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저자김도형은서울대학교국사학과졸업(1976),연세대학교대학원문학박사(1989),한국사연구회회장(2004),한국대학박물관협회회장(2013),연세대학교국학연구원원장(2016)역임
현재연세대학교사학과교수,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논저로[대한제국기의정치사상연구](지식산업사,1994),[일제하한국사회의전통과근대인식](공저,혜안,2009),[식민지시기재만조선인의삶과기억](공저,선인,2009),[근대한국의문명전환과개혁론-유교비판과변통](지식산업사,2014),[가마니로본일제강점기농민수탈사](창작과비평사,2016),[민족과지역-근대개혁기의대구·경북](지식산업사,2017)외다수
간행사
서론:한말의교육운동과‘대학’의시작
1.근대화와대학
2.한국의근대교육과‘대학’
3.본책의구성과내용
제1부종합대학을향한여정
한국의근대개혁과언더우드(H.G.Underwood)의교육운동
1.1880년대정부의개혁사업과언더우드
2.대한제국기의개혁사업과언더우드
연희전문학교의‘대학’지향
1.조선크리스찬칼리지(ChosenChristianCollege)설립
2.연희전문학교의‘대학’운영
3.연희전문학교의대학승격노력과좌절
제2부연전학풍의정립과발전:동서고근사상의화충(和衷)
1920~30년대민족문화운동과연희전문학교
1.1920년대민족문화운동과연희전문학교의민족교육
2.연희전문학교학풍의정립:‘東西古近思想의和衷’
보론ㆍ일제강점하의민족운동과연희전문학교
1.3·1운동과연전,세전
2.기독교계의민족운동과연세
3.학생운동단체의조직과활동
4.학생층의학회활동과경제연구회사건
5.일제말기의수난
근대한국학의형성:‘실학’의전통과연희전문의‘국학’
1.근대개혁론과실학
2.유교비판과신도덕건설
3.정인보의양명학과‘5천년간조선의얼’
해방후대학교육과‘화충학풍’의조정
1.해방후학문재건과대학교육진전
2.대학교육의실현과학풍의재정립
제3부화충의학풍과민족문화연구
이윤재의민족운동과역사연구
1.민족주의학문의수학
2.흥사단운동과실력양성론
3.민족주의학술운동과역사서술
정진석의학술운동과실학연구
1.연희전문학교시절의문학청년
2.해방후자주독립국가건설을위한학술·문화운동
3.북한역사학의정립과실학사상연구
홍이섭의역사학:민족주체성확립과후진성극복
1.민족주의형성:배재고보와연희전문학교
2.해방전후의역사연구와[朝鮮科學史]
3.민족사관계승과실학연구
4.민족자주사관확립과한국근현대사연구
보론ㆍ동산학파(東山學派)의신민족주의역사학
1.손진태의역사학과민속학
2.이인영의역사학과서지학
제4부연세역사풍경몇장면
제중원의‘이중적지위’와그변화
1.정부병원제중원의지위
2.제중원에서세브란스병원으로:‘전관판리(專管辦理)’와‘환취(還取)’
세전교장오긍선의의료계몽과대학지향
1.세브란스부임전의오긍선
2.세브란스의전피부과설치
3.의학계몽활동과통속의학강연
4.고등교육의꿈:세전의정착과대학지향
배민수목사의농촌운동과연세
1.3·1운동이전급진적민족주의자로의성장
2.1920~30년대기독교복음주의농촌운동
3.해방전후이승만노선으로의합류와농촌운동
4.연세의농촌지도자양성:언더우드에서농업개발원으로
결어
참고문헌
이책은한국의근대학문과그근간이된대학설립의역사를연희전문학교를통하여검토한것이다.연희전문의설립과대학지향,학문과학풍,그리고민족문화차원에서연전의학풍을구현하려고노력했던학자몇사람을검토하여이런문제에접근하였다.
1876년문호개방후,한국의근대화,근대개혁도서양문명을수용하는방향으로추진되었다.자주화와문명화를통해근대민족국가를만들려던원리는전통적인학문체계로는불가능하였던것이다.개혁론의추진과정에서전통학문과서양학문사이에는쉼없는대립과충돌이일어났으며,이념적으로변용과통합이일어났다.하지만어떤계열의개혁론이라도서양학문을수용하고이를교육하기위한학교설립에대해서는보조를같이하였다.
유교적학문전통에서있었던동아시아국가들의근대학문수용과학교설립은보통교육을위한소학교와중등학교정도에집중되었지만개혁운동,혁명운동이진전되면서최고학부로서의대학설립이논의되고추진되었다.그과정에서중국이나한국은국정교학(國定敎學)이었던유교(주자학)를비판하고과거제도를폐지하였으며,이에따라그교육기관(국자감,성균관등)은소멸되었다.반면일본은제국주의대열에참여하면서제국대학을세웠으며,식민지에도이를연장하여피지배민족의대학설립을억압하는방향으로갔다.
초창기한국의근대교육을주도하고높은수준의대학설립을추진한것은기독교계학교였다.1880년대초조선정부는양무론적근대개혁을추진하면서‘교육과의료’에관한서양인교사의활동을보장하였고,서양인교사를초빙하여정부에서도외국어교육과실업교육을추진하였다.이런정부의후원내지는묵인아래선교사에의해많은학교가세워졌고,특히1885년내한한언더우드와아펜젤러에의해시작되었다.언더우드는고아들을모아학당을열었으며,아펜젤러는배재학당을세워체계적인학교교육을행하였다.
기독교계학교는일찍부터‘대학’을지향하였다.학문의성격상대학수준의교육은의학분야에서먼저시작되었다.선교사들은1885년문을연제중원에의학교를설치하여교육을시작하였고,제중원의운영권한이선교사에게전적으로이관된후(1894)에그교육을일신하였다.1899년에는제중원의학교를다시세우고,의학교육을정비하였다.이의학교는일제하의법규에따라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발전하였다.언더우드의대학설립은1906년부터적극적으로추진되어,서울지역북장로회선교사들특히에비슨과힘을합쳐서울에기독교연합대학을설립하고자하였고,경신학교의대학부를출발점으로하고자하였다.그러나북장로교평양지역선교사와의의견대립으로혼란을겪었다.1915년북장로회의경신학교대학부와북감리회의배재학당대학부가연합하는형식으로조선기독교대학(ChosenChristianCollege)을만들었다.1917년이학교는일제의법령에따라연희전문학교로인가되었고,사립전문학교로서는처음이었다.그교육은전문학교임에도불구하고대학수준으로운영되었다.
한편대한제국정부의교육진흥정책이활발하게추진되면서왕실관련자와고급관료층의학교설립이활발해졌고,이들에의해많은사립학교들이세워졌다.민영환의흥화학교,민영기의중교의숙,엄주익의양정의숙,민영휘의휘문의숙,엄비의진명?숙명학교,이용익의보성학교등이대표적이었다.1905년을사늑약이후에는전국적으로국권회복을위해실력양성,자강을추구하는계몽운동의방법으로교육진흥이일어났다.각지방에는대성학교,오산학교로대표되는많은사립학교들이세워졌다.그러나이들학교는대개소학교(보통교육,초등교육)수준이었으며,그중에서전문적인고등교육,즉‘대학’을지향했던것은이용익이세운보성전문학교(1905)였다.
1910년대말일본의‘대학령’이식민지조선에도적용되었지만,일제는조선안에‘제국대학’외,조선인에의한대학설립은허가하지않았다.조선인에대해서는보통교육,기술교육만강조하여식민지배를위한하급전문가를양성하고자하였으며,전문적인지식습득을위한전문학교만허용해주었다.따라서일제하에서법적인대학으로는유일하게경성제국대학(1924년예과)만존재하였다.
일제하본격적인민립대학설립운동은3?1운동이후에제기되었다.당시부르주아민족주의세력은교육과산업발전을통한실력양성을추구하는문화운동을전개하였는데,민립대학설립운동도그일환이었다.이운동은1920년6월에조직된조선교육회(회장이상재,부회장김사묵)가주도하였고,1923년3월민립대학설립기성회총회를열어취지서,계획서등을결의하여전국적으로이운동을시작하였다.그러나이운동은1925년좌절되었다.
결국일제하에서유일한법적대학은경성제국대학뿐이었고,여기에서의학문수준은높았을지라도‘제국’의학문이었고,식민지배를위한학문이었다.경성제대에견줄수있는한국의학문은부득이전문학교에서담당할수밖에없었다.연희전문학교의문학?역사?상학?자연과학,그리고보성전문학교의법률학?상학,그리고세브란스의전의의학등이그런책무를지게되었다.
이책의제1부에서는연희전문학교가세워진과정과‘대학’을설립하기위해노력한과정을다룬다.1885년4월,한국에온언더우드(H.G.Underwood)선교사는바로교육사업을시작하였고,대학설립을염원하였다.그의교육사업과학교설립은조선정부의근대화개혁속에서가능하였다.언더우드의대학설립염원은1915년기독교연합대학인조선기독교대학의설립으로일단결실을맺었다.이‘대학’은조선총독부의법령에의해연희전문학교로인가되었다(1917).연희전문의대학설립노력은에비슨(O.R.Avison)과언더우드의아들원한경(H.H.Underwood)에의해이어졌다.조선총독부의대학불인가방침에도불구하고,연희전문에서는세브란스의전과통합을통한종합대학설립을계속추진하였다.
제2부에서는연희전문학교의교육방침(1932)으로천명된‘기독교주의하의동서고근(東西古近)사상의화충(和衷)’이라는연전학풍의형성배경과내용을다루었다.이학풍은당시조선사회의과제를교육에서해결하고자한것으로,1920~30년대부르주아진영의민족문화운동이연전의민족교육으로연결되었으며,1930년대에들면서민족문화연구의흐름이조선학운동,국학운동으로발전하게되었던점을통해근대한국학의형성의터전이연희전문이었음을살펴보았다.해방후연희대학교가국학의산실이될수있었던것도바로이런학풍이다시정립되었기때문이었다.
제3부에서는연희의학풍이학교뿐아니라,졸업생이나교수를통해전개되었던점을살펴보았다.교수로는정인보,최현배,백낙준등이많이연구된이들외에조선어학회사건으로옥중에서사망한이윤재에주목하였다.그는신채호의영향을받은민족주의역사학자였으며,대중적인글을통해민족적역사의식고취에노력하였으며,흥사단을통하여민족운동에도참여하였다.또한1930년대연희전문문과를다녔던두사람,홍이섭과정진석을다루었다.두사람은공교롭게도해방후남북분단속에서각각조선후기의실학을연구하였다.연희의교수가된홍이섭은일제말기,?조선과학사?저술을이어1959년정약용의실학을분석한저술을내었고,북한사회과학원철학연구소를책임졌던정진석은1960년에?조선철학사(상)?을주도하고,정약용의철학사상과실학파의사회개혁사상에관해연구하였다.이들은일제하연희전문시절정인보의조선학연구,실학연구의영향아래에서실학을접했고,그후남북한분단속에서각각이를체계화했던점이주목된다.
제4부에는연세의역사가운데몇장면을다루었다.연세역사의출발이된제중원의‘지위’문제는최근제중원의성격(국립병원혹은선교병원)과그이후의계승문제가불거져있기때문에이를정리하는차원이기도하다.또세브란스의전의2대교장을지낸오긍선의활동을다루면서세전차원의대학교육과종합대학지향을살펴보았다.그리고일제하기독교농촌운동을전개했던배민수목사를통하여연희의농업교육도언급하였다.
저자김도형교수는결론으로한국의대학발전에서연희의학문이가지는의미를요약하면서동시에현재자본과국가권력앞에서방황하는대학(연세대)의앞날을가름하기위한방안의하나로,연세대가일제하형성된학풍을어떻게계승하여왔으며,또앞으로어떻게창신(創新)할것인가라는고민을담았다.
어느시대에서나그러했지만,시대의변화가급변할수록대학에대한사회의기대는매우크다.해방후,한국의급격한발전속에서대학은양적으로나질적으로발전,확산되었다.그과정에서대학은자본과국가권력의옹호속에서비약적으로‘발전’하였으나,그반대로대학이본래추구했던정신과,대학이사회에대해져야할책무도외면하였다.사회변화와기대에부응하지못하면대학은언제나위기에직면하였다.4차산업혁명,인공지능이사회를휩쓸고있는오늘날에있어서도또한그러하다.
대학은처음부터국가,사회에대해서이중적인성격을지녔다.대학이제도권의교육기관이라는점에서국가로부터자유로울수는없다.따라서국가는끊임없이자신들이필요한학문,교육,인재를대학에요구하여왔다.근대대학이성장한것도대개부국강병(富國强兵)을지향하는국가의지원덕분이었다.국가의법적,재정적지원으로대학들이질적,양적으로성장하였지만,동시에국가(정부)는그대가(代價)로체제와권력유지를위한학문을강요하였다.대학은‘발전’이라는이름아래,전쟁과경제력과산업기술,고급인력을요구받았다.제국주의시대는물론이거니와지금도마찬가지이다.
한편,근대대학은자본주의의발전과그궤를같이하였다.사회변화에조응한학문(주로응용학문)이더비약적으로발전하였다.이런현상이심화되면서대학의학문적균형이깨어지고,대학은정신적위기에직면했다.외부수요자의요구가강해지고,공급자가수요자의요구에따라가면서대학의정체성에혼란이온것이다.자본가나유지층이대학을직접설립,운영하거나,일부에서는대학을이윤추구의방편으로생각한경우도없지않다.대학을기업경영방식으로운영하면서학문의위축,교권침해등이일어나고있다.
대학에대한국가권력의간섭과억압,그리고자본의논리가대학을지배하면서대학의정신,인문학의위기가심화되었다.응용학문을중시하는입장에서는사회변화속에서이를당연한일로여기고,인문학을사회에서쓸수없는,이른바“용잡는기술”만가르치고있다고조롱하고있다.대학의위기,대학정신의위기앞에서한국의대학,특히‘연세대학교’는어떻게해야하는가.저자는“대학교의기능은진리를가르치는일과선대(先代)에서이어받은문화를보전보호하며,또한그것을후대에전해주는데에있다”는백낙준의말에서대학이진리탐구,실천전수의책임기관이되어야한다는사명을찾는다.
선대의문화를보존하고연구하여이를전해준것은연희전문학교이래연세의전통이었다.그역사에서줄곧사회변화에따라기독교정신위에서동양과서양,신학문과전통학문을‘융합’하고자하였고,이것이학풍으로계승되어왔다.일제하의억압속에서도‘기독교주의하에동서고근사상의화충’으로학풍을정립하였고,해방후에는진리와자유로창립이념을명확하게하고,아울러온고지신(溫故知新),실사구시(實事求是),과학정신을학풍으로천명하였으며,이를이룰수있는교육의방안으로통재교육(通才敎育)을실시하였다.학문사이,전공사이의벽을허물고천지인(天地人)의학문,곧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을관통하고통합하는‘통재(通才)’교육은새로운시대,새로운학문을구축하는원리가될수있다.오늘날대전환기에선대학의정신과사명을위해서도음미해야할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