에대한깊은이해와연민을드러냄으로써공감하거나비틀기를통해사회의부조리를드러낸다.인물의심리적변화를정확하게또는상징적으로드러낼수있는독백극의특성을차용하는방식을취한셈이다.
―해설,「공수와독백,앤과앨리스의주술성」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