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전쟁사 1: 전쟁의 파도

한국고대전쟁사 1: 전쟁의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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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 임용한의 『한국고대전쟁사』 제1권 <전쟁의 파도>. 우리 학계에 전쟁은 물론, 전략, 전술에 대한 부족한 현실 속에서 한국고대전쟁사를 풍부하고 전문적으로 생생하게 기술한다. 탁월한 지략과 용맹을 펼쳐낸 전쟁영웅 등 숙명적 전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특히 동서양의 전쟁사를 참조하여 우리 역사 기록의 약점이라고 할만한 전투 장면뿐 아니라, 장비와 무기에 대한 서술도 가능한 한 충실하고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저자

임용한

연세대학교 사학과, 동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엠키스(Mkiss) 강사이며 경희대학교와 광운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전쟁과 역사》1·2·3, 《조선국왕 이야기》1·2, 《배낭 메고 돌아본 일본역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공저), 《경제육전과 육전체제의 성립》(공저) 등이 있다.

목차

서문

제1장 쇠와 불
1. 전쟁의 조건
2. 상처뿐인 영광

제2장 혼강의 건너편
1. 약속의 땅
2. 동부여의 이단아
3. 골짜기의 평화
4.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5. 대소, 3대에 걸친 악연
6. 용기 있는 자에게만 허용되는 승리
7. 환도산성

제3장 삼국의 풍운
1. 악전고투
2. 서쪽의 해, 동쪽의 달
3. 새로운 숙적
4. 전쟁 영웅의 비극
5. 성장의 조건
6.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다
7. 심화되는 위기
8. 폴리스를 넘어서

제4장 새로운 군대와 전술
1. 병종별 특징
2. 전투방법과 전술

제5장 동상이몽
1. 정복왕
2. 평양 천도와 북위와의 전쟁
3. 계림의 수탉
4. 운명의 망치
5. 숙명적 만남
6. 전격작전

제6장 최후의 승자
1. 반쪽의 성공
2. 막다른 선택

주

출판사 서평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히는 책
우리 전쟁사에 다소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임용한의 『전쟁과 역사』 시리즈를 기억하실 것이다. 지금까지 삼국편, 거란·여진과의 전쟁, 고려후기편까지 총 3권이 출간되었는데, 2001년 선을 보인 첫 번째 권은 기존의 우리 전쟁사 서술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탁월한 역사적 안목과 서양과 중국 전쟁사에 대한 방대하고 심도 깊은 지식, 엄격한 역사적 상식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절묘한 균형, 쉽고 명쾌하며 간결한 글쓰기, 마치 카메라로 장면 장면을 찍어 보여주는 듯한 비주얼 넘치는 서술 방식을 견지하여 그동안 영성한 자료에 극히 평면적인 서술에만 그쳤던 우리 고대 전쟁사를 신선하고 풍부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문적인 지식 없어도 누구나 쉽고 재밌게 정말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전쟁사를 일단 써보자는,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다분히 ‘아마추어적인 충동’에 1권 삼국편을 전광석화처럼 저술하였는데, 한 권의 책에 방대한 내용을 빡빡하게 담아내느라 아무래도 생략하고 건너뛰고 상세함을 결한 부분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후속권을 내면서도 계속 1권의 “주 내용이 삼국항쟁에서 수당전쟁과 삼국통일로 한정되어 있었던 것도 그렇고, 1권을 쓸 때는 생활이 빠듯했던 시절이라 현장에 가보지 못하고 쓴 부분도 꽤 있었던 것, 무엇보다 당시에는 전쟁과 군제에 대한 지식이 진짜 건전한 상식선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었던 것도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커져 갔던” 저자는 몇 년을 벼르며 온전한 고대 전쟁사의 저술을 준비하였다.

전 3권으로 기획된 『한국고대전쟁사』는 10년 전 『전쟁과 역사』 삼국편에서 저술의 출발점을 고구려 장수왕 63년 시점으로 잡았던 것(이 부분은 새로 출간된 책 1권의 제5장에 해당한다)에서 훨씬 거슬러 올라가 고조선으로 앞당기고, 삼국 통일전쟁 이후 부분은 백제부흥군과 나당전쟁을 추가하고, 후삼국의 항쟁도 대폭 보완했다. 현지 답사와 중국과 만주 지역에 대한 답사도 크게 보강했다. 동서양의 전쟁사를 참조하여 우리 역사 기록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전투 장면, 장비와 무기에 대한 서술도 가능한 한 충실하고 구체적으로 재현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분량이 3권으로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1권 <전쟁의 파도>, 2권 <사상 최대의 전쟁>, 3권 <부흥운동과 후삼국>).

2월의 진창 속에서 골리앗 부여군을 쓰러뜨린 다윗 대무신왕의 고구려
이번에 출간된 1권은 고조선이 벌인 한나라와의 전쟁에서부터 광개토왕의 정복전쟁을 거쳐, 삼국의 항쟁이 본격화되는 나제동맹의 결성과 성왕의 죽음까지를 다루었다.
서양의 전쟁사를 보면 전투 장면의 생생함, 합리적인 전략·전술에 대한 서술이 돋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전쟁사는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장군의 한 번의 계략, 병사들의 용기백배한 돌격으로 승부가 갈린다. 전략과 전술을 거론할 때도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도망가는 적은 쫓는 법이 아니다”라는 식의 손자병법을 남용하는 원론적인 해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실제 전쟁에서 그런 원론에 의지해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한국의 전쟁사가 추상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일차적인 원인은 사료에 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는 전투 현장의 디테일한 부분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우리 역사 기록에는 그런 서술이 전무하다. 하지만 사료탓만 할 수는 없다. 사료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복원하는 것은 역사가의 책임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나라 전쟁사의 폐단이었던 현학적이고 단선적인 서술을 철저히 배제하고, 전투 현장을 사실적으로 복원했다는 장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지 답사로 전투 현장을 분석하고, 사료에 보이는 한 줄의 설명을 동서양의 전술, 전투와 비교하여 그 의미를 추적해 냈다. 내용이 좀 길지만 고구려가 비상하는 과정을 그린 <제2장 혼강의 건너편>에서 부여의 대소와 대무신왕의 국운을 건 일전에 대한 서술을 보자.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족과 국민을 설득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최대한의 병력을 끌어모은다? 이것은 최악의 하수다. 병력과 물자라는 강대국의 장점을 가지고 겨루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 대무신왕도 다윗과 같은 결정을 내린다. 병사를 더 줄여서 최소화한 것이다 - 물론 이 정도 수준만으로도 고구려의 국력을 기울였다고 할 만큼 투자가 필요했다 -. 병력과 물자의 부담을 최소화한 대무신왕은 전쟁의 법칙을 깨고 농사철에 공격을 감행했다.……
고구려군의 내습이 알려지자 대소는 신속하게 반응했다. 대소는 전국에 동원령을 내려 병력을 쓸어모았다. 한순간에 고구려군의 몇 배가 되는 군대가 편성되었다. 그들은 바로 진군해서 아직 국경의 평원에 머물러 있는 고구려군을 포위했다. 포위는 물샐 틈이 없다고 할 만큼 완벽했다. 이것은 부여군이 고구려군을 360도로 감쌌다는 의미가 아니다. 평원에서의 전투는 패배해서 도주하거나 후퇴할 때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 철수를 엄호할 배후 요새나 지형이 없기 때문이다. 한니발은 평생 단 한 번 패했지만, 그 패전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패배한 장소가 현재의 알제리 평원에 위치한 자마의 벌판이었기 때문이다. 승리한 로마군은 기병을 풀어 밤새도록 한니발의 패잔병을 학살했다. 기병의 추격 앞에서 한니발군은 달아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고구려군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고구려군은 만주의 평원에서 부여군에게 둘러싸였다. 더욱이 부여군은 로마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하고 풍부한 기병을 보유한 군대였다. 대소의 입장에서 보면 학반령에서의 치욕을 되갚아줄 절호의 기회였다. 모든 상황이 그들에게 유리했다. 대소는 속전속결로 승부를 내기로 하고 전군의 기병을 총동원한 일제공격을 구상했다. 커다란 해머를 들고 내려친다고 할 때 최대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때는 첫 번째 타격이다. 두 번, 세 번 횟수를 거듭할수록 당신의 팔은 지쳐갈 것이다. 병력이 많다고 해서 소심하게 찔끔찔끔 이용하다가는 병력이라는 장점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시간을 끌수록 군량 소모도 엄청나다.
부여의 기병이 일제히 전진을 시작했다. 보통 이런 경우 중장기병대가 전위에 서서 적진 돌파를 맡는다. 경기병대는 중장기병대의 앞과 뒤에서 선다. 전위의 경기병은 엄호와 적진 교란 업무를 맡는다. 그들의 장기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적진 주변으로 돌며 사격하거나 창을 던진다. 상대가 약하면 이런 예비공격만으로도 적진을 분쇄할 수 있다.
병사들에게 전쟁은 지옥이지만 하늘에서 보면 삼면에서 압박해 들어가는 병사들의 행렬은 장관이다. 수많은 깃발과 다양한 색상, 질서정연하고 힘이 느껴지는 대열, 그리고 세 개의 축선이 만나는 지점에 웅크리고 있는 초라한 적군. 그런데 얼마 후 부여군의 장엄한 대형이 우그러지기 시작한다.
음력 2월, 초봄의 대지는 눈이 녹고 얼음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만주의 토양은 곱게 갈아놓은 듯한 흑토다. 농사 짓기에는 최적의 흙이지만 물을 만나면 진창이 된다. 더욱이 조금만 파면 암반이 나오는 우리나라와 달리, 만주의 흑토는 대지를 두껍게 덮고 있어서 휘저으면 저을수록 진창은 더욱 깊어진다.
기병의 전진이 저지되기 시작했다. 원래 기병의 최고 약점이 진창이다. 말은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통발굽이다. 진창에 박히면 사발을 진창에 박은 꼴이 되어버린다. 이런 곳을 무리하게 행군하면 말이 망가지거나 죽는다. 유럽이나 중국의 화북평원에서는 농사에 말을 중시하고, 우리나라와 강남지방에서는 소를 중시한 이유는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소가 말보다 힘이 세서가 아니라 - 사실은 말이 소보다 훨씬 힘이 세다 - 밭농사와 논농사 지역의 차이다. 밭농사 지역에서는 힘 좋은 말을 선호했고, 진창을 밟아야 하는 논농사에는 발굽이 갈라지는 소가 적합했다.
전위가 간신히 통과해도 말이 헤집어놓은 진창은 더욱 심해져서 뒷열의 기병은 더 큰 곤란을 겪는다. 마른 땅이나 전위가 밟지 않는 곳을 찾다 보면 대열은 흩어지고 전위와 후위의 간격은 더욱 벌어진다. 부여군 전체가 진창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부대 간의 진격 속도도 제각각이었다. 모두가 진창은 아니었을 테니 형편이 좀 나은 부대도 있었겠지만 작전 계획을 짠 이상 전체 부대와 보조를 맞추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부여군 전체가 지체되고 뭉그적거리고 있을 때 고구려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구려군은 마른 땅에 자리잡고 부여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벌판에 진을 치고도 태연자약했다고 한다. 부여군이 올 때까지 시간이 있었던 만큼 주변 지형을 정찰하고, 마른 길과 이동 루트를 파악할 시간이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부여의 대군이 온다면 부여의 중군과 대소의 지휘소가 자리잡을 지역 역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여군의 발이 묶이고 혼란에 빠진 순간, 고구려군 일대가 대소의 진영을 향해 질풍같이 돌격을 시작했다. 선두에 선 장수는 괴유였다. 부여군은 이 상황을 보면서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묻지 않아도 고구려의 공격부대는 최정예 부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습적인 일격에 자신들의 목숨과 운명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소의 병사들은 이 기세를 막아낼 수가 없었다. 대소의 진은 붕괴되었고, 대소는 빠져나갈 틈조차 얻지 못했다. 괴유는 대소를 사로잡아 현장에서 칼로 쳐 죽였다.……
세 번의 전쟁을 보면 대소는 항상 병력의 우위에 집착했다. 전쟁사를 보면 평범한 리더일수록 산술적 우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군수와 병참에 과부하가 걸린다. 병사들의 훈련과 통제가 부족하니 군대는 느려지고,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은 제한되어서 행동이 예측 가능해지고, 전쟁 수행기간은 짧아진다.…… 대소는 무능한 장군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장군이었다. 전 세계의 수천 년 간의 전쟁사에서 대소와 같은 장군을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일단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당장 모험을 포기하고 쉽고 안전한 승부를 거두려고 할까? 알렉산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