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의 정신세계와 불교 (일본사회의 전사자공양과 원친평등양장본 Hardcover)

사무라이의 정신세계와 불교 (일본사회의 전사자공양과 원친평등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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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무라이의 정신세계와 불교]는 일본 사무라이의 정신세계 및 일본사회의 전통의 일단을 엿보기 위해 위와 같은 ‘원친평등(怨親平等)=피아(彼我)전사자공양’을 검토하고 이것이 일본사회에서 어떤 맥락에서 이용되어 왔는지를 밝히려 한 저자의 연구 성과물이다.
저자

이세연

저자이세연은한양대학교사학과,고려대학교사학과대학원을거쳐도쿄대학교총합문화연구과에서박사학위를취득했으며,현재한양대학교비교역사문화연구소HK연구교수로재직중이다.주요논고로?承久の亂-轉回する怨靈鎭魂問題と鎌倉武士の心性?(『比較文學·文化論集』26,2009),?1189년,요리토모는왜야다테(矢立)를했는가?(『일본학보』99,2014),?아시카가요시카쓰(足利義勝)요절의정치구조-중세원령연구서설-?(『일본역사연구』39,2014)이있다.전사자,원령을둘러싼일본사회의담론과집단심성을통시적,구조적으로파악하는데힘을기울이고있으며,이를동아시아세계속에서조망하는작업도병행하고있다.

목차

머리말

서장근현대일본사회의타자와원친평등
제1절〈원친평등=′피아전사자공양′〉설의성립과정
제2절일본문화론의구축과원친평등의부상
제3절야스쿠니문제의대두와원친평등의재발견
제4절선행연구의총괄과본연구의시각

제1장′원친평등론′의역사적전제
제1절고대~중세초기의전사자공양
제2절고대~중세초기의원친평등용례

제2장′원친평등론′의중세적전개
제1절가마쿠라막부의멸망과원령진혼의양상
제2절남북조의성립과무소소세키의′원친평등론′
제3절제왕으로서의장군과원령무해화의논리
제4절중세후기의′원친평등론′

제3장근세~근대초기′원친평등론′의행방
제1절평화시대의도래와′원친평등론′의단절
제2절근세불교계의동향과원친평등용례
제3절전사자제사에대한메이지정부의방침과불교계의입장
제4절서남전쟁의발발과′원친평등론′의부활

제4장′문명′전쟁의전개와′원친평등론′의확산
제1절′문명′정신으로서의원친평등
제2절피아전사자공양,적군전사자공양과원친평등
제3절아군전사자공양과원친평등

제5장대외전쟁의연쇄와′원친평등론′의진폭
제1절′세계적추도회′의시행
제2절일본의중국침략과′원친평등론′의정형화
제3절′대동아공영권′의건설과흥아관음

제6장고려진공양비의유전
제1절고려진공양비의건립경위와중·근세인의심성
제2절고려진공양비를둘러싼근세인의시각
제3절근대일본의′문명′·′전통′과고려진공양비
제4절전사자공양을둘러싼′집요저음′

결론
부록'明敎新誌'의서남전쟁기전사자공양관련기사목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일본와카야마현의유명한명소고야산(高野山)에는‘고려진공양비(高麗陣供養碑)’란비석이있다.이비는임진왜란이끝난후인1599년조선침략군장수였던시마즈씨(島津氏)가한국남원성과사천성전투에서숨진명나라군과일본군전사자의명복을함께빈다는취지에서세운비석이다.근대의일본인들은이비가일본사회의휴머니티,박애(博愛)사상을보여주는증거라고하며‘국제적십자사’에일본이가입할자격이있는근거로서선전하였다.

현재까지사무라이가일본사회의표상으로자리잡은데에는몇가지계기들이존재했다.그중하나가바로근대일본에서의‘전통만들기’였다.서양문명과의조우는일본인들로하여금자신의정체성을되돌아보게하는계기가되었으며,그과정에서역사상의수많은파편들이수합되어일본의전통으로호명되었다.사무라이가걸어가는길,즉무사도(武士道)역시이시기에일본의전통으로재발견되고재정립되었다.무사도는주군에대한절대충성,전쟁터에서의페어플레이등군더더기없는깔끔한내용으로정형화되어갔다.몇번이고주군을배신하고속임수로상대방을제압하는무사의모습은사상(捨象)되었다.무사도가지닌또하나의면모로주목받은것이전사자공양이었다.중세사무라이들은전쟁후종종적군과아군의구별없이전사자일반을공양하기도하고,적군전사자를별도로공양하기도했는데,이러한습속이사무라이의자비심혹은휴머니즘의상징으로강조되었다.그리고이러한무사도의전통은근대에도면면히이어진다고선전되었다.이런사무라이의자비심혹은휴머니즘은불교의감화에의한것으로규정되었는데,그근간에는원친평등(怨親平等)사상이존재한다고일컬어졌다.

이책은일본사무라이의정신세계및일본사회의전통의일단을엿보기위해위와같은‘원친평등(怨親平等)=피아(彼我)전사자공양’을검토하고이것이일본사회에서어떤맥락에서이용되어왔는지를밝히려한저자의연구성과물이다.
‘원친평등’은본래원수(怨讐)와근친을평등하게인식하고대한다는의미의불교용어인데,저자에따르면일본학계에서는피아(彼我)전사자공양혹은적군(敵軍)전사자공양을설명하는용어로강조되어왔다고한다.원수와근친은전시의적군과아군으로가시화될수있었다는것이다.
일본에서는‘원친평등=피아전사자공양/적군전사자공양’은불교적자비심,일본사회의휴머니즘이라는맥락에서이해되어왔지만,저자는우선연구사적검토를통해원친평등이근대일본에서‘만들어진전통’이라는점을밝힌다.이를바탕으로,저자는원친평등의용례를검토하는것이시급한과제라고지적한다.일본사회의전사자공양을거론할때원친평등은일상적으로등장하는용어이지만,정작그것이각시대에구체적으로어떤의미를지니고있었는지는전혀검토되지않았다는것이저자의진단이다.

저자에따르면,중세의‘원친평등론’은아시카가(足利)장군가가부채의식을지니고있던전사자들을진혼하는맥락에서전개되었다.
근대메이지시대에벌어진서남전쟁기부터적군전사자가존중되었고,청일?러일전쟁을계기로폭발적으로등장했다.그배경에는서양의‘문명’개념에걸맞는전쟁을관철시키고자한일본정부의방침과그에적극적으로대응하고자한일본불교계의자세가존재했다.또원친평등은적십자로대표되는‘문명’의불교적역어로채용되어크게거론되었다.이런‘문명’정신으로서의원친평등=피아전사자공양과적군전사자공양은종종‘천황의인자함’에수렴되었으며,천황체제의지지논리로서전개되었다.
이후제1차세계대전기의‘원친평등론’은‘세계’나‘평화’가키워드로부상했고,1930년대만주사변이후의‘원친평등론’은불교계와정부?군부의연계속에서공공연하게표면화된다.곧중국대륙의전선이확대됨에따라일본군부는중국내에서의종교적선무공작의필요성을통감했으며,불교계와합작하여이를‘일화친선’의문맥에서설파하였다.그것은곧“우리일본인은원친평등의견지에서중국인전사자도공양해주고있다.당신들중국인도원친평등의입장에서일본인에대한원한을버리라”는프로파간다였던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들어서면,원친평등의정치적문맥이한층강조되는데,여기서각광받은것이흥아관음이다.전범마쓰이이와네가아타미(熱海)흥아관음을조성한것을필두로,각종흥아관음이‘일화친선’의상징으로제작되되어일본각지와중국등에안치되었다.
이처럼‘원친평등론’은애초부터일정한논리하에초역사적으로전개되었던것은아니며,시대상황에연동하며다양하게변용되었다.특히중세이래의원친평등론은예외없이공권력의동향과밀접하게연관되어있었다.
또한저자는‘고려진공양비(高麗陣供養碑)’의비문분석을통해고려진공양비가세워진구체적인맥락을드러내는한편,17세기이후근대에이르기까지고려진공양비를둘러싼역사인식이어떻게재구성되었는가를면밀하게추적한다.특히비문에서조선군전사자의존재는의도적으로망각되었는데,근세일본의‘조선멸시관’과‘大明軍’을격파했다는일본군자신의전공선전이그이유라고본다.이처럼고려진공양비를둘러싸고자비?전승기념(현창)?영험의맥락이뒤엉켜있었다는저자의주장은,일본학계의통설에서제시하는‘피아전사자공양=자비’라는도식을상대화시키고있으며,나아가피아전사자공양에대한새로운연구의필요성을제기하고있다.
저자는지금껏자명한것으로여겨져온원친평등,피아전사자공양/적군전사자공양에대해앞으로도다양한각도에서해체작업이이루어져야한다고주장한다.
이상의논지를위해저자는13세기말부터1940년대까지약700년간중세선승들의어록,고문서,연대기,설화,와카(和歌),금석문,잡지,신문등방대한자료들을분석하고적절한사례들로제시하였다.

원친평등에대한분석에근거해저자는일본사회의전사자공양이현대사회에던져주는메시지에주목한다.전사자를포함하여어떤존재의부재에대해의식하는것은매우중요한감각이다.자비든,공포든,찝찝함이든이감각은인식주체의현실생활에일정한자기규율을부여하기마련이다.이러한‘원친평등’의감각이일본사회의근저에여전히살아숨쉬고있으며,앞으로도일본사회의저변에크게작용하리라전망한다.단,이것이권력의정치적필요에따라임의로동원되는사태에대해서는크게경계해야한다는점을지적한다.

한국인들에게‘사무라이’표상은불편하고‘잔인한’존재다.그러나불편하다하여마냥밀쳐낸다든지,보고자하는것만바라보는우를계속해서범하는것이과연온당한일인지이제는냉정하게생각해볼필요가있지않을까?어떤의미에서건우리에게일본은운명의상대이고,우리입맛에맞지않는다고물릴수있는상대가아니기때문이다.마음한구석불편함을느끼면서도,사무라이에대한일본인들의색다른감각이한편으로그네들나름의역사경험에서비롯된것이라는점을인정하고다시탐색할때일본사회와한일관계의미래에대한우리의인식도더폭넓게전개될수있으리라믿는다.그런점에서이책은그주춧돌을놓는작업중하나가되리라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