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창창

별빛 창창

$16.80
Description
곽용호란 이름 세 글자를 빼면 무채색이었던 사람
그가 새롭게 써 내려간 창창한 총천연색 인생 풀이
《별빛 창창》은 무채색 같은 삶을 살아온 스물아홉 청년이 세상에 의해 규정된 무기력한 자기 모습을 지워내고 스스로 선택한 색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물들여가는 이야기다. 작가 설재인은 ‘태몽’이라는 민간 신앙을 소재로 가져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정해지는 주인공의 삶을 보여준다. 그저 단 한 번의 꿈으로 정의되고, 그 꿈풀이를 정답처럼 따라야 하는 인생. 이는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어야지’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야지’ ‘부모의 자랑이 되어야지’ 등 ‘넌 그래야만 해’라고 수많은 규정을 당하고, 삶에 대한 부담감을 안은 채 살아가며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느껴야 할 패배감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청년들의 삶에 대한 비유다.
소설 속 주인공은 용과 호랑이가 나온 거창한 태몽 덕분에 곽용호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어째 태몽의 기세와는 정반대로 삶이 흘러가 가엽게도 여기저기서 시달린다. 꿈 하나에 결정된 이름과 꿈풀이로 태어나기 전부터 부정당한 정체성에 진저리가 난 곽용호. 그의 좌충우돌 자신만의 인생 풀이가 시작된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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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설재인

저자:설재인

주먹과루틴그리고알콜성음료신봉자.2019년《내가만든여자들》로데뷔했다.소설집《내가만든여자들》《사뭇강펀치》,장편소설《세모양의마음》《붉은마스크》《너와막걸리를마신다면》《우리의질량》《강한견해》《내가너에게가면》《딜리트》《범람주의보》《캠프파이어》《소녀들은참지않아》,에세이《어퍼컷좀날려도되겠습니까》를썼다.



목차

1부
2부
3부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아무일정없는하루하루를버티며
나는쓸모있는인간이되고싶었다

태몽에용과호랑이가등장한덕에환장하게도용호란이름을갖게된곽용호.그는이름세글자를빼면색채없는인간이다.스물아홉인생내내잘나가는엄마와비교당하는,캔버스위의엉성한습작스케치같은사람(13쪽).공부는그냥저냥해삼수끝에서울시내4년제대학에가까스로들어갔지만졸업후몇년째취업에실패하고있는패배자.
곽용호는어린시절부터늘쓸모있는인간이되고싶었지만그러지못했다.세상에도,엄마에게도.세상의관심에서빗겨나있는그에게유일하게스포트라이트가쏟아질때는오직드라마계의스타작가이자자신의엄마인곽문영에관한이야기가나오는순간뿐이다.
그누구도자신의존재를필요로하지않는하루하루를버티고있던어느날,엄마가홀연히사라진다.한여름에아스팔트로도로에내린가랑비처럼깨끗하게증발해버렸다(36쪽).이게대체무슨일인가,어안이벙벙한사이드라마제작사피디이자곽문영의수족오혜진이한가지제안을해온다.엄마의새드라마‘드림런처스’를대신집필해달라는것.
이건또무슨뚱딴지같은말인가,싶다가마음깊숙이한구석에버러진자신의꿈이떠오른다.학교에서장래희망을적으라고할때언제나썼던그단어,‘작가’.하지만엄마의글재주에비하면곽용호의재능은얄팍하기그지없었고,‘작가’는그에게먼지쌓인꿈이되어버린다.그런데그‘작가’를해달라니.비록곽문영이란이름으로쓰는엄마의드라마지만곽용호는솔깃한다.무엇보다자신에게일이생긴게아닌가?
곽용호는고등학교문학동아리에서만난친구이자옛애인함장현과함께엄마의드라마‘드림런처스’대본작업을시작한다.걱정과는달리첫대본이통과된후그들작업에는가속도가붙는다.신명나게집필작업을이어가던중오혜진피디에게사라진엄마에대한단서를찾았다는전화를받는다.그제서야그는자신이사라진엄마걱정을전혀하지않고있다는사실을자각한다.
‘승복입은사람.’엄마의행방을알기위해선‘승복입은사람’을찾아야한다.엄마의책상서랍깊숙한곳꼭꼭숨겨진일기장에적혀있는스님이란존재.그는‘광혜암’이라는암자에서지내고있었다.지도에뜨지도않는,외곽어느산에위치한을씨년스러운암자였다.마치일부로누군가가찾아오기힘들게숨은것처럼.가까스로찾아간그곳엔부서진성상들이가득하다.기독교,천주교,목없는불상,하반신없는성모상….
모든게의심스러운광혜암에서사이비‘땡중’같은사람이곽용호를맞는다.넙데데한얼굴에잡티흔적이가득하고붉은빛도는피부가마치딸기같은모습이다.뭐하나성한게없어보이는광혜암.
여기는뭐하는데지?엄마는대체왜이런곳에있는거야?

너무가엽고불쌍하게굴진말자
낯선성공의경험을온전히누려보자,우리

《별빛창창》소설속주요인물들은모두자신의꿈을잃은채살아간다.팍팍한현실에서그들이가장먼저떠나보낸것이꿈이었다.잘나가는엄마의그늘에가려지고,스물아홉이되도록변변한직장을찾지못해패배감에잠식된곽용호.좋지않은집안형편으로가고싶은대학이아닌장학금을받고들어간다른대학에서몇년째졸업을유예하며4학년으로살아가는함장현.신인작가를발굴하겠다는야심찬꿈을가지고피디가되었지만현실은스타작가매니저역할을하며유통기한지난꿈에짓눌린오혜진.
각자의자리에서최선을다하며현실을바꿔보려노력하지만쉽지않고,이들에게는좌절만이쌓인다.그러던중스타작가곽문영이종적을감추며곽용호와함장현의삶은전환점을맞이한다.짜글짜글하게구겨질대로구겨져펴질수없을것만같던그들의삶이피기시작한것.마음속에서꺼내보지도못한꿈을한번에이루고,재능을인정받고,무엇보다일을해돈을벌기시작한다.곽영호와함장현은자신들의존재가치를드디어증명받은기분이다.이를바라보는오혜진역시이제야자신의역할이생긴것같다.하지만기쁨도잠시,이내불안이엄습한다.우리가이렇게일이술술풀릴리가없는데,라는생각때문.
실패로점철된그들의삶에는성공의경험이부재하고,이를쉽게받아들이지못한다.낯선현실과실시간으로바뀌는상황,복잡한감정의파도속에서도곽영호와함장현은끝까지함께나아간다.세상이정해놓은틀안에서비록그들의삶은밉게구겨지고뭉개졌지만,그래서외롭고상처받았지만,기쁨을누리는것에익숙지않지만,서로를향한마음만큼은여전히따스하고다정하다.

“좀이상해.기분이이상해.”
장현이지망생카페에서보고들은대로우리는끝없는질책과수정의늪에빠질채비를단단히하고있었기에오혜진의느닷없는극찬이불안했다.나는벤치에앉아두다리를허공으로번갈아차올리며생각했다.어쩌면우리는불안해야만하게끔키워진것은아닐까.나는호기로운척을했다.
“우리둘다성공의경험이너무없어서이러는걸지도몰라.”
“아,그런걸까용호야?”
“어.맨날성공하는인생이었으면그냥아,내가또하나성취했구나,하고별것아니게넘어갔을지도몰라.뭐,야,우리가잘하나봐!”
그러니까너무가엽고불쌍하게굴진말자.낯선성공의경험을온전히누려보자,우리.나는그벤치에서핸드폰이뜨거워질때까지앉아있었다.전화를끊고보니한시간사십분이지나있었다.(72~73쪽)

나는엄마와딸이서로를사랑해안달하는
서사들만보면그렇게환멸이났다

곽문영과곽용호의모녀관계는꼬일대로꼬여있다.엄마곽문영은언제나일로바쁘고곽용호는늘혼자다.아빠란존재는누군지얼굴조차모른다.곽문영의드라마가대박이나면서그는더욱방치된다.그때부터였을까.이들의관계가뒤틀리기시작한것이.곽용호는잘나가는엄마가,미혼모라는사실을무기로팔고다니는엄마가,딸에게는작은관심조차없으면서휴머니즘의드라마를뚝딱뚝딱써내시청자들의눈물콧물을쏙빼놓는엄마가가증스럽다.세상에서이보다더끔찍한엄마는없을거라생각한다.
사람들은그저성공한엄마를둬먹고살걱정없는곽용호를부러워하기바쁘다.사실그에게는이사실이가장큰문제다.엄마덕에먹고사는삶.곽용호에게엄마는늘뛰어넘어야하는대상이지만현실은엄마의발끝도따라가지못하고,엄마를증오하면서도그의돈으로살아가는자신에대한혐오또한늘어만간다.곽용호는그렇게좌절속에서하루하루유영한다.엄마에게자신은그저커리어를완성시키기위한구성품같은존재이며화목한가족이란건환상이라는생각과함께.
엄마가사라진뒤에도곽용호는별타격을받지않지만세상의시선이걱정되어이내엄마를찾아나선다.엄마가남긴자취를따라가며엄마도작가도아닌인간‘곽문영’이그동안숨겨온사실을알게되고이둘의관계는새국면을맞는다.

나는엄마와딸이서로를사랑해안달하는서사들만보면그렇게환멸이났다.일단친구처럼지내는모녀는쳐다보기도싫었다.엄마이야기만나오면수도꼭지를튼것처럼눈물을줄줄흘리는사람들도이해가지않았고,서로죽이니마니하면서싸우다가도제아이낳고서는우리엄마에게도나처럼예쁠나이가있었다며갑자기착해지는이야기는가장최악이었다.싸우려면일관성있게가지왜이랬다저랬다하는가.어리고약했던내인생을그토록힘들게만든힘센원수를어찌그리쉽게용서할수있는가.
내가겪어온어린시절을떠들어대며공감을요구하려고시도했던적도있었다.그러나사람들은편을들어주는척하다가도슬쩍방향을틀었다.
“그래도어머니가일하면서혼자키우셨잖아.얼마나힘이드셨겠어.게다가….”
그들에게는‘게다가’의다음이세상에서가장중요하다.
“게다가얼마나좋아,돈도잘버시는데.너는어머니덕에먹고살걱정없잖아?”(10~11쪽)

유전되는아픔,똑닮은상처

《별빛창창》소설의주요공간배경중하나는‘광혜암’이다.이궉산이라는외곽의깊은산속에은밀하게숨겨져있는이곳은지도에도표시되어있지않고,사람들의발길도뜸하다.암자입구에는부서진성상들이즐비하고,건물벽에는차라리없는게나은벽화들이가득하다.외관부터수상한이곳을관리하는스님역시어딘가미심쩍어보인다.
무언가를감추고있는것만같은,늘같은냄새가나는곳.광혜암의정체는무엇일까?

“결국사람사는건다똑같아서아픔도유전됩니다.내아픔은슬프게도이미누군가미리겪었던아픔일가능성이커요.상처의기억을가지고있는사람들은똑같은상처를알아봐요.다른사람들은저사람여기가이상하게못생겼다고흘낏보며넘기지만,경험이있던사람은알수밖에없단말이에요.치료를제때받지못해서잘못아물어흉이진모양이라는걸안단말입니다.그보살님들이곽작가님을알아본이유가그거지.자기몇십년전모습을그대로닮았었단말이에요.”(234쪽)

꼬질꼬질한삶과창창한꿈어디쯤에서,
스물아홉의질감은늘그랬다

《별빛창창》은꼬질꼬질한삶과창창한꿈그어디쯤에서서성이는청년들의이야기를담은소설이다.실패와성공사이,상실과사랑사이,연민과혐오사이,스물아홉의질감은늘그랬다.불안정하고불명확한일들의연속이었다.작가설재인은이들을절망이가득한,혹은희망이가득한삶으로그려내지않는다.지금을견디면장밋빛미래가열릴것이라는확언또한하지않는다.그저아주조금씩이라도뚜벅뚜벅앞으로나아갈수있는원동력만을제시할뿐이다.주인공곁에서무슨일이있든같이웃고우는이들을끊임없이등장시키며,우리에게도인생의길을함께걷고있는운명공동체가반드시있음을일깨운다.이모든과정은경쾌하고도날카로운문장속에서물흐르듯자연스럽게이어진다.
우리는설재인의세계에서감추고픈‘꼬질꼬질한나’와긴시간‘꿈꿔온나’의모습을모두마주한다.다채로운인물들로복작이는그의소설이그어떤이야기보다현실적인동시에비현실적이기도한이유다.꿈인듯현실인듯한설재인의세계는끝내다정함을향해간다.결국그의세계에서우리모두는,같은방향을보며함께길을걷는다정한동행자다.작가설재인은이동행이해피엔딩을담보하지않는다고말한다.어쩌면함께패배의길로향하고있을지도모른다고.
허나세상이우리의길을막고,‘발을잘라버린다면어느동화책에서처럼춤추는발이라도세상에내보내버리겠’다는주인공곽용호의말처럼운명공동체가있어우리는잘려버린발로도한걸음더내딛을수있다.비록잘린발들일지라도깊고창창한별빛이쏟아지는길위에서,그누구보다창창한꿈들을품고아주‘귀여운춤’을출것이다.서로를토닥이는마음으로.우린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