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디자인’한다고요?
세상소리를듣기만하던사운드디자이너가소리를낼때
문학수첩‘일하는사람’시리즈의다섯번째책《소리를디자인하는사람-세상모든소리에귀기울이고있습니다》가출간되었다.이번책에는소리와소음과음악을듣고수집하고이리저리만지고만들어내는직업인‘사운드디자이너’의이야기를담았다.
파도가잔잔히물결치는소리는바닷가의분위기를더해주고,눈위를걸을때나는뽀드득소리는한겨울낭만을느끼게해준다.이처럼소리는공간의분위기를바꿔놓고,사람의기분과심리에도큰영향을미친다.음악없는영화,효과음없는게임,배우들의목소리가없는드라마를상상하기는쉽지않다.사운드디자이너라는직업이존재하는이유다.
사운드디자이너는드라마나영화등에들어가는다양한소리를현장에서녹음하고추후에필요한소리또는효과음을입히거나,애니메이션이나광고등의각종영상물또는공연이나전시의배경음악을만드는일을하는사람들이다.게임효과음과음악,휴대폰벨소리,가전제품등에들어가는소리를만드는일을하는사람들도사운드디자이너에속한다.듣기좋은소리와음악을선택/선곡하거나만들어내는일뿐만아니라,소리가선명하고재미있게들리도록하는것도사운드디자이너의역할이다.
선곡/작곡뿐아니라공연,전시등의음악감독일도맡고있는저자는일하는현장에서,그리고일상에서겪은소리와함께한나날을이야기한다.더불어직업인으로서뿐만아니라,소리에민감하고소리에집착하는한사람으로서느낀감정과격정역시풀어놓는다.직업인과예술인의경계에서고민하고방황한경험(“사운드디자이너가된사람들중에는뮤지션이나작곡가를꿈꾸다우회한사람들이꽤있다”),‘월정액을내고음악을무제한으로다운받을수있는사이트’에일거리를빼앗기고나날이발전하는컴퓨터에위협을느낀일(“내밥줄이위험하다”),방송및게임분야에서일하는동료사운드디자이너들의고충도꺼내놓는다.
“그렇게힘든일임에도사람들이방송사운드디자인일을하는이유가무엇인지.모든사운드디자이너가그렇듯대답은간단했다.드라마가끝난후엔딩크레디트가올라갈때,본인의이름이박힌화면을볼때의뿌듯함이었다.소리가영상을더빛나게해줌을알기에한작품한작품모두소중하고애착이많이간다고했다.시청자입장에서는흘러가는선으로밖에보이지않을그이름석자가어떤방식으로든드라마제작에참여한사람들에게는우레와같은박수소리다.그때가그간의노력을보상받는순간이다.”(123쪽,〈소리를다루는사람들〉에서)
소리에집중해보세요
사운드디자이너가이야기하는,소리와함께하는세계
갖가지향료뿐아니라꽃,과일,식물등을적절히배합해완벽한조화를이루는향을만드는조향사처럼,사운드디자이너는소리를만든다.재료의배합에따라향기와악취가한끝차이이듯소리역시마찬가지다.세상에좋은소리를입히기위해,사람들의귀를즐겁게해주는소리를만들기위해,오늘도사운드디자이너들은작업실에서,스튜디오에서귀를혹사시키며고군분투하고있다.
영화,드라마,광고,게임,공연음악등의성격이모두다른것처럼사운드디자이너들이‘디자인’해야하는소리와음악도각각다르다.‘짧고굵은’광고에는‘짧고굵은’음악이들어가고,전시회배경에깔리는음악은관람객들이편안하고잔잔한분위기에서작품을감상할수있도록개성을줄이고작품에자연스럽게묻어나게만든다.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사고를줄이기위한공익광고에는운전자가급브레이크를밟을때나는끼이익소리를최대한크게넣어경각심을일으키고,브랜드나행사홍보영상에는무난하면서발랄한느낌의통통튀는음악을깔아준다.
하지만사운드디자이너의‘직업의식’은이러한전문분야에서만발휘되진않는다.참석했던결혼식을돌아볼때많은사람들이음식을기억하지만저자는음향을기억한다.“그결혼식은음향상태가꽝이었어.왜축가용으로그런마이크를썼을까.왜믹싱콘솔을비전문가가만질까.마이크가지직거리는데왜아무도조치를취하지않을까.”(61쪽,〈소리가좋지만소리가싫은나의직업병〉에서)휴식을취하러,독서를하러,담소를나누러들른카페에서폭발하듯터져나오는음악에스트레스를받고,반대로전시회에배경으로틀어놓은음악은사람들말소리에묻힐정도로희미하게들려서씁쓸함을느낀다.
그밖에도많은사람이공감할층간소음,길거리를점령한듯크게틀어놓은음악,새벽꿀잠을방해하는온갖소리들이저자를괴롭게하지만그러한‘소음’들이오직괴로움만주는것은아니다.소리를계속공부하기위해날아갔던런던의골목에서저자는‘소음을듣는귀’가뚫린경험을이야기한다.
“소음에꽂힌나는닥치는대로소음을수집했다.어마어마한볼륨으로내귀청을때리던런던의앰뷸런스,각양각색의언어와악센트로말하는사람들의목소리,비닐봉지를바스락밟고지나가는트럭의바퀴,지하철에서나오는안내방송등등.”(152쪽,〈런던이열어준소음의세계〉에서)
자동차지붕위로후두두두떨어지는빗방울소리,창문바로앞에있는나무에붙어울어대는매미소리,숲을뒤흔드는거친비바람소리등,저자는소리와함께한알록달록하고청아한시간들을떠올린다.그리고이모든소리는사운드디자이너에게영감의원천이된다.소리를발견하려면소리에귀기울이고집중해야한다.늘곁에있는공기의소중함을알지못하듯소리도귀기울이지않으면공기처럼흘러갈뿐이다.
소리가좋고소리가싫은사운드디자이너의솔직한고백
사운드디자인이필요한이유?“모든것을바꿔놓으니까.”
소리와함께하는직업을선택하고본인이만들어낸아름다운소리에황홀해하는저자는한편으로소리를혐오하기도한다.프랑스소설가파스칼키냐르의말대로“청각에휴식이란없”기때문이다.귀는좋은소리만걸러듣지않는다.냄비에서쇠젓가락으로라면을건질때나는소리,아랫집사람들의고함소리,윗집사람들의쿵쿵대는발소리까지모두듣는다.소리에예민한사람들은충분히공감할내용이다.이렇게소리를혐오하면서도사랑하고소리에집착하는자신의속마음을저자는이렇게표현한다.“소리를사랑하지않고는소리를혐오할수없다.소리에미치지않고는소리를혐오할수없다.이글은혐오를가장한나의사랑고백이다.”(192쪽,〈소리혐오〉에서)
〈사운드디자이너를왜하나요〉에나오는에피소드에서,오래전부터공간에맞는사운드디자인을꿈꿨던저자에게유명백화점브랜드이미지에맞는‘사운드’를디자인할기회가찾아온다.하지만그기회는코앞에서무산된다.예산때문이었다.사람들이별로신경도안쓰는음악에까지쓸돈은없다는이유였다.대부분의사람이24시간소리에포위되어살지만,청각은시각에비해상대적으로사람들의흥미를끌지못한다.하지만영화나드라마,애니메이션에서소리는영상에입체감을더하고,이야기를돋보여주며,시청자를더욱집중시키는역할을한다.흥미진진한영화장면뒤에는미장센을소리로표현하는작곡가와소리가만들어내는효과를극대화하는사운드디자이너가있다.보이지않는소리를만지기위해그들은비싼장비를갖춘스튜디오에서미세한소리까지완벽하게구현하고자분투한다.소리가가진힘을알기때문이다.
소리는상상,감정,분위기,이야기를바꾼다.매일듣던똑같은음악이아닌,독특한분위기와색다른장르의음악을들으면똑같은풍경도색다르게보일수있다.무엇보다,주변을두르고있는공간이가진이야기가바뀌면서짧은시간이나마다른공간을여행할수있다.‘사운드디자인이왜필요하냐’는물음에저자는이렇게답한다.‘모든것을바꿔놓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