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악기의 고백

어느 악기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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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꾸는 위반의 미학
김효선의 『어느 악기의 고백』
시인수첩 시인선은 연달아 제주 시인의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4·3의 아픔을 생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자연’에 녹인 정찬일의 『연애의 뒤편』에 이어, 시인수첩 시인선 서른네 번째 시집은 김효선의 『어느 악기의 고백』이다. 시인은 ‘제주’ 고유의 언어와 독특한 시적 표현으로 내밀한 세계를 그려 내고 있다. 특히 전작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가 ‘고통’이라는 시어로 타인과 세계의 존재를 바라보는 윤리를 드러냈다면, 이번 시집에서 김효선 시인은 ‘제주도’라는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언어로 시인 자신의 삶과 연속적 관계에 있는 고유한 세계를 환기한다.
시인은 그 자신이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제주’와 분리시킬 수 없는 특유의 언어를 기호 삼아 특정 세계와의 내밀한 연속성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만드는 시적 변주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또한 예기치 않은 시간에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시인에게 도래하는 시적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더한층 적극적으로 틀에 박힌 미적 질서에서 이탈하고자 한다.
저자

김효선

제주도서귀포시대정읍에서태어났다.2004년계간『리토피아』신인상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는『서른다섯개의삐걱거림』(2008년문화체육관광부선정‘우수교양도서’선정),『오늘의연애내일의날씨』가있다.2018년〈아르코창작기금〉을수혜했으며,제2회〈시와경계문학상〉,제2회〈서귀포문학작품상〉을수상했다.현재제주대학교에서강의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사랑만큼지독한방부제가있을까
바다유리심장
애인-어떤방식으로든이전에죽은모든사람
크루아상
어느악기의고백
기연(機緣)
우표를붙이겠습니까
미투리
먼바다
나전칠모란넝쿨무늬에감기다
사랑하는서쪽
분홍바늘꽃
개기월식
골목이없다면
여자47호
멜랑콜리아
숨은물뱅듸
이치(理齒)

2부|서서울어야할때가온다면
우리도소풍일까
우리작약할래요?
종묘제례악
아보카도는기다리지않는다
폴터가이스트
2월29일
물밖에서가정하다
말하지말고꽃할걸
서서울어야할때가온다면
오늘의운석
그러므로블라인드
체리의종점은어디인가
마가리타
세모의세계
올라갈까요찌르르
내마음의몬순을지나

3부|가장어렵게읽히는기억을삽니다
해골해안
눈많은그늘나비
먼물깍으로걷는나무
싱글몰트로가는길
외출
매일매일의숲
시다모내추럴
고양이와튤립
너는팥배나무위에종다리를앉혀놓고
로라의바깥
밤의해변에서
공중의예언
탕탕이와크로노스
치즈는왜숲에서발견되었을까
봄은짐승처럼저녁으로피어
라일락으로가자

4부|천년이지나도한눈에너를알아보겠다
서로의미륵을부르다
나의애완동물
우도에는저녁이산다
유효기간
아날로그감정
이녁이라는말
하논의시간
몽상,애월에서
결혼
이별알레르기
제철눈빛
양하를아시나요
바람까마귀
다시,서귀포
각자도생(各自圖生)
나의장례식

해설|고봉준(문학평론가)
물의언어

출판사 서평

말할수없는것을말하는시,그것이발화하는순간

어떤시들이난해한까닭은거기에깃든시인의윤리를타인이100퍼센트이해하기어렵기때문이다.이윤리나인간의내적경험같이언어로완벽하게표현하기힘든것,‘말할수없는것을말하는’사람이바로시인이라고할때,김효선의시는이명제를여실히증명한다.『어느악기의고백』에는시인이말할수없는것을말하고자마음먹는순간,즉시가발화하는순간을포착한듯한작품이여럿실려있다.
시인은‘크루아상’,‘매미’,다육식물의한종류인‘로라’같은일상적풍경에서포착한순간을특유의언어로그려냄으로써대상을낯선세계의무언가처럼보이게하고거기에자신의윤리를투영한다.다음의「이치(理齒)」같은시는치과진료대에누워있는화자에게시가도래하는순간을포착한작품이라할법하다.

팬이돌고있다안에서도밖에서도

한철시달린꿈들이
바닥에얼음을쏟았고
눈썹을그리려던펜슬은
굴러가박살이나버린
오늘인데글피의글피를걱정하다
아슬했던치아가떨어져나갔다

(……)

살려고발버둥치는세렝게티를보며
두다리보다두눈을어디에감춰야할지
하마처럼입을크게벌려보세요
최대한크고날카로운이빨을가진다면

내가나를다지나간후에
별이빛나는걸걱정할까
내가너를다지나간다면
발치한슬픔이
개코원숭이처럼돌아오지않을까
주저앉아버린마음이잇몸에서흘러내려
아무리방수를해도물이새는지붕
팬이돌고있다안에서도밖에서도

(……)
-「이치(理齒)」부분

시「바다유리심장」에서는“절벽에핀나리꽃”을포착한순간이“그릴사람있다사뢰고싶습니다”(향가「원왕생가」의한구절)라는,누군가에대한강렬한그리움의정서로이어진다.시속화자는“너무많은걸생각”해서“나를잃어버”린자기상실의상태에서“모서리에기댄밤”에불현듯도래하는무언가를느끼게된다.그리고그것을“주웠어”라고표현하는데,시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고봉준은이것이시인에게시가발화하는순간과다르지않다고말한다.


‘제주’의언어로그려내는낯선고유의세계

제주에서태어나성장한시인인만큼,김효선의시에는‘제주’와관련된지명이나자연사물이자주등장한다.‘넓은들판’을뜻하는‘뱅듸’,우도해안의절벽을가리키는‘톨칸이’(「우도에는저녁이산다」),벼랑에위태롭게매달려살아가는풀들인‘가막살,피라칸다,좀작살’(「유효기간」),서귀포에위치한마르형분화구인‘하논분화구’(「하논의시간」),‘당신’을뜻하는‘이녁’등은‘제주도’라는고유한세계와분리되어존재할수없는언어들이다.
제주도라는세계를둘러싸고있는‘바다’역시다양한얼굴로등장한다.「먼바다」라는시에서‘바다’가불투명성을고유한성질로가진대상으로그려졌다면(“당신은모자안에뭘숨기고있나요”),「다시,서귀포」에서는리비도를투사할대상으로그려진다(“한평생푸른바다엔전복소라멍게해삼/영원한보물이그리움인지도모르고돌아갔다지”).이시에서서귀포는“살고싶어”지는곳이자“가장뜨겁게오래피는마을”로그려지는데,이는시인자신이제주도에대해어떤태도를견지하고있는지를단적으로보여준다.
고봉준평론가는김효선의시가‘바다’에접속될때가장돋보이며,그순간가장순도높은내면의언어로발화된다는점에서시인의시를“물의언어”(「물밖에서가정하다」)라부를수있다고말한다.이렇듯김효선의시에서무엇보다도주목해야할것은‘제주’라는삶의터전에맞닿은언어로발화되는‘그너머’의세계이다.김효선의시에서‘바다’나‘제주’이외의것,요컨대일상적경험에대한시적변주의양상에주목해야할이유가여기에있다.

(……)
오후내내반짝이는윤슬이었다가
저녁이오면사라지는꽃들

초승에서하현으로넘어가는동안
바다는멀미로기억을잃고

오래바라보면볼수록너는
내가아는얼굴이아니야
우리언제만난적있나요?

하루에70만번들썩이고뒤집어지는
파도가바다의운명이라면
어느가슴에서뜨고지는달이길래
가도가도먼지척일까

잘린손톱들모두애월바다에와서
오래오래뒤척이다

거스러미로돋아나는,
-「몽상,애월에서」부분

「몽상,애월에서」에서화자는‘애월바다’를마주보면서,친근한대상으로여겨지던바다가낯설게경험되는순간에대해이야기하고있다.익숙한것이낯선것으로,주체의배경이라고간주되던세계가이질적인세계로,그리하여“우리언제만난적있나요?”라고물어야하는대상으로등장할때가바로시가발화되는순간이다.

그리고이지점에서두개의표정은하나가된다.익숙한것이낯선것으로,투명하던세계가불투명한세계로,그리하여대상이“들을수없는물의언어”로이야기할때,시인은그것을자신의음성으로번역하는복화술사가된다.
-해설「물의언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