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밥상 : 우리의 밥상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을까

조선의 밥상 : 우리의 밥상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을까

$18.61
Description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으며,
조선 민중의 삶 속에서 음식 문화는 어떻게 전개되어 왔을까?
조선시대에 우리 민족은 이미 화려한 음식문화를 향유하고 있었다. 《성호사설》에는 “부유하거나 귀한 집에서는 하루에 일곱 차례 먹는데, 술과 고기가 넉넉하고 진수성찬이 가득하니, 하루에 소비하는 것으로 백 사람을 먹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외국인의 시선에서 보아도 마찬가지였는데, 일본인이 쓴 《조선만화》에는 “신선로 속에 들어가는 국물은 소머리를 끓여서 만든 즙으로 이 속에 잣, 밤이 들어가기 때문에 맛이 있다. 신선로 냄비를 중심으로 4~5명이 둘러앉아서 먹는데, 건더기를 다 먹고 즙만 남으면 이번에는 조선 명물 우동을 넣어 끓여 먹는다. 신선로의 묘미는 이 우동을 끓여 먹는 데에 있다. 특히 기둥의 노와 냄비가 일체 되어 있는 것이 신선로의 특색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또, 《조선의 실정》에서는 “조선인의 체격은 대개 우량하다. 키가 크고 골격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족이 이러한 체질을 가지게 된 것은 일반의 풍습으로서 육식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어육은 말할 필요도 없이 소고기, 돼지고기를 많이 먹고 있는데, 도저히 일본 민족에 비할 바가 아니며 옛날부터 조선의 집단지에는 어느 곳에도 상당의 도살장이 있다.”고 쓰여 있다. 종합해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하루 7끼 밥과 국수 등을 먹고, 화려한 모임 음식을 다양하게 즐겼으며, 1년 내내 고기를 즐겨 먹은 듯하다.
《조선의 밥상》에서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구한말까지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사람들이 요리해 먹었던 이런 다양한 음식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동시에 음식 문화와 조선 민중의 삶에는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어떻게 음식 문화가 전개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폭넓게 예로 들어 기술하고 있다. 조선 민중의 범위는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서민까지 포함된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궁중의 음식 문화가 일반 서민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저자

김상보

1986년한양대학교이학박사학위취득
1993~1994년일본국립민족학박물관객원교수
1978~2015년대전보건대학교교수
현재전통식생활문화연구소소장

한국의식음료문화를평생에걸쳐연구한학자로,우리문화를대중에게쉽게알리기위해부단히노력해왔다.‘문화체육관광부우수학술도서’에다수의저서가선정되어그노력을인정받고있으며,현재도전통식생활문화연구소소장으로서연구에전념하고있다.

주요저서
《조선왕조궁중의궤음식문화》(1995)[우수학술도서]
《한국의음식생활문화사》(1997)[우수학술도서]
《조선왕조궁중음식》(2004)
《다시보는조선왕조궁중음식》(2011)
《약선으로본우리전통음식의영양과조리》(2012)
《우리음식문화이야기》(2013)[우수학술도서]
《화폭에담긴한식》(2015)
《조선왕실의풍정연향》(2016)
《한식의도를담다》(2017)[우수학술도서]
《전통주인문학》(2022)[우수출판콘텐츠]외다수

역서
《원행을묘정리의궤》,《찬품조》,《어장과식해의연구》

목차


머리말

제1부|음식문화
조선시대음식문화성립배경
음식을만든사람들
궁중
관청
양반가
중인
밥상차림으로본신분사회
계급에따라달리한밥상차림
밥상차림의왜곡및변질
정통적인조선왕조의수라상차림
밥상차림의문화
음양오행사상에서출발한밥상차림
음양오행사상에따른상차림과시식,맛과색깔
약선과양념
조선왕조의궁중음식변천사
1일7식을먹은조선의상층부
명나라사신에게제공한소선조반상
최상층부의안주와행주
잘못된음주문화
점심의유래
혼례음식문화
처가살이혼에서시집살이혼으로
임진왜란이후의반친영혼
현구고례
제사음식문화
기신제·시제(묘제)·다례
불교와의융합이란측면에서바라본유교의제사음식문화
음양오행사상으로본제사음식문화
외식문화
장시의발달과국밥문화
구한말의술집문화
요릿집음식으로전락한궁중음식
조선시대여성들의화전놀이

제2부|찬품각론
조선시대찬품개괄
필수식품이었던쌀·소금·건어물·젓갈·콩·장
명나라황제에게보낸식품선물목록
음식의웃꾸미를뜻한말,교태
원나라《거가필용》의영향을받은육류찬품
주식류
백반·팥물밥·유반·골동반·잡곡반

국수
상화와만두
탕류
전철과전골
승기아탕또는승기악탕
열구자탕·신설로·신선로
면신설로
사라져버린시식-잡탕과골동갱
궁중식용봉탕
관노들의음식이었던추어탕
병갱과떡국
찜류
정조대왕이잡수신황구찜
숙종대왕이잡수신어묵-생선숙편
구이류
설야멱
느르미·느름적·어음적·화양적
병자·빈자·빙자떡·빈대떡
밥반찬이었던젓갈
회와조선사람
생선회를사서먹은민중들
화려했던어채문화
육회와갑회
버터를만든사람-수유치
포와절육,하설다식과황육다식
나물
정조대왕이잡수신나물찬품
잡채와밀쌈에서생겨난지금의구절판
진채식인콩나물과숙주나물
궁중의청포채에서유래된탕평채
초시에서유래된고초장
고추가보급되기전김치에넣었던천초
유밀과
매엽과
약과
유밀과와당속

어떤종류의떡을먹었을까
화전
음청문화
가양주문화
참외를즐겨먹었던조선사회
시식과절식문화

참고문헌316

출판사 서평

밥상차림에서보이는신분과문화
조선시대에밥상을차린사람들은누구이며,
그재료는어디에서왔을까?

조선사회에서신분제도란사회를유지하는가장큰기틀이었다.그런중요한규율이니만큼의식주에있어반상의법도가아주엄격했고,일상생활의규범에서도세세하게정해진방식이있었다.『조선의밥상』은궁중,관청,양반가,중인가로나누어왕족,양반,중인의밥상을들여다보고,그작은상안에담긴법도와문화를이해하기쉽게풀어설명한다.

조선왕조에서는18세기말까지만하더라도공식적인자리에서는밥·국·반찬모두를포함해왕과왕족은7기,양반은4기,중인은2기를차려먹었다.그렇다면‘그밥상을차린사람들’은누구였을까?궁중에서왕족들이직접밥상을차리지않았음은확실하고,궂은일은죄다솔거노비에게맡기었을종가의귀한마나님들이부엌아궁이에서불을때고있는모습도상상하기어렵거니와,더나아가사무역을통해양반을뛰어넘는부를축적하여호사스러운생활을영위하던잘사는중인집안의여인들이요리하는모습도잘연상되지않는다.

지체높은집안의안채부엌에서는한달에거의한두번꼴로있는제사에올릴음식과사랑채에든바깥손님을위한음식및일상음식을만들었다.제사음식에서가장중요한떡치는일은물론남자종의몫이었다.그외에솔거노비중통지기라는여자종은물통이나밥통을지거나찬거리를사오는여자종이었고,대개밥을하거나장담그고반찬을만드는여자종을식모라불렀으며반찬만드는여자종을찬모라고도하였다.한편관아와역의부엌에서는주방장격인총책임자칼자,그바로아래부주방장격인국을끓이는갱자를필두로생선을잡아오는사람,채소를기르는사람,꿩을잡아오는사람들이소속되어각자식재료공수의역할을맡고있었다.

한부엌안에서도여러인원의역할이필요한것이‘음식’인만큼,『조선의밥상』에서는단순히조선시대음식의종류와음식문화를넘어‘사람’에게까지집중하고있다.

역사의흐름에따라변화하는음식문화
조선시대풍속음식을통해그려지는당시의풍경과
외식문화속에녹아든구한말격변의시대

고려시대서부터조선초기까지일반적으로행해지던처가살이혼이언제부터시집살이혼으로정착되었을까?사실고려시대때부터시집살이혼으로사회관행을변화시키려는지도자들의시도가있긴했다.실제로1349년공민왕이노국공주와결혼할때북경에서친영(신랑이신부집에가서신부를직접맞이하는의식)함으로써,시집살이혼의서막이올랐다.그러나고려말의개혁조치는더이상그빛을보지못하다가다음정권으로이행되었다.고려왕조가멸망하고조선왕조가들어선것이다.고구려시대의혼인은물론자유혼이었다.이때신랑집에서는혼례때드는잔치비용의부담을덜어주기위해돼지와술을피로연에소용되는‘이바지’용으로신부집으로보내는것이전부였으며,그이외의폐물을신부집에보내는것은수치스러워했다.하지만임진왜란이후가부장제가강화되며시집살이혼이완벽하게사회에정착하게되고,혼례과정에서준비되는음식들과그음식을사용하는관례가변화하게된다.이책에서는그변화한관례들을예식에준비했던음식과더불어자세하게설명하고있다.

또『조선의밥상』에서는조선시대의외식메뉴에대해서도다루고있는데,그묘사들이무척생생하고자세하여흥미롭게다가온다.장시에서판매하는국밥을이야기하면서서술된그앞에꽂아놓은소머리와밥을먹으면숙박까지가능했던주막의풍경은현대사회를살아가는우리들에게생경하기까지하다.책에서는구한말궁중음식을술안주로선보인요릿집에대해서도자세하게기술하고있는데,한일병합이후세워진조선식요릿집의대표격인‘명월관’을그예로들고있다.명월관은궁내부주임관및전선사장으로있으면서어선과향연을맡아궁중요리를담당했던안순환이1909년지금의세종로동아일보사자리에서문을연곳인데,그해관기제도가폐지되고기생조합이생겨남에따라일본요릿집에게이샤를두듯이자연스럽게관기들이명월관에모여들었다.이에따라궁중요리와관기들이일반인에게공개되었다.

『조선의밥상』은이렇게역사의사건과흐름속에서우리음식문화의변화원인을논리적으로도출하여자세한예로써설명하고있다.

조선의밥상에오른음식들은어떻게전수되어왔을까?
다양한음식의종류와함께알아보는조선시대의음식문화

앞서이야기했듯이지체높은집안의여성들은주로집안의음식을관리감독하는역할을하며직접손에물을묻히진않았던듯하다.그렇다면집안마다의특색있는음식들과가양주의제조법은어떻게전수되어왔을까?

우리나라최초의여성조리서라불리는『음식지미방』은다른이름으로‘규곤시의방’이라고도한다.이는‘규방에거처하는부녀자가쓴책’이란뜻이다.이외에도『주식시의』나『규합총서』등과같이안주인이쓴필사본조리서가등장한것은며느리에게술과술안주를포함한집안내력음식에대한조리비법을전하려는시어머니들의노력의결과라생각된다.아울러우리는이와같은책을통해또한가지사실을깨달을수있다.즉,비록집안의궂은일은노비들이도맡았지만안주인역시조리법을완전히터득하고있었다는사실이다.

또조선왕조에서는나라에서큰일을치를때후세에참고를위하여그일의처음부터끝까지의경과를자세히적어책으로남겼다.그것이바로‘의궤’인데,『조선의밥상』에서는『원행을묘정리의궤』에기록된것을토대로조선시대궁중밥상(수라)에올랐던주식류,탕류,찜류,구이류,젓갈류,나물류를포함하여회,버터(수유),포와다식같은음식과유밀과,떡등의간식과술,계절별·절기별로먹었던풍류가득한음식까지두루소개하고있다.

지금까지한국에살면서숱하게먹어온자연스러운식단부터,단한번도들어보지못한생소한음식까지다양하게담겨있는『조선의밥상』.우리는이책을통해우리음식에대한이해를넓히고,가끔은책에기술된시기와절기에따른음식들의의미를곱씹으며챙겨먹어보는것으로옛풍류를재현할수도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