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은고려시대에고려인들이책을간행하면서남겨놓은간기(刊記)와필사한사경(寫經)의발문(跋文)을모아정리한자료집이다.간기에는책을간행하게된간행동기와주관자와참여자등이수록되었다.사경의발문에는발원자와그뜻에동참하여수희(隨喜)한자그리고발원내용이담겨있다.이들자료는고려시대를연구하는문학ㆍ역사ㆍ철학은물론불교미술ㆍ문헌정보학분야에서도연구에많은도움을주리라기대된다.이하책의내용을간략히소개한다.
Ⅰ.고려전기(태조~의종:918~1170)에는100여건의전적이조성된사실이찾아지지만,오늘날남아전하는자료는매우적다.태조왕건이후손들에게거울삼으라고한훈요10조는?신서훈요(信書訓要)?라하여,인쇄해서관료들에게도나눠주었다.오늘날전하는고려시대의목판본중가장오래된것으로목종10년(1007)에간행한?일체여래심비밀전신사리보협인타라니경(一切如來心秘密全身舍利寶?印?羅尼經)?이있다.조탑(造塔)의공덕을강조한이경전은나말여초에들어온듯한데,오대산월정사,안동보광사에서찾아진다.또,필사본으로불국사석가탑에봉안된사례가있어널리유행한듯여겨지나,이후계속해서이어졌는가는알수없다.10년전즈음중국절강지방에갔을때,항주(杭州)혜인원(慧因院)을비롯한여러사찰에서책자로간행보시하는것을보았다.중국에서는오늘날도수지독송하는듯하여흥미롭다.또이보다한해앞서이루어진?대보적경(大寶積經)?사경이있는데,목종의어머니천추태후(千秋太后)가김치양과함께발원조성한것이다.내연관계였던둘의사이를잘입증하여주는자료로서주목된다.
대각국사의천이흥왕사에교장도감(敎藏都監)을설치하고사업을주도하였다.?원종문류(圓宗文類)?간기에는사업에참여한인명들이기록되어있는데,당시화엄종승려들과사찰의면면을살필수있다.또?인왕호국반야경소법형초(仁王護國般若經疏法衡抄)?를비롯한유식학(唯識學)서적은금산사광교원(廣敎院)에서간행보급하였음을알수있다.
Ⅱ.고려중기(명종~원종:1170~1274)에도100여건의조성사실이찾아졌다.
보조국사지눌(知訥)은송광사에주석하면서교화를펼치는한편,여러저술을남겼다.저술의대부분이송광사에서간행되었는데,?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등이있다.또,그의뜻을받들어혜심(慧諶)을비롯한제자들이?주김강반야파라밀경(注金剛般若波羅密經)?등여러경전들을송광사에서계속해서간행보급하였다.
이시기는최씨무인들이정권을장악하고있어서,발원내용에개인의발원과함께국왕최씨집권자의복을비는한편,전쟁의종식을항시기원하였다.고종58년(1258)3월에는집권자최의(崔?)가피살되고,고종이왕권을회복한다.이해겨울간행되는?천로해금강반야바라밀경(川老解金剛般若波羅蜜經)?의간기에‘중광무오(重光戊午)’라하였는데,이는왕권회복을기념한다는뜻을담은것이다.당시에는중국과외교가단절된때여서그들의연호를사용하지않았다.
당시문인들의저술로?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비롯한?파한집(破閑集)?,?보한집(補閑集)?등이간행되었는데,무인정권의정책적지원을받은것으로보인다.정안은분사도감의책임을맡아?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을비롯한여러전적을간행하고발문을남겼다.한편,최이(崔怡)가편찬했다는?제사원적(諸寺院籍)?이찾아지는데,이는무인정권에협조하는사원들을가리기위해편찬한것으로생살부(生殺簿)라하겠다.이어만덕산백련사를중심으로한천태종사찰에서도?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科文本)?해동전홍록(海東傳弘錄)?등을간행하고,사경한사실이자못찾아진다.
Ⅲ.고려후기상(충렬왕~충정왕:1274~1351)에는150여건의전적이조성되었다.
충렬왕15년(1289)윤10월에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을완성하고왕이공주와함께경찬회(慶讚會)를열었다.이때의사경이오늘날전하는데,그중?불공견색신변진언경(不空?索紳變眞言經)?은충렬왕원년(1275)에조성되었다.이로보아,대장경사경에는대략15년의세월이걸린듯하다.
충선왕도대장경을사경하였는데,?불설불명경(佛說佛名經)?을비롯한다수의경전이찾아진다.고려인들이원나라에있으면서대장경을인쇄보시한사례로,혜인원에기진한원관(元瓘)을들수있다.이외에도,충숙왕원년(1314)의성산군부인(星山郡夫人)차씨,13년의(1326)상호군조련(趙璉),15년(1328)의전주호장박환(朴環)의처이씨등여러사례가있다.
충목왕즉위년(1344)황후기완(奇完)이발원하여대장경2부를인쇄하여원과고려에봉안하였다.그가운데하나인?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密多經)?의발문을보면,원나라에서실력을행사했던고려인들로고용복(高龍卜)정독만달(鄭?滿?)등이살펴진다.또한이들은귀한전적들이발굴되면,사비를내어간행보급하면서고려에도보내왔다.엄야선불화(嚴也先不花)가충숙왕7년(1338)에?금강반야바라밀경?을간행하여보내온것을하나의예로들수있다.이판본은그림과주석이달린도해본으로서새로운것이었다.
충숙왕복위6년(1337)에간행된?십초시(十抄詩)?는고려전기에유학자가가려뽑은것에주(註)를달아새로간행한것이다.그런데,그주를단사람이유학자가아닌신인종의노승자산(子山)이라는점은눈여겨볼일이다.한편이시기에새로조성되는경전이나사적의발문을보면민지(閔漬)의글이자못보이는데,?풍악산장안사사적기(楓岳山長安寺事蹟記)??오대산사적(五臺山事跡)?등이있다.
Ⅳ.고려후기하(공민왕~공양왕:1351~1392)에도110여건의전적이조성되었다.
이시기에는원나라가쇠퇴하면서영향력이약화되었다.그럼에도고용복,강금강등의시주로원나라에서간행한책들이연이어고려에들어왔다.또고려에서는그것을바탕으로중간하였으니,?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金剛般若經疏論纂要助顯錄)??장승법수(藏乘法數)?등이파악된다.이시기에는전적의간행이이전보다활발한경향이보이는데,그것은홍건적의침략과왜구의약탈로경판과전적을잃은때문이다.그래서,이시기에는초간본을바탕으로새로판각한중간본과보존된목판을가지고인쇄한인기(印記)가많다.
성리학의수용에따라,?근사록(近思錄)??중용주자혹문(中庸朱子或問)?등이새로간행보급된것은주목할일이다.고려인들의문장을집성한?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등이간행보급된것또한눈여겨진다.
한편이색은문장가로서여러사람들의부탁을받아발문을지은것이제법많다.그런데불교와관련된전적들의발문을보면,다른분야의서적에쓴내용과비교해볼때그리정성을들이지않고있음을본다.그는불교를배척하지않을뿐관심이적었던것같다.
우왕5년(1379)에는환암선사(幻庵禪師)가충주청룡사에서?호법론(護法論)?을간행배포한다.이책은한유(韓愈)와구양수(歐陽脩)가제기한척불론(斥佛論)에대해반박한글로서,송나라재상장상영(張商英)이지은것이다.장상영은불사(佛事)의공덕무용론(功德無用論)에대해유교경전의내용과역사사례를들어논리적으로반박하였다.또한유교와불교가학문을연마하거나수행한뒤얻는결과로서의목표가중생을교화하여그기쁨을함께누리는것처럼같다고하여유불불이(儒佛不異)를주장하였다.그의의도는성리학자들에게척불론의불식(拂拭)을넘어유불불이의취지에공감토록하는것이었다.이를통하여환암은당시성리학자들의비판에대응하려했을것이다.하지만,성리학자들은불교계의폐단을거듭지적하였고,공양왕대에이르러서는척불을강력히주장하였다.이때의상소문에서유학자들이?호법론?을단골로비판하였는데,아마도이는환암이보급한?호법론?의영향때문인듯싶다.
이책은고려시대사람들이간행한목판본에실린간기와불경을필사한사경의발문을모은것이다.그러나오늘날전하지않는것이대부분이어서관련자료를제대로파악하기어려운실정이다.이러한문제의해결을위해편저자는다각적인노력을경주하였다.
먼저,고려인들의저술로중국에서중간(重刊)된서적은물론,고려인들의보시로중국에서간행한서적들도수록하였다.그서적들이고려에들어와영향을주기때문이다.다음,서적의일부만전하거나전하지않더라도,다른문헌속에서그서문이나발문이찾아지는것을수록하였다.또,저술이전하지않더라도,다른문헌(혹은금석문)에내용의일부가전해지는인용기사와연기(緣起)기사도수록하였다.나아가,중국과일본의자료속에전하는기사들도마찬가지로수록하였다.이외에도저술ㆍ편찬된사실만을전하는간략기사와간기가없더라도주목할서적들역시표를만들어연구자들이놓치지않도록하였다.
이같은편저자의노력으로,여기에는500건에이르는항목,20개의표,10건의고이(考異)기사가모아졌다.더욱편저자는오탈자와이체자교감에많은주의를기울여,이전에생겨난오류를바로잡았다.
이책은고려사와사상사는물론,불교학,서지학,미술사분야의연구에있어커다란반향을일으킬자료집으로서역할을할것이다.