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머물 것처럼 곧 떠날 것처럼

영원히 머물 것처럼 곧 떠날 것처럼

$17.44
Description
조선 신자들을 위해 목숨 바친
브뤼기에르 주교의 신앙과 사랑
1835년 선종한 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를 기리기 위해 그의 고국인 프랑스에서 1938년 출간한 전기를 번역한 책이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시성을 추진 중인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이 책의 번역 및 보급을 주관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전기는 기존 출간 도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과 그의 여정 속 이야기를 통해, 주교의 신앙과 삶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그가 조선 선교를 어떻게 준비하고 헌신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책은 단순한 번역서를 넘어, 조선 복음화를 위해 온 삶을 바치신 주교님의 발자취를 깊이 새기게 하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오랜 시간 제한적으로만 알려졌던 원전의 내용을 이제 신자들과 널리 나눌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추천사 중에서
저자

카미유부르동클

카미유부르동클신부는이책의출간당시(1938년)오드Aude교구페장Pezens본당의주임사제였다.
그는교회가브뤼기에르주교의성덕을인정하고그의공로를선포할날을희망하며,영웅적인선교사였던브뤼기에르주교를널리알리고자이책을저술했다고밝혔다.

목차

추천사4
발간사7

1부출생에서파리외방전교회로떠나기까지
브뤼기에르주교의외모와성품14
갑사의주교,브뤼기에르주교의문장소개16
브뤼기에르주교의출생-날짜와장소와본당17
중등교육과정25
카르카손대신학교입학26
카르카손소신학교교사29
사제,대신학교교수그리고참사회원이되다31
파리외방전교회에들어가다34

2부보르도에서마카오까지의여정
파리외방전교회신학교에서48
아시아선교지로떠나다51
마카오에도착하다70

3부시암선교사
페낭에서의활동82
방콕을향하여,육로를통한선교여행90
마침내방콕100

4부시암대목구의보좌주교
시암대목구의보좌주교가되다120
주교서품식125
브뤼기에르주교의사목여행136
싱가포르에도착하다139
페낭에서의사목활동141
인근교우촌사목방문151

5부조선을향한여정-브뤼기에르주교의중국여정
조선대목구장으로임명되다156
마닐라체류160
마카오를지나복안으로163
강서에서172
강남에서176
절강에서강소로186
산동지방189
산서에서200

6부브뤼기에르주교의선종
달단으로떠나다210
서만자에서214
조선을향한마지막여정223
브뤼기에르주교의선종229
사후96년만의조선입국232
고향레삭도드에서거행된추모미사239

역주譯註244

출판사 서평

1832년9월9일교황그레고리오16세는그동안북경대목구에속해있던조선을분리시켜새롭게조선대목구를설정하고,초대대목구장으로시암대목구의보좌주교브뤼기에르주교를임명하는교서를반포했다.일찍부터조선에관심을갖고그곳으로가기위해끊임없이노력하던선교사브뤼기에르는그가있던페낭을출발해중국대륙을가로질러조선땅으로향하는여정을시작했다.

100여년의시간을두고톺아보는
브뤼기에르주교의생애와신앙
바르텔레미브뤼기에르주교의생애를다룬전기『영원히머물것처럼곧떠날것처럼』의프랑스어판원서『MonseigneurBARTHÉLEMYBRUGUIÈRE』가출간된것은브뤼기에르주교사후(1835년)100년여가지난1938년이었다.저자카미유브루통클은브뤼기에르주교후손으로서당시오드교구페장본당주임사제였다.그는교회가브뤼기에르주교의성덕을인정하고그의공로를선포할날을희망하며,영웅적인선교사였던브뤼기에르주교를널리알리고자이책을저술했다고밝혔다.전기는브뤼기에르주교의생애와조선으로향했던그의여정을톺아가며보여준다.
천주교서울대교구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한국어로번역해출간을제안한이책은기존의브뤼기에르주교관련도서에서는볼수없던가족에게보낸편지글과험난한여정의정한情恨이담긴기록들을볼수있다.서울대교구교구장정순택대주교는한국어판의발간을축하하며이책이브뤼기에르주교의헌신과신앙을깊이묵상하는계기가되기를바란다고밝혔다.

“이책이브뤼기에르주교님의헌신과신앙을깊이묵상하는계기가되기를바라며,나아가우리의신앙을새롭게다지고복음화의길을더욱굳건히걷는데큰영감을주기를소망합니다.” -서울대교구장정순택대주교의추천사

사제,교수,참사회의요직을둔채
선교사제로떠난브뤼기에르신부
1789년부터1799년까지이어진프랑스대혁명의여파로프랑스의정치,경제,사회는급격한변화를겪었다.종교도혁명의불꽃을피해갈수없었다.박해의소용돌이속에서많은사제와수도자들이목숨을잃거나쫓겨났고성당과수도원이문을닫았다.브뤼기에르가신학교에입학해교육을받기시작한1805년은프랑스곳곳에아직혁명의잔열이남아있던시기였다.
‘난세亂世’에‘영웅英雄’이난다고했다.브뤼기에르주교는황폐해진교회라는텃밭에서훗날큰가지를드리우게될겨자나무의씨앗과도같았다.놀라운신심과의지로자신에게주어진모든것에열정적으로매달렸던브뤼기에르는불과26세의나이에재능과헌신을인정받아철학과신학교수그리고참사회원이되는명예를얻었다.

그는뛰어난지력과양식그리고뜨거운열정을지닌성품을타고났다.믿기힘든에너지와독립적인성격을지녔던그를두고장상은이렇게말했다.“혹여그가주교가된다면,그의표어는‘사람들이어떻게생각하고뭐라고말하든,나는전진할것이다!’가될걸세.” -「브뤼기에르주교의외모와성품」

주님께서보내시는곳으로간
선교사제브뤼기에르의삶
명예와안정된지위를포기하고파리외방전교회의선교사가되기위해카르카손을떠나야했던브뤼기에르에게가족과헤어질시간이다가왔다.열한명의자녀들중막내였던그는상심하실부모님을걱정하면서도하느님의영광을드러내는일을최우선으로삼았다.그는파리외방선교회에들어가기위해카르카손을떠날때에도부모님께“이생에서잠시헤어지겠지만하늘나라에서영원히다시만나도록해주시기를주님께청합니다.”라고마지막인사말을적은편지만을남겼다.
브뤼기에르는프랑스를떠나자신에게맡겨진선교지로향하면서가족들과작별의시간을보내지않았다.잠시고향에들러작별인사를하라는부모의당부를따르지않았다.대신그는편지를보내자신이이렇게서둘러떠나야하는이유를알렸다.브뤼기에르에게가장중요한것은인간적인정情이아닌,하느님의일을하는것이기때문이었다.

“하느님께서섭리하시어주신명령임이분명하다면잠자코순명해야합니다.그러니참으로사랑하는부모님,안녕히계십시오.주님께거듭이마지막희생을드리십시오.부모님이저의편지를받으실즈음저는프랑스해안을멀리벗어나있을것입니다.”
-「아시아선교지로떠나다」

유럽인의눈으로바라본
19세기아시아인의삶
브뤼기에르주교의지적능력은의심할바없이높은경지에이르렀음을알수있다.그는사제로서품받은후불과4년동안신학교의신학과철학교수가되었고참사회원의명예까지얻었다.그가자신에게맡겨진선교지로가면서보고들은것을기록한것은어쩌면당연한일일것이다.그는편지와여행기,파리외방전교회가출간하는『전교회지』등에그의여정을소개하는글을남겼다.

가나안땅을바라보는
모세와도같은브뤼기에르의삶
구약성경의「탈출기」에는이집트의압제에서신음하던히브리인들을약속의땅으로이끈모세의이야기가담겨있다.그러나모세는‘약속의땅’가나안에들어가기전에죽어그곳으로가지못했다(신명34,3참조).브뤼기에르주교도하느님의일을위해목숨을건여정을거치고또거쳤다.선교가금지된중국대륙을종단하면서조선의신자들에게다가갔던목숨을건그의여정은중국과조선의국경에서멀지않은작은마을마가자(馬架子,Ma-kia-tse)에서멈췄다.
모세의역할은여호수아에게이어져히브리인들은약속의땅에정착할수있었듯이,브뤼기에르주교의놀라운여정은그의뒤를이은모방,샤스탕신부와앵베르주교에게로이어져우리나라최초의사제인김대건안드레아신부와최양업토마스신부가성장할수있는토대가되었다.
선종96년후인1931년,그가그토록닿고자했던조선에그의유해가이장되었고,선종200년을앞둔지금한국천주교회는그의시복·시성을추진하고있다.저자의마지막문장은그런의미에서오늘우리에게이책이필요한까닭을알려준다.

“그가섬기며명예롭게했던교회가그의공로를선포하고그의성덕을인정할날이언젠가오리라고희망할수있을까?이는오직하느님만이아실것이다.다만우리가할수있는일은그렇게되기를희망하는것이다.그렇게된다면우리카르카손교구에는새로운영광이될것이고,그의동포들에게는마땅한자랑이될것이다.”
-「고향레삭도드에서거행된추모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