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한 사람 (문성해 시집)

내가 모르는 한 사람 (문성해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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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평범한 일상이 지켜 낸 삶의 거룩
문성해의 『내가 모르는 한 사람』
‘보편적 삶’을 노래하는 시인 문성해의 다섯 번째 시집 『내가 모르는 한 사람』이 ‘시인수첩 시인선’의 서른여덟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네 번째 시집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에서 ‘밥’을 통해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이야기했던 문성해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고되고 궁핍한 평범한 일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깊은 시선을 보여 준다. 다만 지난 시집의 ‘일상’에서 삶의 불안함과 불분명함이 엿보였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지나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거나/사랑할 수 없는 사람/시인”(「방랑자의 시」)으로서, 삶을 환대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지나간 시간과 현재가 맞물리면서 만들어진 순간들에 대한 환대를, 해설을 맡은 이병국 시인은 “견고함이 주는 위안”이라고 말한다.
저자

문성해

1998년『매일신문』,2003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등단.시집으로『자라』『아주친근한소용돌이』『입술을건너간이름』『밥이나한번먹자고할때』가있다.〈대구시협상〉〈김달진문학상젊은시인상〉〈시산맥작품상〉수상.

목차

시인의말

1부
뒤태
나의거룩
은빛자전거에대한명상
서설홍청(鼠齧紅菁)
그때의춤은
두릅
버섯
밖이라는것
두시간
바구미를죽이는밤
두루마기에보자기쓴여인을보다
생몰미상(生歿未詳)
방과후강사
달리는울음
추일서정(秋日抒情)

2부
학원들
방랑자의시
말,혹은물품
화가
세녹스
사랑의법칙
늙은기차
난초도둑
관람의자세
지구인-고사노요코에게
변기닦는여자
베드로
벌치는여자
과일파는사람을위한랩소디
내가너의이름을부를때

Y의이불

3부
늙은제자
쌀점(占)을보러가다
밖이키운아이
계곡
오일장해부학
꽃중년
첫기차에는창(窓)이많다
인면어
처서
연을든사람
혼자먹는밥
울음나무아래를지나다
나무로만든다리
연(蓮)의시
종달리
베란다에는빨래가마르고
전화
오늘의무전취식

해설|이병국(시인ㆍ문학평론가)
견고함이주는위안

출판사 서평

과거에서현재까지의삶을관통하는견고함

직전의시집에서고독이라는절박함으로삶을기록하고표현해야하는시인의삶을표현했다면,이번시집『내가모르는한사람』에서시인은지난날에대한사유를통해현재를재구성한다.이병국시인은해설에서“삶의지난한때를돌아보면서느끼는회한이란현재에대한부정이라기보다는지난시절의곤궁을통해현재를긍정하고자하는마음의반영”이라고말한다.그리고이는삶에대한견고한사유로만가능하다.
문성해시인이사유하는삶이란극적이거나화려한삶이아니라,보편적이고어찌보면통속적인삶이다.그와같은맥락에서시인의시는생활에의몰두를전유한다.
일상을살아가는사람들은가족을잃는슬픔을겪고나서도“두시간쯤지나자/숨도혈색도돌아오더니/밥도떡도먹고/메시지확인도”(「두시간」)한다.“밥을푸던손으로/변기를닦”(「변기닦는여자」)고,서먹한지인과만나“돼지껍데기에붙은젖꼭지가/불판위에서/빵빵하게부푸는것만보다돌아”오기도한다.이러한통속적인삶을향한몰두는,간과하거나부정되기도하는일상을시적재현의차원으로이끌어절대적환대로포용하는일이기도하다.
빠르게흘러가는속도의세계에서잠시멈춰서서자신을둘러싼존재들을실감하고그들의삶을잠시살아내는것이야말로문성해시의본령이라할수있다.

농아아저씨한분이갖다준참두릅
베란다에둔채까맣게잊고살다가
어느날신문지에서펴보니
가시가잔뜩세어져있다

(……)

몸에서목소리대신가시가나오는
그두릅나무선생은때가되면
울퉁불퉁몸엣것을툭툭불거지게내놓으며
달달한칭찬대신
날카로운가시들을마구방출할것이다
맘에안들면아예벌판위로벌렁내다꽂을것이다
-「두릅」부분

보팔로가는기차안
맞은편여인이
딸랑거리는방울을단두발을
내쪽으로뻗어왔다

망아지처럼
두툼한발바닥이다
쉼없이꼼지락거리는몸통과달리
쩍쩍갈라진그것은몇시간째시체놀음이다

(……)

갈라질발가락도없이
백개의쇠바퀴를가진기차가달리고
나는발들이누웠던움푹한자리로
손을뻗어본다
뒤늦은악수인양
-「발」부분

신체적제약으로화자에게시창작수업을계속받을수없었던“농아아저씨”가보내준두릅,기차안에서마주친어떤여자의“쩍쩍갈라진”발에대한시적사유는그저낭만적으로소비될관념같은것이아니다.그것은화자가직접겪고눈으로본일일뿐만아니라,“발들이누웠던움푹한자리로”“뒤늦은악수”를건네거나,“스물여덟에죽은맹인친구”를떠올리며“아무도옆을맞물려주는이없이”“옆구리가두둑해져감”(「베드로」)을비로소씀으로써과거의시간을현재와미래로이어주는견고한바탕이되는존재이기때문이다.

끈질기게이어지는삶의거룩함

『내가모르는한사람』의화자들은과거의시간을떠올리며현재를사유한다.이병국시인은“지나간시절과현재가맞물리며만들어낸순간을수용하여살아가는일이야말로삶의본류”라고말한다.과거에서지금에이르기까지의시간들을지켜냄으로써삶을유지하고이행하는일은거룩하게느껴지기까지한다.시「나의거룩」은이‘거룩한삶’에대한탁월한사유다.

이다섯평의방안에서콧바람을일으키며
갈비뼈를긁어대며자는어린것들을보니
생활이내게로와서벽을이루고
지붕을이루고사는것이조금은대견해보인다
태풍때면유리창을다쏟아낼듯흔들리는어수룩한허공에
창문을내고변기를들이고
방속으로쐐애쐐애흘려넣을형광등빛이있다는것과
아침이면학교로도서관으로사마귀새끼들처럼대가리를쳐들며흩어졌다가
저녁이면시든배추처럼되돌아오는식구들이있다는것도거룩하다
내몸이자꾸만왜소해지는대신
어린몸이둥싯둥싯부푸는것과
바닥날듯바닥날듯
되살아나는통장잔고도신기하다
몇달씩이나남의책을뻔뻔스레빌릴수있는시립도서관과
두마리에칠천원하는세네갈갈치를구입할수있는
오렌지마트가가까이있다는것과
아침마다잠을깨우는세탁집여자의목소리가
이제는유행가로들리는것도신기하다
하루가멀다하고닦달하던생활이
옆구리에낀거룩을도시락처럼내미는오늘
소독안하냐고벌컥뛰쳐들어오는여자의목소리조차
참으로거룩하다
-「나의거룩」전문

물론시집속화자들은“쌀한톨을두고대치하”거나(「바구미를죽이는밤」)“두시간강의를위해왕복여섯시간을”버스나지하철에서보내는등,전선으로서의생활을감내해야하는상황에서고단한삶을이어간다.그러나“가도가도따뜻한방과는멀어졌”(「서설홍청(鼠齧紅菁)」)던최북의사연처럼초라하고궁핍한삶이라하더라도,시인은삶의지속을긍정한다.

(……)
난지구에돈벌러오지않았으므로
햇볕과비와바람을공짜로쐴것이다
무전취식을할것이다
경찰서에도수시로들러
난남은생을바짝바짝담배꽁초처럼태워야지
목숨을놓고삶과거래를해야지
그러다가자꾸명이길어지면
본전생각난친구들도다끊기고
이곳에왔을때처럼난발가벗겨지겠지
돈없이명을잇는게거지라면난거지가되겠지
죽음이마침내날건드리며공짜로치워줄때까지
난진정한지구인으로만살것이다
귀신이따로없을것이다
-「지구인-고사노요코에게」부분

문성해시인의견고한사유가견지하는현재성은우리로하여금영속된시간이선사하는순간을긍정하게한다.그견고함은우리에게삶의무게로마냥주저앉지는않을것이라는확신과함께위안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