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정치사 연구 (양장본 Hardcover)

조선전기 정치사 연구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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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왕조의 정치사에서 가장 드라마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지고, 현실 정치판에서도 언급이 많이 된 두 사건은 태종 이방원이 주연인 ‘제1차 왕자 난’과 세조 수양대군이 주연인 ‘계유정난’이다.

‘제1차 왕자 난’을 다룬 것들로는 [용의 눈물]을 비롯해, [정도전], 최근의 [육룡이 나르샤]까지, ‘계유정난’을 다룬 것들로는 [왕과 비]를 비롯, [공주의 남자], [관상] 등 수없이 많은 드라마, 영화, 소설 등으로 만들어져 왔다. 이만큼 여러 인간군상들의 욕망과 비루함, 형제와 조카들에까지 칼을 들이대는 권력의 민낯,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비극의 탄생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들도 드물다는 얘기일 것이다.

보통 이 두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신권과 왕권’ 간의 정치주도권 투쟁 및 그에 따른 조선전기 정치체제의 정립이란 데서 찾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이자 동력들로 이방원과 수양대군 두 ‘풍운아’의 ‘권력욕=정치적 야심’을 손꼽는다.

그간 역사학계에서 꾸준히 조선전기 정치사에 대한 연구를 다져온 저자 한춘순 교수는 조선왕조의 정치틀을 결정한 두 사건의 원인과 귀결에 대해 이와는 다른 점들을 이번 책에서 찾아 보여준다.
저자

한춘순

저자한춘순은경희대학교사학과졸업(문학사,문학석사,문학박사),현재경희대학교후마니타스칼리지객원교수.국사편찬위원회토대연구박사급연구원(2007.8~2010.7),경희대학교사학과객원교수(2009.3~2010.2),경희대,경희사이버대,서일대,인천대강사역임

논저:「조선성종의왕권과훈척정치-친정기훈척지배체제를중심으로」『경희사학』24(사학과창과50주년기념호,2006);「太祖7年(1398)‘제1차왕자난’의재검토」『조선시대사학보』55(2010);「조선명종대불교정책과그성격」『한국사상사학』제44집(2013);「단종대癸酉靖難과그성격」『한국사연구』174(2016);『명종대훈척정치연구』(2006);『조선중기훈구·사림과광주이씨』(공저,2011);『어촌심언광의문학과사상』(공저,2014)

목차

책을내면서

太祖7年(1398)‘제1차왕자난[戊寅之變]’의재검토
Ⅰ.머리말
Ⅱ.開國前이성계의정치역정과李芳遠
Ⅲ.‘제1차왕자난[戊寅之變]’의원인에대한새해석
1.개국초外戚의견제와이방원의추락
2.鄭道傳과遼東攻擊論의실체
3.태조의重患으로인한變數와私兵革罷
Ⅳ.‘제1차왕자난[戊寅之變]’발생과그성격
Ⅴ.맺음말

文宗代의國政運營
Ⅰ.머리말
Ⅱ.문종의국정운영방식
1.육조직계제와의정부서사제를절충한국정논의구조와그변화
2.宦官을통한大小出納
Ⅲ.인사행정-문종의인사권행사
Ⅳ.佛敎施策과宗親
1.불교시책의내용
2.불교시책의추진과안평대군ㆍ수양대군
Ⅴ.맺음말

단종대癸酉靖難과그성격
Ⅰ.머리말
Ⅱ.문종대불교시책과안평대군의위상강화
Ⅲ.단종대정국추이와首陽大君의政變모의
1.金宗瑞?皇甫仁의국정운영(인사권)
2.안평대군의교유관계와권력강화
3.수양대군의정치적고립과政變모의
Ⅳ.癸酉靖難의발생과그성격
Ⅴ.맺음말

세조~성종대과거에관한일고찰
Ⅰ.머리말
Ⅱ.세조~성종대왕권과정치상황
Ⅲ.과거시행의추이
1.별시
2.중시
3.향시
Ⅳ.응시자격을둘러싼논란
Ⅴ.성균관교육과강경론ㆍ제술론
Ⅵ.맺음말

成宗초기貞熹王后(세조비)의政治聽斷과국정주도의실제
Ⅰ.머리말
Ⅱ.정치청단의배경
Ⅲ.대비의육조직계제운용과국정주도
1.대비의정책결정주도
2.성종의국정운영과정책결정방식
3.왕명을통한대비의정책주도
Ⅳ.대비의勳戚支配體制운용
1.즉위초정치상황과佐理功臣의책봉
2.政曹중심의훈척지배체제운용
Ⅴ.승정원의위상과기능
Ⅵ.맺음말

朝鮮成宗의六曹直啓制運用과承政院-親政期를중심으로-
Ⅰ.머리말
Ⅱ.成宗의親政시작과王權
Ⅲ.六曹直?制運用의실제
1.經筵?視事에서의정책계달
2.성종의政策集中과주도적국정운영
Ⅳ.承政院의位相과도승지
1.승정원의위상과기능
2.도승지를둘러싼紛亂
Ⅴ.맺음말

朝鮮成宗의王權과인사주도의실제-親政期勳戚支配體制운용을중심으로-
Ⅰ.머리말
Ⅱ.성종의친정과勳戚支配體制운용
1.성종의친정과의정부ㆍ정조ㆍ승정원인사
2.정치세력변화와성종의훈척지배체제보완
Ⅲ.훈척지배체제의실제
1.이ㆍ병조인사의두측면
2.정실ㆍ청탁인사의정치ㆍ경제적배경과의미
Ⅳ.훈척지배체제운용을둘러싼성종과대간갈등의본질
Ⅴ.맺음말

조선成宗代王權과宗親
Ⅰ.머리말
Ⅱ.세조왕권과종친
Ⅲ.정희왕후의수렴청정(성종즉위년~7년정월)과종친
1.성종즉위초정국상황과龜城君李浚제거
2.종친赴試금지
Ⅳ.성종의친정(성종7년정월~25년)과종친加資
1.종친의가자요청과가자방안(1)-殿講?觀射
2.가자방안(2)-試藝法?別試
Ⅴ.종친대우와위상하락및생활양태
Ⅵ.맺음말

조선전기李克均의정치활동과甲子士禍
Ⅰ.머리말
Ⅱ.世祖代內職및西征에서의활약
Ⅲ.예종?성종대정치활동의확대
1.절도사ㆍ관찰사및중앙정치활동(예종즉위년~성종14년6월)
2.국정참여및都元帥?관찰사로서의치적(성종14년6월~24년12월)
Ⅳ.연산군대여진정책주도와甲子士禍
1.평안도관찰사?警邊使로서여진정책실패(즉위년~6년3월)
2.정승으로서의폐정개혁과갑자사화로말미암은몰락(6년4월~10년윤4월)
Ⅴ.맺음말

漁村沈彦光의정치역정과생애
Ⅰ.머리말
Ⅱ.제1기:출생과학문연마(성종18,1487~중종7,1512)
Ⅲ.제2기:初入仕와관직생활
1.초입사~己卯士禍까지(중종8,1513~중종14,1519)
2.기묘사화이후~김안로등장이전의관직생활(중종15,1520~중종23,1528)
Ⅳ.제3기:심언광의정치활동과김안로(중종24,1529~중종33,1538)
1.심언광의대간활동과김안로(중종24,1529~중종26,1531)
2.김안로의정계재복귀와敗死및심언광의활동과몰락(중종27,1532~중종33,1538)
Ⅴ.맺음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조선의정치체제를놓고신권과왕권,두노선의시작과끝을다루다!

조선왕조의정치사에서가장드라마의소재로많이다루어지고,현실정치판에서도언급이많이된두사건은태종이방원이주연인‘제1차왕자난’과세조수양대군이주연인‘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제1차왕자난’을다룬것들로는[용의눈물]을비롯해,[정도전],최근의[육룡이나르샤]까지,‘계유정난’을다룬것들로는[왕과비]를비롯,[공주의남자],[관상]등수없이많은드라마,영화,소설등으로만들어져왔다.이만큼여러인간군상들의욕망과비루함,형제와조카들에까지칼을들이대는권력의민낯,오늘날까지회자되는비극의탄생까지적나라하게드러난사건들도드물다는얘기일것이다.
보통이두사건을바라보는시각은‘신권과왕권’간의정치주도권투쟁및그에따른조선전기정치체제의정립이란데서찾는것이다.그리고두사건의가장큰원인이자동력들로이방원과수양대군두‘풍운아’의‘권력욕=정치적야심’을손꼽는다.
그간역사학계에서꾸준히조선전기정치사에대한연구를다져온저자한춘순교수는조선왕조의정치틀을결정한두사건의원인과귀결에대해이와는다른점들을이번책에서찾아보여준다.
구체적으로우선‘제1차왕자난(무인지변)’을보자.보통언급되는이방원과정도전의대립구도보다저자가주목한것은태조이성계와이방원간의갈등이다.조선개국초태조와조준ㆍ정도전등의합의로정해진52명의개국공신에,아들인이방과와이방원은배제되었다.이방원은태조의계비인강비와외척에의해조직적으로견제를당했고,그사이세자책립ㆍ공신책록등이급박하게추진되었다.또한처음과는달리태조는이방원을동북면으로보내놓고는바로전라도절제사로제수하여,같은날친군위절제사로삼아동북면을맡긴이복동생이방번에게가별치를양도하게만들었다.그러면서도태조는한양천도나긴급한외교현안같은대사에는이방원의지략을빌리려하였다.이어태조가자신의중병과세자이방석의안정적승계를염두에두고사병혁파를단행하자,숙청에대한두려움을가지고있었던이방원은,하륜의계책에따라태조의병환이위급해져모든이들의관심이쏠려있을때를기회로판단하고,외척,무인세력,개국동조세력들과연계하여무방비상태로있던정도전ㆍ남은등을급습하여제거하는‘제1차왕자난’을일으킨것이다.조준을앞세워도당(都堂)을장악한이방원은이방과를세자로추대하여명분과실익을다얻었다.그리고정도전의죄목을,최종적으로요동공격을실행하기위해이방석을세우려한것과정도전자신의명나라호송에찬성한이방과에대한원한으로종친을살해하려했다는것으로구체화하였다.그러나이방원이정도전의죄과를나열하고,사직을위한부득이한일이었다고말한다하더라도,‘제1차왕자난’은결국태조에대한이방원의반기(反旗)로귀착된다.
두번째로‘계유정난’은어떠했을까.흔히알려진수양대군대김종서ㆍ황보인간의대립구도보다저자는세종의셋째아들‘안평대군’을주목한다.조카단종에게번병(藩屛)의역할을할수있는안평대군과수양대군은세종후반부터다른길을걷고있었다.수양대군은탁월한능력을인정받아국정에크게힘을보탰지만,다른관료들과의교유나접촉은거의없는편이었다.안평대군도공사에참여하였지만,수양대군에비해비중이작았다.그러나그는학문과예술을좋아하고시서화에도뛰어났으며왕실의불사(佛事)에도주력하였다.이런성향과성삼문과의인척관계등으로문사들이몰려엘리트인집현전학사이개ㆍ박팽년ㆍ신숙주ㆍ정인지및김종서와교유를맺고있었다.문종대에도무계정사를지어은거하면서도이들과의교류를계속하였다.반면수양대군은뒤늦게불사를설행하는등의방법으로문종원년이후에제조를맡는등입지를확보하게되었다.단종이즉위하자,안평대군은단종을보필하는환관인사에영향력을행사하였고단종의보호자격이어서권세가있었다.위상과권력이더욱강화된상태에서,그는김종서ㆍ황보인을비롯한대신들과왕래하면서국정에대한의견을듣고나누었다.반면당시정치적으로고립되었던수양대군은단종즉위직후부터안평대군을모반자로단정하여제거할뜻을드러내었다.그에따르는윤리적비난을피하기위해표면적으로는정실인사로비난받던김종서ㆍ황보인을모반을부추긴원흉으로조작해놓고,그들을먼저제거하려하였다.수양대군은왕위와관련된풍수설을조작하여이를안평대군의측근이현로의주장으로만들고,풍수명당에무계정사를지은것을안평대군의모반의증거로삼았는데,그계략은성공하였다.수양이무인ㆍ종친ㆍ왕실세력도확보한상태에서,정변을인지하지못했던김종서ㆍ황보인은계속정실인사를하였고,도청을신속하게혁파하지않고,부역하는선군(船軍)을보내려는단종의뜻도받들지않았다.기회를엿보고있던수양일파는단종의분노가고조되고,도청이혁파되기직전이어서정변의명분과정당성을얻을수있는날인10월10일을정변일로정했다.그리고그들은기습적으로거사하여당일밤에김종서부자를살해하였고,잇따라황보인등관료들을제거하였다.곧계유정난은왕권이취약한상태에서정치적코너에몰린수양대군이자신들의준비가완료되자,단종을보호하던김종서ㆍ황보인등을모반에가담한자로몰아먼저제거하고,얼마후본래목표였던안평대군까지죽여권력을장악한것이다.
계유정난을발판으로집권한세조는별시를매우자주설행하였고,대단히파격적으로인물을선발하였다.신료들의반대에도성종역시별시를자주설행하였다.당시과거가사익을추구하는통로로활용되면서시험에부정행위가만연하였고,성균관의교육기능이무력화되고있었다.조선왕조최초로성종초반에수렴청정을한세조비정희왕후(대비)는육조직계제로정책결정을좌우하면서원상의영향력을최소화하였고,왕의장인한명회를왕실의대리인으로내세워‘겸병조판서’에제수하는한편좌리공신을책봉하여발탁한척신을‘정조(政曹)겸판서’로삼아훈구의인사독점을저지하였다.
이후친정(親政)을시작한성종역시정희왕후의이러한국정운영방식을이어받아영돈녕이상에게자문을구하면서도많은경우스스로정책을결정하였고,무신을중용하거나특정척신을특대하는방식으로훈구를견제하였다.따라서지금까지의학계통설과는달리세조~성종대당시정치주도세력은‘훈구’가아닌‘훈·척’이었으며,왕권은취약하지않았고,정책결정이나인사에서원상또는영돈녕이상의영향력은상당히제한되어있었다.또한조선전기에왕실의번병으로서일정한역할을했던종친의부거(赴擧:과거응시)가성종즉위후에금지된배경과,위상이추락한종친들을대우하기위해성종의대책,그리고종친의실제처지와생활양태까지성종대의정치운영실태들을밝혔다.
이어저자는명문광주이씨출신으로세조대에입사한이래문무를겸전한관료이자여진정책전문가였던이극균家의몰락과정을통해연산군대정치를바라본다.조선전기에오랫동안사용되어온정치적관행이나제스처를무시하고,유생들과대간,관료들이왕을업신여긴다는판단에사로잡힌데다비극적인어머니의죽음까지겹치며‘왕권의폭주’가사화와폭정으로이어졌다.연산군은이극균의조카이세좌가어주를쏟아버린사건과홍귀달家의후궁간택도피를빌미로갑자사화란대숙청을통해이극균家등유력훈구가문들과마음에안드는대간들을거의멸문시켰다.그리고그대가는신하들에의한중종반정과연산군의교동도로의유배,급작스런죽음이었다.
이책은조선전기정치사에관한총10편의논문으로구성되어있다.다양한주제로이루어진이책의내용을아우르는키워드는‘왕권’이라할수있다.책에서언급된태조·세종·문종·단종ㆍ성종ㆍ연산군대의국정운영을실증적으로검토한결과를보면,전체적흐름은왕권은신권보다우위에서행사되고있었다.또한과거제의설행을통해본세조대의왕권은전제적성향까지보였고,그행사의절정이자폭주의끝은연산군대왕권에서보인다.그리하여조선의어떤국왕보다도화려하고제멋대로의삶을누렸던연산군이지만,그죽음은누구보다비참하고쓸쓸한것이었다.태종의피의숙청을거치면서세종대신권과왕권의조화로운시스템으로안착한듯했던조선의권력구조나군신권력관계가이후어떻게파열음을내고재수습하는과정을반복했는지이책을통해새롭게조망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