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황금돼지해의벽두에정원찬작가의역사소설「공주는소리내어울지않았다」를만났다.우선상당한분량의장편소설임에도불구하고단숨에읽혔다.그만큼작가의문체가매끄러워역사의소용돌이를헤치고사건을엮어나가는솜씨에나도모르게빨려들어갔다.이글을쓰는지금도자신의의지와는상관없이계유정난이라는역사의정변에휘말린문종의딸이자,단종의누이인경혜공주의삶이안타까운여운으로남는다.어떻게보면소설은한마디로사람의마음을읽어내는것이다.작가는티끌같은세속잡사에울고웃고사랑하고미워하고그리워하고슬퍼하고또분노하면서늙고병들어마침내는죽어갈수밖에없는등장인물들의마음을읽어내야한다.독자들은이소설에서왕의딸,경혜공주의마음을짚어내는작가의탁월한감각을느낄수있다.
그런데막상역사소설의경우,마땅히참고할만한문헌이아직도80여년전에나온루카치의?역사소설론?(1937년)을제외하고는거의없다는사실이놀라웠다.그렇다면근대에들어서서매년압도적인분량의작품이생산됨에도불구하고,왜그에대한이론적인작업은제대로이루어지지않는것일까.그것은역사소설에대한우리의이중적인태도와관련이있다.한마디로우리는역사소설을일반적인장르문학(추리소설이나SF소설등)으로분류하지않는다.그렇다고해서본격문학으로온전히분류하는가하면그렇지도않다.한마디로역사소설을본격소설의본류로취급하지않는것이다.
일반소설에서는작가적노력에의해획득되어야할소재의객관화가역사소설에서는그냥주어진다는생각이자리하고있다.그럼에도역사소설이인기가있는이유는무엇일까.당연히그것은독자들을끌어들이는‘이야기적재미’와관련된다.역사소설에서‘이야기적재미’는작가와서술대상(소재)사이의거리에있다.즉지나간과거는작가에게그것을전체적으로조망할수있는시야를부여하여작가로하여금자신이쓰는이야기속에서길을잃지않도록도와준다.다른측면에서는역사물의이야기적재미는무엇보다도작가나독자의삶과직접적인관련이없다는점에서나온다.작가든독자든혹접근함으로써생길지모르는혼란에대한부담없이이야기에대해초월적인태도를취할수있는것이다.그런의미에서‘이야기로서의역사’는우리의삶을일정정도구속하는역사와는무관하게그자체로소비될수있는이야기이다.이런의미에서정원찬작가의「공주는소리내어울지않았다」는역사물의이야기적재미를제공하고있는소설이다.
흔히들역사소설의목적은시대의문제를요약하고있는개인의운명을묘사하는것이라고한다.역사소설은서사물의총체성을확보하기위해보다폭넓은역사적현실을포괄해야만한다.루카치는역사상중요한역할을한인물을헤겔을빌려‘세계사적개인’이라고한다.그렇다고소설의주인공이반드시‘세계사적개인’일필요는없다.이러한의미에서역사소설의주인공은역사상의중요한인물보다는중간적인물내지중도적인물이더적합하다.그래서그저평범한필부필부가아니라삶의총체적양상이나민중적삶을포괄적으로제시해줄수있는<전형적>인물의창조가성패를좌우한다.이소설속의경혜공주는그런인물이다.
역사의운동은자연의그것처럼스스로연달아일어나는것이아니라인간이일으키는것이다.때문에역사에는필연성과더불어우연성과가능성이함께작용한다.자유와필연이교차하는가운데,인간이만드는변화의정경이역사이다.이운동의주체인인간은의식을지녔기때문에,역사는스스로그렇게있는것이아니라의식적인인간이만들어놓은것이다.인간과세계(자연)는대립하기도하고,변증법적으로통일되기도한다.그렇다고합리성이역사의방향을결정짓는것은아니니,역사적세계는불투명하다.역사는오히려주체와객체의운동이빚어내는승리와패배,성취와좌절,전진과역행이교차하는마당이다.제대로된역사소설을만날수없는시대는그만큼자신이살고있는당대에대한성찰이시들어가고있음을말해준다.지나간과거를소재로하고있다고해도,그것은사실작가자신이살고있는시대를겨냥한발언이된다는점에서역사소설의존재는당대의정신사를주목하게한다.역사소설에대한관심과논란은불확실한시대에인간과역사의운명에대한조명으로서의지적탐색을반영하고있다.
어떤의미에서역사소설은지나간역사를현실의패턴으로문학화하는작업이다.그중에도일반대중들의‘역사감각’에가장큰영향을미치는것은전쟁이나정변이다.중요한것은일반대중들에게전쟁이나정변은그어떤정당성도가질수없다는점이다.‘현재의구체적전사(前史)’로서의역사,현재적문제와유기적관련을맺고있는과거의역사란구체적으로무엇을뜻하며또이를어떻게형상화할수있을것인가?역사소설은어떻게과거의역사를재현하고형상화하여이를‘현재의구체적전사’로서만들수있으며,또현재의사회적,역사적상황과관련지을수있을것인가?여기에역사소설이해결해야할근본적인문제점이있다.이문제를두고루카치는,‘과거의재현이란과거의사람들이지녔던언어방식,사고방식,생활감정을연대기적으로나아니면자연주의적수법으로하나하나자세히복원하는것도아니요,과거의삶을현대화시켜과거와현재를동일화시키는것을뜻하지도않는다’고말하고있다.이러한식의역사재현은과거와현재의관계를옳게파악하지못한역사인식의결과이다.과거의역사는현재와유기적관련을맺고있고,또현재를인식하는데필수불가결한대상이긴하지만,과거의역사를서술하거나형상화할때는현재의관점에서바라보는역사인식과맞지않거나모순을일으키는시대착오적인면이엄연히존재하기마련이다.
표현되는대상의내적인실체는과거나현재나동일하다.그러나이러한동일한실체를표현하고전개함에있어서,현재의보다발전된교양은그대상을표현하거나형상화하는데일종의변화를불가피하게만든다.다시말하면과거의역사는옛날이나지금이나동일한내용이나의미를지니고있으나,과거의역사를인식하고,또이것의중요성을가늠하는데에는시대에따라차이가있을수있다는것이다.비록과거의역사속에서이미그영향력을행사하고있었지만,역사의경향이나움직임은동시대인들에게는미처의식되지않거나아니면그역사적중요성이강조되지않을수도있다.과거역사의의미와중요성은어둠이깔려야비로소비상을시작하는,헤겔이말하는바의‘미네르바의부엉이’처럼어느정도시간이지나야만인식될수있거나더분명해질수있다.
계유정난(癸酉靖難)은1453년(단종1)11월10일(음력10월10일)수양대군이김종서와세종의여러대군,대신들을귀양보내거나제거하며마지막으로단종을제거하고정권을장악한사건을말한다.이정변이계유년에일어났으므로계유정난이라한다.세종의뒤를이은문종은자신의단명(短命)을예견하고영의정황보인,좌의정남지,우의정김종서등에게자기가죽은뒤어린왕세자가등극하였을때,잘보필할것을부탁하였다.문종의뒤를이어즉위한단종이즉위당시12세로어렸기때문에세종과문종의유명을받든고명대신인김종서가조정의인사권및정권과병권을쥐고섭정을하였다.수렴청정을통해왕실의중심점역할을해야할왕대비,대왕대비등이부재한상황에서,세종의영특한아들들은세종시대에각종정치,문화사업에참여하는과정에서각자만만치않은세력을이루고있었으며,그중에서도세종의둘째아들수양대군과셋째아들안평대군등의세력이가장강성해,조정의신료와왕실,심지어환관,나인까지도이들의세력으로양분되어있었다.
수양대군은한명회등의도움을받아정치적계략을획책하게되는데,그첫시도는김종서와황보인,민신등의경계심을무마하기위해명나라에사신으로가는것이었다.사실이것은원래안평대군이책사이현로의조언으로그중요성을깨닫고자신이자청을했는데,수양대군이세력을동원해이를저지시키고자신이가게된것이었다.이사행길을통해수양대군은신숙주를완전히자신의세력으로포섭하게되며,본래목적이었던김종서등의조정대신들의경계심도무마시키는데성공하게된다.귀국후수양대군은한명회,권람,홍윤성등과함께자신의집권에방해가되는조정중신들을제거할살생부를작성하고,쿠데타계획을서둘렀다.거사일은음력10월10일,첫목표는좌의정김종서였다.수양대군은병력동원이가능했던무관양정,홍달손등을통해경복궁을점령하기로하고,자신은직접종임운,양정등과함께관복차림으로김종서의집으로향한다.
김종서는거사며칠전신숙주,최항그리고거사당일권람의방문을받았다.그러나수양대군이쿠데타를획책하고있다는것을전혀알아차리지못했던김종서는무방비상태였고,수양대군은종임운에게철퇴를가지고있다가자신이신호를내리면즉시김종서를내려치라는명을내렸다.수양대군은좌의정김종서의집으로들어가지않고밖에서수하들과함께대기하고있었고,김종서는들어가담소하기를청하나수양대군은핑계를대면서주저하였고,미리준비한유인용편지를김종서에게전달한다.김종서가편지를달빛에비춰보는순간수양대군의신호를받은종임운이철퇴로김종서를내리쳤고,이어서임운이김종서의아들김승규와그동료들을철퇴로내리치니,계유정난은이렇게시작되었다.
쿠데타가성공을거두자,수양대군은안평대군의처벌을형식적으로반대하는제스처를취했다.그러나곧안평대군을강화도에유배시켰다가의금부를통해사약을내렸으며,살해된조정중신의처첩,자녀들을노비로전락시켰다.그리고정난공신1등에자신과정인지,그리고사돈지간이었던한확등을임명하고,나머지신하들을2등,3등으로책록하여조정의주요관직들을독점했다.수양대군자신은영의정과군권을모두장악하여사실상재위의기반을갖추게되었다.수양대군과정인지등은단종을압박하여집현전으로하여금자신들을찬양하는교서(敎書)를짓게하는등집권태세를굳혀갔다.이렇게조정을완전히장악하여1455년마침내왕위를차지하게된다.계유정난에희생된사람들은김종서등70여명에이르고,그들의열여섯살이상의친자와열다섯살이하및모녀,처첩,조손,형제,자매,자식의처첩에게까지화가미쳤다.
우리는현대문학사에서계유정난을배경으로한이광수의「단종애사」와김동인의「대수양」을기억한다.「단종애사」는이광수가1928년11월30일부터1929년12월1일까지<동아일보>에총217회에걸쳐연재한작품이다.이작품은세종과문종을모시던수구파와세조를옹위하던개혁파사이의다툼에서희생된단종의슬픈생애를그렸다.단종이태어나서영월에서사망할때까지의연대기소설이다.「단종애사」는단종의탄생과성삼문,신숙주에대한고명과수양대군과권람의밀의(密議)를내용으로하는고명편,수양대군과한명회가김종서와안평대군을비롯한수많은사람을죽여등극의기반을마련하는실국편,정인지등이단종의선위를전하여세조가등극하고사육신이죽음으로충의를바치는충의편,노산군이영월에서죽음을당하는혈루편등4편으로구성되어있다.
「대수양」은김동인이1941년『조광(朝光)』64∼73호에연재하였다.흔히이작품은이광수의「단종애사(端宗哀史)」와비교된다.그이유는같은시기의정치적질서의형성을,사관(史觀)을달리하여이해하고있기때문이다.이광수는어린왕단종을정통왕권으로보고,수양대군의찬탈로왕권교체가이루어졌음을비판적·부정적으로묘사하였다.그런데김동인은수양대군을정치적역량과통치자로서의정치이념이확립된위대한인물로이해하고묘사하였다.이광수는군신지의의도덕관에비추어정통왕권을문제삼았고,김동인은정치역량과통치업적을주로하여역사발전의법칙성을더존중하는사관을보였다.
줄거리의중요한대목은다음과같다.수양이사례사(謝禮使)로명나라를다녀오는데,이때수양대군의아우안평대군(安平大君)을에워싸고있는김종서(金宗瑞)의세력이수양의세력을부정하고제거하려는반역의음모를꾀하고있다는정보를접한다.이에수양대군은그세력을모두제거하게된다.나이가어린단종은이공포분위기에질려서삼촌인수양대군에게정권을넘기게된다.이리하여수양은대권을쥐게되고문화창조와그창달(暢達)에진력한다는것이다.역사를재구성하여보인다는점에서볼때,이광수는역사적자료에의존하고있는데반하여,김동인은거의허구적구성에의존하였다는차이를보인다.
이광수와김동인이이른바루카치의역사상중요한역할을한인물인‘세계사적개인’을대상으로한것이라면,계유정난에얽힌중간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