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연록 (양장본 Hardcover)

서계연록 (양장본 Hardcover)

$16.98
Description
『서계연록』은 박세당이 1668년 11월 동지사 서장관 자격으로 청의 수도인 연경에 다녀와 사행 기간 동안 체험하고 목격한 내용들을 일록체 형식으로 기록한 연행일기다. 주로 왕환 노정에서 관찰하고 목격한 사실들과 공식적인 일정 수행과 관련하여 파생된 내용들을 등래한 이 책은 공적 기록이라는 성격을 다분히 띠면서도 매우 실증적인 탐구 노력이 두드러진다. 이 책 외에 총 23제 37수의 시로 이루어진 '사연록'을 남겼다. 이 짧은 기록에는 박세당의 학문적 태도와 사고, 고민들이 녹아 있다.
저자

박세당

조선인조-숙종연간의학자이다.아버지박정(朴炡)과어머니양주윤씨(楊州尹氏)의4남1녀중막내로태어났다.어릴때에부친상을당하였고,조부모,모친,부인남씨등도일찍세상을떠났으므로생활이곤궁하였다.처남남구만,처숙부남이성등과경학(經學)토론을많이하였다.1660년(현종1)증광시에갑과1등으로급제하여전적(典籍)이되었고,이후정언,지평,부수찬,부교리등을지냈으며,40세때인1668년(현종9)파직되어,양주수락산석천동(石泉洞)으로들어가교육과연구에전념했다.'대학사변록','신주도덕경','남화경주해산보','중용사변록','논어사변록','맹자사변록','상서사변록'등의저술이있다.

목차

옮긴이의말
『서계연록』해제
국역『서계연록』
『서계연록』원문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조선후기실학사상을체계화한박세당의청나라견문기,
실증적인탐구태도와청의선진문물에대한충격,퇴은구상까지한데담겨


서계(西溪)박세당(朴世堂,1629~1703)이사은사로청나라를다녀온후작성한『서계연록』의한글번역본이출간되었다.박세당은탈주자학적경학론과노장(老莊)사상,『색경』으로표방되는농학을아우르고,독자적인고증학을개척하였으며양명학과역(易)방면에까지깊이천착하는등다양한경계지대의학문을추구한17세기중·후반조선시대의대표적인사상가의한명으로,32세의늦은나이에입사하였다가8년이라는짧은관직생활을마감하고농사를지으면서강학과연구에몰두하였다.당시노론의거두송시열과대립하며사문난적으로까지낙인찍혀불행한최후를맞았으나조선후기의실학사상을체계화하여다산경학의연원이되었다고평가받고있다.

『서계연록』은박세당이1668년11월동지사서장관자격으로청의수도인연경(燕京:지금의베이징)에다녀와사행기간동안체험하고목격한내용들을일록체형식으로기록한연행일기로,이책외에총23제37수의시로이루어진『사연록(使燕錄)』을남겼다.
『서계연록』은표지까지포함시켜도겨우58면에불과하여다른연행록에비하면분량이매우적은편인데다본문도대개가각면10행,각행20자의기준으로씌어져있어일률적이고다소단조로운구성체계로되어있다.사적기록이라는성격이강한다른연행록들과달리『서계연록』은관찬기록에준하는공적기록이라는특징이강한것과관련이있을것이다.이러한특징은연경에체류한한달여기간의기록에서더욱두드러져봉사단일행의사적활동에관한기술은거의전무하다시피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이짧은기록에는박세당의학문적태도와사고,고민들이녹아있다.우선가장두드러지는것은왕환노정에서보여준투철한실증적(實證的)탐구태도다.
그의실증적관심권속에는사행동안그가참고했던『지지(地志)』와앞선사절단들의기록인전록(前錄)은물론이고,비석과사원,누각(樓)과누대(臺)및묘지,그리고성(城)과강하(江河)등의명칭과여타산천지리관련소재들이모두망라되어있다.심지어연경의숙소인회동관(會同館)벽면낙서까지도무심히지나치질않았다.나아가그는자신이참고한전록을그대로신뢰하기보다는,오히려해당기록을의심하면서전록의내용자체를고증해내기도했다.
길거리통신류의와전된소문에도촉각을곤두세우는이런모습은매우치밀하면서꼼꼼한학구풍의인물이었던박세당의특징을잘보여준다.결국이때의실증적탐구노력은무신년사행을통해얻은가장큰수확물로남게된다.박세당의대표적인문도중의한사람인이탄도스승의이러한고증노력에대해“연행노정상의산천과길의이정(道里)및지명에대해서,앞서연행을다녀온우리봉사단들의기록중에는허다한오류가유전되고있었으나,이를두번다시의심하지도바로잡으려들지도않았다.이에선생은중국의제반관련문서들을고증하고,해당지역거주민들에게직접문의하기도했다.무릇의심할만한여지가있는것들은,대부분고쳐서바로잡았다.이에연로한역관들이놀라워하며탄복해마지않았다.”고하였다.
또한당시는청국의정치경제·사회문화전반에걸친정보가초유의관심사로등장해있던시기여서사행경위를보고할책무를지녔던박세당은날카로운대청정탐(偵探)의흔적을고스란히남겨놓았다.17세기의다른연행록에서는대체로묘사가극히소략한조의(朝儀)와사연(賜宴)을상세히취급한것도이책의특징이다.
또이책에는불교와관련된소재들을다수기재하였다.이는청초의중국불교의현황을엿보게해주고동시에40세이전까지견지했던박세당의불교인식의일단을살피는데도좋은자료가된다.물론이기술은불교사원에대한묘사가주류를점하지만계율과좌선같은수행법에관한관찰과분석,조·청양국의수행가풍에대한비교도포함되어있다.그러나이러한불교에대한친연성과는상관없이그가근본유자로서의사상적정체성을뚜렷하게보여주고있음도간과할수없다.여기에서박세당이진리인식의한차원에서불교를부분적으로수용하기는하되강한원시유학지향성이라는사상적입각점은확고부동하였다는것을알수있다.
병자호란적의피로인(被虜人)들의애절한실상과청국의민물(民物)관찰에대한기술도눈에띈다.특히조선에비해괄목할만한발전을이룩해가는청의경제적현실에는상당한충격을받았던듯하다.간헐적으로배나수레에대한묘사가등장하며특히당시서양의앞선첨단문물을상징하는청초의유명한역법논쟁(曆法論爭)에관한기록은주목할만하다.박세당은신역파(新曆派)인아담샬및그문도들과구법파(舊法派)인양광선일파간의이역법논쟁전개과정을압축적으로기재하였다.이러한서술태도가주자학자들의숭명배청론(崇明排淸論)에반대하여중국대륙의세력변동에주체적으로적응하자는그의실리주의정책주장과일맥상통한다는것은말할것도없다.
다른한편으로『서계연록』은다른연행록에비해이른바장관(壯觀)에대한기술이상대적으로빈약하다.만리장성이나산해관,각산사(角山寺)등의탁월한경관을절제되고압축된문장으로담아내기는했지만극히소략한편이다.이는다분히병자호란의피해국인조선봉사단의우울한처지가반영된것일수도있겠다.
-옮긴이의말

마지막으로박세당은특별히연경으로향하는서행길에서영평부(永平府)의이제묘(李齊廟)를참배하고묘의세부적구성과명칭들,묘가위치한영평지역의산수에주목하였다.또한난하변에자리한조어대(釣魚臺)와그주인공인명대의감찰어사한응경(韓應庚)의무덤과구택도비교적상세히묘사하였다.이런기록들은사행을나서기전에이미결심을굳히그의퇴은후구상과도관련있는듯하다.옮긴이김종수는박세당이구상하고그문인들에의해실행에옮겨진,이른바석천경영(石泉經營)의선행모델을이제묘가조성된영평경영에서제공받았을가능성을조심스레추정하고있다.실제로이무신년연행후박세당은벼슬을마다하고곧수락산의석천동으로귀환한다.이러한그의심경은연행때그가접한일련의문명충격에대한수용태도를결정해주는변인으로도작용하였을것이다.
-국역『서계연록』

현재연행록으로총칭되는글은100여종이알려져있다.그중하나인『서계연록』은다른연행록에비해서는많이알려지지않은짤막한기록이나박세당이라는걸출한조선후기사상가의특징을미리요약해서보여주는것으로,이완전한국역본은이방면연구자와관심을가진독자들에게크게도움이될것이다.옮긴이김종수는후속작업으로『서계박세당의연행록연구』의출간을준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