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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숭실대학교인문대사학과졸업및동대학원졸업미국시애틀퍼시픽대학교및시카고로욜라대학교대학원수학영국리즈대학교중세연구소(IMS)에서Post-Doc.연수성균관대학교초빙교수,명지대학교객원교수,숭실대학교초빙교수역임현재숭실대학교출강,문학박사연구서:「GregoryVII의교황주권론연구」(숭실대학교박사학위논문,2003)역서:존볼드윈,박은구공역,?중세문화이야기?(혜안,2002)공저(역):?중세유럽문화의이해?ⅠㆍⅡ(숭실대학교출판국,2012),?프랑스의종교와세속화의역사?(충남대학교출판원,2013),?중세유럽의사상가들?(숭실대학교출판국,2014)
책을펴내며서론1.그레고리우스7세에대한평가2.문제제기제1장교황그레고리우스7세의시대와삶1.힐데브란드Hildebrand의생애2.추구한정신적이상들제2장개혁사상의토대1.성직자정치론2.클루니수도원의개혁운동제3장그레고리우스7세개혁1.교황주권론의형성2.교황주권론의실천:서임권투쟁제4장교황수장제교회정부의실체화1.추기경제도2.로마시노드(RomeSynod)3.교황청특사(Papallegates)제5장그레고리우스7세의현실인식론1.로마보편교회론2.속죄규정3.성전론제6장군주하인리히4세(1050-1106)의진영1.하인리히(잘리에르조)의통치방식2.독일에서의‘신의평화’운동3.하인리히의인간적인면모맺음말부록약어표참고문헌
세계사적사건인‘카노싸의굴욕’,교권과왕권의충돌의주역들을살펴보다!카노싸의굴욕1077년1월이탈리아북부카노싸성문밖,맨발의한사내가3일동안한겨울눈밭에서성안의한인물에게용서를빌었다.용서를비는사내는신성로마제국황제하인리히4세,그를용서할지를고민하는성안의사내는교황그레고리우스7세.중세교황권과황제권의대표적충돌로,교과서에실려익숙한세계사적사건인‘카노싸의굴욕’의현장이다.교회추기경이나주교등의임명권(소위‘서임권’)을둘러싼이복잡한투쟁은이후‘와신상담’한황제하인리히4세의대반격으로기존교황그레고리우스7세를몰아내고자신과가까운‘대립교황’클레멘스3세에게황제대관을받는드라마틱한전개를보여준다.그러나,일련의사건에가려져,쫓겨난그레고리우스7세가추구한교회개혁에대해선잘알려지지않았다.30년간서양중세사를연구해온이영재박사가이책에서다루는주제도영욕을오간교황그레고리우스7세의개혁의명암을살펴보는것이다.교황그레고리우스7세(GregoryⅦ,1015~1085)가생존했던11세기는첫번째밀레니엄시기로접어들면서이전시기에클루니수도원등이추구했던세기말적인종말론의비전보다는천년왕국이라는새로운사회가도래할것이라는강한기대감이퍼져가고있었다.또한봉건제가확산되고상업이재개되며,인구팽창과더불어농업혁명에의해농업생산성이크게향상되었다.곧이시기는유럽이라는새로운사회적틀을갖추어나가고있던때다.교황그레고리우스7세이러한시기에교황그레고리우스7세가추구한그리스도교공화국은그리스도를머리로하는단일정치공동체로서성베드로의권한을계승한로마교황이정신사와현세사즉교권과속권모두에서절대적권한을지니는것이었다.다시말해지금까지현세사회의일부였던교회는바야흐로교황을그정점으로하는교회를중심으로사회체제가바뀌어야한다고주장했던것이다.그렇다면교황그레고리우스7세가교황주권론에입각해서단행했던개혁적조치들로는어떠한것이있었던가?첫째,교황그레고리우스는당시유럽의정치지배집단에대해개혁을단행하였다.우선성직자의성직매매금지,성직자결혼금지등성직자계층의윤리적규범을확립하는일과또한세속인(황제.군주등)에의한성직서임금지등의조치로구체화되었다.이런개혁조치는교회내에서는성직자특히재속성직자들과갈등을야기하였으며,교회밖에서는신성로마제국의하인리히4세와‘서임권투쟁’을초래하였다.교황권의간섭은지방적자율적성격을가졌던교구성직자는물론군주들에게도고유한권한을침해하는일로간주되었다.그리하여기존의특권을유지하려던군주와성직자들에게있어서는교황그레고리우스야말로전통을위협하는‘위험인물’이었다.성직자들에게엄격한윤리기준을적용할때,당시에는어기지않는이가거의없을정도였다.그러나그레고리우스7세는이를교회법상의강제규범으로제도화함으로써확고한의지로실천하였다.그는주교와수도원장에관한한초대그리스도교공동체가채택하였던자유선출제를재확립하였으며,이를통해성직매매의금지규정도달성할수있었다.성직자의윤리규범확립이라는화두를통해서교회정부와세속정부모두의지배계층에교황의주권을확립하고자했던그의개혁적의도와밀접히결부되었다.때문에그는교황의명령을어기는자는파문되고폐위될수있다는교황주권론을구체적으로실천하였다.둘째,그레고리우스7세의교황주권론은교권및속권의관계라는정치쟁점에서교권의우위를주장하였다.교황만이신의주권적대리자임을주장하고,모든현세적권한의원천임을천명하였으며,특히교황은법률의입법권,사법권,집행권을동시에가지는정치적실체라고하였다.따라서그리스도교군주라면예외없이교황의계도와명령에순종해야했다.더욱이그는자신의이러한교황주권론을실천하기위해서서임권투쟁과같은반황제투쟁조차서슴지않았다.이러한그레고리우스7세의이론과실천은카로링조이후전통적으로군주권에부여되어온종교적신성성에대한도전이었다.군주역시,그가그리스도교도인한,교황권에대한세속권의도전은결코정당화될수없었다.그레고리우스의교황주권론이파생시켰던군주권의탈종교화는이후흥미롭게도군주권의세속화를초래하는계기가되었으며,그것은서구입헌주의의발달에도기여하였다.셋째,그레고리우스7세의교황주권론은교회조직과재산을서유럽전역에확산시켰을뿐만아니라교황청이직접관리했던교황령을현저하게확대시키는계기가되었다.이교황령의확대야말로그이후중세교황권의성장을가능케한근거가되었다.넷째,그레고리우스7세는수도원및수도참사회의확대재편을단행하였다.이들은그의개혁운동전반에지속적인인적물적자원을지원하게되었다.은수자,수도승,수도참사원등은자신들의금욕적인이상을실천하기위해서그레고리우스7세가주창하였던성직매매금지와성직자독신생활등의엄격한윤리적규범을강력히지지하였다.이들이교황청이주도하는개혁전선에합류함으로써그레고리우스의교황주권론은구체적으로종교적사회적실체가될수있었으며,또한이들로서도교황청으로부터면제권등의특권들을인정받음으로써교회정부의강력한전위조직이될수있었다.다섯째,그레고리우스7세는교회정부의제도적개편역시단행하였다.먼저추기경단은교황에게이론적조언과함께실천프로그램을제공하는개혁가집단으로기능하였다.또한로마시노드도그레고리우스의개혁을실천하는중대한교회조직으로기능하였다.교황이주재한로마시노드의결정사항은교황령과같은교회법적효력을가졌다.이시노드결정사항들은교황청특사들을통해지방에전달하였다.그러나이런교황청특사의활동은특히주교의권한이강했던마인쯔,브레멘,랭스등의대주교들과는심각한갈등을빚었다.그리하여교황청특사에대해강력히저항했던이들에대해서는대주교라하더라도파문과폐위를할수있는권한을그레고리우스7세는교황청특사에게부여하였다.여섯째,그레고리우스7세의교황주권론은교황을‘입법자-군주’로확립함으로써교회법의발달및교회정부의법률적운용과지배를가능케하였다.‘법률에의한지배’에관한한교회정부가세속정부의대안적모델이됨으로서,교황그레고리우스7세의교황주권론은중세법과정치문화의발달에중요한초석이되었다.일곱째,그레고리우스7세는당시의폐허가되다시피한로마시를로마교회의이미지와강하게연결시키면서사도좌로서정비하는일이급선무였다.그것은영원한내세를위해서만존재하는왕국이아닌현실적인영역에서의로마교회를근거로하는것이었다.또한로마교회의보편이념에따라교황그레고리우스7세는당시의새롭게등장한기사및상인계층등직업상죄에노출되었던이들에게새로운속죄법령을제정해주었으며,일반인들의속죄를위해로마순례를장려하였다.또중세교회내에서는아우구스틴때부터‘성전’의개념이발달되어왔는데무력사용을정당화하는이론이었다.그레고리우스7세는‘성인군인’의개념을강화시키면서‘그리스도의전사’를축복하였고,이제기사들에게자신들의군사기술을활용하여죄를사면받을수있는길을제공하기에이르렀다.이는십자군원정등으로현실화되었다.그러나카노싸의굴욕이후‘절치부심,와신상담’한하인리히4세는마침내1084년3월로마로진군했고,교황편을든노르만공귀스카르의군대와전투를벌여로마시는약탈과파괴로얼룩졌고,교황그레고리우스7세는로마에서쫓겨나살레르노에서1년여간망명생활중1085년5월25일에죽음을맞이하였다.그의유언은“나는정의를사랑하였고,죄악을미워하였노라.그리하여나는추방생활중에죽노라.”는성경구절이었다.그레고리우스의개혁은그의사후에도지속적으로진행되어갔다.그의뜨거운열정과정의를추구하는카리스마는일부사람들의비난도받았지만,수도승출신의겸손과인내,금욕과강인함은어려운개혁운동을지속시키게하는힘의원천이었다.마지막장에서는그레고리우스7세의상대인하인리히4세의인간적인면모를보여준다.하인리히는선대인오토조에서부터내려오는신정적인군주상을포기하려하지않았다.그레고리우스가요구한속인의서임권금지는결코포기될수없는군주의전통적인권리였고,이를지키려는완강한의지를지니고관철시켰다.그러나하인리히4세는작센과남부독일의세속제후들세력들의저항,나중에는왕위후계자인자신의아들들의반란에직면하였다.이는그의군주권한이매우취약해졌음을의미한다.그와중에프랑스에서발전해온신의평화운동이독일에서의‘지역의평화’에서‘제국의평화’로까지점차확대되어가며,무장하지않은자들즉약자에대한보호조항에서유대인까지포함되어발전되는모습도보였다.저자는유럽중세천년의역사속에갇혀그무게만큼이나무겁게짓눌린중세교회에대한이미지를새롭게조망해보려는작은시도에서이저술을시작하였다.책명‘유럽중세교회의향연’에서도드러나듯이중세교회의칙칙하고어두운이미지보다는교회에서의흥겨운잔치를연상시킨다.이는교의적으로는예수그리스도의만찬인성체성사가이루어지는친교의식탁공동체에서비롯되어우리네동네에서의사람들의출생으로인한돌잔치(세례사성사),성장하여혼인잔치(혼인성사),아프거나죽어서장례식을하는곳(병자성사)이바로중세의교회였다.생로병사인간사의중요한모든일들과때로는개혁이때로는갈등이표출되는살아숨쉬는역동적인교회의모습을계속해서그리고자하는목표이기도하다.때문에저자는본1권에서는11세기교황그레고리우스7세의교회개혁을다루고,곧이어나올2권에서는유럽고중세도시에서발달한교회문화와성자아씨시의성프란체스코의삶을통해도시문화의근간을살펴본다.또한세속왕권에굴복하여무능하고타락한교회의대명사가되어버린‘아비뇽의유수’이후아비뇽교황청에대한새로운시각을다루려한다.그리하여유럽중세와근대를날카롭게단절시키고대비시키는전통적관점을넘어중세와근대가이어지는장기지속적인역사상들을제시하고자한다.저자의후속작이기대되는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