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강화도성 (양장본 Hardcover)

고려 강화도성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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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고려 강화도성』에서 저자 이희인 박사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강화도성의 모습은 실제와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고려궁지에서는 궁궐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강도의 성곽과 시·공간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강화외성과 강화산성이 강도시기와 관련 있다는 증거도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간의 강도에 관한 지식을 재검토할 필요하다는 것. 강도의 공간구조, 그 가운데 궁궐과 성곽 위치 및 체제를 중심으로 그동안의 통설을 비판한 저자의 구체적인 견해를 다루고 있다.
저자

이희인

저자이희인은1973년서울에서태어났다.성균관대학교역사교육과를졸업하였고,같은대학원사학과에서석사와박사를마쳤다.고고학전공으로고려시대에관심을가지면서고려고분으로석사학위를취득하였고,고려강도(江都)를주제로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인천시립박물관학예연구관으로재직중이다.
연구논저로는『한국고분의편년』(공저),「중부지방고려고분의유형과계층」,「강화고려고분의유형과구조」,「경기지역고려고분의현황과성격」,「인천연안의백제유적」,「고려강도성곽의체제와위치고찰」,「고려강도해안외성에대한검토」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Ⅰ.머리말
1.연구목적
2.연구방법

Ⅱ.江都에관한그동안의이해
1.문헌에나타난강도의성곽과궁궐
2.여러견해
1)성곽체제
2)궁궐의위치
3.고고학적조사현황

Ⅲ.江都의지리적변화와입지적특징
1.해안선의변화
2.입지적특징

Ⅳ.江都성곽의현황과실체
1.궁궐의위치와궁성의규모
1)궁궐의위치
2)궁성의범위와규모
2.강화읍외곽토성의구조와성격
1)현황과구조
2)토성의특징과축조시기
3.강도해안외성의실체
1)강화도환축외성의실재여부
2)강도동쪽해안일대외성의존재

Ⅴ.江都의성곽체제와공간구조
1.외성?중성?내성의비정
1)외성
2)중성과내성
2.강도의성곽체제
1)성곽체제와축조배경
2)개경과강도의성곽체제비교
3.강도의공간구조
1)개경의도시구조와강도
2)강도공간구조의특징
3)사원과능묘로본강도

Ⅵ.맺음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현재의강화‘고려궁지’는실제고려시대궁궐터가아니었다!

현재강화도에는13세기여몽전쟁(麗蒙戰爭)때고려의강화궁궐이었다는‘고려궁지’가유적지로일부복원되어있다.그러나,그간수차례의발굴조사에도불구하고고려궁지에서는고려시대궁궐의흔적이발견되지않았다.어떻게된것일까?
이책에서저자이희인박사는지금까지우리에게알려진강화도성의모습은실제와다를수있다고말한다.그동안우리가알고있는강화도성=강도(江都)는‘고려궁지’에궁궐이자리했고,내륙으로부터침입을방어하기위해섬동쪽바닷가에외성을건설했으며중성이도읍의중심을에워싼모습이었다.그러나고려궁지에서는궁궐의흔적은발견되지않았고,강도의성곽과시·공간적으로연계되어있는것으로알려졌던강화외성과강화산성이강도시기와관련있다는증거도확인되지않았다.때문에그간의강도에관한지식을재검토할필요가있다.
저자에따르면,강화는전쟁을피해잠시머물렀던피난처가아니라또하나의고려수도였다.도읍의건설은전쟁을피해급박하게이루어졌지만개경을모델로설계되었다.그러나오늘날강화도성의흔적을찾는것은쉽지않은일이되었다.궁궐터가어디였는지,천도후에쌓은것으로전하는외성과중성,내성의실체도확실치않다.그럼에도불구하고강도는여몽전쟁기간동안공식적으로개경을대체하고,도시의모습이투영된공간인점은분명하다.저자는안개속에있는강도의실체를파악하기위해서는지금까지와는조금다른시각을견지하고객관적자료를파악하는것이중요하다보면서그동안의강도에대한이해에의문을제기한다.이책은강도의공간구조,그가운데궁궐과성곽위치및체제를중심으로그동안의통설을비판한저자의구체적인견해를다루고있다.

강도에대한새로운주장은섬의지리적특성에주목하면서시작된다.강화도는천도기(遷都期)부터간척(干拓)으로인해지형변화가극심하게이루어진곳으로,천도기도읍의공간구조를복원하기위해서는당시의해안선과지형을파악하는것이무엇보다중요하다.그래서저자는우선과학적자료를바탕으로천도당시의지형에대한복원을시도한다.아울러최근의발굴성과를분석하고그동안강도를연구하는데가장중요한자료였던문헌자료도여러사료와비교해다시검토한다.
그렇다면실제고려시대강화도성의모습은어떠했을까?
먼저궁궐을보자.지금까지‘고려궁지’가강도의궁궐터로알려졌지만정작여러차례의발굴조사에서흔적은확인되지않았다.궁궐은도읍의상징이면서도시구조를결정짓는공간이기때문에강도의모습을제대로이해하기위해서는궁궐의위치가분명히밝혀져야한다.저자는강화도성의궁궐자리는‘고려궁지’가아니라고주장한다.‘고려궁지’에서는궁궐의흔적이확인되지않기때문에다른곳에서궁궐을찾아야한다는것이다.최근강화읍관청리일원에서개경의궁궐과구조가비슷한건축물의흔적이발견되어궁궐터발견에희망을주고있다.강도궁궐은지금의강화읍관청리일대에자리잡고있었던것은분명한데,지금까지조사된유적의내용과분포,지형조건으로보아‘고려궁지’서남쪽의궁골일대에자리했을가능성이높다.
다음으로성곽이다.궁궐의실체는아직땅속에묻혀있지만성곽은상대적으로잘남아있다.강도가자리했던강화읍일대를에워싼성곽,즉도성이남아있어강도의규모를짐작하게해준다.이성은판축으로쌓은토루위에다시흙으로그위를덮는구조의토성으로강화읍동쪽구간을제외하고길이가약11km다.성벽이확인되지않은동쪽해안구간을성의범위에포함하면강도도성의길이는약16~17km가된다.이는개경나성의길이약23km보다는작지만,둘레약18km인조선시대서울의한양도성과비슷한규모다.강도가전쟁시에,그것도섬에건설되었다는점을고려할때이러한도성의규모는강도를임시피난처로만볼수없다는것을의미한다.
저자는강화도의삼면또는동쪽해안을따라쌓았던것으로전해지고있는해안외성의존재가능성은그리높지않다고본다.일부문헌에전하는강화도삼면환축외성기록은후대에구전되는과정에서과장되거나왜곡된주민들의전언을기초로한것으로강화도의해안선변화와입지적특성,당시의군사적정황등을고려할때근거가없다.또조선시대강화외성은강도외성을토대로축조되지않은것으로판단한다.강도시기와조선시대는해안선자체가달랐고강화외성발굴에서강도시기의흔적이전혀확인되지않았기때문이다.강도를동쪽과남쪽에서둘러싸쌓았다는외성에대해서도외성의흔적으로보았던불은면일대의토루는조선시대말(馬)을키우던목장성의흔적일가능성이매우높다.
다만강도시기강화도동쪽해안에제방이축조되어있었던것은분명해보인다.그렇지만승천포~초지까지이어진대규모제방은없었고,성벽이없는도성동쪽해안구간의방어를위해갑곶일대에제방이축조되었을것이라생각한다.그런데이제방은외성이아니라방어선이며,지금까지중성으로알려진도성이강도의외성이라고본다.
중성은강화산성동문부근에서확인된유적을성벽흔적으로추정한다.구체적인범위는아직알수없지만최씨무인정권집권자인최항(崔沆)의묘지명에중성이황도를감쌌다는기록과남아있는성벽의축선으로보아궁궐이위치했었을오늘날관청리일대를둘러싸는형태였을것으로판단한다.강도의중성은개경의황성과같은성격으로볼수있다.내성은강도시기에실제로축조된성곽이아니라중성을의미하는것으로보았다.
종합해보면강도에는‘외성-중성(내성)-궁성’의3개의성곽이존재했는데,이를개경과비교해보면강도의외성과중성은각각개경의나성과황성에상응한다.이처럼개경과강도의성곽체제가비슷한것은기본적으로강도의성곽을건설하는데개경의경험이반영되었음을시사한다.
마지막으로저자는사원과능묘의분포양상을통해서강도의공간구조의특징을소개한다.강화도에서고려시대에운영되었던것으로추정되는절터가운데상당수가도성바깥에분포한다.이러한분포양상은나성안쪽에사원들이밀집해분포하는개경과차이가있는데,이는도성의축조시점이다를뿐만아니라강도의공간부족에따른결과로파악된다.개경은나성축조이전부터사원이축조되기시작해점차외곽으로사원이건설되어갔지만강도는도성이먼저축조되고그에따라도성내공간이부족한상태에서급속한도시화가이루어지면서사원들이도성의바깥쪽에자리잡게된것으로추정한다.
지금강화도에는왕릉4기와석실분3기,고려시대분묘(군)14개소가자리한다.왕릉을제외하더라도강화도내고려시대분묘의밀집도는다른지역에비해상당히높다.이는천도이후개경과내륙지역주민들이강화로이주하면서인구가급증했던역사적사실을반영하는것이다.강도왕릉의구조는개경의그것과같은것으로확인되었으며질좋은자기와구슬,금동제봉황문장식등수준높은유물이출토되어강도의위상을보여주고있다.
여몽전쟁기간동안고려의도읍이자리했던강화도는분단의현실속에서고려도성구조를연구할수있는귀중한자료이자지역이다.또개성과강화가가지는역사적연계성은남북간협력의활용제가될수있다.이런점에서강화도성에대한학술적조사와연구의가치가높다.그런데이를위해서는상당한시간과노력이필요하다.
이책은강화가초라한피난처가아니라한나라의도읍지로인정받게하기위한노력의일환이며,강화도성의가치를다시보게하는또하나의출발점이될것으로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