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기획한 ‘근대화?세계화와 한국사회의 발전논리’ 프로젝트 가운데, ‘분단체제하 남북한의 사회변동과 민족통일의 전망’이라는 주제하에 이루어진 중점연구의 세 번째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는 해방공간에서 분단체제로 연결되는 시점에서 이데올로기의 지형이 국가주의, 반공주의로 재편되는 과정, 국가와 정권의 목적에 맞게 구성원이 ‘국민’과 ‘민족’으로 호명되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물리적 폭력과 함께 동의 기제를 활용했음을 밝힘으로써, 개인과 시민사회를 단일한 중심과 위계를 향해 억압해 온 구조의 모습과 그 해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책의 필자들은 해방공간 이후 분단체제에서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왜곡되는지를 민족과 국민 개념을 통해 고찰하였으며, 남북한의 통일을 전망하면서 남북한의 평화공존체제의 조건으로 어떤 것을 도출할 수 있을지, 다원화 시대에 한민족의 정체성이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였다.
김동노는 <해방공간의 국가 건설과 다원적 민족주의>에서, 해방정국에서 새로운 국가 건설에 참여한 다양한 주체들이 제시한 민족주의 담론이 어떻게 서로 다른가를 살펴보고, 왜 이러한 차이가 나타났으며, 왜 민족주의 담론의 광범위한 확산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통합은 이루어지지 못했는가를 검토한다. 해방공간에서 제시된 민족주의 담론을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이승만)와 계급적 민족주의(박헌영), 인종적 민족주의(김구)로 구분하고, 이들 사이에서 정치적 이념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민족적 통합을 강조하는 입장인 중도파(여운형 등)의 민족주의 담론의 정체성을 구명한다.
김영희는 <국민동원체제와 식민지 유산>에서 이승만 정권에서 대중동원방식으로 작동된 국민동원체제의 조직체계와 논리를 해명한다. ‘국민동원’ 텍스트를 분석하고, 전국적인 관변조직이었던 국민회-청년회와 지방행정말단으로서 국민반이 정립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 국민동원체제의 위상과 특징을 구명하기 위해 일제 말기 조선연맹의 총력체제와 관련지어 연속성과 단절, 변형 등을 구명하였다. 1950년대 한국사회는 혹독한 전쟁을 경험하고 북한과 대치하는 전시-준전시체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민동원체제는 국가주의적 요소를 내걸고 구성원을 민족보다 국민으로 통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김영희의 <반공주의와 일상생활>은 반공주의가 한국사회와 개개인의 일상과 의식에 파고 들어가는 방식을 해명함으로써, 반공과 국민동원의 연계 메커니즘을 확인한다. 전쟁을 거치면서 남한사회를 뒤덮었던 반공대회, 문예, 전람회, 구호/표어 속에 전쟁의 공포, 북한의 폭력성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어, 반공주의가 집단적 기억으로 구조화되었는지를 검토했다.
정용화는 <한국자유주의의 전개와 그 속성>에서 자유주의를 이념 자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적 맥락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한국의 자유주의는 ‘근대의 충격’과 함께 서구로부터 수용되었지만 한국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나름대로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판단한다. 특히, 식민지배하의 민족해방운동과 민족통일운동, 개발독재에 대항한 민주화운동, 최근의 신자유주의라는 과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만의 ‘고유한’ 속성을 형성하였다고 주장한다.책머리에
구체적으로 한국자유주의의 속성은 시장자유주의보다 사회적 자유주의에 더 가깝지만, 오랫동안 민주화운동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평등’의 가치에 압도되어 ‘비자유’적인 경향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한국자유주의는 민족주의와 결합 또는 분리되는 이중의 모습을 식민지 시기 이래 보여준다. 이제 한국 시민사회 내의 가치관과 이해관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들 간의 공존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의 기본 덕목인 관용의 문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공임순의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일 성찰>은 4?19를 전후한 신세대/구세대와 보수/혁신의 첨예한 양분법적 지형에서 박정희의 군부가 신세대와 혁신을 전유할 수 있었던 초기 메커니즘을 규명한다. 박정희의 군부가 신세대와 구세대의 인정투쟁이라는 선(先)정치적인 담론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여 자기화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울러 국민이라는 일반의지의 대표/재현은 곧 ‘지도자상’에 대한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갈망과 희구에 직결되어 있음을 추적하였다. 박정희의 군부는 한국사회의 후진성을 압축적으로 표상하는 ‘특권계급’에 대한 대다수 지식인들의 환멸과 부정을 등에 업고 구성원들 간의 동등한 협조와 단결을 우선시하는 집단지도체제의 수평적 동지애를 전면에 내세웠다. 국민의 대표자/대변자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이러한 지도자론의 내적 논리는 박정희의 경우 집단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4?19의 연장선상에서 5?16을 자리매김하려는 그의 ‘영구혁명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후 박정희는 ‘아시아적 특수성’을 절대화하여 식민지적 오리엔탈리즘의 복합적 영향을 지우고, 유신체제를 전후해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창하며 대의정치를 부정하는 체계로 나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적인 전통의 모범적인 사례로 새마을 운동이 제창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새마을 운동의 한국적인 것과 유신체제와 식민지적 오리엔탈리즘이 착종된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유동적인 변주상은 현재까지도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뜨거운 쟁점거리로서 여전히 비판적 개입과 성찰을 요구한다고 본다.
김경미는 <남북한 교과서 속의 민족과 국민>에서 1950년대까지 남북한 국사교과서에서 ‘민족’의 개념을 ‘국민’의 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분석하였다. 남한의 교과서는 민족을 주체로 하여 역사를 기술하면서 민족의 단일성을 강조하고 민족 분열을 죄악시함으로써, 민족이 곧 국민이 되며 국민은 오로지 단결해야 한다는 관점을 주입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민족은 멸공을 위한 국민동원의 구호로 이용되어 이승만 정권 유지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북한의 교과서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인민계급을 역사의 주체로 기술했다. 계급투쟁론의 관점에서 계급이 민족보다 앞서며, 민족은 외래 침략자와 관련되어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민족’의 대체 용어라고 할 수 있는 ‘조국’과 ‘애국’이라는 용어를 ‘외적’에 대한 대항 개념으로 사용하고 김일성을 일제강점기 유일한 투쟁의 지도자로 내세우면서, 인민은 점차 지도자에 대해 복종해야 하는 위치로 전락하였다. 즉 남한과 북한 모두 ‘민족’의 수난을 막는다는 역사적 책임감을 강조하며 ‘국민’으로서 지배체제를 중심으로 한 단결과 지도자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였다.
신명직은 <재일조선인 영화로 본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에서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우리학교?,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 ?박치기? 등 재일조선인 영화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재일조선인 영화들은 특히 제1세대와 2, 3세대 영화가 크게 차이가 나는데, 그것은 ‘이주’에서 ‘정주’로 그들의 삶이 변모해왔기 때문이다. 제1세대가 주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한’을 중심으로 아픔을 토로하는 반면, 2, 3세대에 이르러서는 ‘코리안’이자 ‘일본인’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의 혼돈을 영화의 주된 테마로 삼고 있다. ‘재일코리안’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항대립적 시각이 아닌, 그것을 넘어서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한국인이나 일본인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나름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음을 드러내려고 했다. 나아가 재일필리핀인 등 또 다른 이주자들과의 연대를 시도하면서, 그들의 정체성이 변모해가고 있음을 해명하려고 했다.
윤인진은 <한민족 이산과 한민족공동체 형성방안>에서 세계 여러 지역에 거주하는 재외한인들의 다양한 경험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 등지로 이민을 떠난 ‘신이민자’들의 특성과 거주국에서의 적응 유형과 정체성은 원래의 디아스포라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이 같은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원래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장하기보다는 ‘초국가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초국가주의는 민족국가의 국경을 뛰어넘어 기원국과 거주국 간에 형성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관계망과 다원적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상과 같이, 해방 후 국민국가 형성, 국민동원체제, 자유주의와 반공주의, 보수와 진보, 남북한 교육/교과서, 재일동포를 포함한 해외 동포의 이산 문제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를 관통하는 분단체제 아래 ‘민족’과 ‘국민’의 정체성 형성/재구성 문제도 살펴보려 했다.
필자들은 민족과 국민의 정체성은 초역사적이거나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아니라 당대의 정치적 목표와 조건에 의해 변모하고 유동하는 성질을 나타낸다고 본다. 식민지 시기 독립운동은 민족을 주체로 민족의 단일성을 강조하면서 전개되었고, 해방 후 국가건설운동은 민족/국민을 내걸었고, 정부수립 후 국민의 개념은 민족보다 우위에서 오로지 단결하여 체제수호의 주체로 요청되었다.
체제경쟁에 몰두한 남북한 사회에서 ‘민족’은 멸공을 위한 국민동원의 구호 혹은 외래침략자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주체로 호명되었다. 또한 표면적으로는 ‘민족’ 앞의 역사적 책임감을 강조하지만 각기 구성원들에게 국가에 대한 귀속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민’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도록 다방면에 걸쳐 공작을 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전유된 집단기억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한국인은 민족과 국민의 불일치 혹은 긴장 관계 속에서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한편 1990년대 이후 탈냉전, 다원화의 흐름 속에서 종래 한국사회의 국가(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구성원들 스스로 국가공동체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에 바탕을 둔 국민 정체성을 보이기 시작하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압축적 산업화와 경제력 신장, 문화적 자부심, 북한과의 체제경쟁의 자신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 시점에서 민족/국민의 범주의 재구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되었다. 국민이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와 결부되어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