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關東)전통중심원주!
조선후기원주의사회구조와주요인물을복원하다
이책은조선시대의지방특히,조선후기강원도원주의사회구조와그시기활동한주요인물에대한연구를정리한것이다.1편에서는강원감영과원주목이편제된관동수부(關東首府)도시로서의원주의사회구조를정리하였고,2편에서는조선후기에활동한원주의주요인물들의생애와관력,사상등을정리하였다.최근조선중·후기정치·사상사연구가활발하게이루어져인물과정치사상분야에서기존의수준에비해그폭과외연을크게확장시키고있다.당시정계의중심에머물러있던원주의인물들의연구역시이에기여할수있으리라기대한다.마지막부편에는원주를비롯한강원지역의지역학방법론과연구경향을분석하여향후지역학연구를전망해보았다.
원주는본래고구려평원군으로신라문무왕때북원소경을설치하였고.고려태조23년에지금의명칭인원주로고쳤으며,1308년(충렬왕34)에원주목으로승격되었다.조선시대에들어와감영의소재지인원주는지방행정단위등급으로제3위인목이었다.원주목사는정3품이며,원주강원감영은1395년(태조4)설치된이후1895년폐지될때까지강원도의부·목·군·현을관할하고정치·경제·행정·사회·군사업무의중심지였으며지역문화형성에지대한영향을미치고있었다.
원주는지리상사도팔달(四道八達)의요충지를점하여왔으며고려·조선시대중앙지역과한반도동남부지역과의문화교류의요충지역할을해왔다.또한고려시대부터조창(흥원창)이설치되어전세와세곡을서울로운반하기편리한곳이었다.남한강과섬강을끼고있어서수로가발달하고주요역로가통과하여육로또한발달하였다.원주관내남한강유역에는흥원창나루,개치나루,좀재나루등이있었다.그중흥원창나루는강원도의원주,평창,영월,정선,횡성,강릉,삼척,울진등지를관할하여세곡을운반,보관하던장소였다.
원주사람들의성격에대해『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동쪽에는치악이서리고서쪽에는섬강이달리니천년고국이다”라고하여산이수려하고물이좋기때문에예로부터뛰어난인물이많다고하였다.서거정도“원주고을의풍속은부지런하고검소하며쓰는것을절약하여재물을저축하고물화를늘이니홍수와가뭄이들어도재해가되지못하므로진실로동쪽지방의아름다운고을이다”라고평하였다.성종대강원도관찰사였던성현은“원주사람들은아이를낳으면먼저곡식을주어그것의귀중함을가르치고(…)절약하고부지런한사람만을용납하였다.일없이떠도는사람이있으면마을에서그를어른으로대접하지않았다.그래서가난한집이적고부잣집이많았다.”라고하였다.
원주는발달한교통여건으로인해서울과의통교가용이하여서울의사대부들이많이낙향하여거주하였다.토성세력들이본관의토착적기반을유지하면서서울에올라가벼슬살이하기에편리하였고,비토성사대부들에의한입거(入居)·낙향(落鄕)이잦은지역이었다.조선시대원주의사마시입격자의수는573명으로전국에서4번째로많았는데,17세기이후사마시에입격한자가532명으로총사마시입격자의약93%를차지하고있었으며,이중에서새로이거한가문에서472명을배출하고있었다.
조선전기이래원주는감영이소재한강원도의수부(首府)로서교육적여건이여타의지역보다좋았다.특히17세기이후학문의전통과좋은교육환경을반영한서원과사우(祠宇)의건립이급속히이루어졌다.그런데원주지역사대부들은끊임없이서울로의진출을모색하였고,또한수시로진출하고있었다는점으로인해경상도나전라도등정주가확고한지역과같은강력한사족지배체제가형성되기어려웠다.
그러나,1896년칙령제36호에의거,전국의행정구역이13도8부1목332군으로바뀌면서,강원도의경우춘천관찰부가강원도관찰부로승격되어원주·강릉을비롯한강원도26개군을관할하게되었다.그러나이같은개혁안에대해지방민들의반대여론이들끓어원주유생들이집단상경하여원주로의수부도시변경을강력히요구하였던예도있었다.이후일제강점기와6·25전쟁을거치며원주는군사도시로서의성격이강해진면이있었다.
그러면,저자가보는,조선후기원주를대표하는인물들은어떤사람들이었을까?
우선,항재정종영은원주에서태어나원주에서세상을떠난인물로,김안국의학통을계승하여위기지학(爲己之學)의논리를견지했고,『소학』을유아교육의장에서적극시행하도록건의하였다.47년의벼슬살이과정에서청백리로선발되어후대학자들의칭송을받았다.
임진왜란당시원주목사김제갑은고령의나이에도불구하고.영원산성전투에서자기의목숨을던지며끝까지일본군과싸워지방수령으로서의본분을지키려했고,아내와아들또한같은전투에서순국했다.
송와이희는동서분당,기축옥사,임진왜란,남북분당등정치적격변기와국가존망이달린전란의한가운데서자신의소신과원칙을굽히지않았던인물로평가되고있다.
박권은조선후기손꼽히는정치가로서,1712년백두산의정계를논의할때접반사로중국측대표인목극등(穆克登)을만나회담하면서백두산정계비를세웠던인물이다.
일본에서고구마를도입재배한것으로유명한조엄은18세기농민들이겪는고통을자신의문제로인식하고해결방안을적극모색한목민관이자학자적관료였으며,19세기세도정권기를풍미했던풍양조씨의초석을다진인물이기도하다.
중앙집권적권력체계가전개된한국사회에서인문학·사회과학을불문하고대체적인연구경향은지방차원의미시적접근을소홀히하고거대이론에치중하여국가수준에서의논의가주류를이루었다.종래지방은중앙에대한대립개념으로사용되면서중심부와주변부,본점과지점,전체와부분,우월함과열등함등의이분법적구분에서후자에연결되는경우가많았다.특히강원도원주는중심이아닌주변,‘문화’가아닌‘자연’,생산이아닌소비의위치에놓여있다고평가되어왔다.
최근각지방에서역사발굴,민속발굴,지역토산품과특산품의개발,전통문화와축제개최등을통해‘우리고장만들기’가유행하기시작하였다.학자,문화기획가,향토문화전문가등이동원되어지방자치단체의장이나정치가들의의욕적인주문에따라지역의문화상품을생산하고부가가치를창출해내려는움직임을보이고있다이런움직임은지방자치단체의발전전략과맞물려더욱활발하게되었다.그것은정치적목적뿐아니라관광사업을포함하는지역경제발전을위한자원의개발이라는명분과결합한다.
영남지방은지배의이미지를생산하는문화적자원으로서의유교전통을특권적으로점유하며,호남지방은소외와한을형상화하는담론생산에치중한다.제주도는‘4·3사건’등역사적사건과최후의항몽(抗蒙)투쟁의땅으로서의부상과동시에자본주의세계체제의확산에적극부응하여환경의관광상품화를추구하고환상의세계로상품화한다.
이렇게열병처럼번지는지역전통의확립과정에서가장많이언급되는것은풍수지리설에근거한역사읽기나지역의풍경감상하기,지방사람의성향인식하기다.결론적으로,이는비과학적이며이데올로기편향적인내용으로가득차있다.
이런풍수지리설이나심리유형의담론을극복하기위해서는지역의사회적구조와문화체계에대한과학적이고실증적인연구가선행되어야한다.따라서강원학(원주학)이지역에기여할수있는생산성이란실용적으로해석하면거주민들에게문화적,역사적자긍심을고취시키고강원(원주)에서의삶의질을고양시키는한편,다른지역민들에게는살고싶은아름다운고장이라는바람직한이미지를창출시키는데있다.또지역주민의가장큰불만사항인문화생활결핍에대해,지역만의고유한색깔을갖게함으로써주민의자긍심을고취시키고지역발전에대한열의를자극하여경제적교류를촉진시키며지역민들에게지역정치에대한참여열기를높여민주주의적의사결정구조를더욱확고하게다지는초석을놓게될것이다.
지역학이순수한학문을지향하면서도실용적인성과를산출해내기위해우선적인관건은필요한정보(역사,인물,문화등)를충분히축적하고적극적으로해석하여스스로깨닫고그내용을지역민들이공유할수있도록유도하는것이다.역사,문화,인물등과관련된필요한정보를충분히축적하는데인문학은일차적인역할을할것이며내적인축적이없다면이러한작업만으로도상당한시일을요할것이다.이책은그러한과정을다지는데디딤돌이될것이라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