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러 코드: 장미와 잠자리에 관한 보고서 (조우호 소설)

쉴러 코드: 장미와 잠자리에 관한 보고서 (조우호 소설)

$20.00
Description
“쉴러는 어디에 있는가. 어머니는 어디로 갔는가.” 한 문학 연구자의 오랜 질문이 한 편의 장편소설로 귀결되었다. 『쉴러 코드: 장미와 잠자리에 관한 보고서』는 쉴러의 유골 진위 논란이라는 독일 문학사 속 실재적 미스터리를 토대로, 인간 존재와 기억, 죽음 이후의 사슬을 다층적으로 탐사하는 독보적인 형식의 소설이다. 작가 조우호는 괴테 전공자로 독일 예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오랜 시간 괴테, 쉴러, 빌란트에 대한 연구를 이어온 인물이다. 그에게 쉴러는 ‘비범한 정신’임과 동시에 ‘우리와 같은 범부’였으며, 그의 죽음과 유골의 행방은 그 자체로 운명과 인간, 기억과 기록이라는 주제를 품은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었다.
작품의 시작은 소설 화자인 한 문헌학자의 직관이다. “혹시 쉴러의 관이 비어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독일 유학 시절부터 화자는 쉴러의 유골 진위에 얽힌 기록들, 소문들, 슈바베 시장의 유고에 주목해왔고, 수십 년 후 다시 그 질문을 붙든다. 그러던 중 그에게 한젠 박사라는 독일 학자가 보낸 정체불명의 문서가 도착한다. 소설 말미의 중핵을 이루는 이 문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선 '소설형 보고서'로, 쉴러와 당대 독일의 비밀단체라 할 수 있는 일루미나트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는데, 문체는 명백히 문학적이고 필자는 익명이다. 슈바베의 기록과 교차되는 이 문서가 과연 실제인지, 혹은 역사를 빙자한 픽션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화자는 그것을 고스란히 자신의 탐문 여정과 직조하며 하나의 '기록의 소설'을 완성한다. 쉴러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고들며, 화자는 결국 '위대한 존재의 부재'와 '기억하는 자의 의무'에 다다른다.
하지만 이 소설이 예사롭지 않은 깊이를 지니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쉴러를 향한 지적 호기심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 서사의 시간적 변곡점마다, 독자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서사에 맞닥뜨린다. 소설은 갑자기 한 남자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전환되며, 병상에서 점점 쇠약해져 간 어머니를 끝내 지키지 못한 자식의 자책과 애도, 그리고 그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감정이 잔잔한 회고체로 이어진다. 봉안당을 찾은 아들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 앞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잠자리 한 마리. 그 잠자리는 마치 환영처럼, 부재 속의 존재처럼, 어머니가 아직 그 곁을 떠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듯한 존재로 남는다. 쉴러의 빈 관과 어머니의 봉안당, 사라진 유골과 남겨진 자의 기억은 그렇게 서서히 포개어진다.

『쉴러 코드』는 일종의 메타픽션이며 동시에 보고서이자 소설이다. 작가 스스로도 “기록된 것들을 퍼즐처럼 이어 붙여 인연의 사슬로 복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쉴러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미스터리는 작가 개인의 애도서사로 이어지며,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삶과 연결되는 미세한 감각의 순간들을 발견하게 한다. 그 모든 과정은 운명, 혹은 ‘운명이라는 말을 빌린 인간의 정신’이 그려낸 하나의 사슬처럼 느껴진다.

조우호 작가는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전공과 기후환경문화전공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예나대학교에서 괴테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문학과 경제, 기후라는 인문학의 외연을 확장해 왔다. 바이로이트대학 객원교수로도 활동하며 문화와 제도경제학의 접점을 탐구했고, KIDA 이사로서 국제안보와 나토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쉴러 코드』는 이처럼 한 인문학자가 쌓아온 사유의 경로와 삶의 기억이 교차하며 탄생한 첫 장편소설로, 기록을 넘어선 문학적 추도의 형식을 새롭게 제안한다.
죽은 자를 기억하는 방식은 많지만,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사람은 많지 않다. 『쉴러 코드: 장미와 잠자리에 관한 보고서』는 독자 모두에게도 자신의 인연과 기억의 사슬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조용한 독서의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슬의 어딘가에 쉴러가, 그리고 우리의 누군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