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한국의 일본인 사회 (도시민ㆍ지주ㆍ일본인 농촌 | 양장본 Hardcover)

일제시기 한국의 일본인 사회 (도시민ㆍ지주ㆍ일본인 농촌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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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식민지’ 한국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경제생활과 삶은 어떠했는지를 분석한 역사서!
우리는 일제 36년간의 식민지배 동안, 조선총독부나 일본군경의 ‘무단통치’와 ‘황국신민화 민족말살’의 역사상에 무척 익숙하다. 그런데 그에 가려진, 이땅에 이주해 살았던 일본인들의 삶들은 어떤 역사상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해방후 한국에 살던 일본인들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사회경제ㆍ생활ㆍ문화 상들은 이후에도 음양으로 한국사회의 여러 부분에 각인되어 흘러왔다. 한국 각 도시와 농촌지역에 몇 십년간 살았던 일본인들의 여러 모습들과 그와 대응해 살았던 한국인의 모습들은 어떻게 흘러가고 갈등하며 살았는지 그 ‘삶의 역사’를 분석함으로써 ‘일제시기’란 블랙홀을 빠져나오는 한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근대 한국농업사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 최원규 교수가 식민지 한국에 살았던 일본인과 일본사회에 대한 방대한 자료들을 활용하여 그 삶의 역사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

최원규

연세대학교사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석사학위와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부산대학교사학과명예교수이다.『대한제국의토지조사사업』(민음사,1995),『일제하만경강유역의사회사』(혜안,2006),『Landlords,Peasants&IntellectualsinModernKorea』(Number128intheCornellEastAsiaSeries,2005),『대한제국의토지제도와근대』(혜안,2010),『일제의창원군토지조사와장부』(선인,2011),『일제의창원군토지조사사업』(선인,2013),『일제의조선관습조사자료해제Ⅲ-조선총독부중추원관련자료』(혜안,2019)등의공저와저서로『한말일제초기국유지조사와토지조사사업』(혜안,2019)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일본제국의식민여론과일본인이주ㆍ식민

제1장일제의한국식민론과일본인농업식민
1.머리말
2.일제의한국경영론과이주ㆍ식민사업
3.일제의국책식민회사설립논의
4.맺음말

제2장일본인의사회적존재형태와농업경영-경남밀양군삼랑진지역사례-
1.머리말
2.삼랑진의경제환경과일본인의존재형태
3.일본인의농업환경과토지소유관계
4.맺음말

제3장일본『동양경제신보(東洋經濟新報)』의한국관계여론(1895~1905)
1.머리말
2.편집진과한국관계기사의분포
3.사설의주제와내용
4.논설ㆍ방문록의주제와내용
5.맺음말

제2부일본인식민지지주제의생애와모습-전북과경남지역사례-

제1장전북지역일본인지주의농장경영과농외투자
1.머리말
2.일본인지주의소유규모변동과농장관리체계
3.기업가농장의자본구성과농업경영
4.일본인지주의농외투자
5.맺음말

제2장경남지역일본인지주제의형성과특질
1.머리말
2.일제의토지확대와농민경제
3.경남지역일본인지주제의형성과정
4.일본인지주의유형과경영형태
5.부산지역대지주의자본전환
6.맺음말

제3장무라이기치베(村井吉兵衛)와하자마후사타로(迫間房太郞)의진영농장설립과경영
1.머리말
2.진영농장의설립과소유주변동
3.무라이농장의구조와농업경영
4.진영농장의소작제도와소작쟁의
5.동면수리조합건설과경제적이해관계
6.맺음말

제3부일본제국의일본인농촌건설사업-동척이민과불이농촌사례-

제1장동척의이민사업과이민반대운동
1.머리말
2.동척이민론과이주실태
3.동척의보호장려시설과동척이민의진정운동
4.조선농민의동척이민반대운동
5.맺음말

제2장불이흥업의옥구간척지조성과불이농촌건설사업
1.머리말
2.익옥수리조합건설과옥구간척지조성사업
3.불이농촌건설과자작농창정사업
4.불이농촌의재건과농가경제
5.맺음말
[보론]후지이간타로(藤井寬太郞)의자작농창정계획론

총결
부록

출판사 서평

저자에따르면,일본제국이한국을식민지로지배한궁극적목표는‘사국구주화(四國九州化)’라는말로단적으로표현되듯,한국을일본의한지방처럼완전히지배하는것이었다.한국에식민지지배기구를구축하여수탈하는데그치는것이아니라한국인을일본인으로개조시키고한반도를영구히일본땅으로만드는데있었다.일제는이목적을수행할인적자원을이주정착시킨다는목표아래농업이민을단계적으로추진하였다.당시일본에는경부철도건설론,러일전쟁불가피론,보호국론과내정개혁론,대륙진출론등이비등하였다.그러나이주사업은지주·자본가위주로진행되고일본농민을이주시켜자작농으로육성하는사업은구호에머물렀다.자소작농과각계각층,특히하층계층도돈벌이를위해이민법개정과함께대거‘자유도한’하였지만,그중자작농민의대량이주가절대적으로요청되었다.일본외상고무라(小村)는만한이민집중론으로이를뒷받침했다.이정책은일본농민을대량으로이주시켜경제와국방의토대,즉식민지지배의중추세력으로육성하여통치체제를구축하려는것이었다.동양척식주식회사는이를본격추진하기위해설립되었다.
이후한국에는다양한직업군의일본인이이주하여정착하다가떠나가기도했다.이책은이들가운데도시민,지주,일본인농촌을다루었다.도시민사례로는새로교통의요충지로등장한경남삼랑진지역사회를다루었다.삼랑진은옛부터낙동강과밀양강이합쳐지는선운교통의요충지이며,개간가능지가넓게존재하였다.이곳에삼랑진역(경부선)과낙동강역(마산선)이건설되면서일본인지주·자본가를비롯한다양한직업군이들어와소일본사회를건설했다.경찰서를비롯한각종통치기구,창고운수업,서비스업,일반농업은물론도시근교농업과특용작물재배지등이존재했다.일본인의직업은농업·상업·운송업을비롯하여관리직·회사원·건축토목직·기능직·품팔이·철도직원·서비스업종등다양하였다.또작부·예기·창녀등도적지않았다.이들은짧은기간여관등에서머물다타지로떠나는특징을보였다.자작농을비롯한영세농도이동이잦았는데,이들은농촌보다도시로향했다.일본인인구는도시적발전이정체되면서감소경향을보였지만,조선흥업이나하자마(迫間),동척같은대지주는계속강세를보였다.조선농민은대부분소작농이나품팔이로살아갔지만,한국인상층부는지배체제에흡수되어지역유지로성장해가는모습도보였다.
식민지지주제는일본제국의조선지배의근간이었다.저자는특히전북과경남일원의지주들을분석했다.이들은러일전쟁무렵부터거점을확보하고군사적지원아래공·사권력을동원하는등온갖불법적수단을동원하여“거저줍다시피”토지를대량확보하고본격적으로농장을건설했다.무라이(村井)농장과한국흥업이대표적인예이다.일본인지주는구래의지주제를식민지지주제로재편하여한국농촌을지배했다.일본인지주는그수적증가와함께소유면적도계속증가했지만,전시체제기에는다소감소하는경향을보였다.그러나일제는이때도부재지주들의토지를강제로위탁경영하게하거나전시농촌재편성정책등을실시하는등식민지지주제를여전히통치의근간으로삼았다.
경남과전북의일본인지주제는여러점에서차이를보였다.경남의일본인지주는하자마,오이케(大池)등상인·고리대형지주와재벌무라이(村井)등이대표적이다.전자는조선에서축적한상인·고리대자본으로토지를확보하고구래의마름의존형경영방식에의지하는모습을보였다.무라이는농민의존형방식으로개간지농장을건설했다.전북의대지주는구마모토(熊本),시마타니(嶋谷),오구라(大倉),가와사키(川崎),불이흥업등이대표적이었다.이들은일본에서축적한자본을동원하여토지를매득하거나지주주도형방식으로농장을건설하고,기업형경영방식을택했다.두지역의지주는한국진출시기·농장소재지와관련하여차이를보였다.경남의지주들은대한제국이외국인토지소유금지조치를강력하게실시하던시기에산곡간에분산적으로존재한토지를확보하고구래의경영체제에의존하여경영하는모습을보였다.전북의지주와한국흥업은러일전쟁무렵군사적지원아래광대한토지를일거에매득하여농장을건설하고기업형경영방식을도입했다.이후에는농장을법인체제로바꾸고경지정리사업등에도적극적이었다.
경남의지주는기존소작인의경작권이나마름의지휘권등을어느정도인정하는모습을보였지만,강권적으로고율지대를부과하여소작쟁의가빈번하게일어나기도하였다.전북의지주와한국흥업은소유권과경영권을한몸에체현하고소작농민을기업의노동자와같이취급하는기업형지주였다.이들양자는토지조사사업에서확정한배타적소유권과일제의지주적농정에힘입어강력한지주권을행사했다는점,그리고조선인지주보다농외부분,특히공업분야에도적극투자했다는점에서공통적이었다.서울이나북한등으로활동지역을확대해가는한편,전력ㆍ철도등기간산업에대주주로참여하는모습을보였다.그러나대재벌이나금융자본에종속적으로편입되는모습도보였다.전북의지주는자기주도적투자이고,경남의지주는대자본에단순참여방식의투자였다는점에서차이를보였다.반면일본의지주나금융자본가출신의지주는지주경영에서벗어나지않는모습을보였다.
이와더불어일본제국이한국을영구히일본으로만들기위해만한이민집중론적입장에서일본농민을대량이주시켜건설한신일본촌도주목한다.동양척식주식회사의‘동척촌’과불이흥업의‘불이농촌’이대표적사례이다.동척의자작이민사업은기존농민의경작권박탈을전제로시행하는것이기때문에이들의격렬한반발을초래하였다.게다가일제가지주적농정을실시함에따라‘탈락이민’‘불량이민’이속출하면서지주형이민으로정책을전환했다.동척은출신지별로집단화하여분산주의적방침아래한국각지에동척촌을건설했다.그러나이민사업은동척의입장에서는수지가맞는산업은아니었다.통치적측면에서도조선농민의반발을거세게초래하여사업은계속축소되었으며,탈락률도적지않았다.동척이민사업은소작권박탈과고율지대의심화의여파로이민반대운동이격렬해지고,동화정책수행에서이민의역할이줄게되자존재의의를상실해갔다.이민반대운동은황해도재령군북율면·남율면,봉산군사인면에서일어난운동이대표적이었다.동척촌민은조선농민과농촌현장에서민족모순과계급모순을동시에지닌적대적관계로마주쳤다.
이후일본제국은동척같은기간지이민은포기하고미간지를개간하여이주시키는방식을채택하였다.불이흥업사장후지이(藤井)가군산인근에옥구간척지를조성하여남쪽지역에는조선인소작농을이주시킨불이농장을건설하고,북쪽지역에는일본인을이주시켜신일본촌=불이농촌건설사업을시도하였다.이사업은불이흥업이주도하고조선총독부와대장성내무성등일본제국총체가참여하였다.불이농촌은일본금융자본의특혜자금과일제의정책적지원아래건설되었지만,불이농민들은자금상환은고사하고생활유지조차어려운형편이었다.불이농촌은산업조합으로조직을개편하고,대대적인자금지원등재건계획을수립했으나향후30년간매년소작료수준의상환금을지불해야자립이가능한부채농가였다.일본금융자본의소작농이나다름없는존재였다.1930년대후반이후미가상승등으로소생하는모습을보이기도했지만,전체의22%가떠나갔으며,25%가외지벌이등으로경제생활을유지해야하는형편이었다.
반면옥구농장의조선인소작농은경작규모가이들의절반에불과하고불이농촌에임금노동자로고용되는등최저의생활을탈피하지못했음에도불구하고갈곳없이머물수밖에없었다.이촌율보다입주율이더높았다.일본제국의일본농촌건설사업은허상에불과했다.이민사업은민족적갈등만조장하고실패로끝났다.
또한일본제국은농업에서공업으로산업정책을전환해가는모습을보였다.그결과일본인은공업분야에괄목할정도로진출했지만,조선인의산업인구에는별변화가없었다.조선인은인구증가의여파로농촌퇴적인구는오히려더증가하였다.이와중에농촌을떠나간일부조선인은공무자유업이나공업부분에진출하기도했지만,대부분은일용노동자에종사하거나만주나일본으로떠나갔다.
만한이민집중론은최대100만명정도의농업인구를이주시켜야한다고주장했으나,일본농민은최대4만명이었다가1942년에는2만명까지감소했다.일본제국은일찍이이주·식민정책을포기하고,식민지지주제와식민지관료제적지배체제를기반으로조선인을일본신민으로,한반도를완전히일본땅으로만드는내선일체=황국신민화정책을시도하였다.이는조선인을전쟁에강제로동원하기위한선전정책에불과하였다.일본의패망과더불어한국의일본인사회는해체될수밖에없었다.
그러나일본제국이한국땅에남긴식민지유산은해방과더불어저절로청산될성질은아니었다.새로운한국사회를건설하는과정에서청산작업을추진해야했다.해방후일본인지주들이남긴농장은해방후적산으로신한공사에서관리하다귀속농지불하정책으로관계농민들에게유상으로분배되기도했다,그러나광대했던불이농촌과동척촌의이후궤적은빈공간으로남아있다.더욱이참혹한한국전쟁을거치고여러갈등속에한국자본주의가발전하면서그발전의부산물,나아가세계제국의식민지근대화론의공세속에식민지유산은계속재탄생되면서한국사회의혼란을부추겼다.주인은간곳없고제국의논리가넘쳐흐르는형국이다.
인간의역사에서토지와농업은삶의토대라는점은변함이없다.땅은우리가살아가는터전이며,먹거리를제공해주는바탕이라는점에서여전히조금도소홀할수없는존재이다.방대한농업ㆍ경제사자료들의추적,분석에대한저자의끊임없는열정으로19세기와20세기를아우르는우리근현대농업사를정리하는연구서가나오기를바라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