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국왕 영조 문학 연구

조선 국왕 영조 문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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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영조는 만년에 자주 글을 통해 자신의 일생을 반추하곤 하였다. 즉위 이전에는 탈속한 세계를 추구하는 경치 관련 시를 주로 썼으며, 즉위 이후에는 자신이 삼종혈맥을 잇는 정통 후계임을 주장하고 조종성덕을 칭송하였다. 국가의 성패가 인재 선발에 있음을 알고 과거 관련 시문을 많이 지었으며, 숙종이 세운 대보단에 신종황제 외에 명나라 태조와 의종을 새롭게 향사하고 존주대의와 대명의리를 읊었다. 군신 간의 교유에서도 수많은 갱진시를 지어 국정에 대한 정서를 공유하였으며, 신하들에게 자주 시문을 하사하여 유대를 돈독히 하려 하였다.

영조는 가족에 대한 글도 많이 지었는데 제문을 특히 많이 지었다. 국왕이 된 이후에도 격이 달라 제사도 못 지내고 어머니라 부르지도 못하던 숙빈 최씨에 대해 지속적인 추승을 추진하여 결국에는 어머니의 묘를 ‘소령원’으로, 혼전을 ‘육상궁’으로 승격시켜 공식적으로 제사 지낼 수 있도록 하였는데, 어머니에 대한 호칭의 변화가 숙빈 최씨 치제문에 남아 있다. 자신이 아끼던 후궁과 자식들에 대한 제문에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비통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더욱 비통한 일은 사도세자와 관련된 글들을 폐기하거나 간행하지 못하게 하고 이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금기시한 것이다.
저자

안장리

서울에서태어났으며,연세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에서석사,박사과정을마쳤다.박사논문은「한국팔경시연구」이다.천안호서대학교겸임교원을거쳐현재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도서관관장및포은학회회장을맡고있다.
한국한문학을전공하였으며,한국전통경관문학,조선왕실문학,포은정몽주문학관련다수논저를저술하였다.주요논저로는『10가지주제로풀어본우리경관우리문학』,『한국의팔경문학』,『영조어제해제』4,『조선왕실의팔경문학』,『장서각소장《열성어제》연구』,「영조어제첩본율문의종류와주제」,「영조궁궐인식의특징」,「영조어제의봉모당소장양상고찰」,「한국과베트남의중국팔경수용양상고찰」,「동문선의선문의식에나타난문학의개념과가치」,「인문학적사유를바탕으로한장르변형글쓰기」,「권근이추구한유교국가의국왕상고찰」,「정몽주의시호‘문충’에대하여」등이있다.

목차

책을펴내며

제1장여는말
1.들어가기
2.선행연구및연구방법

제2장영조어제현황
1.『어제집경당편집』
2.『어제속집경당편집』
3.『영종대왕어제속편』
4.『영종대왕어제』
5.『어제시문』
6.『영종대왕어제습유』
7.『열성어제』
8.영조어제간본
9.영조어제첩본
10.영조어제의편찬및간행,보존
1)어제편차인
2)간행
3)보존
11.소결

제3장영조어제의내용
1.영조의생애
1)영조가회고하는일생
2)행장을통해본일생
2.즉위이전의집필
3.국정과집필
1)조종성덕과삼종혈맥
2)국태민안
3)인재선발
4)도성방위
5)대외인식
6)군신간의교유
⑴국사에대한정서공유
⑵신하에대한치하및격려
4.궁궐과주변경물
1)탄생당
2)억석와
3)구저
4)추모당
5)정와당·종용당
6)기타건물
7)주변경물
5.가족애
1)생모숙빈최씨
2)모후인원왕후
3)장남효장세자
4)차남사도세자
5)정빈이씨,화억옹주,의소세손
⑴정빈이씨
⑵화억옹주
⑶의소세손
6.노왕
1)강개회포
2)편작과건공탕
7.3대국정사업
1)탕평
2)균역
3)준천
8.소결

제4장영조어제의형식
1.영조체
2.훈유문
3.문답체
4.소결

제5장영조어제교감
1.『어제시문』상책과『열성어제』비교
1)시전체를삭제한경우
2)글자나어휘를고친경우
3)글자의순서만바꾼경우
4)상통하는글자로바꾼경우
5)두가지이상이복합된경우
6)본문이외의내용을고친경우
2.영조어제첩본과문집비교
3.「감회10수」
4.소결

제6장건륭어제와의비교
1.건륭제
2.청나라의어제편찬양상과건륭어제
3.건륭어제의내용
1)국왕
2)왕족
⑴왕실과주변경물
⑵가족애
3)건륭어제의특징
⑴명승가영과상투구의반복
⑵의례적창작과‘건륭체’
4.소결

제7장맺는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편집자의말

문학군주영조,8,700여편의시문을짓다

조선의제21대국왕영조는흔히정조와엮여영·정조시대라고불리며,조선의중흥을이끈왕으로평가받는다.‘영조’하면생각나는것은아마도‘탕평책’아니면그의아들‘사도세자’일것이다.이처럼영조의정치적업적이나사도세자의죽음같은비극은우리에게널리알려져있으나,문학군주로서의영조의모습은기실알려지지않았다.8,700여편이라는상당한수의문과시를창작한군주라는점을생각해보면,이는참기이한일이아닐수없다.게다가그가이런저술을통해서‘간본의정치’를했다는점을고려하면그의시문은매우중요하다고할수있다.2005년,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에서영조어제를해제하면서영조의문학을처음접한저자는당시영조의문체를보고당황했다고한다.저자는영조어제를깊이연구한끝에영조가만년에이런시문을통해자신의정체성을확인했다는사실을알아낼수있었으며,국왕영조의진면목을이해하기위해서는영조의문학을알아야한다고말한다.
국왕이기이전인연잉군시절부터많은시문을지었던문학가영조를생각하면이는당연한말일지모른다.또국왕이된그가자신과타인에게훈계하는문학을주로썼다는점을생각해보면,그의시문은곧영조가꿈꾸는정치와사회의이상을말해주기에,그것은영조를이해하고자하는이들에게는일종의의무라고해도과언이아닐것이다.영조가그의문학에서자신의3대국정사업으로탕평과균역,준천을꼽았다는사실은그가탕평책과균역법,준천을가장자랑스럽게여겼다는것을알수있으며,그것이곧국왕영조의정책의핵심임을알수있다.또영조가자신의생애에서어떤사건들을가장중요시했는지살펴본다면그의행장을통해알수있는것보다더많은것이보일것이다.
이처럼우리가조선왕조실록이나승정원일기등의기록에서는알수없었던국왕영조의모습도그가지은시문에서는확연히드러나고있다.그리고이처럼영조를이해하는데그의시문이중요하다면,조선의다른국왕을이해하는데에도그들의어제가중요할것이다.저자는이책에서영조어제간본,영조어제첩본을비롯하여열성어제와문집에실린문과시등을총망라함으로써영조어제의전모를밝히고자했다.그리고영조어제의형식과내용을분석할뿐아니라,문집과어제를교감하고건륭제와의비교를통해국왕영조의모습을살펴보고자했다.이러한저자의노력은이후조선국왕의문학연구에크게기여할것이다.

어머니를어머니라고부르기위해

“아버지를아버지라부르지못하고…”
이문장은아마우리모두에게친숙한문장일것이다.그리고분명,홍길동의이름을떠올리면서“호부호형을허하라”라는말도떠올릴것이다.여기서한번되돌아보자.우리는왕실의가족관계에대해,그리고그들의설움에대해얼마나깊이생각하고있을까?아마왕은아버지를아버지라하지못하고어머니를어머니라고하지못할수도있다는사실을아는사람은많다고하더라도,홍길동의설움을떠올리면서공감하는이는적을것이다.그런데영조가서얼들에게호부호형을허하고이를어긴자는역률로다스린다는윤음을내렸다는사실은우리에게한가지깨달음을준다.‘역률’이라니.아버지를아버지로,형을형으로부르지못하게하는것을영조는역적으로규정하고그에따라처벌하겠다는의지를밝힌것이다.과연왜영조는이러한윤음을내렸을까?
그것은영조가국왕으로서미천한어머니를감히어머니라부를수없었기때문일것이다.영조의생모숙빈최씨는미천한신분이었고,희빈장씨의사건으로인해숙종은후궁을정비로삼지않는다는것을명문화했기에,국왕이되기위해영조의어머니는생모가아닌모후인원왕후가되어야했고,영조는인원왕후를어머니라불러야했다.물론영조는모후인원왕후의은혜에감사해했고어머니로서대우했지만,그에게는항상생모인숙빈최씨가눈에밟혔다.결국,영조는꾸준한추숭을통해묘소를소령원으로,혼전을육상궁으로격상시켰고,국왕으로서미천한어머니의묘에절할수있었다.우리는여기서국왕또한누군가의아들이란어쩌면당연한사실을자각하면서세손정조의말을떠올리지않을수없다.
“과인은사도세자의아들이다.”

먼저떠난이들을기리기위해

영조는사도세자를자신의손으로죽였다.국왕으로서영조의선택을생각하기전에부모로서자신의아들을자기손으로죽여야했던영조의마음은어떠했을까?또장수한왕으로서사랑했던여인과첫딸,어린손주를먼저떠나보내야했던가장영조의마음은어떠했을까?장수했던왕으로서영조의가족애는그가남긴시문을통해확연히드러나고있다.그는정빈이씨를향해“명분은비록남자와여자였지만그뜻은곧벗이었으니내마음을아는이는그대였고그대의마음을아는이는나였”다고이야기하며“울음소리삼키며크게슬퍼하니흐르는샘물같은눈물을억제할수있겠습니까?슬픔을머금고글을지으니목이메어차마완성할수없고촛불아래붓을적시지만글자도제대로쓰지못하”겠다고한다.
요절한장남효장세자를향해서는“대저죽음에미쳐내가얼굴을마주하고불러서나를알아볼수있느냐하니힘없는소리로응답하며눈의눈물이뺨”을적셨다고묘사하면서효장세자의생애를속속들이기억하고있음을연보를통해알리고,아들이라서가아니라국왕으로서왕의자질을가진자식의죽음이기에슬퍼한다며자신의슬픔을공식화했다.“더욱애통한것은세자의기일이정빈이씨의기일과같기때문”이라는그의글에서그슬픔이보인다.
딸인화억옹주를향해서는“무술년8월아무날아버지연잉군은눈물을뿌리며쓴다”고하였고손주인의소세손을향해서는“임신년3월초4일묘시에통명전에서훙서하니나이겨우세살이다.여기까지쓰자니나도모르게붓을던지고통곡하게”된다며,“별빛같은눈망울과또랑또랑한음성을어디에서다시보고들을것인가?”라고하여어린나이에떠나간딸과손주에대한슬픔을읊었다.
그리고마지막으로자신이죽인차남사도세자를향해서는“내가어찌말할수있겠는가?내가어찌말할수있겠는가?”라고하며,관련된글을모두없애라고명했다.많은시문을지었던문학군주영조가글을모두삭제하라고했다는점에서그의슬픔은말조차할수없는슬픔이었다는것을느낄수있다.이처럼영조의시문을들여다보면우리는군주로서영조의모습뿐아니라,남편그리고아버지로서영조의모습또한만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