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나무를 (이병일 시집)

나무는 나무를 (이병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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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생명력 가득한 언어들이 만들어 낸 에덴의 세계
이병일의 『나무는 나무를』
‘시인수첩 시인선’의 서른여섯 번째 책이자,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인 이병일의 『나무는 나무를』이 출간되었다. 자연과 동물을 주요 시적 대상으로 삼은 이번 시집 또한, 등단 이후 지금까지 ‘서정’의 밀도를 꾸준히 채워 나가는 이병일 시인 특유의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첫 시집 『옆구리의 발견』(2012)에서부터 두 번째 시집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2016)을 거쳐 이번 시집 『나무는 나무를』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시선은 끊임없이 유동하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자연을 향하고 있다.
시인은 삶의 이치를 말없이 견뎌 내는 자연에게서 존재의 고독을 발견하고, 그들의 고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그들보다 더 낮은 곳에 위치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사람과 사물 그 사이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내는 일이 시라고 믿었”으며, “어머니는 사물을 잘 보려면 몸이 먼저 어두워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고백한다. 자연과 공존하며 거기에 깃든 고독과 생명력을 포착하고 그려 내는 과정에서 시인의 언어는 점점 에덴을 닮아 간다.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전영규는 시인이 그리는 “자연이 지닌 첨예한 생명의 촉수”가 “어느덧 시인의 에덴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

이병일

1981년전북진안에서태어났다.중앙대학교문예창작학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2007년『문학수첩』신인상에시,2010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희곡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옆구리의발견』『아흔아홉개의빛을가진』이있다.‘대산창작기금’을수혜하고〈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피자두·13
나무는나무를·15
가을비·16
진관사에서·17
거머리소년·18
고사목·20
붉은빛의거처·21
절망에바치는송가·22
나무소년·24
물병·25
생태에젖은뱀들의피·26
물그릇의기도·28
동백과고라니·30
장도리와못
천렵(川獵)
개기월식·36
여우의후일담·38
향고래·40
사냥꾼의후예·42
낮에생긴피·43
신보트피플·44
계단식논의수력학·46
침보라소·48
팥·50
발·52
족제비꼬리털의구언(丘言)·54
외면·56
백운·57
꽃잎,꽃잎으로·58
불개와달
조용한이야기·62
일각고래·64
아무르호랑이의쓸모·66
바위많은설악에서·68
곰나루의큰돌·70
흰소의산책·72
백사숲도롱뇽·74
은도끼금도끼·76
당분간·78
굴뚝숭배자·79
불과꽃과잉어의시·80
소나기정물·81
파랑새가된사람·82
멧돼지와달의파수·84
끝없는여름
들장미·87
한오라기의존재감·88
곡우(穀雨)·90
홍어의시·91
나의지붕·92
마지막제의·94
얼음새꽃·96
극야·97
설경

해설|전영규(문학평론가)
녹명(鹿鳴)에서적명(赤命)으로

출판사 서평

에덴,태고의낙원에가닿고자하는속깊은열망

그렇다면,시인이그리는에덴은어떤곳일까?서정시를이른바‘시의원형’이라고할수있듯이,시인이그리는에덴은인간이더럽혀지기전순수한본연의모습으로돌아간곳이다.“모래알이휘발되도록빛을숨겨두”는사막(「발」),모든것이“몸을휘더듬는물빛이고물소리로돌아”가는곳(「계단식논의수력학」),“우리에게피를주고공중을높이치켜든저피자두나무”(「피자두」)의이미지처럼,이병일시인이추구하는에덴으로서의시는아픈곳을치유해주는신앙의시다.

저물빛을쫓아침묵을삼키고지평을넘는얼음장수
구름털이따가운당나귀의입이되고발이된다고했네
오래쓰고곱게쓴곡괭이로죽을만큼힘을쓰고
바위를밀어내고흙을파고빙하를찾는다네
얼음은아픈곳을낫게해주는신앙
짐승과사람을새것으로반짝,바꿔놓는다고했네
절벽은외면할수없어서
한참씩기도를하고
한참씩이쪽저쪽잘통하는바람으로낯을씻는다네
-「침보라소」부분

시인이그려내는생명과치유의이미지는시의언어를통해에덴이된다.시인이발견한생명의속성은끊임없이순환하는여정을거치고,그순환의과정에서살아있는모든것은치유된다.여기서생명이란,위의시에“당나귀”가나오듯사람만을가리키지는않는다.“나의시쓰기는사람의눈이아니라동물의눈과입과귀가되고자했다”(이병일,「나는왜동물의언어에집착하는가?」,『포에트리슬램』,2019)는고백처럼,이병일시인의에덴에는여러동물이산다.
“죽기전까지몸에우물을파고,잔별이란이끼를키”우는향고래(「향고래」),“일곱가지의병을가진아이를위해”“이빨과발톱과눈동자를꺼내”주는아무르호랑이(「아무르호랑이의쓸모」),“북두칠성뜨는밤,저수평선끝까지다녀와서빙산곁에서죽는”일각고래(「일각고래」)는시인이추구하는에덴그자체인동시에시인자신이그리워하고되고싶어하는어떤존재다.시인은에덴을그리면서도자연에깃든고독을잊지않는데,이것이바로이병일의‘서정시’가자연예찬에만그치지않는이유다.표제시인「나무는나무를」에이러한‘자연의고독’이잘나타나있다.

나무는나무를지나커다란물항아리로앉았죠
꽃과열매를다잊고골짜기에서짐승과한철,
겹겹산능선을이루면서지친기색도없다지요
나무는나무를지나죽고,
죽은후에야그루터기란이름을가진다고해요

온화하게산과강을건너는저녁을삼킨나무
오늘은신발벗어두고달의핏자국을만져요
나무는천둥새를쫓아온사냥꾼인데요
뉘우침도많아서왜여기에왔는지금방잊고요
첫서리에제혼이핏빛으로지나간다고잎을벗죠
-「나무는나무를」전문


‘붉은빛’으로빛나는생태의세계

전영규평론가는이번시집을시인의앞선시집들과비교했을때이전에는보지못했던낯선색채가발견된다면그것은바로‘붉은빛’이라고말한다.“독니가진것들이매일바퀴에깔려죽었지만/붉은빛은끝도없이목가진것들을비틀어꺾는다”(「붉은빛의거처」),“雪花에기대어사는것들은발자국을지닌짐승인데/으깨진것들은붉은빛으로발견되었다”(「동백과고라니」),“땅위에사는것들은팥의껍질과붉은빛이/오장육부의피를틔우고귀신을쫓는다고말하죠”(「팥」)등에등장하는‘붉은빛’은생명을상징한다.이‘생명’은생생하게살아움직이거나뜨겁게불타는이미지이기보다는,죽은것들이새생명을얻거나정화되어원래있던곳으로돌아가고자하는지점을상징한다.

폐허,절로외져없었던것들이여기저기서모여든다

날씨가흐려도목청을높이는사슴떼가청태를뜯는다

여남은뿔에만골라피는봄빛이흉터를지우려할때

반은희고반은분홍인것이그저신성한그짓을했다

다저녁별자리와뿔은묵약도없이한방향으로자랐다

뿔에난꽃가지들은쌀랑쌀랑낙화도없이설경인데

당분간몸이되려고하는것들이신열을앓을것이다
-「당분간」전문

붉은빛은또한흙의빛깔과도닮았다.이런점에서이병일의시는흙에서태어난생명이흙으로돌아가는자연의섭리를노래하고있기도하다.자연속에서생명의첨예한촉수를발견하며그들과공존하는법을배운시인의언어는,어느덧흙이가진빛을닮아간다.

낮과밤이둘로갈라지듯
뼈와살은흙의얼룩과빛으로돌아간다
한세상떠돌면서
아직도멀리가지못했는지,
돌부리만일렁거린다
태풍이왔지만초분은무너지지않았다

물난리난어느오후의왕잠자리나와놀듯
진흙두꺼비앉은자리에서벌떡일어나고
땅벌레들붉은빛을훔쳐와서아궁이를굽는다
-「파랑새가된사람」부분

이병일의세번째시집『나무는나무를』은다시태어나고자붉은신열을앓는자연의이미지로가득하다.시또한자연의생명들을향한시인의애정과더불어아름답게빛날것이다.

나의시가흙이가진빛을닮고자하는시인의순연한욕망은,내가살고있는이곳을향한사랑에서비롯하는것일지도모른다.혹은나를포함해흙에서태어났기에언젠가흙으로돌아갈생명의섭리를따라가는것일수도있겠다.시인의에덴처럼,실러또한“식물과동물은인간에게영원히가장소중한것으로남아있는,인간이잃어버린어린시절을나타내는것”이라고말한바있다.흙이지닌빛을닮고자하는시인의언어는지금도아름답게빛난다.우리에게가장소중한것으로남아있을,우리의잃어버린어린시절이자언젠가돌아가야할그곳.-전영규(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