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개경·경기 연구 (양장본 Hardcover)

고려 개경·경기 연구 (양장본 Hardcover)

$30.08
Description
고려 건국 1100년! 수도 개경은 어떤 도시였을까? 고려 역사의 변화는 어떻게 개경과 도시 공간을 변화시켰는가!
이 책은 근대와 조선후기에 집중된 한국의 도시 연구를 고려시대로 확장하면서 수도 운영의 실태를 살펴보려 한 연구서이다. 도성 공간 그 자체에만 집중해 온 그간의 고려 도시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도와 경기제, 그 안에 내재한 고려시대 다경(多京) 경영, 즉 복수의 경(京)에서 양경, 단경으로 정착되어 가는 과도 상황을 함께 고찰하였다.
대다수 도시사(都市史) 연구는 도시를 자본주의체제의 산물로 이해하는 서구 이론에 바탕해 왔다. 서양의 도시는 근대 발생의 원천으로서, 외부적 권위로부터 독립해 자치적 법과 행정조직을 갖추고, 다수에 의해 공치(共治)되는 민주적 자유권을 획득하여 봉건적 신분관계를 탈각하고 새로운 경제관계를 맺는 공동체였다. 반면 동양 전근대 사회의 도시는 전제군주의 통치 하에 자생적 상업부분의 성장이 저지되고, 전근대 동양사회에서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정체론적 시각으로 이어졌었다. 그간 한국 도시사 연구들에서도 행정?관아시설이 집중해 있는 한국 전근대사회의 행정도시를 ‘도시’로 파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2000년대 중엽 이후 비로소 근대 및 조선후기에 머물러왔던 서울 연구를 조선전기, 더 소급해 고려시대 남경으로 확장시킨 연구들이 나왔다. 이에 힘입어 전근대 동양도시는 행정·정치중심으로부터 출발하며, 도시성(都市性)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창출되는 것이란 개념이 규정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고려시대 도시사는 건국초 수도 개경으로의 정도(定都) 과정과 도시시설에 연구들이 국한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저자 정은정 박사는 수도는 대내외 변화가 투영되는 공간으로 시기에 따라 그 도시성도 달라지며 이는 고려시대 개경에도 적용되며, 이런 수도의 도시변화는 인근 경기지역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관점에서 고려 도시 연구를 풀어간다.
고려 태조 초창기에는 수도가 전략적 입지로서 중시되었다면, 성종?현종대에는 정치·재정의 중심으로 부각되었다. 수도는 전국 통치행정의 중추로서, 권력중핵으로서, 왕도(王都)로서의 위상은 현종대에 다져질 수 있었다. 왕도로 부각되면서 왕도를 지원할 각종 도시시설이 배치되었다. 도성공간이 중세적 경관으로 연출된 위에다 국왕권을 장엄하기 위해 도성공간에 차별적으로 국가시설을 배치했다. 개경은 당시 동아시아 전반의 중세전환기 도성들과 흡사했다. 국왕은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장엄장치와 규모·시설에 대해 적극적 관심을 두었다. 궁성은 국왕의 공간으로서, 궁궐과 후원 등이 조성되었다. 궁궐은 『주례』와 같이 남북주축선에 일렬로 배열된 형식이 아니라, 자연지세를 감안해 건덕전과 회경전 두 구역으로 구성되었다.
고려시대 경기(京畿)는 왕경을 군사·행정·재정적 부분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경기지역은 그 영역과 위치가 경기북부에서 차츰 경기남부 일대로 하강하고 있다. 개경의 성격이 정치?군사적 부문이 두드러질 때는 경기제도 수도를 방어할 서경 방면의 경기북부에 집중적으로 편성되었다. 이후 개경이 물화집산지로서의 기능이 부각될 때는 유통과 물류이동에 편리한 남경 방면의 경기남부 일대가 중시되었다. 초창기 개경은 분지 형태의 폐쇄적 공간으로, 도읍으로서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는 있었지만 선대의 지지기반과 후삼국 통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적 군사적 요충지 정도의 수도성을 발휘하였다. 송악현과 개성현의 두 현을 합친 왕도 개주(開州)는 태조 당시에는 지방의 큰 읍에 불과하였다.
이후 성종대까지 궁성과 황성 주변으로 각종 행정재정 시설과 사직단 주거구역으로 5부방리가 차례로 마련되었다. 성종 14년 왕경개성부의 설치로 정치적 구심력을 크게 확보할 수는 있었지만, 관할영역이 도성 외에도 지방인 적현(赤縣)과 기현(畿縣)까지 포괄하는 미분화된 상태였다. 현종대에 개경은 정치?행정의 구심력 위에 재정?유통의 중심성까지 확보함으로써 왕도로서의 위상이 한층 강화되었다. 나성 건설로 개경 안팎의 구분이 보다 선명해진데다, 종전까지 경중 5부방리와 경기가 함께 관리되던 성종대의 왕경개성부에서 벗어나, 경기는 지방으로 독립되었다. 현종 9년 개성현과 장단현의 주속현 편성은 각각의 수세의 편의를 위해 역도와 수운의 경유지역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후 문종대 전시과 시지의 기내 분급을 계기로 사실상 개경에서 하루?이틀 정도의 거리까지 사실상의 경기 확대가 이루어졌다. 문종대까지 확대된 경기지역은 개경?서경?남경을 동심원 구조로 에워싸는 형태로, 남경 방면을 1일정, 경기의 연원이 오래된 서경 방면을 2일정으로 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