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 (김태형 시집)

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 (김태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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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내가 쓰는 시도 그 마술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김태형의 『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
시집을 읽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이는 시인의 약력을 제일 먼저 보기도 하고, 시집을 후르르 넘기다 선뜻 눈에 띄는 시 한 편을 먼저 읽기도 하고, 혹은 목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의 시를 골라 보기도 하며, 뒤표지의 추천사나 작품 해설을 먼저 읽기도 한다. 읽는 사람의 습관에 따라 혹은 시집마다의 묘한 분위기에 따라,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 순서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인수첩 시인선’ 40번째 시집 『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는 시인의 산문 「나의 서술어」부터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주례사와 같은 작품 해설의 자리에 놓인 이 산문은 김태형 시인의 이번 다섯 번째 시집과 김태형 시인이 어떤 이인가를 가장 쉽게 풀어놓은 공략법 혹은 자술서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초능력 훈련법이나, 프랑스 왕립천문학회에서 이름 붙인 소행성 ‘랭보’에서 시작된 자기 시론, 중학교 1학년 종업식에서의 마술공연, 그리고 자신이 돌이 되는 마술을 꿈꾸고 있다는 고백 등은 김태형 시인이 시인으로서의 삶과 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단면적으로 보여 준다.
저자

김태형

1971년서울출생.1992년『현대시세계』에시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로큰롤헤븐』『히말라야시다는저의괴로움과마주한다』『코끼리주파수』『고백이라는장르』,시선집『염소와나와구름의문장』,산문집『이름이없는너를부를수없는나는』『아름다움에병든자』『하루맑음』『초능력소년』등이있다.제4회〈시와사상문학상〉수상.

목차

시인의말

1부
마디
이루어진말
명사와서술어사이에놓인돌하나
파두
잃어버린정원
구름과마찬가지로
장미와고양이
초라한짐승
왜행성
유라크나무사이에서유라크나무가자란다
양의계절
투루툭마을의나귀는이렇게운다
네눈물은신의발등위에떨어질거야
현해탄은어디인가
잃어버린끈
위험한짐승
실어
하루가더있다

2부
나비는어떻게날아가는가
절벽사원에부리가노란까마귀가산다
바람놀이
밤고양이
틀뢴
돌아도는저녁
장면이있는어떤얼굴
외부
SamanthaFish-Iputaspellonyou
세번째발가락
저녁의경우
흔한구름
가려진달
나의고양이
문래동2가

3부
달에대해서라면할말이있다
고원을내려가며
알타이
잘린손가락
허구가되는방식
다른말
공유정원
내벽
거짓말속에늑대가살아있다

느린심장
잠든신과숭배자와구름속으로떨어지는뱀의시간
바구니
첫문장을받다
이르러서
사원에들어갈때는머리위의종을쳐라
창라

산문|김태형
나의서술어

출판사 서평

치열한낯섦의세계에서존재의비의를밝히는마술의세계로귀환

1992년,스물두살시인김태형의등장은당시시단에파문을일으켰다.그는다양한문화·사회·정치적코드를난삽하고난해한‘낯섦’으로만들어내면서20대시인이대치하고있는세상을치열하게보였다.자신만의감각화된언어로파편화된삶의기표들을섬세하게응집시키는시적마력도보여주었다.이때눈밝은독자들은이미그의시편에서,어떤세파에도흔들림없이시인으로서의운명을살아갈그의의지또한읽어냈다.
그리고어느새지천명에접어든시인은등단초기파격적인열정과혹독한고독이혼재하는강렬한내면의풍경을보여주는대신,성찰의태도로삶과사물,현상에깃든비의를밝히는마술사가되었다.20대의결핍과불안을치열한사고의흔적으로여과없이보여주었던젊은시인이,섬세한감각과개성적시선으로존재와세계의본질을탐색하는사유의세계를일상의구체적풍경으로펼쳐놓고있는것이다.여전히젊지만이젠시단의중진(?)쯤에위치하게된그시선은,그의시력(詩歷)만큼나직하고깊고평안하다.

바람이었다지평선이었다어둠이었던,돌에응축된시인의욕망

지금기다리는사람은
기다리는사람이다그뿐
젖은돌은젖은돌이되려하고
줄기러기는줄기러기로떠나갔다
오늘밤에는뭘할수있을까

옷소매가길어손등을덮었다
자주팔뚝을쓸어올려설산너머팔이길어져도
긴옷소매가흘러내려이내손등을가렸다
두손으로만질수없는것들
아무것도아닌것들만나를에운다

혼자였다면죽은사람이었을거라고
누가모닥불을피운다
내가아는말로나는가까스로말할수있을뿐
다지우고나자내손에돌하나쥐여있었다
-「네눈물은신의발등위에떨어질거야」부분

시인의산문인「나의서술어」에서김태형시인은“요즘내가꿈꾸는마술이있다.바로돌이되는것이다”라고고백한다.‘돌’은산문에서뿐만이아니라이번시집의작품속에서숱하게나타난다.시인은이돌을황무지를걷다가줍고,사막에서도줍고,“물때젖은조약돌하나”를건네받기도한다.또“수천개의돌속에두손을”묻기도하고,“발자국을감추기위해정원에돌을”깔기도하고어느순간엔“돌멩이같은숨”을쉬기도한다.도대체시인에게돌은어떤상징과의미일까?
김태형시인에게돌은하나의기원이다.“바람이었다가모래였다가볕이었다가화산재였다가들판이었다가지평선이었다가어둠이었을”돌을시인은간절히원한다.그것은태초의시원과닿아있고탄생과이어져있으며별과사막과연결되어있어시인은단하나의돌을통해모든것을보고만지고느끼기를소망한다.
돌은원시시대이후인류의역사를통해서도알수있듯이,단순히인간문명발달의도구에그치는것이아니라생명의탄생,풍요와수호등의신비로운권능의존재로여겨져왔다.시인은우주의신비뿐만아니라인간의본질이돌에압축되어있다고생각하며,스스로돌이되고싶어하기까지한다.본질에이르고자하는시인의욕망이투영된매개라고할수도있다.삶은실체가없고그러므로애초부터잡을수없는것인지도모른다.인간의존재,행위,감정,관계등하나같이잡을수없는것들이며이것들을잡으려손을대면오히려부서져버리기십상이다.그런데김태형시인은이렇게흩어져버리는존재와대상에대한감각,우연이거나일시적으로현상화된현실을하나의돌로집약하고상징하여감각화하고있다.존재와대상에대해감각하고이를전유하려는시적노력은현실의비현실성까지아우르게되며그의시의강한추동력으로작동한다.

새로운이해와질서로서의기다림의자세

훌쩍자라버린시인은젊은시절처럼세상에덤비지않는다.대신기다리며자세를가다듬는데많은시간을보낸다.

들판은눈이있고숲에귀가있다는말은이상하게도내게가만히고이더라

들판에선눈이되고숲에선귀가되지그게나였으니까그말엔내가있으니까곁이있으니까

들판이아니라숲이아니라내가있으니까

바라다보는끝닿은곳에지평선이한줄그어져있으니아무리세상이둥글어도내게는단한줄만그어져있으니그곳으로건너가는눈빛은참멀어져야했으니

나무뒤에나무들이있어그사이로바람이불어오고가만히양치류처럼귀가자라난다

바람에실려오는것은들을수없는소식들그럴수록귀는나무뒤로멀어지고귀가멀어서들리는것은들리지않는것뿐

내가되고곁이되고이세상이되어서오래된말은내일도오래된말이되고또오래된말이되고
-「이루어진말」전문

이제는비가내리지않고저녁별이뜨지않는다이름을잃어버린빈정원은덩굴에덮여가고있다아무리기어오르고뻗어나가려해도햇빛이되고바람이되고안개가될수는없지만정원은정원으로돌아가도나는죽은듯이기다리지말라고살아있으려고죽은듯이기다리겠다고정원이되어있다
-「잃어버린정원」전문

가만히있으면스스로고이는것들이결국시인이되고시의곁이된다.그래서시인은오로지가만기다릴뿐이다.기다림은수동의자세가아니라가장적극적인행위의완성된자세일것이다.“살아있으려고죽은듯이기다리겠다”는역설적표현에는시인의이런간절함이묻어난다.그는시를만들지않는다.시로써세상을붙잡을수있다는생각은오래전에접은것같다.다만그는만들지않고옮겨내려고노력한다.옮기는것은만드는것과달리시적대상을놓치지않으려는간절함이며대상의생존방식을최대한존중하는형식이다.그래서기다리겠다는시인의고백은대상의현현에대한문제에닿게된다.김태형의시는내면으로침잠해들어가세상과의소통을겨냥하고있다.세상과의관계를회피하고,소통으로부터도피하며,관계에서벗어나려할수록그의시는전방향적인,우주적접촉을시도한다.타자의이해를구하는것이아니라기다림을통해오히려직접적이고내밀한소통을시도한다.그는세상모든존재와대상을자신의시에가둘수있다는오만에서벗어나새로운인식과이해와질서로기다림의자세를가다듬는다.일반적으로시는사물과대상과존재를발견하고그것들의존재방식과각각의관계를포착해내는것이지만,김태형시인은대상과존재의경계,대상과존재의침묵을넘어서는새로운세계를일구고그세계안으로침잠해들어가기를원한다.이러한시적발견이그에게는존재의발견이라고할수있다.

스스로의미지를깨닫는그의마술

시는시인이아는것을쓰는것이아니라모르는것을쓰는것이다.시인은그것을모르되시는알고있는그것.그래서시인은앎으로부터철저하게멀어져야하며,매번기성의인식과사고로부터벗어나야하는데이런미지의여행을시인은관조와숙고로이끌어낸다.시적대상에대한단편적확인이아니라미지의영역에서자신역시하나의미지였음을마침내깨닫는일이그의시쓰기일것이다.
어려서마술을꿈꾸던소년은이제마술의시를쓰는시인이되었다.“새로운세계를창조할수는없지만,현실을다르게보여줄수”있는,“급기야나를찾고지우고다시태어나게할수있”는마술로우리곁에오래오래남아있을것이다.

여전히나는삶에대해알지못한다
시월찬바람에내몸은닫혀있다
삶에대해가르치려는자들을오래도록경멸해왔다

잎사귀와저아래쓰디쓴온몸으로내려간뿌리들이
나를열고나오기를기다려본다
어원을찾을필요가없는말들을나는쓰고싶다
-「첫문장을받다」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