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18.00
Description
아픔의 시간 속에서 우러난 시와 그 안에 담긴 인생을 이야기하다!
<접시꽃 당신>의 저자인 시인 도종환의 자전적 에세이『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가 ‘한겨레’의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라는 코너에 연재했던 산문을 엮은 것으로, 세상의 모든 꽃들이 그러하듯 흔들리면서 꽃 한 송이를 피우듯 살아온 도종환의 삶과 그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과 외로움, 좌절과 절망, 방황과 소외, 고난과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 등 저자의 인생이 담긴 시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저자만의 감성적인 언어로 고스란히 들려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육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고, 암에 걸린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예상치 못했던 시집에 대한 반응과 베스트셀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대중성에 영합한 저급한 문학으로 평가절하 되는 과정을 겪기도, 그리고 재혼으로 인해 온갖 비난의 말을 감수해야했던 삶이 오롯이 담겨있다.
화가가 되고 싶던 꿈을 접고 등록금이 면제되는 지방 국립사범대학에 진학해야 했던 저자는 그 과절이 문학으로 방향을 틀게 했고, 지금까지도 자신의 문학을 밀고 가는 가장 큰 힘이 좌절이라고 이야기한다. 살아온 인생을 그대로 담고 있는 시를 통해 삶과 시가 하나임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저자는 치열하되 거칠지 않은 시, 진지하되 너무 엄숙하지 않은 시, 아름답되 허약하지 않은 시, 진정성이 살아 있되 너무 거창하거나 훌륭한 말을 늘어놓지 않는 시를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이철수 화백의 그림이 저자의 글과 어우러져 감동을 더해주고 있다.
저자

도종환

저자 도종환은 1954년 청주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동안 《접시꽃 당신》, 《부드러운 직선》, 《해인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등의 시집과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마음의 쉼표》 등의 산문집과 동시집 《누가 더 놀랐을까》, 《정순철 평전》등을 펴냈습니다. 신동엽창작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등을 수상했으며,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충북 보은의 산골 황톳집에서 글을 쓰며 지내고 있습니다.

목차

1 내 시의 꽃밭
내 시의 꽃밭 | 두 번의 전쟁 | 까마득하던 날의 수제비 | 원주는 추운 곳이다 | 화가가 되고 싶던 열망과 플랜더스의 개 | 내 어린 날의 빙하기 | 미운 오리 새끼 | 한 마리 외로운 짐승 같던 시절 그리고 고은

2 접시꽃 당신
시인은 헤매는 양인가 | 광주라는 내 인생의 갈림길 | 아무렇게나 살아갈 것인가 | 동인지 문단 시대와 분단시대 | 첫 시집을 내던 무렵 |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 접시꽃 당신

3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시를 쓰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 | 유배지에서 쓴 시 | 슬픔을 파는 시인이란 비판 | 선생님 사랑했어요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 알몸으로 달려가던 교도소의 긴 복도 | 감옥 밖으로 나간 한 편의 시 |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 내가 지은 죄 | 딸아이 손을 잡고

4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담쟁이처럼 살자 |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 | 울면서 조시를 쓰던 날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가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노동자 그대의 이름은 아름답다 | 시인과 투사 | 부드러운 직선

5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부족한 나무 | 무너지는 학교, 무너지는 가슴 | 교육은 떨어지는 바위를 끝없이 밀어올리는 일 | 개나리꽃 같은 아이들 | 낮에는 외롭고 밤에는 무서운 숲 속 생활 | 내게 오는 건 고통도 아픔도 다 축복이다 | 동시가 찾아오던 날 | 치유의 힘을 가진 숲 | 평화롭게 살기 | 어찌 노론을 한 시대에 이기겠습니까 |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출판사 서평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많은 아픔의 시간을.
거기서 우러난 문학을. 나의 삶, 나의 시를.


문학과 종교를 넘나드는 드문 감동의 기록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시인이 된 소년, 부드러우면서 곧은 시인, 따뜻하고 열정적인 선생님, 해직과 투옥을 겪으면서도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교육운동가 도종환의 신작 에세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던 날들, 교육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이야기, 《접시꽃 당신》으로 가족과 함께 상처받고 힘들었던 시절, 아파서 숲에 들어가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들의 이야기까지, 한 편 한 편의 시를 통해 그의 인생을 담담하게 솔직하게 때론 절절하게 담고 있다. 자신의 삶 이야기가 들어 있는 시들을 골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고 시를 들려주는 이 책은, 시인의 오랜 지기인 판화가 이철수의 채색그림과 함께해 책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충북 보은의 황톳집에서 자신의 삶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되짚으면서, 자전적 이야기를 세세히 펼쳐낸다.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시작한 문학,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삶의 이야기를, 그것으로 인해 시인이 되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살아온 인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를 통해, 삶과 시가 하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를, 그의 문학을, 그의 삶을 기대해본다.

내 문학을 밀고 가는 가장 큰 힘은 ‘좌절’

도종환은 전쟁이 끝난 이듬해 충청도 소읍, 산직말의 오막살이집에서 태어났다. 증평에서 살던 행복했던 10여 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 어머니를 1년에 두 번 방학 때만 볼 수 있었던 그때, 부모님이 계신 원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때 그를 키운 건 팔 할이 가난함과 외로움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크면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며 살 거라고 생각했다. 도화지가 부족하면 신문지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고, 해마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그려 친구나 어른들에게 보내곤 했다. 그러나 대학에 갈 때는 미대에 갈 수 없었다. 미대가 아니라 대학 자체를 갈 형편이 되지 못해서 국가에서 등록금 전액을 대주는 국립사범대를 선택했고, 학과도 돈이 적게 들어 보이는 과를 골랐다. 화가가 되는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좌절이 그를 술 마시게 했다.

빙하기로부터 시작한 내 어린 날의 결빙이 언제 풀릴지 그때는 짐작할 수 없었다 월세 이천 원짜리 쪽방에 기거하는 동안 연탄불이 자주 꺼졌다 손도끼로 침엽수 도막을 잘게 부수어 십구공탄에 불을 붙이는 동안 삶은 매캐했고 문짝도 없는 부엌부터 일찍 어두워졌다 내가 눕는 윗목에는 그릇의 물이 바로바로 얼었고 내 몸도 밤새 달그락거렸다 -<빙하기> 중에서(52p)

사범대학을 졸업하자 그해 3월, 옥천군 청산면 청산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문학청년인 그가 고등학교 국어 선생 노릇을 시작한 것이다. 박 신부님을 만난 것이 문제가 되어 좌천당하고 쫓겨난 생활은 27년간 교직에 있는 동안 이동희망내신서를 써보지 못한 채 떠돌고 쫓겨나게 되는 일의 시작이었다. 제대 후 1980년대 전반기, 정기간행물이 다 폐간되어 글을 발표할 매체가 없었던 시절에, 헤맴, 절망, 방황을 보내고 친구들과 함께 ‘분단 시대’라는 모임을 만든다. 동인지 창간호에 <고두미 마을에서>, <울타리꽃>, <진눈깨비>, <분꽃>, <삼대>(연작시) 등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등단하지 않았던 작가는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창작과 비평사에서 연락이 와서 첫 시집을 낸다.

이 땅의 삼월 고두미 마을에 눈이 내린다. / 오동나무 함에 들려 국경선을 넘어오던 / 한줌의 유골 같은 푸스스한 눈발이 / 동력골을 넘어 이곳에 내려온다. / 꽃뫼 마을 고령 신씨도 이제는 아니 오고 / 금초하던 사당지기 귀래리 나무꾼 / 고무신 자국 한 줄 눈발에 지워진다. / … / 뉘 알았으랴 쪽발이 발에 채이기 싫어 / 내 자란 집 구들장 밑 오그려 누워 지냈더니 / 오십 년 지난 물소리 비켜 돌아갈 줄을. / 눈녹이물에 뿌리 적신 진달래 창꽃들이 / 앞산에 붉게 돋아 이 나라 내려볼 때 / 이 땅에 누가 남아 내 살 네 살 썩 비어 / 고우나 고운 핏덩어릴 줄줄줄 흘리련가. / 이 땅의 삼월 고두미 마을에 눈은 내리는데. -<고두미 마을에서> 중에서(102~103p)

아내가 토혈을 한 것은 첫아이를 낳고 난 이듬해 봄이었다. 딸아이를 낳고 이상이 있다면서 서울 원자력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보니 암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살려야겠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서른 두 살이었던 그때, 젊디젊은 나이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고, 몸에 성한 곳이 있으면 주고 가자고 했던 그녀. 아내는 눈을 다른 이에게 기증해달라고 하고는 낳은 지 넉 달 된 딸아이와, 세 살 된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가난한 사람끼리 만나서 가난하게 살았던 그때. 나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는 말이 마음에 돌처럼 자리 잡고 앉아 떠나지 않았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 뿌듯이 주고 갑시다 /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접시꽃 당신> 중에서(119p)

내가 울면서 쓰지 않는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

그해 겨울에 동인지 분단시대 판화 시집에 <접시꽃 당신>, <병실에서>, <암병동>,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당신의 무덤가에> 5편의 시를 실었다. 그런데 판화 시집 자체가 문제가 되어 조사를 받고 동이중학교로 좌천 발령을 받았고, 문제교사로 찍혀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받았다. 유배지에서 시를 쓰며 지내던 어느 날, 김사인 시인이 시집을 내자고 했다. 12월 초 <조선일보>와 <주간조선>에 시집 이야기가 실리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매스컴의 떠들썩함과 독자들의 반응과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었다.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웠고, 또한 대중성에 영합한 저급한 문학으로 평가절하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대여 흘러흘러 부디 잘 가라 / 소리 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 그댈 보내며 /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너머 불타며 사라지는 / 별들의 긴 눈물 / 잠깐씩 강물 위에 떴다가 사라지는 동안 / 밤도 가장 깊은 시간을 넘어서고 / 밤하늘보다 더 짙게 가라앉는 고요가 내게 내린다 /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 잘 가라 -<그대 잘 가라> 중에서 (142~144p)

자식들과 떨어져 사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청주로 발령받아 올라온 저자는 두 가지 일을 시작한다. 교육운동 단체를 만드는 일과 문화운동 단체를 만드는 일. 충북교사협의회를 만들고 얼마 안 있어 형사들에게 잡혀 간다. 잘못된 교육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 법으로 보장된 교사들의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고, 비민주적인 교육 구조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길이었으나, 그 이유로 감옥에 간다. 교도소에서 시를 쓸 곳이 없어 비누에 싼 속포장지에, 화장지 겉을 싼 종이 안쪽에, 책 맨 뒷장 백지에 깨알같이 시를 써야만 했던 그의 죄는, 벌금 30만 원 정도의 죄였는데, 그로 인해 구속되고 감옥살이를 했던 것이다. 감옥살이를 끝내고 나오는 날, 그는 어떤 일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 되는지 바라봐야 했다. 딸에게 미안하고, 어머니께 죄스럽고, 스스로가 미웠고, 이런 시대가 미웠다.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 비 갠 일요일 아침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 엄마 없고 아빠마저 빼앗긴 저의 두 아이들 / 주님, 당신께서 돌보아 주십사 하고 기도드립니다 / 밤비에 젖은 얼굴을 털며 일어서는 무궁화꽃처럼 / 저의 아이들이 자라게 해 주십시오 / 구름 걷힌 하늘의 작은 햇볕에도 들풀이 자라듯 / 아이들이 당신 사랑으로 자라게 해 주십시오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중에서(186p)

포기하지 않고, 연대하고 협력하는 담쟁이처럼 살고 싶다!

해직된 교사들끼리 사무실에 모여서 함께 대책을 마련하기도 하고 같이 밥도 해 먹으며 지냈다. 해직교사들은 집회도 하고, 항의 방문도 하고, 행정소송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하자고 해서 수없이 논의하고 의견을 모으면서 날들을 꾸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 중에 창밖을 내다보다가 담쟁이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담쟁이처럼 살기로 한다. 나 혼자 살길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함께 손잡고 어려운 벽을 헤쳐 나가자고 마음먹는다.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여,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담쟁이처럼 벽을 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힘이 넘쳐 싸운 게 아니고, 직장에서 쫓겨나도 먹고살 만큼 넉넉해서 싸운 게 아니었다. 그런 야만과 폭력의 시대를 살았고, 해직 생활의 뒤에는 울면서 조시를 써야 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